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등장한 유튜브는 누구나 자신의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고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전문 방송사나 제작사의 유통망을 거치지 않아도 영상을 공개하고 시청자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유튜브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영상 플랫폼 중 하나로 성장하며 영상의 제작과 소비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유튜브는 2005년 페이팔에서 함께 일했던 채드 헐리(Chad Hurley), 스티브 첸(Steve Chen), 자베드 카림(Jawed Karim)이 공동 창업했다. 이듬해인 2006년 구글에 인수됐으며, 디자인을 전공한 헐리는 공동창업자이자 초대 CEO로서 초기 서비스의 사용자 경험과 사업 운영을 이끌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AI 영상 제작 스타트업 '아이텔(EyeTell)'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헐리는 2026년 9월 AI 기반 영상 플랫폼 'EyeTell TV'를 공개했으며, 10월 들어 언론 인터뷰와 관련 보도를 통해 서비스의 제작 과정과 주요 기능이 다시 조명됐다.
EyeTell은 여러 AI 영상 제작 기술을 하나의 환경으로 통합해 사용자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영상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다. 여기에 AI 기반 영상 플랫폼 'EyeTell TV'를 통해 시청자가 원하는 상황이나 장면을 제안하고, 이를 영상에 반영하는 방식도 선보였다. 과거 유튜브가 영상을 쉽게 공개하고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면, EyeTell은 AI를 활용해 영상 제작의 접근성을 높이려는 시도다. 나아가 시청자가 영상의 일부를 변화시키는 기능까지 제시하면서, AI가 영상의 제작뿐 아니라 감상 방식에도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살펴볼 만한 사례가 되고 있다.
제작사를 거치지 않고 영상을 만드는 방법
영화나 드라마는 시나리오만 있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의 배경에 맞는 장소를 찾고, 배우를 섭외하고, 촬영에 필요한 장비와 인력을 준비해야 한다. 시대극처럼 과거의 공간이나 의상을 재현해야 하는 작품은 준비할 것도 많아진다. 촬영이 끝난 뒤에도 편집과 음향, 시각효과 등 여러 작업을 거쳐야 비로소 하나의 영상이 완성된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이를 실제 작품으로 옮기려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 이유다.
EyeTell은 이러한 제작 과정의 일부를 AI로 처리할 수 있도록 여러 영상 생성 기술을 하나의 작업 환경에 통합한 서비스다. 실제 촬영을 위해 장소를 마련하거나 배우를 섭외하는 대신, AI로 배경과 인물, 장면을 생성할 수 있다. 이미지와 영상, 음성 생성 기술을 조합해 실제 촬영 없이도 이야기를 영상으로 구성하고, 필요한 부분을 수정하는 방식이다. 기존 영상 제작에 필요했던 물리적인 준비 과정을 줄이고, 컴퓨터를 중심으로 제작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2026년 10월 언론을 통해 소개됐다. 영화 제작 경험이 있는 시나리오 작가 질리언(Gillian)은 EyeTell을 활용해 '애시컴 하우스(Ashcombe House)'라는 시대극 에피소드를 약 일주일 만에 제작했다. 이 작품에는 과거를 배경으로 한 인물과 공간, 말이 등장하지만 실제 배우나 촬영 장소, 세트, 동물을 동원하지 않았다. 작가는 공유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영상을 만들었다. 기존 방식이었다면 촬영 장소와 소품을 마련하고 배우를 섭외해야 했을 장면들을 AI로 생성한 것이다. 제작에 필요한 준비와 촬영 과정의 상당 부분을 컴퓨터 작업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질리언은 이미 시나리오와 영상 제작 경험을 가진 인물이다. 따라서 이 사례만으로 제작 경험이 없는 사람도 같은 수준의 영상을 만들 수 있다거나, 실제 제작 비용과 시간이 얼마나 절감되는지 단정할 수는 없다.
EyeTell이 단순한 영상 생성 도구와 구별되는 부분도 여기에 있다. 개별 장면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생성 기술을 연결해 하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완성하는 과정을 지원하려는 것이다. 개발팀에는 기술자뿐 아니라 기존 영상 제작 분야의 전문가들도 참여하고 있다. 픽사와 워너브러더스 등에서 애니메이터로 활동했던 앤드루 고든(Andrew Gordon)은 현재 EyeTell의 최고 스토리텔러(Chief Storyteller)를 맡고 있다. 그는 AI가 영상 제작을 지원할 수 있지만, 결과물이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보이려면 여전히 사람의 판단과 수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시청자가 이야기를 바꾼다
EyeTell은 영상을 만드는 사람뿐 아니라 이를 감상하는 사람의 역할에도 주목하고 있다. 10월 소개된 시연에서는 가게를 배경으로 한 영상에 우편배달부가 피자를 배달하거나, 판다가 음식을 먹고, 오리가 가게 안으로 날아드는 상황이 등장했다. 이러한 장면은 미리 제작해둔 영상이 아니라, 시청자가 원하는 상황을 제안하면 AI가 이를 반영해 생성하는 방식이다. 제작진은 이 과정이 거의 실시간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방식이 발전하면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사건의 전개도 시청자의 요청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같은 이야기에서 출발하더라도 누군가의 요청으로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서로 다른 장면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기존 인터랙티브 콘텐츠가 사전에 설계된 선택지를 중심으로 작동했다면, 생성형 AI는 그 선택지 자체를 확장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다만 현재 확인된 것은 비교적 단순한 장면 변경이다. 인물의 성격이나 사건의 흐름을 유지하면서 장편 콘텐츠를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는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또한 이용자의 모든 요청을 허용할 수는 없으므로, 어떤 변화를 받아들이고 제한할지에 대한 기준도 필요한 상태다.
즉, EyeTell TV의 시도는 단순히 시청자가 영상에 새로운 장면을 추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금까지 제작자가 이야기를 완성하고 시청자가 이를 감상했다면, 이제는 시청자의 요청이 이야기의 전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물론 아직은 제한적인 장면 변경에 머물러 있지만, 이는 완성된 이야기를 감상하는 방식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미리 준비된 선택지에서, 새로운 장면의 생성으로
시청자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의 전개가 달라지는 콘텐츠는 이전에도 존재했다. 게임이나 인터랙티브 영화가 대표적이다. 다만 이러한 콘텐츠에서는 이용자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고, 그 결과로 어떤 장면이 나타날지를 제작자가 미리 설계하고 준비해야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넷플릭스의 인터랙티브 영화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Black Mirror: Bandersnatch)'다. 시청자는 특정 상황에서 주인공의 행동을 선택하고, 그 결과에 따라 서로 다른 이야기와 결말을 경험한다.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행동과 장면은 모두 제작자가 사전에 준비한 범위 안에 있다. 게임 역시 규칙과 시스템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지만, 이용자가 수행할 수 있는 행동과 그에 따른 반응은 기본적으로 제작자가 설계한 구조를 따른다.

EyeTell TV가 흥미로운 이유는 이 과정에 생성형 AI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미리 준비된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대신, 시청자가 원하는 상황을 직접 설명하면 AI가 그에 맞는 장면을 생성한다. 제작자가 모든 장면을 사전에 만들어두지 않더라도 새로운 상황을 영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영상이 게임으로 바뀐다는 의미보다, 인터랙티브 콘텐츠에서 미리 준비해야 하는 장면의 범위를 줄일 수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러나 새로운 장면을 자유롭게 생성할 수 있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시청자가 주인공의 행동을 바꾸거나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키도록 요청했다면, 이후의 장면에서도 그 변화를 유지해야 할까. 새로운 사건이 기존 이야기의 설정과 충돌한다면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할까. 서로 다른 시청자가 상반된 요청을 했을 때 이를 어떻게 처리할것인가도 이슈가 된다.
이러한 이슈는 영상을 생성하는 기술뿐 아니라 이야기의 구조를 관리하는 방식과 관련된다. 등장인물의 성격과 관계, 사건의 인과관계, 허용되는 변화의 범위 등을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임에서는 오랫동안 규칙과 시스템을 통해 이용자의 행동과 결과를 관리해 왔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영상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이야기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설계가 필요할 수 있다.
유튜브 다음의 영상 플랫폼은 어떤 모습일까
EyeTell이 제시한 방식이 실제 서비스로 자리 잡으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사람들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하고 감상할 것인지, 플랫폼은 운영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존 영상 플랫폼은 이미 완성된 영상을 여러 시청자에게 전달하지만, EyeTell TV처럼 시청자의 요청에 따라 새로운 장면을 생성한다면 매번 AI 연산 자원이 사용된다. 이용자의 참여가 늘어날수록 운영 비용도 증가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영상 시청과 생성 기능을 어떻게 구분하고, 생성 횟수나 영상 길이에 따라 이용료를 부과할 것인지 등 지속가능한 수익모델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EyeTell의 구체적인 수익구조와 사업적 성과는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
콘텐츠의 권리와 이용 범위도 고려해야 한다. 기존 작품이나 실제 인물의 모습을 활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저작권·초상권 문제, 부적절한 요청을 제한하는 기준 등은 플랫폼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시청자가 영상의 내용에 직접 개입하는 만큼, 어떤 요청을 허용하고 어디까지 변경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도 필요하다.
이러한 기능이 실제로 시청자에게 얼마나 매력적인 경험이 될지도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 영상의 내용에 개입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며, 장면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콘텐츠의 재미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어떤 콘텐츠에서 어느 정도의 참여를 허용할 것인지가 이용 경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yeTell은 아직 새로운 영상 제작과 감상 방식을 시험하는 단계에 있다. 이용자 규모나 사업적 성과를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유튜브 공동창업자가 다시 영상 플랫폼에 도전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과거 유튜브가 누구나 영상을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면, EyeTell은 누구나 영상을 만들고 그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가 얼마나 많은 영상을 생성하느냐보다, 사람들이 그 기술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어떻게 경험하게 될 것인가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