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게임에서 골을 넣으면 관중이 환호하고, 해설자가 목소리를 높인다. 농구 게임에서는 TV 중계처럼 리플레이가 나오고, 야구 게임에서는 실제 선수의 투구폼과 타격폼이 정교하게 재현된다. 어느새 스포츠 게임은 현실의 경기를 대신 볼 수 있을 만큼 사실적인 장르가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하다. 게임은 실제로 공을 찰 수도, 던질 수도, 잡을 수도 없다. 컴퓨터는 경기장의 공기, 선수의 호흡, 관중석의 열기를 직접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게임 속 경기에서 실제 스포츠와 비슷한 긴장과 쾌감을 느낀다.

스포츠는 복제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스포츠 게임을 가장 현실적인 게임 장르라고 생각한다. 실제 선수들이 등장하고, 유니폼과 경기장이 재현되며, 선수 능력치는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업데이트된다. 축구 게임에서는 실제 클럽과 리그가 등장하고, 농구 게임에서는 방송 중계 같은 카메라 연출이 더해지며, 야구 게임에서는 투수의 손끝과 타자의 스윙까지 세밀하게 구현된다.

하지만 스포츠 게임은 처음부터 현실을 그대로 옮기려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스포츠 게임의 역사는 현실 스포츠를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규칙과 숫자로 바꾸려는 시도에 가까웠다. 게임은 공을 직접 차거나 던질 수 없다. 개발자는 선수의 움직임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공의 궤적을 물리 연산으로 계산하며, 심판의 판정을 조건문으로 구현해야 한다.

결국 스포츠 게임은 현실을 복제하는 장르가 아니라 인간이 몸으로 익힌 움직임과 판단, 그리고 승부의 긴장감을 시스템으로 번역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공 하나와 막대기 두 개, 스포츠 게임의 시작

그렇게 거대한 스포츠 게임의 역사도 의외로 아주 단순한 곳에서 출발했다.

1972년 등장한 「Pong」은 흔히 최초의 대중적인 스포츠 게임으로 이야기된다. 하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것을 탁구 시뮬레이터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화면에는 두 개의 막대와 하나의 공이 있을 뿐이다. 공은 일정한 각도로 튕기고, 막대는 위아래로 움직이며, 상대가 공을 놓치면 점수를 얻는다.

ponggame.org
ponggame.org

실제 탁구의 스핀도, 선수의 움직임도, 라켓의 각도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는 탁구라는 스포츠를 이루는 가장 핵심적인 규칙이 담겨 있다. 공을 받아내고, 상대가 놓치게 만든다. 스포츠 게임의 시작은 현실을 얼마나 똑같이 만드는가가 아니라, 스포츠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철학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축구 게임 역시 실제 경기장의 모든 것을 그대로 옮기지는 못한다. 개발자는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선택하고, 그것을 플레이 가능한 규칙으로 다시 설계한다. 스포츠 게임은 처음부터 현실을 복제하기보다, 현실을 이해하고 번역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스포츠를 게임으로 만드는 세 가지 방법

기술이 발전하면서 개발자들은 하나의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스포츠를 어디까지 현실처럼 만들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가 아니었다. 어떤 게임은 현실보다 더 재미있는 스포츠를 만들기로 했고, 어떤 게임은 실제 경기를 가능한 한 정확하게 재현하려 했으며, 또 어떤 게임은 아예 선수 대신 감독과 구단주의 시선에서 스포츠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스포츠 게임은 세 갈래의 길로 나뉘었다.
첫 번째는 아케이드 스포츠 게임이다. 이 장르에서 현실의 규칙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선수는 상식 이상의 점프를 하고, 필살 슛을 날리며, 경기장은 때로 액션 영화 같은 무대가 된다. 스포츠는 사실적인 재현보다 짜릿한 쾌감과 판타지를 전달하는 소재가 된다.

두 번째는 스포츠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이 장르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실제 선수의 움직임과 공의 물리, 경기 룰과 팀 전술을 가능한 한 현실에 가깝게 구현하려고 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축구 게임과 야구 게임의 모습은 대부분 이 계보 위에 서 있다.

마지막은 스포츠 매니지먼트 게임이다. 이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선수를 직접 조작하는 것조차 내려놓았다. 플레이어는 경기장이 아니라 벤치와 사무실에서 스포츠를 경험한다. 전술을 설계하고, 선수를 영입하고, 팀을 성장시키는 과정 자체가 게임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세 장르 모두 같은 스포츠를 다루지만, 플레이어에게 맡기는 역할은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어떤 게임은 선수가 되게 하고, 어떤 게임은 현실보다 더 강한 영웅이 되게 하며, 어떤 게임은 감독과 단장이 되게 한다. 결국 스포츠 게임의 역사는 하나의 스포츠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번역해 온 역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시장을 만들고, 가장 오랫동안 현실을 디지털 세계로 옮기려 했던 장르가 있었다.
바로 스포츠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스포츠를 계산하다

스포츠 시뮬레이션 게임이 구현해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많다. 선수의 가속과 감속, 몸싸움과 관성, 공의 회전과 반발력, 심판의 판정, AI 팀메이트의 위치 선정, 감독의 전술 변화까지. 현실에서는 선수와 관중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거의 모든 요소를 컴퓨터는 수치와 알고리즘으로 계산해야 한다.

그래서 스포츠 시뮬레이션 게임은 단순히 그래픽을 사실적으로 만드는 장르가 아니다. 현실 스포츠를 구성하는 움직임과 규칙,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선택과 판단을 디지털 세계의 시스템으로 다시 쓰는 장르에 가깝다.

레이싱 게임이 자동차 한 대의 속도와 마찰을 계산하는 게임이라면, 축구 게임은 22명의 선수와 공 하나가 만들어 내는 공간 전체를 계산하는 게임이다. 공을 가진 선수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조작하지 않는 동료는 어디로 움직일지, 상대 수비는 어떤 타이밍에 압박할지, 빈 공간은 언제 만들어지고 언제 사라질지까지 모두 시스템 안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물론 스포츠 시뮬레이션 게임이 축구만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농구 게임은 개인의 움직임과 신체 접촉을, 야구 게임은 투수와 타자의 심리전과 기록의 축적을, 레이싱 게임은 속도와 마찰, 조향의 감각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번역해 왔다.

다만 축구 게임은 그 요소들이 가장 복합적으로 얽힌 사례였다. 팀 전체의 움직임, 공의 물리, AI 동료의 판단, 현실 리그와 선수 데이터의 갱신이 한 화면 안에서 동시에 작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축구는 왜 시뮬레이션 게임의 중심이 되었나

축구의 규칙은 단순하다. 공을 상대 골대에 넣으면 된다. 하지만 실제 경기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패스와 압박, 공간 창출과 오프사이드 트랩, 선수 간 거리 조절과 전술 변화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단 하나의 공을 중심으로 22명의 선수가 동시에 움직이며 매 순간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낸다.

규칙은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축구; @ChatGPT
규칙은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축구; @ChatGPT

이 복잡함은 축구 게임(축구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들 때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플레이어는 보통 한 명의 선수만 직접 조작한다. 하지만 축구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내가 조작하지 않는 10명의 동료가 어디로 움직이고, 상대 수비가 어떤 타이밍에 압박하며, 빈 공간이 언제 열리고 닫히는지까지 게임은 계속 계산해야 한다.

그래서 축구 게임은 단순한 조작 게임이 아니다. 플레이어와 AI가 함께 하나의 팀을 만들어 가는 협력형 시뮬레이션에 가깝다. 플레이어는 내가 조작하지 않는 동료가 어디로 뛰어들지 기대하고, 개발자는 그 기대를 만족시키는 움직임과 판단을 시스템 안에 구현해야 한다.

축구가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라는 점도 중요했다. 유럽과 남미, 아시아와 중동을 가리지 않고 거대한 팬층이 존재하고, 실제 리그와 국가대표 경기, 선수 이적시장과 시즌 데이터는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현실 축구가 계속 움직이는 만큼, 축구 게임 역시 업데이트와 라이브 서비스를 통해 살아 있는 스포츠를 디지털 세계에 이어 붙일 수 있었다.

결국 축구 게임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를 다뤘기 때문이 아니다. 축구는 가장 단순한 규칙 안에 가장 복잡한 움직임과 판단을 담고 있었고, 동시에 현실의 리그와 선수 데이터가 계속 갱신되는 스포츠였다. 바로 그 점이 축구 게임을 스포츠 시뮬레이션 게임의 중심에 놓이게 했다.

위닝과 피파는 무엇을 경쟁했는가

그래서 축구 게임의 역사는 단순히 그래픽 경쟁의 역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축구라는 스포츠를 무엇으로 이해할 것인가, 그리고 현실 축구의 어떤 부분을 디지털 세계로 옮길 것인가에 대한 경쟁이었다.

위닝과 피파는 무엇을 경쟁했는가; @ChatGPT
위닝과 피파는 무엇을 경쟁했는가; @ChatGPT

한쪽에는 「위닝 일레븐」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Winning Eleven', 해외에서는 'Pro Evolution Soccer(PES)'라는 이름으로 알려졌고, 지금은 eFootball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는 코나미의 축구 게임 시리즈다. 그 출발은 1995년 일본 J리그를 기반으로 한 「J.League Jikkyou Winning Eleven」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World Soccer Winning Eleven」과 「Pro Evolution Soccer」를 거치며 성장한 위닝은 2000년대와 2010년대 초반까지 전 세계 축구 게임 시장에서 피파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대표적인 스포츠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자리 잡았다.

2000년대의 '위닝'은 축구 게임 팬들에게 ‘경기 감각’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라이선스나 중계 연출에서는 '피파'보다 부족한 경우가 많았지만, 많은 플레이어들은 위닝이 실제 축구를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느꼈다. 공은 선수의 발에 자석처럼 붙어 있지 않았고, 패스에는 미세한 방향과 강도의 차이가 있었다. 짧은 패스가 이어질 때마다 선수와 공 사이에 작은 간격이 생겼고, 플레이어는 그 간격과 템포를 읽어야 다음 움직임을 만들 수 있었다.

그시절, '위닝'을 오래 즐긴 사람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스루패스를 찔러 넣는 순간의 타이밍, 공이 발에서 살짝 떨어져 굴러가는 감각, 동료 선수가 빈 공간으로 침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패스를 보내는 경험 말이다. '위닝'이 구현하려 했던 것은 화려한 방송 화면이 아니라, 실제 경기장에서 공이 흐르는 리듬이었다.

이런 점에서 '위닝'은 축구를 ‘경기장 안의 흐름’으로 이해한 게임이었다. 실제 축구의 재미는 단순히 유명 선수를 조작하는 데 있지 않다. 공이 어디로 흐를지 예측하고, 동료가 어느 공간으로 움직일지 기다리며, 패스 한 번으로 상대 수비의 균열을 만들어 내는 데 있다. 위닝은 바로 그 감각을 시스템으로 번역하려 했다. 화려한 외피보다 공의 무게, 패스의 템포, 공격과 수비 사이의 거리감이 더 중요했던 게임이었다.

[게임 장르 이야기] 현실을 플레이하게 만든 ‘스포츠 게임’ ① 현실의 규칙을, 게임은 어떻게 시스템으로 번역했을까
https://www.konami.com/efootball/en-us/

물론 지금의 위닝은 과거와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지 않다. 코나미의 축구 게임은 2019년 'eFootball PES'라는 이름을 거치며 온라인 경쟁과 e스포츠를 더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고, 2020년에는 완전한 신작 대신 「eFootball PES 2021 Season Update」를 출시했다. 이는 기존 'PES 2020'의 게임플레이를 기반으로 최신 선수와 클럽 데이터를 반영한 성격의 작품이었다. 이후 코나미는 2021년 시리즈를 'eFootball'로 재편하며, 연간 패키지 중심의 축구 게임에서 무료 플레이 기반의 라이브 서비스 플랫폼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과거의 위닝이 친구와 한 경기를 치르며 경기 감각을 즐기는 콘솔 축구 게임에 가까웠다면, 현재의 'eFootball'은 온라인 대전과 지속적인 업데이트, 선수 영입과 팀 육성, 시즌 이벤트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서비스형 스포츠 게임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렇다고 위닝이 추구했던 철학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름과 서비스 방식은 바뀌었지만, 'eFootball' 역시 여전히 선수 간 거리와 공의 움직임, 패스의 리듬과 공간 활용 같은 경기장 안의 감각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 다시 말해 2000년대의 위닝이 ‘축구 경기를 번역한 게임’이었다면, 오늘날의 eFootball은 그 철학을 라이브 서비스 시대에 맞게 다시 해석하고 있는 축구 플랫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피파」가 있었다. 1993년 「FIFA International Soccer」로 시작한 EA의 축구 게임 시리즈는 오랫동안 FIFA 공식 명칭을 사용해 왔고, 2023년 이후에는 「EA SPORTS FC」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피파는 실제 선수와 국가대표팀, 리그와 유니폼을 게임 안으로 가져오는 데 집중했고, FIFA라는 이름이 주는 공식성과 방대한 라이선스를 바탕으로 현실 축구와 게임을 연결하는 길을 선택했다.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피파는 단순한 축구 게임을 넘어 하나의 디지털 축구 경험으로 성장했다. 실제 방송 중계를 보는 듯한 카메라 워크와 연출, 실제 리그와 클럽, 경기장과 선수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분위기는 플레이어에게 단순히 축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축구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감각을 제공했다. 내가 좋아하는 클럽의 유니폼을 입고, 익숙한 리그에서 경기를 치르며, 실제 스타 플레이어를 조작하는 경험은 현실 축구 팬덤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 차이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바꾸었다. '위닝'이 "축구를 하는 맛"에 가까웠다면, 피파는 "축구 세계 안에 들어가는 느낌"에 가까웠다. 피파는 축구를 단순한 경기 규칙이 아니라, 선수와 클럽, 리그와 팬 문화, 그리고 실제 축구를 둘러싼 모든 요소가 연결된 거대한 콘텐츠로 이해했다.

https://www.ea.com/ko/games/ea-sports-fc/fc-26
https://www.ea.com/ko/games/ea-sports-fc/fc-26

이 철학은 「FIFA Ultimate Team」, 지금의 「Football Ultimate Team」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얼티밋 팀에서 플레이어는 정해진 팀으로 경기를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실제 축구 선수들을 카드 형태로 수집하고, 자신만의 스쿼드를 구성하며, 시즌 활약과 이벤트에 따라 변화하는 콘텐츠를 경험한다. 현실에서 선수가 좋은 활약을 펼치면 게임 안에서도 특별 카드가 등장하고, 이적시장이 열리면 팬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게임 속 팀 구성으로 이어진다.

이때 축구 게임은 더 이상 90분 경기의 재현에 머물지 않는다. 현실의 이적시장과 선수의 폼, 주간 이벤트와 레전드 선수 카드, 팬덤의 관심과 수집 문화가 모두 게임 안으로 들어온다. 좋은 선수를 얻고, 나만의 팀을 만들고, 현실 축구의 흐름에 맞춰 게임 속 스쿼드를 갱신하는 과정 자체가 플레이가 된다.

최근의 'EA SPORTS FC'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연간 패키지 게임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Ultimate Team', 'Clubs, Career Mode'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실제 시즌과 연동되는 라이브 콘텐츠를 강화하며 현실 축구와 게임을 하나의 서비스 안에서 이어 붙이고 있다. 오늘날의 피파, 그리고 'EA SPORTS FC'는 축구를 하나의 경기라기보다 계속 움직이는 데이터와 팬덤, 라이선스와 커뮤니티가 결합된 살아 있는 생태계로 번역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위닝은 경기를 번역했고, 피파는 축구 생태계를 번역했다. 하나는 공이 흐르는 감각과 경기의 리듬을 붙잡으려 했고, 다른 하나는 리그와 선수, 라이선스와 팬덤까지 이어지는 현실 축구의 세계 전체를 게임 안으로 끌어왔다.

위닝일레븐과 피파의 경쟁은 어느 게임이 더 현실적인가를 겨루는 싸움이 아니었다. 현실 축구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경쟁이었다. 그리고 이 경쟁 덕분에 축구 게임은 단순한 스포츠 재현을 넘어, 스포츠 시뮬레이션 게임의 가장 대표적인 장르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스포츠는 어떻게 게임이 되었을까

결국 스포츠 시뮬레이션 게임은 현실을 그대로 복사하는 장르가 아니었다. 농구는 신체의 움직임과 접촉을, 야구는 투수와 타자의 심리전과 기록의 축적을, 레이싱은 속도와 마찰의 감각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스템 안에 옮겨 왔다.

그중에서도 축구 게임은 가장 복합적인 실험장이었다. 22명의 선수와 공 하나가 만들어 내는 공간, 내가 조작하지 않는 동료의 움직임, 실제 리그와 선수 데이터의 갱신까지 함께 다뤄야 했기 때문이다. 위닝일레븐과 피파의 경쟁은 그 복잡한 현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번역해 온 역사였다.

스포츠 게임은 현실을 그대로 옮기지 않는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플레이 가능한 규칙으로 바꿀지 선택한다. 스포츠는 게임 속에서 복제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스템으로 다시 쓰여 왔다.

하지만 스포츠 게임이 모두 현실을 충실히 재현하는 길만 선택한 것은 아니다. 스포츠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현실을 정교하게 옮기려 한 게임들이 있었다면, 현실보다 더 빠르고 더 화려한 재미를 선택한 게임들도 있었다.

바로, 아케이드 스포츠 게임이다.

[게임 장르 이야기] 현실을 플레이하게 만든 ‘스포츠 게임’ ② 현실보다 더 화려한 스포츠를 꿈꾼 ‘아케이드 스포츠 게임’ 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