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I 정책은 어떤 정책영역인가
인공지능이 국가의 중요한 정책 의제로 등장하면서 가장 먼저 제기되는 질문은 의외로 단순하다. AI 정책은 과연 어떤 정책인가? 산업정책인가, 과학기술정책인가, 아니면 규제정책인가. 데이터와 개인정보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정보통신정책이자 개인정보보호정책으로 볼 수 있고, 알고리즘의 차별과 편향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인권정책의 성격도 갖는다. AI가 노동과 직업의 구조를 변화시킨다는 점에서는 노동정책이며, 교육과 인재양성의 문제에서는 교육정책이다. 또한 첨단 AI 모델과 반도체가 국가안보와 국제질서의 전략적 자산으로 부상하면서 AI 정책은 산업·통상정책을 넘어 외교·안보정책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처럼 AI 정책은 하나의 전통적인 정책영역으로 분류하기 어렵다. 오히려 기존의 여러 정책영역과 행정적 관할경계를 가로지르는 ‘횡단적 정책문제(cross-cutting policy problem)’의 성격을 갖는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 정책학에서는 하나의 부처나 기존 정책영역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우며 여러 정책영역의 목표와 수단을 함께 조정해야 하는 문제를 횡단적 정책문제로 다루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후변화와 혁신정책이다. 기후변화는 환경정책만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 산업, 교통, 농업, 재정, 외교 등 다양한 정책영역에 동시에 걸쳐 있기 때문에 개별 부처의 정책만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Candel & Biesbroek, 2016). 혁신정책 역시 과학·연구, 기술, 산업 등 기존의 정책영역을 가로지르며, 그 결과 부처 간 조정과 정책통합(policy integration)을 필요로 하는 대표적인 횡단적 정책문제로 연구되어 왔다 (Christensen & Serrano Velarde, 2019).
AI 정책 역시 이러한 특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AI가 제기하는 정책문제는 과학기술, 산업, 노동, 교육, 개인정보, 경쟁, 미디어, 문화, 외교·안보 등 기존의 여러 정책영역(policy domain)을 동시에 관통한다. 이러한 횡단적 성격 때문에 AI 정책의 핵심 과제는 개별 정책 영역별로 대응하는데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정책목표와 정책수단을 어떻게 조정하고 통합할 것인가에 있다.
AI 정책은 기술정책에서 출발했다
AI에 대한 정부의 초기 관심은 주로 기술개발과 산업육성에 집중되어 있었다. AI 연구개발에 얼마나 투자할 것인가, 전문인력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기업의 혁신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가 주요 정책과제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AI는 반도체, 이동통신, 바이오와 마찬가지로 국가가 육성해야 할 전략기술의 하나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초기 AI 정책의 중심에는 연구개발 지원, 인재양성, 데이터 구축, 컴퓨팅 인프라 확충, 스타트업 지원과 같은 전통적인 과학기술·산업정책의 수단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책의 기본적인 목표 역시 비교적 명확했다. 기술혁신을 촉진하고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것이었다.
이러한 초기 정책의 성격은 미국의 국가 AI 전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가 2016년 발표한 「National Artificial Intelligence Research and Development Strategic Plan」은 AI의 윤리적·법적·사회적 영향과 안전 문제까지 포괄하면서도, 장기적인 AI 연구투자, 공공 데이터와 연구환경 구축, AI 연구인력 확보 등 연방정부의 연구개발 정책을 중심축으로 설정하였다 (NSTC, 2016).
그러나 AI의 활용범위가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면서 이러한 접근만으로는 AI 정책을 설명하기 어렵게 되었다. 금융기관의 대출 심사, 기업의 채용, 의료기관의 진단, 플랫폼의 콘텐츠 추천, 교육기관의 평가, 정부의 행정서비스와 복지 대상자 선정 등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 알고리즘이 활용되고 있다. 생성형 AI의 등장 이후에는 인간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정보와 지식의 형성과정 자체에도 AI가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기술의 영향이 확대될수록 정책의 질문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제 정부는 “AI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뿐 아니라 “AI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어야 하는가”, “AI의 결정에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AI가 만들어내는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AI 정책이 기술의 개발과 육성을 넘어 기술의 사회적 관리와 거버넌스의 문제로 확장되는 지점이다.
산업정책이면서 동시에 규제정책이다
AI 정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진흥과 규제라는 서로 다른 정책기능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진흥의 측면에서 보면, AI 정책은 전통적인 과학기술·산업정책의 연장선에 있다.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고, AI 인재를 양성하며, 데이터와 컴퓨팅 인프라를 확보하고, 기업이 새로운 AI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글로벌 AI 경쟁이 국가경쟁력과 직결되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산업정책적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동시에 정부는 AI가 만들어내는 위험에도 대응해야 한다. 개인정보 침해, 알고리즘 편향과 차별, 허위정보, 저작권 침해, 안전성 문제, 노동시장 충격, 시장지배력 집중과 같은 문제는 시장의 자율적 조정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특히 의료, 금융, 교통, 국방, 공공행정과 같이 AI의 오류가 개인이나 사회에 중대한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영역에서는 일정한 규칙과 감독체계가 불가피하다.
따라서 AI 정책에서는 전통적인 산업정책과 규제정책의 경계가 흐려진다. 산업정책의 관점에서 보면 규제는 혁신을 제한하는 비용으로 인식될 수 있다. 반대로 규제정책의 관점에서 보면 지나친 산업진흥은 안전과 권리 보호를 희생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AI 정책에서는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혁신을 촉진하면서 동시에 위험을 관리하는 것 자체가 정책의 핵심과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AI 정책의 이중적 성격은 최근 미국과 유럽연합의 서로 다른 정책적 선택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출범 직후 안전과 신뢰, 위험관리를 강조했던 바이든 행정부의 AI 행정명령을 폐기하고, AI 혁신을 저해하는 규제장벽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크게 이동시켰다 (The White House, 2025a). 이어 2025년 7월 발표한 「America’s AI Action Plan」은 혁신의 가속화, AI 인프라 구축, 국제외교 및 안보에서의 리더십을 세 가지 핵심 축으로 제시하면서 민간 주도의 기술혁신과 미국의 글로벌 AI 경쟁력 강화를 강조하였다 (The White House, 2025b).
반면 유럽연합은 2024년 발효된 「AI Act」를 통해 위험수준에 따라 AI를 차등 규율하는 포괄적인 규제체계를 구축하였다. 이 법은 AI가 건강과 안전, 기본권에 미칠 수 있는 위험을 관리하면서 동시에 인간 중심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AI의 활용과 혁신을 촉진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European Union, 2024).
물론 미국의 AI 정책에도 안전과 위험관리에 대한 고려가 포함되어 있으며, 유럽연합 역시 혁신과 산업경쟁력을 중요한 정책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이 상대적으로 혁신과 산업경쟁력에, 유럽연합이 위험관리와 기본권 보호에 더 큰 정책적 무게를 두고 있다는 차이는 분명하다. AI 정책에 내재된 ‘혁신과 규제’라는 두 목표의 긴장이 이제 개별 국가의 정책 선택을 넘어 글로벌 AI 질서를 둘러싼 규범과 규제체계의 경쟁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정책이면서 사회정책이다
AI 정책의 또 다른 특징은 경제적 목표와 사회적 목표가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AI는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만들어내는 범용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y)의 성격을 가진다.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연구개발과 소프트웨어 개발을 가속하며,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의 출현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AI 정책은 경제성장과 생산성, 산업경쟁력, 고용구조를 다루는 경제정책이다.
이러한 정책적 특성은 인터넷의 확산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미국의 「Telecommunications Act of 1996」은 기존 통신시장에 경쟁을 도입하고 규제장벽을 완화함으로써 통신과 정보산업의 혁신을 촉진하려는 정책적 전환을 상징했다. 경쟁과 시장을 통해 투자를 확대하고 새로운 정보통신 서비스와 산업의 성장을 촉진하려는 강력한 경제정책적 접근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이 경제와 사회의 핵심 인프라로 확산되면서 새로운 문제가 부상했다. 소득과 교육수준, 인종, 지역 등에 따라 컴퓨터와 인터넷에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회에 상당한 차이가 나타났고, 이러한 격차는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라는 새로운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미국 상무부 산하 국가통신정보청(NTIA)은 1990년대 중반부터 「Falling Through the Net」 보고서를 통해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접근 격차를 지속적으로 조사하였으며, 1999년 「Defining the Digital Divide」에서는 저소득층, 저학력층, 소수인종과 농촌지역 등을 중심으로 디지털 격차가 여전히 존재하며 일부에서는 오히려 확대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NTIA, 1999).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여 클린턴 행정부는 디지털 격차를 단순한 기술 접근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참여기회의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2000년 발표된 「From Digital Divide to Digital Opportunity」는 시장경쟁과 기술발전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격차에 대응하기 위해 저소득층과 취약지역의 인터넷 접근 확대, Community Technology Centers 확충, 정보기술 교육과 직업훈련, 민관협력 등을 추진하였다. 기술에 대한 접근뿐 아니라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역량까지 정책의 대상으로 확대한 것이다 (The White House, 2000).
인터넷 정책의 경험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정책이 경제성장과 산업혁신에만 머물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기술이 사회의 핵심 인프라가 될수록 누가 그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가, 누가 이를 활용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혜택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배분되는가가 중요한 정책문제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정책이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는 경제정책인 동시에 디지털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사회정책으로 확장되었던 경험은 AI 정책에도 중요한 선례를 제공한다.
AI의 확산은 이와 유사하면서도 한층 복합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AI를 활용할 수 있는 개인과 그렇지 못한 개인, AI를 도입할 능력을 갖춘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대규모 컴퓨팅 인프라와 데이터를 보유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사이에 새로운 ‘AI 격차(AI divide)’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AI 시대의 격차는 단순히 기술에 접속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AI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 어떤 수준의 AI 역량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가, 그리고 AI 활용이 생산성과 소득, 교육과 고용의 기회로 얼마나 연결될 수 있는가의 차이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AI 정책은 기술의 발전과 경제적 성과뿐 아니라 AI가 만들어내는 기회와 위험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배분되는가를 함께 다루어야 한다. AI 접근권, AI 리터러시, 노동 전환, 교육과 재훈련, 디지털 포용, 공공 AI와 같은 정책과제가 중요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의 혜택을 일부 기업이나 전문가 집단만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폭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AI 시대의 새로운 공익적 과제가 된다.
국내정책이면서 국제정책이다
AI 정책의 또 다른 특징은 국내정책과 국제정책의 경계가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AI의 기술개발과 산업육성은 개별 국가의 정책영역에서 이루어지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자원과 시장은 이미 글로벌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첨단 반도체와 컴퓨팅 인프라, 클라우드, 데이터, AI 모델, 연구인력과 자본은 글로벌 공급망과 플랫폼을 통해 이동한다. 따라서 한 국가의 AI 역량은 국내의 연구개발 투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첨단 AI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가, 글로벌 클라우드와 AI 모델에 접근할 수 있는가, 국제적인 연구와 인재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 있는가가 함께 중요하다.
더욱 중요한 변화는 AI가 미·중 전략경쟁의 핵심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첨단 AI 반도체와 관련 기술에 대한 수출통제를 통해 중국의 첨단 AI 개발에 필요한 컴퓨팅 역량에 제약을 가하는 한편, 자국의 AI 기술과 산업 생태계를 세계시장에 확산시키는 전략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특히 앞서 살펴본 2025년 「America’s AI Action Plan」은 이러한 미국 AI 전략의 국제적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계획은 미국의 AI 경쟁력을 국내 산업정책의 차원을 넘어 국제외교와 안보의 문제로 다루면서, 하드웨어, AI 모델,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과 표준을 포함하는 이른바 ‘미국 AI 풀스택(full stack)’을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에 확산시키는 전략을 제시하였다 (The White House, 2025b).
미국 정부는 이를 정책 구상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대외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2025년 7월 발표된 행정명령 「Promoting the Export of the American AI Technology Stack」은 미국의 AI 기술과 표준, 거버넌스 모델이 세계적으로 채택되도록 하는 것을 국가정책으로 제시하고, 이를 위해 ‘American AI Exports Program’을 구축하도록 하였다. AI 하드웨어와 클라우드, 데이터 시스템, 모델과 애플리케이션을 하나의 패키지로 해외에 확산시키겠다는 것이다 (The White House, 2025c). 미국의 AI 정책이 산업정책을 넘어 통상정책이자 외교·안보정책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중국 역시 미국의 기술통제에 대응하여 자체적인 AI 기술과 산업 생태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국제적인 AI 협력과 거버넌스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2025년 「Global AI Governance Action Plan」을 통해 AI를 국제적 공공재로 규정하고, 국가주권의 존중, 개방적 협력, 인프라 구축, 기술의 공동 활용과 글로벌 AI 격차 완화 등을 제시하였다 (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2025). 미·중 간 AI 경쟁이 단순히 어느 국가가 더 우수한 모델을 개발하는가의 기술경쟁을 넘어 반도체와 컴퓨팅 인프라, 모델과 플랫폼, 국제표준과 거버넌스 규범을 둘러싼 글로벌 질서의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과 같은 국가에 특히 중요한 정책문제를 제기한다. 국내에서 AI 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하더라도 첨단 GPU와 글로벌 클라우드, 해외에서 개발된 범용 AI 모델과 플랫폼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면 다른 국가의 수출통제나 기술정책, 서비스 제공정책의 변화가 곧 국내 AI 산업과 이용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AI 반도체의 공급 제한은 국내 기업의 컴퓨팅 역량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글로벌 AI 사업자의 모델 제공조건이나 서비스정책 변화 역시 기업과 공공기관의 AI 활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른 국가의 AI 정책이 곧 자국의 AI 정책환경을 결정하는 변수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AI 정책은 더 이상 국내 산업을 육성하고 국내 이용자를 보호하는 정책만으로 설계될 수 없다. 반도체와 컴퓨팅 인프라의 안정적 확보, 글로벌 AI 모델과 플랫폼에 대한 의존성, 데이터와 기술주권, 국제표준, 수출통제와 통상규범, 동맹과 국제협력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동시에 글로벌 AI 생태계의 개방성을 유지하면서 핵심 기술과 인프라에 대한 국가적 자율성을 어느 수준까지 확보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정책적 긴장에도 대응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AI 정책은 국내정책인 동시에 외교·통상·안보가 결합된 국제정책이며, 국가의 기술적 자율성과 글로벌 AI 질서에서의 위치를 결정하는 전략정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