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제목: Cross-cultural attitudes toward generative AI in Art: Implications for sustainable creativity in the U.S., Japan, and China
저자: Suomiya Bao
doi: https://doi.org/10.1016/j.sftr.2025.100929 Received 4 December 2024; Received in revised
Suomiya Bao가 주목하는 것은 사람들이 AI 예술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때 실제로 어떤 기준을 작동시키는가다. 이 기준은 국가마다 다르고, 예술 장르마다 다르며, 윤리적 우려의 방향도 다르다. 논문은 미국, 일본, 중국의 응답자 416명을 대상으로 문학, 시각예술, 청각예술에 대한 태도와 윤리적 우려를 조사한다. 같은 AI 예술을 보더라도 어떤 사회는 “결과물이 좋은가”를 먼저 묻고, 어떤 사회는 “인간의 역할이 남아 있는가”를 먼저 묻고, 또 어떤 사회는 “권리와 법적 질서가 보장되는가”를 먼저 묻는다.
AI 예술은 어디서 가치가 생기는가
AI 예술은 같은 이미지, 같은 음악, 같은 글이라도 그것을 둘러싼 설명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누가 만들었는지, 인간이 얼마나 개입했는지, 저작권은 정리되었는지, 허위정보를 만들 위험은 없는지에 따라 감상의 기준이 바뀐다. 저자는 이 평가 기준의 차이를 문화적 태도와 연결한다. AI 예술을 둘러싼 수용성은 미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창작, 노동, 기술, 권리, 진실을 어떤 순서로 배열하는가의 문제다.

중국: 결과물의 품질을 중심에 놓는 태도
논문에서 중국 응답자들은 세 나라 중 생성형 AI 예술에 가장 낙관적이다. 이들은 AI 도구 사용 경험도 가장 높고, AI가 만든 문학·시각예술·음악의 가치를 더 적극적으로 인정한다. 특히 “인간이 만들었는지 AI가 만들었는지보다 내용이 좋으면 괜찮다”는 태도에서 중국 응답자의 특징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AI 예술의 가치를 높이는 요소를 묻는 순위 질문에서도 중국 응답자는 ‘좋은 품질’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는다.
이 태도는 무조건적 기술 낙관이라기보다 성과 중심의 평가 방식에 가깝다. 중국 응답자들은 AI가 인간 창작자를 완전히 대체한다고 보기보다, 잘 정비된 저작권 체계가 있다면 AI 예술도 충분히 평가받을 수 있다고 본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인간의 창의적 역할을 완전히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문학 영역에서는 AI가 반복적이고 지루한 부분을 맡되 창의적 부분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응답이 강하게 나타난다. 다시 말해 중국 응답자의 태도는 “AI가 해도 된다”가 아니라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고 제도적 틀이 있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논문은 중국의 기술 환경을 배경으로 읽힌다. 저자는 중국에서 AI가 국가 전략, 산업 발전, 일상 인프라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높은 기술 노출과 제도적 추진력이 AI 수용성을 높였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기술이 낯선 외부자가 아니라 이미 생활세계의 일부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창작 영역에서도 더 실용적으로 판단한다.
미국: 인간 창작자의 역할을 방어하는 태도
미국 응답자들은 중국과 다른 축에서 반응한다. 이들은 AI 예술을 전면적으로 거부하지는 않지만, 인간 창작자의 역할을 강하게 의식한다. AI 예술이 인간 창작자의 작업을 가져다 쓰는 것처럼 보이는지, 인간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없는 작품을 가치 있다고 볼 수 있는지, 손으로 작업하는 창작자에게 불공정한 것은 아닌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논문은 미국 응답자들이 AI 예술에서 ‘인간의 몫’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키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정리한다.
특히 미국 응답자들은 AI 예술이 인간 창의성을 전유하거나 훔치는 것처럼 느껴질 가능성을 더 크게 본다. “영혼이 없다”는 식의 표현에도 상대적으로 더 동의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여기서 ‘영혼’은 신비주의적 개념이라기보다 작품 뒤에 있는 시간, 훈련, 의도, 고유한 경험을 가리키는 공적 언어로 읽을 수 있다. 사람들은 작품을 볼 때 결과물만 보지 않는다. 그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경로를 상상한다. 미국 응답자에게 AI 예술의 문제는 그 경로가 불투명하다는 데 있다.
윤리적 우려에서도 미국 응답자가 가장 우려한 것은 허위정보와 가짜 콘텐츠다. 이는 AI 예술을 이미지 생성 기술로만 보지 않고, 현실을 조작하거나 대중의 판단을 흔드는 미디어 기술로 보는 시각과 연결된다. 예술의 문제가 곧 공론장의 문제로 확장되는 것이다.
일본: 낮은 사용 경험과 신중한 중간 지대
일본 응답자는 세 나라 중 생성형 AI를 예술 창작에 사용한 경험이 가장 낮다. 그런데 태도는 단순한 거부로 나타나지 않는다. 논문에서 일본의 응답은 자주 미국과 중국 사이에 놓인다. 저자는 이것을 일본 응답자들이 설문에서 중간값을 선택하는 문화적 경향과도 연결한다. 따라서 일본의 중립성은 무관심이나 판단 부재라기보다, 확정적 입장을 유보하는 방식에 가깝다.
일본 응답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지식재산권과 저작권에 대한 우려다. 윤리적 우려 순위에서 일본 응답자는 지식재산권과 저작권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는다. 이는 일본의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 산업처럼 창작물의 권리 체계가 산업적으로 중요한 문화 환경과 맞닿아 있다. 일본에서 AI 예술은 창작자의 존재론적 위협이라기보다, 먼저 권리 질서의 교란으로 감지되는 셈이다.
미국이 “AI가 진실을 흐릴 수 있다”고 묻는다면, 일본은 “AI가 권리의 경계를 흐릴 수 있다”고 묻는다. 중국은 “AI가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가”를 먼저 묻는다. 같은 기술을 두고도 사회마다 먼저 작동하는 감각기관이 다르다.
장르에 따라 달라지는 AI 예술의 감각
논문은 문학, 시각예술, 청각예술을 나누어 조사했다. 이 구분은 단순한 형식 분류가 아니다. AI 예술에 대한 태도는 장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시각예술에서는 세 나라 응답자의 태도가 상대적으로 더 균일하게 나타난다. 반면 문학과 청각예술에서는 차이가 더 분명해진다. 중국 응답자는 문학을 소비재보다 예술 형식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고, 미국 응답자는 청각예술을 예술 형식으로 강하게 인식한다. 일본 응답자는 전반적인 예술 감상도와 몰입도에서 낮은 점수를 보인다.
이 결과는 AI 예술 논쟁에서 자주 빠지는 부분을 짚는다. 사람들은 “AI 예술”이라는 하나의 덩어리에 반응하지 않는다. AI가 시를 쓰는 것, 사진처럼 보이는 인물 이미지를 만드는 것, 게임 음악을 작곡하는 것, 환경음을 생성하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문학에서는 의도와 서사적 책임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고, 시각예술에서는 이미지의 진위와 저작권이 민감해질 수 있으며, 음악에서는 인간 수행성과 감정의 흔적이 중요해질 수 있다. AI가 어떤 장르에 들어오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다른 경계선을 긋는다.
생산성보다 중요한 것들
가치 요인 순위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결과는 세 나라 모두 ‘생산성 향상’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AI 담론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은 빠름, 편리함, 효율성이다. 그러나 AI 예술을 평가하는 장면에서 응답자들은 생산성을 중심에 두지 않았다. 미국과 일본은 윤리적 우려, 충분한 인간성, 적절한 역할을 더 중요하게 보았다. 중국은 품질을 가장 중시했지만, 생산성을 최우선으로 두지는 않았다.
이 결과는 예술 영역에서 AI의 수용 조건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속도 향상이 아니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AI가 어디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역할의 경계가 중요하고, 중국에서는 “그 결과물이 충분히 좋은가”라는 품질 기준이 중요하다. 세 나라 모두에서 생산성은 결정적 명분이 되지 못한다. AI 예술이 창작 현장에 들어올 때, “더 빨리 만들 수 있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들은 속도보다 먼저 가치의 근거를 요구한다.
지속가능한 창의성이라는 말의 실제 의미
논문 제목에 들어간 ‘지속가능한 창의성’은 환경적 지속가능성만을 뜻하지 않는다. 여기서 지속가능성은 창작 생태계가 기술 변화 속에서도 사회적 신뢰, 경제적 생존, 문화적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저자는 생성형 AI가 인간 예술가를 대체하는 방향이 아니라 협업 도구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본다. 또한 AI 예술은 각 문화의 윤리적 우려와 제도적 감각에 맞추어 다르게 설계되고 교육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은 예술교육에도 직접 연결된다. AI를 가르친다는 것은 프롬프트 기술을 가르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학생이 AI를 어느 단계에서 쓰는지, 인간의 판단은 어디서 개입하는지, 결과물의 출처와 권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허위성과 조작 가능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까지 포함해야 한다. 중국식 품질 중심 수용, 미국식 인간 역할 방어, 일본식 권리 중심 신중함은 서로 배타적인 답이 아니다. 오히려 AI 예술교육은 이 세 감각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좋은 결과물을 만들되, 인간의 판단 과정을 남기고, 권리와 출처를 정리하며, 현실을 오도하지 않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 논문이 바꾸는 질문
이 연구가 남기는 통찰은 AI 예술의 미래가 기술 성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지가 더 정교해지고, 음악이 더 자연스러워지고, 글이 더 매끄러워져도 수용의 문제는 남는다. 사람들은 결과물을 보면서 동시에 그 결과물이 놓인 관계망을 본다. 인간의 노력, 법적 권리, 사회적 진실, 문화적 신뢰, 제도적 안정성이 함께 평가된다.
따라서 AI 예술을 둘러싼 핵심 질문은 “AI가 예술을 할 수 있는가”에서 “어떤 조건에서 사람들은 AI가 관여한 결과물을 예술로 받아들이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이 논문은 그 조건이 보편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미국, 일본, 중국은 모두 생성형 AI를 경험하고 있지만, 각자가 두려워하는 것과 기대하는 것이 다르다. 어떤 사회는 품질을 통해 AI 예술을 받아들이고, 어떤 사회는 인간의 흔적을 통해 받아들이며, 어떤 사회는 권리의 경계를 통해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