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말부터 2026년 봄까지 이어진 주요 게임 시상식의 결과는 이례적이었다.
프랑스 몽펠리에의 신생 스튜디오 샌드폴 인터랙티브가 만든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는 2025년 11월 골든 조이스틱에서 최고상을 받은 데 이어, 12월 게임 어워드에서 올해의 게임을 포함해 9개 부문을 휩쓸었다. 이듬해에도 수상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DICE와 BAFTA에서 최고상을 받았고, 3월 게임 개발자 초이스 어워드에서는 올해의 게임을 포함해 5관왕에 올랐다. 대중적 화제성과 평단의 평가뿐 아니라, 동료 개발자들의 판단까지 한 작품에 모인 셈이다.

그러나 더 주목할 것은 수상 자체보다 그 뒤에 놓인 제작과 판매의 숫자다. 게임을 이끈 샌드폴의 핵심 개발 인력은 약 30명이었다. 뉴욕타임스가 개발사 인터뷰를 바탕으로 보도한 제작비는 1000만 달러 미만이었다. 판매가는 당시 주요 AAA 신작의 일반적인 가격인 69.99달러보다 20달러 낮은 49.99달러로 책정됐고, 출시 1주년을 맞은 2026년 4월에는 누적 판매량 800만 장을 넘어섰다.
핵심 개발팀의 규모만 놓고 이 작품을 단순한 소규모 게임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외부 스튜디오와 전문 인력이 제작에 참여했고, 언리얼 엔진 5를 기반으로 높은 수준의 그래픽과 연출을 구현했다. 그럼에도 최근 대형 게임들이 수억 달러의 제작비와 수천 명에 이르는 크레딧을 전제로 하는 것과 비교하면, '33 원정대'가 보여준 비용과 성과의 간격은 분명히 달랐다. 비교적 작은 내부 조직과 통제된 예산으로도 대형 게임에 기대되는 시각적 완성도와 상업적 성과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숫자로 증명한 것이다.
이 흐름을 한 작품의 예외로 돌리기도 어렵다.
체코 워호스 스튜디오의 '킹덤 컴: 딜리버런스 2'도 다른 방식으로 비슷한 결과를 남겼다. 개발사 공동 창업자 다니엘 바브라가 밝힌 제작비는 약 10억 체코 코루나, 당시 환율로 4000만 달러 안팎이었다. '33 원정대'와 비교하면 훨씬 큰 프로젝트였지만, 최근 미국 대형 스튜디오의 블록버스터 제작비와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었다. 이 게임은 출시 하루 만에 100만 장을 판매했고, 2026년 6월에는 누적 600만 장을 넘어섰다. 출시 후 약 17개월 만의 기록으로, 전작이 같은 판매량에 도달하기까지 6년가량 걸렸던 것과 비교하면 성장 속도가 크게 빨라졌다.
같은 해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의 층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게임 어워드 올해의 게임 후보에는 팀 체리의 '할로우 나이트: 실크송'과 슈퍼자이언트 게임즈의 '하데스 2'가 함께 올랐다. 두 작품 모두 오랜 시간 자신들만의 장르와 제작 방식을 다듬어온 독립 스튜디오의 결과물이었고, 전통적인 AAA 게임과는 다른 조직과 비용 구조에서 만들어졌다.

그중 '실크송'은 평가뿐 아니라 판매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남겼다. 팀 체리는 2025년 12월 누적 판매량이 700만 장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게임패스를 통해 이용한 플레이어는 포함되지 않은 수치였다. 대형 퍼블리셔의 초대형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오랜 시간 쌓아온 팬층과 장르적 신뢰를 바탕으로 수백만 장 규모의 시장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준 사례였다.
물론 대형 자본이 만든 작품이 사라진 해는 아니었다. '데스 스트랜딩 2'와 '고스트 오브 요테이' 같은 대작도 주요 시상식 후보에 올랐고, 높은 판매량과 화제성을 기록했다. 2025년을 대작의 공백기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그해의 평가와 담론을 이끈 중심에는 전통적인 초대형 블록버스터보다 작은 조직과 통제된 예산으로 만들어진 게임들이 있었다.
왜 중간이 비어 있었나
이 현상이 특별하게 받아들여진 이유는, 불과 얼마 전까지 그 층위가 사라지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2024년 게임스컴 아시아에서 전 플레이스테이션 경영자 숀 레이든은 AA 게임이 사라진 현상을 산업 생태계의 위협으로 지목했다. AAA 게임의 제작비가 수억 달러 수준으로 올라가면서 기업이 위험을 감수하기 어려워졌고, 그 결과 자원이 검증된 속편과 기존 흥행작을 닮은 프로젝트에 집중되면서 창의성이 위축되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논리는 단순하다. 한 작품에 투입되는 자금이 커질수록 실패가 기업에 미치는 충격도 커진다. 한두 편의 실패가 스튜디오의 존속이나 상장사의 실적을 흔들 수 있다면, 프로젝트를 승인하는 기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미 성공한 IP와 익숙한 장르, 확인된 이용자층을 바탕으로 한 제작 방식이 우선되고, 새로운 시도는 작품의 가능성보다 실패했을 때 남길 손실을 먼저 심사받게 된다.
문제는 제작비가 늘어난 만큼 게임의 내용도 비례해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개발 인원이 많아지면 팀과 협력사를 조정하기 위한 관리 비용이 늘고, 제작 기간이 길어질수록 인건비와 기술 유지에 필요한 고정비도 쌓인다. 회수해야 할 금액이 커지면 더 넓은 시장을 겨냥한 마케팅과 유통 비용까지 함께 증가한다. 프로젝트가 커질수록 게임을 만드는 비용뿐 아니라, 거대한 조직과 사업을 유지하는 비용도 함께 불어나는 것이다.
이 구조에서는 적당한 성공을 목표로 한 게임이 가장 애매한 위치에 놓인다. 대형 퍼블리셔의 기대 매출을 맞추려면 프로젝트를 더 크게 만들어야 하고, 그만한 투자를 받지 못한 새로운 시도는 소규모 인디 영역으로 밀려난다. 중간 규모의 게임은 블록버스터가 요구하는 수익에는 미치지 못하면서도, 인디 게임처럼 낮은 비용으로 버티기에는 조직과 제작 범위가 너무 크다.
그 결과 시장의 양끝은 남았지만, 그 사이를 잇던 제작 방식은 약해졌다. 한쪽에는 수천만 장의 판매와 장기적인 수익을 전제로 한 블록버스터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제한된 자원으로 생존을 모색하는 인디 게임이 있었다. 그 사이에서 수백만 장만 팔아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회사 전체가 흔들리지 않는 규모의 프로젝트는 점차 보기 어려워졌다.
AA가 사라졌다는 말은 단순히 특정한 예산 구간의 게임이 줄었다는 뜻이 아니다. 적당한 비용을 들여 적당한 성공을 목표로 하고, 그 범위 안에서 새로운 장르와 시스템, 서사를 시험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졌다는 의미에 가깝다.
왜 지금 다시 가능해졌나
그렇다면 사라졌다던 중간 규모의 게임은 왜 다시 성과를 내기 시작했을까. 흔히 제시되는 답은 기술의 발전이다. 상용 엔진의 성능이 높아졌고, 디지털 유통이 보편화됐으며, 외부 제작 도구와 에셋도 풍부해졌다. 모두 맞는 설명이다. 다만 이것만으로는 왜 하필 지금인지가 설명되지 않는다. 물어야 할 것은 무엇이 새로 등장했는가가 아니라, 그 변화가 제작 과정의 어느 비용을 낮추고 어떤 위험을 통제할 수 있게 했는가이다.
상용 엔진과 외부 제작 도구의 발전은 소수 인력이 도달할 수 있는 완성도의 상한을 높였다. 렌더링과 물리, 애니메이션에 필요한 기술을 처음부터 자체 개발하지 않아도 되고, 검증된 도구를 쓰면 시행착오도 줄어든다. 작은 팀이 대형 스튜디오와 같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은 아니다. 예전이라면 자체 기술과 대규모 인력이 필요했던 수준의 화면에 더 적은 인원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유통에서는 변화가 더 컸다. 물리 매체 시절에는 제조와 운송, 재고와 매장 유통을 감당해야 했고, 일정 규모 이상의 출하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세계 시장에 접근하기도 어려웠다. 디지털 플랫폼은 이 부담을 걷어냈다. 한 지역에서 대중적인 작품이 되지 못하더라도, 여러 국가에 흩어진 장르 이용자를 모아 손익을 맞출 수 있게 된 것이다. 게임패스 같은 구독 서비스도 초기 이용자와 노출 경로를 더했다. 다만 구독이 판매를 늘리는지, 구매할 이용자를 대신 흡수하는지는 작품과 계약 조건에 따라 다르다. 성공을 보장하는 장치라기보다 출시 초기에 입소문을 만들 통로가 하나 늘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제작 조직의 형태도 달라졌다. 소규모 핵심 팀이 기획과 주요 기술, 창작 방향을 통제하고 그래픽과 사운드, 품질 보증 같은 작업은 외부 인력과 협력하는 방식이 자리 잡았다. 개발비를 없앤 것이 아니라, 모든 인력을 장기간 직접 고용하는 대신 필요한 시점과 분야에 비용을 배분하는 구조다.
그러나 두 작품이 실제로 취한 방법은 기술보다 범위와 비용을 정하는 쪽에 가까웠다.
샌드폴은 처음부터 대형 오픈월드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 이동 가능한 월드맵을 두되 개별 지역은 비교적 제한된 구조로 만들었고, 전면적인 실시간 액션 대신 턴제를 중심에 두면서 회피와 패링 같은 실시간 요소를 결합했다. 제작진은 오픈월드를 만들지 않기로 한 결정이 개발 비용과 범위를 관리하는 데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오픈월드를 포기하면 무엇이 사라지는지는 분명하다. 거대한 지형과 수많은 오브젝트, 반복 가능한 활동, 방대한 퀘스트와 NPC 행동을 채워 넣어야 하는 부담이다. 그 자리에 캐릭터와 전투, 음악과 미술처럼 작품의 인상을 결정하는 요소가 들어섰다. 무엇을 더 넣을 것인가보다 무엇을 만들지 않을 것인가를 먼저 정한 셈이다. 그리고 그 제한이 오히려 작품의 인상을 선명하게 만들었다.
워호스의 방식은 정반대에 가까웠다. '킹덤 컴: 딜리버런스 2'는 2019년 중반 개발에 착수해 2025년 2월 출시까지 약 6년이 걸렸고, 그사이 스튜디오 인원은 131명에서 250명 규모로 늘었다. 인원과 기간만 보면 소규모 프로젝트라고 부르기 어렵다. 그럼에도 제작비는 앞서 본 4000만 달러 안팎에서 통제됐다.

가능했던 이유는 이 작품이 후속작이었다는 데 있다. 전작에서 구축한 세계와 기술, 역사 고증의 방법론, 그리고 이용자층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었다. 새로운 제작 체계와 시장을 처음부터 만들어야 했던 프로젝트와는 출발점 자체가 달랐다. 대형 RPG가 요구하는 인력과 기간은 감수하되, 그 부담이 판매 목표까지 밀어 올리지는 않도록 한 것이다.
두 작품을 같은 규모의 게임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한쪽은 약 30명의 핵심 인력이 이끈 신생 스튜디오의 첫 작품이고, 다른 한쪽은 수백 명 조직이 전작의 자산 위에서 만든 후속작이다. 인원도 기간도 장르도 다르다.
그런데 두 작품 모두 대형 게임이 요구해온 목록을 전부 채우려 하지는 않았다. 샌드폴은 공간을 줄여 연출과 음악에 힘을 실었고, 워호스는 이미 가진 것을 다시 쓰면서 새로 만들 부분을 줄였다. 방법은 달랐지만 판단의 성격은 같았다. 기술과 유통, 제작 조직의 변화는 그 판단을 가능하게 했을 뿐, 대신해주지는 않았다.
성공이 곧 부활은 아니다
하지만 몇 편의 성공만으로 중간 규모 게임이 하나의 산업 층위로 돌아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보는 것은 같은 조건에서 출발한 수많은 프로젝트 가운데 살아남아 이름을 알린 작품들이다. 개발이 중단됐거나 출시 후 시장의 관심을 얻지 못한 게임,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지 못한 스튜디오는 성공의 서사에서 빠져 있다.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와 '킹덤 컴: 딜리버런스 2'가 남긴 성과는 분명하지만, 그 성공이 같은 방식으로 반복될 수 있는지는 아직 다른 질문이다.
AA라는 이름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문제다. '33 원정대'는 약 30명의 핵심 팀과 1000만 달러 미만의 제작비로 만들어졌지만, '킹덤 컴: 딜리버런스 2'에는 개발 후반 약 240명 규모의 조직이 참여했고 제작비도 4000만 달러 안팎이었다. 인원과 예산, 제작 기간이 크게 다른 두 작품이 모두 AAA보다 작다는 이유로 같은 범주에 들어간다.
이 차이는 AA가 단순한 인원수나 예산 구간으로 정의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규모보다 투자와 회수의 관계다. 초대형 판매량을 전제로 하지 않아도 손익을 맞출 수 있는가, 실패하더라도 회사 전체가 흔들리지 않는가, 그 범위 안에서 기존 공식을 벗어난 선택을 할 수 있는가. AA의 귀환을 판단하려면 성공작의 숫자보다 이런 제작 구조가 다음 작품으로 반복되는지를 봐야 한다.
한국은 반대편에서 도착했다
한국 사례는 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펄어비스의 '붉은사막'은 2026년 3월 출시 후 83일 만에 글로벌 누적 판매량 600만 장을 넘어섰다. 장기간 대규모 인력이 투입된 오픈월드 신규 IP가 세계 시장에서 상업적 성과를 거둔 사례였다. 제작비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붉은사막'은 이 글에서 문제로 지목해온 중간 규모 게임이 아니라 대형 프로젝트에 가깝다. 위험이 큰 신규 IP와 장기 개발, 높은 완성도를 전제로 한 게임이 한국에서는 오히려 그해 가장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둔 것이다.

반면 같은 시기 중소 개발사의 상황은 훨씬 불안정했다. '로드 오브 히어로즈'로 알려진 클로버게임즈는 신작 부진과 구조조정 이후 파산을 신청했고, '무당: 두 개의 심장'을 개발하던 EVR스튜디오는 인력이 사실상 이탈하면서 프로젝트가 중단 상태에 놓였다. 출시 직후 서비스를 접거나 조직을 크게 줄이는 사례도 이어졌다. 상반기의 대표적인 장면만 놓고 보면, 대형 프로젝트는 세계 시장에서 성공한 반면 그 아래 규모의 개발사들은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했다.
한국에서 중간 규모의 게임이 비어 있는 이유는 서구와도 다르다. 서구에서는 AAA의 제작비가 커지면서 중간 규모 프로젝트가 밀려났다면, 한국에서는 모바일 부분 유료화가 오랫동안 산업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프리미엄 패키지 게임을 지속적으로 제작할 기반이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다. 서구가 한때 존재했던 중간을 되찾는 문제라면, 한국은 안정적으로 가져본 적 없는 중간을 새로 만드는 문제에 가깝다.
가능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넥슨 민트로켓의 '데이브 더 다이버'는 2023년 100만 장 판매를 시작으로 2026년 3월 800만 장을 넘어섰고, 매출 대부분을 해외에서 거뒀다. 'P의 거짓'과 '스텔라 블레이드'도 각각 300만 장 이상 판매되며 한국산 프리미엄 패키지 게임이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세 작품의 제작 규모와 투자 구조는 서로 다르지만, 모바일과 MMORPG 바깥에서도 한국 게임이 수백만 장의 시장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은 공통적이었다.

그러나 몇 차례의 성공은 아직 하나의 경로가 되지 못했다. 한 작품이 성공한 뒤에도 비슷한 규모와 조건의 다음 프로젝트가 이어지고, 경험을 가진 인력이 다른 스튜디오와 작품으로 확산돼야 산업의 층위가 만들어진다. 한국은 중간 규모 게임의 성공 가능성은 이미 여러 차례 확인했지만, 그것을 반복해서 제작하고 투자할 구조까지는 만들지 못했다.
최근 일부 중소 개발사들이 퍼블리셔 의존도를 낮추고 스팀 중심의 PC·콘솔 시장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대형 MMORPG와 같은 매출을 기대하기보다, 특정 장르와 이용자층을 겨냥해 비교적 긴 기간 판매되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선택이다. 이 움직임이 개별 회사의 생존 전략에 머물지, 한국 게임산업 안에 새로운 제작 층위를 만들지는 아직 열려 있다.
지속의 조건
중간 규모 게임이 하나의 산업 층위로 자리 잡으려면 단순히 작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작은 예산은 그 자체로 경쟁력이 아니며, 비용을 줄이는 과정에서 이용자가 기대하는 완성도까지 사라지면 낮은 제작비는 실패의 원인이 된다. 앞서 살펴본 성공작들이 보여준 것은 무조건적인 축소가 아니라, 성공의 기준과 제작 범위를 서로 맞추는 방식이었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감당 가능한 개발비다. 프로젝트가 회수해야 할 금액이 낮아야 익숙한 공식에서 벗어날 여지가 생긴다. 실패 한 번이 회사의 존속을 위협한다면, 아무리 창의적인 아이디어라도 승인되기 어렵다. 예산은 개발 과정에서 불어난 결과가 아니라, 어떤 위험까지 감수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그다음에는 현실적인 판매 목표가 필요하다. 200만 장을 판매한 게임이 성공으로 인정되는 회계 구조가 있어야, 처음부터 200만 장을 목표로 하는 기획도 승인될 수 있다. 모든 프로젝트가 수천만 명의 이용자와 장기적인 추가 매출을 전제로 한다면, 제작 규모는 다시 커질 수밖에 없다. 적당한 성공을 실패로 처리하지 않는 투자 기준이 있어야 중간 규모의 게임도 반복될 수 있다.
개발 범위 역시 그 목표에 맞춰 정해져야 한다. 중간 규모 게임의 경쟁력은 대형 게임의 축소판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오픈월드의 면적과 콘텐츠의 양, 영화적인 연출과 플레이 시간을 모두 따라가려 하면 예산만 작은 AAA가 되기 쉽다. 무엇을 넣지 않을지 먼저 결정하고, 이용자가 작품의 가치로 받아들일 요소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가 공간의 범위를 제한하는 대신 캐릭터와 음악, 전투와 미술에 힘을 실은 방식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개발사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적정한 예산과 판매 목표, 제한된 범위를 갖췄더라도 이용자에게 알려지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잘 만드는 일과 발견되는 일은 다른 문제다. 출시되는 게임의 수가 늘어날수록 스토어의 노출과 플랫폼 추천, 미디어와 스트리머의 관심을 확보하는 일은 더 어려워지고, 마케팅 여력의 차이는 결국 자본 규모를 따라간다.
이 때문에 중간 규모 게임의 지속 가능성은 개발사의 절제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퍼블리셔는 초대형 흥행 가능성만이 아니라 제한된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작품에도 투자할 수 있어야 하고, 플랫폼은 이미 관심이 집중된 게임 외에도 특정 장르의 이용자와 작품을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앞의 세 조건이 개발사가 게임을 완성하는 방법이라면, 마지막 조건은 완성된 게임이 시장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 조건을 모두 갖춰 성공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남는다. 성공한 스튜디오는 다음 작품에서 같은 규모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판매량이 늘고 팬층이 넓어지면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도 함께 올라간다. 더 넓은 세계와 더 많은 콘텐츠, 더 높은 수준의 연출을 요구받고, 개발사는 성공을 이어가기 위해 인원과 예산을 늘리게 된다. 투자자와 퍼블리셔 역시 전작보다 더 큰 매출을 기대한다. 중간 규모에서 거둔 성공이 다음 작품의 고정비와 손익분기점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여기에 중간지대가 반복적으로 비는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실패한 스튜디오는 사라지고, 성공한 스튜디오는 더 큰 프로젝트로 이동한다. 중간 규모에서 경험과 자본을 쌓은 회사가 그 자리에 계속 남기보다 위로 올라가면서, 비어 있는 자리에는 다시 새로운 팀이 들어와 처음부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AA의 지속은 몇몇 스튜디오가 같은 규모에 머무는 것으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성공한 회사가 위로 이동하더라도, 그 아래에서 새로운 팀과 프로젝트가 계속 등장하고 투자와 유통의 경로가 이어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개별 스튜디오의 크기를 고정하는 일이 아니라, 중간 규모의 성공이 다음 중간 규모 프로젝트를 낳는 순환을 만드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