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누가, 어떤 세계를 향해 그 문을 설계할 것인가
초거대 AI의 다음 거점은 아부다비
지난 5월 22일, OpenAI는 아랍에미리트(UAE)와 협력해 아부다비에 세계 최대 규모의 AI 슈퍼컴퓨터 기반 데이터센터 ‘Stargate UAE’를 건설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사업은 G42, Oracle, Nvidia, Cisco, SoftBank 등 글로벌 테크 기업들과의 협력으로 진행되며, 2026년 200메가와트(MW) 규모의 첫 번째 클러스터 가동을 목표로 한다.
‘Stargate UAE’는 이른바 ‘OpenAI for Countries’ 프로젝트의 첫 사례로, 미국과 UAE가 상호 투자하는 쌍방향 구조를 취한다. 더불어 UAE 전 국민에게 ChatGPT Plus를 무상 제공한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UAE는 이로써 세계 최초로 전국민이 ChatGPT를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국가가 될 전망이다.
연산 규모만 보더라도 10GW 이상의 전력을 소비하는 초대형 시설로, 글로벌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다. 데이터 주권, 기술 외교, 플랫폼 전략이 복합적으로 얽힌 이 협약은 단순한 기술 수출이나 로컬라이제이션을 넘어선다. 특히, OpenAI가 특정 국가 단위와 직접 파트너십을 맺고 자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AI는 더 이상 클라우드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Stargate UAE 프로젝트는 AI 인프라가 더 이상 추상적인 ‘클라우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초거대 언어모델(LLM)의 시대에 AI는 전력, 토지, 냉각 인프라, 규제 체계 등 물리적 자원에 의존하는 ‘하드웨어적 구조물’로 진화하고 있다. AI는 점점 더 많은 연산 자원을 요구하며, 그 연산은 특정한 공간, 특정한 정치체계 아래에서 이뤄지고 있다. 어디서 AI가 작동하느냐는 물음은 곧 누가 그것을 통제하느냐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OpenAI가 UAE 국민 전체에게 ChatGPT Plus를 제공하겠다는 결정은, AI 서비스의 국가 단위 보급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셈이다. 이는 단순한 서비스 제공을 넘어 디지털 주권의 실험이며, AI 접근성과 활용도를 국가 경쟁력의 요소로 끌어올리는 전략이다. 이제 AI가 하나의 외교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지정학의 회색지대에서 탄생한 전략적 허브
Stargate는 또한 기술 지정학의 회색지대에서 등장한 전략적 인프라다. 최근 몇 년간 미국은 AI 칩과 첨단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제한하며, 기술 통제의 강도를 높여왔다. 여기에 더해 미국 정부는 NVIDIA, AMD, ASML 등의 기업에 대해 중국 내 고성능 AI 연산용 칩 납품을 차단했고, 이는 곧 세계 기술 시장의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유럽 역시 자국 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 전략을 강화하고 있어, 사실상 글로벌 기술 공급망은 ‘미·중 중심의 기술 블록’으로 빠르게 나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UAE는 자신을 ‘기술 중립 허브’로 재정의하며, 오히려 이 틈을 기회로 삼고 있다. 지리적으로 중동에 위치해 있으며, 서방과 중국 모두와 전략적 관계를 유지해온 UAE는 글로벌 기술 충돌의 완충 지대 역할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Stargate UAE는 그런 포지셔닝 위에 세워진 상징적 인프라다. 기술 블록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미국도 중국도 아닌 ‘제3지대’에서의 AI 데이터 센터 구축은 각국의 연산 자산 분산 전략에 중요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물론 이 프로젝트가 ‘중립성’만으로 평가받는 것은 아니다. 운영 파트너인 G42는 과거 중국의 화웨이, BGI 등과 협력했다는 이유로 미국 내에서 제재 위험이 거론된 기업이다. 실제로 Microsoft는 2023년 G42와의 협력을 일시 중단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Microsoft는 G42의 소유 지분을 일부 인수하며 통제권을 강화했고, 이번 Stargate 프로젝트에서는 철저한 거버넌스 구조와 미국 정부 승인 하의 협약으로 다시 협력을 재개했다.
결국 이 사례는 AI가 더 이상 ‘기술’만으로 작동하지 않는 시대임을 보여준다. AI 인프라는 지정학, 외교, 경제, 안보의 네 축이 얽힌 복합 전략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Stargate는 그 복잡한 이해관계의 접점에 서 있다. 기술은 중립적일 수 없으며, 그 기술이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구축되는가는 곧 국가 전략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AI 플랫폼의 주권을 고민해야 할 때
AI는 이제 단순한 기술 솔루션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구성하고 재편하는 핵심 인프라로 작동하고 있다. 초거대 AI 연산 인프라는 특정 지역에 집중될수록, 그 지역의 규범, 정치적 이해, 문화적 전제에 따라 정보의 흐름, 해석, 판단 기준이 자연스럽게 좌우될 수 있다. 이는 곧 AI에 의한 담론 형성의 편향, 혹은 데이터 기반 결정 시스템의 주권 침해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AI가 '어디서' 만들어지고, '누구의 데이터'로 학습되며, '어떤 가치 체계'를 반영하느냐는 질문은 기술의 문제를 넘어 글로벌 민주주의와 가치 균형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Stargate’와 같은 프로젝트는 기술적인 진보를 넘어, AI를 둘러싼 정책·윤리·주권의 경계를 실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해당 인프라가 자국 내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각국은 AI에 대한 접근성뿐 아니라 기술 통제력, 정보 안보, 국제 협상의 협상력을 달리 갖게 된다. 이는 향후 AI 기반 경제 경쟁력뿐 아니라, 외교적 자율성 확보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단순히 AI 서비스를 활용하는 '사용자 국가'에서 벗어나, 플랫폼을 운용하고 통제할 수 있는 주체로 전환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동은 지금 그 전환의 중심에 서 있다. UAE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도 '네옴(NEOM)' 프로젝트와 국가 차원의 AI 연구소 설립, 글로벌 AI 대회 유치 등을 통해 에너지 기반 경제에서 데이터 기반 경제로의 대전환을 본격적으로 시도 중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지 기술 수입국에서 벗어나 데이터, 연산력, 거버넌스까지 아우르는 기술 주권국으로 자리매김하려는 국가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와 같은 변화 속에서 한국을 비롯한 디지털 강국들도 ‘AI 강국’이라는 슬로건만으론 부족하다. 자국 내 AI 연산 인프라의 자립도, 국가 차원의 데이터 주권 전략, 그리고 플랫폼 외교 역량에 대한 전면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 현재처럼 AI 기술의 대다수를 글로벌 기업의 API에 의존하는 구조로는, 장기적으로 기술 자율성과 사회적 가치 통제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연산 주권’과 ‘가치 주권’, 이 두 축을 아우르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술의 국경이 다시 쓰이고 있다
Stargate UAE는 우리에게 묻는다.
'AI는 어디에서 만들어지고, 누구의 기준으로 작동하며, 어떤 손에 의해 운용되어야 하는가?'
기술이 점점 더 무형화되고 있지만, 그 물리적 뿌리는 오히려 더 뚜렷해지고 있다. 서버는 특정 땅에 박히고, 연산은 특정 권력 아래 작동하며 그 위에 올라탄 알고리즘은 결국 누구의 세계관을 닮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Stargate’는 단순한 AI 인프라가 아니다. 그것은 다음 질서로 통하는 관문이자, 기술 주권이라는 개념이 실체를 갖기 시작한 첫 번째 관문이다.
이제 누가, 어떤 세계를 향해 그 문을 설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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