평택 5라인, 전남·구미 AI데이터센터, 울산 전고체 배터리
삼성이 향후 5년간 국내에만 45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반도체부터 AI 인프라, 전고체 배터리, OLED, 패키지기판, 청년 일자리, 협력사 상생까지 전(全) 그룹 차원을 아우르는 ‘종합 투자 패키지’다.
단일 기업의 투자 계획으로는 이례적인 규모이자, 한국 산업 구조 재편의 방향을 사실상 선제적으로 제시한 셈이다.
450조, 평택 5라인, 그리고 ‘5년’
삼성은 향후 5년간 국내에 총 450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 반도체 라인 신·증설 및 인프라 ▲ AI 인프라(데이터센터 등) ▲ 전고체 배터리 및 차세대 디스플레이 ▲ 협력사 상생 및 스마트공장 ▲ 청년 교육·고용 관련 CSR 등이 포함된다.
핵심 축은 단연 반도체와 AI 인프라다.
삼성전자는 임시 경영위원회를 열어 평택 2단지 5라인 골조 공사를 전격 승인했다. 5라인은 2028년 본격 가동을 목표로 하며, 글로벌 AI 시대에 확대되는 메모리 수요에 대응하는 전진기지 역할을 맡는다.
생산라인뿐 아니라 각종 기반 시설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병행돼, 평택은 “단일 공장”을 넘어 글로벌 메모리 공급망의 핵심 허브로 자리 잡게 된다.
이와 함께 삼성은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자, 전남·구미·광주·울산·아산·부산 등 전국 주요 거점에 첨단 투자 계획을 분산 배치했다.
반도체: 평택 5라인과 메모리의 ‘AI 리레이팅’
삼성전자가 평택 5라인 투자를 결정한 공식적 이유는 분명하다.
“글로벌 AI 시대 본격화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중장기 수요 확대 예상, 이에 선제적 생산라인 확보”
즉, 과거처럼 PC·스마트폰 수요에 의존하는 메모리가 아니라, ▲ AI 데이터센터 ▲ 고성능 서버 및 가속기 ▲ 초대용량 클라우드 인프라 등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수요 구조를 전제로 한 투자다.
2028년 가동을 목표로 하는 만큼, 이번 투자는 단기 업황을 노린 ‘타이밍 베팅’이 아니라 “AI 중심 메모리 수요가 구조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장기 신뢰 선언에 가깝다.
5라인까지 포함한 평택사업장은 웨이퍼 투입부터 패키징, 테스트까지 이어지는 통합형 생산 거점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차세대 메모리 공정, 고집적 패키징, 전력·용수·가스 등 인프라 집약지로 재편된다.
5라인이 본격 가동될 경우, 글로벌 메모리 가격·공급에도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지가 되고, 장비·소재·부품·물류·건설 등 연관 산업에 미치는 파급 효과 역시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기·용수 등 인프라 수급, 탄소중립·온실가스 규제, 메모리 가격 변동 리스크 등은 향후 투자 효과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남는다.
AI 인프라와 지역 균형발전: “전남·구미·광주·울산·아산·부산”이라는 지명에 담긴 의미
이번 투자 계획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삼성의 AI·첨단 제조 인프라가 수도권 밖으로 적극 분산된다는 점이다.
(1) 전남 국가 AI컴퓨팅센터 & 경북 구미 AI데이터센터
삼성SDS는 전남에 국가 컴퓨팅센터(국가 AI컴퓨팅센터) 건립을 추진하는 SPC 컨소시엄의 주사업자로 참여한다.
- 2028년까지 1.5만 장 규모 GPU 확보
- 학계·스타트업·중소기업에 컴퓨팅 자원을 제공
- 정부가 내건 ‘글로벌 AI G3’ 목표의 인프라 기반 역할 수행
경북 구미 1공장은 AI 특화 데이터센터로 리모델링된다. 삼성전자 및 관계사에 필요한 AI 서비스를 중심으로 제공한다. 2028년 완공을 목표로, 제조도시 구미가 “AI 인프라 도시”로도 재정의되는 그림이다.
이는 AI 인프라가 서울·수도권에만 집중되는 구조를 완화하고, 영·호남 주요 거점에 데이터·연산 자원을 분산 배치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2) 광주의 산업용 공조기 생산라인: AI 인프라의 ‘숨은 인프라’
삼성전자가 인수한 유럽 최대 공조기 업체 플랙트(Fläkt) 의 한국 생산라인이 광주에 구축될 계획이란 점도 주목할 만하다.
데이터센터·반도체 공장·배터리·디스플레이 공장은 온도·습도·공기 질·에너지 효율 관리가 핵심이다. 플랙트의 중앙공조 기술과 삼성의 개별 공조 기술을 결합하면, “AI데이터센터 · 팹 · 배터리 공장을 위한 고효율 공조 솔루션” 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
광주는 이미 가전·공조 산업 기반이 있는 도시다. 여기에 플랙트 생산라인이 더해질 경우, AI 인프라의 ‘숨은 핵심’인 공조·냉각 시장에서 한국의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다.
(3) 울산 전고체 배터리 거점, 아산 OLED, 부산 패키지기판
울산 – 전고체 배터리
삼성SDI는 2023년 수원 연구소에 전고체 파일럿 라인을 설치, 시제품 테스트 중이며 2027년 양산 목표를 세웠다. 본격 양산 거점 후보지로 울산 사업장을 검토하고 있어, 울산이 “조선·자동차 도시”를 넘어 차세대 배터리 도시로 도약할 가능성이 커졌다. BMW와 전고체 배터리 실증 프로젝트 MOU는, 기술 신뢰성을 확보하는 ‘품질 인증 수단’으로 기능할 전망이다.
충남 아산 – 8.6세대 IT용 OLED
삼성디스플레이는 아산 사업장에서 8.6세대 IT용 OLED 생산 설비를 구축 중이며, 내년부터 본격 양산에 들어간다. 고해상도 태블릿·노트북·모니터·폴더블 디바이스 등 차세대 IT 기기용 디스플레이 수요에 대응하는 생산기지다.
부산 – FC-BGA 패키지기판
삼성전기는 2022년부터 부산 사업장에 고부가 반도체 패키지기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서버용·AI 가속기용 FC-BGA는 AI 서버 시대의 필수 부품으로, 부산사업장은 국내 최초 서버용 고난도 패키지기판 개발 및 양산 거점이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이 모든 투자들이 종합되면, “전남(컴퓨팅) – 구미(AI데이터센터) – 광주(공조) – 울산(전고체) – 아산(OLED) – 부산(패키지기판)” 이라는 전국 단위의 ‘AI·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 벨트’ 가 그려진다.
청년 고용과 CSR: 6만 채용 + SSAFY·희망디딤돌·C랩
(1) 6만명 신규 채용, 그러나 ‘숫자’만으론 설명 안 되는 변화
삼성은 “상황이 어렵더라도”라는 표현을 전제로, 향후 5년간 6만명 신규 채용 계획을 밝혔다. 이는 연간 1만2천명 수준에 해당하며, 국내 청년 고용 시장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삼성의 인재 전략은 정규직 채용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 회사는 이미 교육형 CSR을 인력·생태계 전략과 긴밀히 결합해왔다.
(2) SSAFY: ‘AI 커리큘럼 60%’의 실전형 인재 풀
SSAFY(삼성청년SW·AI 아카데미) 는 미취업 청년에게 고강도 SW·AI 교육을 제공하고, 실제 기업 취업으로 연결시키는 프로그램이다. 서울·대전·광주·구미·부산 5개 캠퍼스에서 운영 중이며, 2018년 이후 8천명 이상 수료, 2천여 개 기업 취업, 약 85% 취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2023년부터는 5대 시중은행과 협력해 금융 특화 개발자 양성도 병행 중이다.
최근에는 교육 과정의 60%를 AI 관련 커리큘럼으로 확대한 ‘SSAFY 2.0’으로 개편하고, 마이스터고 졸업생까지 문호를 넓혔다. 이는 단순히 “CSR”로 보기보다는, “삼성과 한국 산업 전반이 공통으로 활용 가능한 AI·SW 인재 풀을 키우는 전략적 인력 인큐베이터”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3) 희망디딤돌·청년희망터·C랩 아웃사이드: 취약계층·지역·스타트업까지 확장
희망디딤돌 2.0: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에게 주거 지원을 넘어, 전자·IT제조, 선박제조, 공조냉동, 제과·제빵, SW 개발, 반도체 배관 등 10개 직무 교육을 제공해 경제적 자립까지 연계한다.
- C랩 아웃사이드:
연 30개 스타트업 선발, 최대 1억원 사업지원금, 공간·컨설팅·전시 지원
지금까지 540여 개 스타트업을 육성
대구·광주·경북 지역 거점에서 지방 스타트업을 발굴, 지역경제 활성화 기여 - 청년희망터:
지역 공익활동 청년 단체 지원 프로그램
2022년 이후 56개 지역 80개 단체, 1,414명 청년활동가 지원
도시재생·문화관광 등 지역 문제 해결을 통한 로컬 일자리 창출 효과를 노린다.
삼성이 제시하는 고용·CSR 모델은 “정규직 채용 + 교육·창업·지역활동을 통한 간접 고용·역량 형성”이라는 다층 구조를 띤다.
협력사 상생: 스마트공장·펀드·ESG·인센티브의 ‘풀 패키지’
삼성은 1~3차 협력회사와의 상생을 위해 다양한 금융·제조·ESG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 저리 대출 지원:
설비투자·기술개발·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올해 상반기 기준 1,051개사에 2조 321억원 지원 - 스마트공장 및 무이자 ESG 투자 지원:
중소·중견 협력사의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
2024년부터는 안전·환경 투자 비용에 대해 무이자 대출 제공 - 협력사 인센티브:
반도체·디스플레이 사업장 상주 협력사 임직원 대상
2010년 이후 2025년 상반기까지 총 8,146억원 인센티브 지급
여기에 상생펀드·ESG 펀드 운용까지 더해지면, 협력사는 ‘단가 깎기’가 아닌 “자금 + 공정혁신 + 인재 + ESG 전환을 포함하는 패키지를 제공받는 구조”가 된다.
물론 협력사와의 진정한 상생 여부는 납품단가 구조, 기술이전 및 공동 R&D, 리스크 분담 구조 등 보다 세밀한 지표로 평가돼야 한다. 그러나 최소한, 자금·스마트공장·ESG·인센티브까지 숫자와 제도로 명시된 상생 전략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삼성 450조”가 말하는 한국 산업의 다음 10년
이번 투자 계획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내포한다.
AI 시대, 메모리는 끝나지 않았다. 평택 5라인 투자는 “메모리 반도체가 AI 인프라의 핵심 부품으로 재평가될 것”이라는 장기 전망에 기반한다.
AI는 데이터센터만이 아니라, 공조·패키지·디스플레이·배터리까지 관통한다. 전남·구미 데이터센터, 광주 공조, 부산 FC-BGA, 울산 전고체, 아산 OLED는 모두 AI·고성능 컴퓨팅·모빌리티와 연결된다.
서울에만 쌓지 않겠다. 국가 AI컴퓨팅센터를 전남에, AI 데이터센터를 구미에, 공조를 광주에 둔다는 것은 “AI 시대의 인프라를 지방에 까는 실질적인 지역균형 전략”이다.
고용·교육·스타트업·협력사를 하나의 생태계로 묶겠다. SSAFY, 희망디딤돌, C랩, 청년희망터, 상생펀드, ESG 무이자 대출 등은 “새로운 산업 생태계에 필요한 사람과 기업을 동시에 키우겠다”는 선언이다.
남은 과제와 리스크
그러나 모든 그림이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난이도와 비용 구조, 메모리 업황 변동과 AI 투자 버블 논란, 데이터센터·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전력·용수·환경 규제, 지방 청년 인구 감소 속에서 인재 확보 가능성 등은 중장기 리스크로 남는다.
결국 이번 450조 투자가 “숫자만 큰 선언”으로 끝날지, “한국 산업 구조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전환점”이 될지는 향후 5~10년 동안 글로벌 경기 흐름, 정부의 인프라·규제 정책, 삼성의 실행력과 리스크 관리 능력에 의해 판가름 날 것이다.
“450조, 한 기업의 투자이자 한국 산업의 시험대”
삼성의 향후 5년간 국내 450조원 투자는 단순히 한 대기업의 사업 계획이 아니라, 한국이 AI·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패키지·공조를 묶은 초연결 제조·데이터 국가로 도약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시험대다.
평택의 5라인, 전남의 컴퓨팅센터, 구미의 AI데이터센터, 광주의 공조 공장, 울산의 전고체, 아산의 OLED, 부산의 패키지기판, 그리고 전국으로 확산되는 SSAFY·C랩·청년희망터. 이 좌표들을 하나의 지도로 연결해 보면, 이번 투자는 분명히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음 10년, 한국 제조와 AI의 골격을 삼성식으로 설계하겠다.”
그 설계도가 실제로 한국 전체의 성장과 일자리, 지역의 회복으로 이어질지, 지금부터가 진짜 검증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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