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경쟁을 이야기할 때 한국 사회는 대체로 세 가지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

초거대 언어모델, GPU, 데이터센터다.

독자 AI 모델을 만들고, 고성능 반도체를 확보하며, 더 많은 데이터센터를 국내에 짓는 일은 분명 중요하다. 생성형 AI 시대의 경쟁력은 컴퓨팅 자원과 모델 성능, 데이터의 질에서 크게 좌우된다. 한국이 AI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이 세 가지 기반을 놓칠 수 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AI 산업의 진짜 경쟁은 모델을 어디서 개발하느냐를 넘어, 그 모델을 누가 계약하고, 어디서 서비스하며, 어느 법인이 매출을 인식하고, 어떤 나라에서 지식재산권을 관리하며, 사고가 났을 때 누가 책임을 지는가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 공개된 마이크로소프트의 2025 회계연도 EU 국가별 세금보고서는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아일랜드에서 약 1960억달러의 매출과 약 471억달러의 세전이익을 기록했다. 아일랜드 내 직원 수는 6654명으로 집계됐다. 반면 독일은 약 117억달러, 프랑스는 약 67억달러 규모의 매출을 기록했다. 유럽 최대 소비시장인 독일과 프랑스보다 아일랜드에서 훨씬 큰 매출과 이익이 보고된 것이다.

이 숫자를 곧바로 조세회피의 증거로 읽어서는 안 된다. 국가별 매출과 이익은 라이선스 계약, 내부거래, 연구개발 비용, 지식재산권 귀속, 서비스 제공 주체, 회계 기준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공개된 국가별 보고서만으로 특정 기업의 조세 전략을 법적으로 평가하거나 위법성을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유럽 사업에서 아일랜드는 단순한 판매 법인이 아니라, 고부가가치 기능이 집중된 핵심 허브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일랜드는 ‘지사’가 아니라 유럽 사업의 운영 본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아일랜드 법인 목록을 보면 왜 아일랜드가 중요해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아일랜드에는 판매와 마케팅 법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룹 내 금융을 담당하는 법인, 지식재산권을 관리하는 법인, 연구개발 법인, 제조·생산과 서비스 제공을 담당하는 법인, 구매·조달 기능을 맡는 법인, 투자와 지분 보유 기능을 가진 법인이 함께 있다.

대표적으로 Microsoft Ireland Operations Limited는 행정·관리·지원뿐 아니라 제조·생산, 외부 고객 대상 서비스 제공, 구매·조달, 판매·마케팅 기능을 수행하는 법인으로 분류돼 있다. Microsoft Global Finance Unlimited Company는 그룹 내 금융 기능을 맡고, Microsoft Ireland Research UC는 지식재산권 보유·관리와 연구개발, 판매·마케팅 기능을 함께 담당한다.

이 구조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글로벌 AI 사업의 가치는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마지막 단계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연구개발, 지식재산권, 계약, 고객 서비스, 금융, 조달, 데이터 처리, 클라우드 인프라 운영이 한데 묶일 때 비로소 큰 가치가 발생한다.

AI 모델은 하나의 기술 제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사업에서는 수많은 법적·상업적·기술적 기능이 결합한다.

기업 고객에게 AI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먼저 계약 주체가 필요하다. 고객 데이터는 어느 국가의 데이터센터에 저장되는지 정해야 한다. 모델 사용료와 API 비용은 어느 법인에 지불되는지 설계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법과 AI 규제, 보안 사고 대응, 서비스 수준 협약, 모델 오류 발생 시 책임 소재도 함께 정리해야 한다.

이 모든 기능을 연결하는 곳이 바로 글로벌 운영 허브다.

아일랜드는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단순히 세율이 낮은 국가가 아니라, 유럽 시장을 대상으로 AI·클라우드·소프트웨어 사업을 계약하고, 운영하고, 매출을 인식하고, 지식재산권을 관리하는 장소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이 여기서 배워야 할 것은 법인세율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고부가가치 기능을 한 국가에 어떻게 집중시키는가다.

한국은 데이터센터 유치 경쟁을 넘어서야 한다

최근 한국의 AI 정책은 데이터센터 유치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글로벌 클라우드 기업의 리전을 유치하고, 대규모 GPU 클러스터를 확보하며, 전력망과 통신망을 정비하는 일은 필요하다. 특히 한국은 반도체와 통신, 제조업, 금융, 게임, 콘텐츠 산업이 결합된 시장이기 때문에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 잠재력이 크다.

하지만 데이터센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데이터센터는 전력과 토지, 냉각수와 통신망을 소비한다. 지역사회 입장에서는 막대한 전력 수요와 부지 개발, 환경 부담을 감수해야 할 수 있다. 그런데 데이터센터가 단순히 해외 기업의 연산 자원을 제공하는 장소에 머문다면, 국내에 남는 가치는 제한적일 수 있다.

한국이 확보해야 할 것은 서버의 숫자가 아니라, 그 서버 위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기능이다.

예를 들어 글로벌 AI 기업이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한다면, 한국은 다음과 같은 기능이 함께 들어오도록 설계해야 한다.

한국어와 동아시아 언어에 특화된 모델 운영 본부, 국내 금융·제조·공공기관을 위한 AI 보안센터, AI 안전성 평가와 레드팀 조직, 기업용 AI 서비스의 계약·과금·고객지원 기능, 국내 스타트업이 활용할 수 있는 GPU와 API 인프라, 한국 기업과 공동으로 만드는 산업 특화 AI 모델이 그것이다.

이런 기능이 없다면 한국은 AI 시대의 ‘전력 공급지’가 될 수 있다.

데이터센터는 한국에 있지만, 매출은 해외 법인이 인식하고, 지식재산권은 다른 나라가 보유하며, 운영 책임과 핵심 인력은 해외에 남는 구조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데이터센터와 연구개발, 계약, 보안, 산업별 검증, 매출 인식이 함께 연결된다면, 한국은 단순한 AI 소비시장이나 인프라 제공 국가를 넘어 아시아 AI 운영 허브가 될 수 있다.

AI 시대의 핵심은 ‘모델 국산화’보다 ‘운영 주권’이다

한국은 AI 주권을 이야기할 때 종종 독자 모델 개발에 집중한다.

국산 LLM을 만들고, 한국어 데이터셋을 확보하며, 국내 GPU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역시 필요하다. 특히 공공·국방·금융·의료처럼 데이터 주권과 보안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국내 모델과 국내 인프라의 중요성이 크다.

그러나 AI 주권은 모델의 국적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AI 주권은 최소 다섯 가지 층위에서 만들어진다.

첫째는 모델과 반도체다.
둘째는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다.
셋째는 산업 데이터와 현장 적용 역량이다.
넷째는 계약·지식재산권·과금·세무 구조다.
다섯째는 보안·개인정보·AI 책임 규제를 운영하는 능력이다.

한국이 첫째와 둘째만 강화하고 넷째와 다섯째를 놓치면, 좋은 모델과 빠른 데이터센터를 갖고도 사업의 통제권을 잃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내 기업이 만든 AI 모델이 글로벌 클라우드 위에서 운영되고, 해외 법인이 고객 계약을 맺고, 해외 본사가 지식재산권을 보유하며, 해외 플랫폼이 사용료를 청구하는 구조라면 한국이 확보하는 가치는 제한적일 수 있다.

반대로 한국이 제조·금융·통신·콘텐츠·공공 분야의 산업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서비스 계약과 운영 책임, 보안 검증, 모델 평가, 규제 대응 능력을 갖추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국은 단순히 AI를 소비하는 시장이 아니라, AI를 운영하고 책임지는 시장이 될 수 있다.

한국 기업도 ‘해외 지사’가 아니라 ‘글로벌 기능’을 설계해야 한다

한국 AI 기업에게도 같은 문제가 적용된다.

많은 기업이 해외 진출을 생각할 때 영어 서비스 출시, 해외 지사 설립, 현지 파트너 확보를 먼저 떠올린다.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AI 서비스의 해외 확장은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수출보다 더 복잡하다.

AI 서비스는 고객의 민감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 모델이 잘못된 답변을 하거나, 저작권 문제를 일으키거나, 개인정보를 노출하거나, 보안 취약점을 만들 수도 있다. 국가마다 데이터 이전 규칙과 AI 규제, 산업별 보안 기준이 다르다.

따라서 한국 AI 기업이 해외로 나가려면 단순히 제품을 번역하는 수준을 넘어야 한다.

어느 국가의 법인이 고객과 계약할 것인지, 어느 지역에 데이터를 저장할 것인지, 모델 사용료를 어떤 방식으로 청구할 것인지, 모델 오류와 보안사고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 현지 규제기관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까지 설계해야 한다.

AI 수출은 소프트웨어 수출이 아니다.

AI 수출은 데이터와 책임, 계약과 규제, 지식재산권과 세무 구조를 함께 수출하는 일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유럽 법인 구조는 바로 이 사실을 보여준다. 판매 법인과 연구개발 법인, 지식재산권 보유 법인, 금융 법인, 운영지원 법인, 데이터센터 관련 법인이 서로 다른 국가에 분산돼 있으면서도 하나의 가치사슬로 연결돼 있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한국 기업은 해외에서 매출을 내더라도 핵심 수익과 통제권을 확보하기 어렵다.

세제 혜택보다 중요한 것은 ‘실질 기능’이다

아일랜드 사례를 보며 한국도 법인세를 낮춰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성급하다.

글로벌 기업이 특정 국가를 허브로 선택하는 이유는 세율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영어 사용 환경, 국제 금융 인프라, 인재 유입, 법률 체계, 유럽 시장 접근성, 계약 집행의 예측 가능성, 데이터 규제, 기업 설립과 운영의 편의성 등이 함께 작용한다.

한국도 AI 기업 유치를 위해 세제 혜택을 검토할 수 있다. 하지만 세제 지원의 목표는 단순히 해외 기업의 매출을 한국으로 옮기는 데 있어서는 안 된다.

한국에서 실제 연구개발과 고급 인력 채용, 지식재산권 관리, AI 안전성 평가, 산업별 서비스 운영, 국내 스타트업과의 기술 협력이 이뤄지도록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AI 세제 인센티브도 실질 기능과 연동될 필요가 있다.

국내 AI 연구개발 인력 채용 비율, 한국어 및 산업 특화 모델 개발, 국내 데이터센터의 청정전력 전환, 국내 스타트업에 대한 GPU·API 접근 지원, 국내 데이터와 개인정보 보호 체계, AI 안전성 평가센터 구축, 국내에서의 매출과 지식재산권 활동 등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

핵심은 세금을 얼마나 감면해 줄 것인가가 아니다.

그 대가로 어떤 기능과 어떤 인재, 어떤 기술과 어떤 책임이 한국에 남는가다.

AI 강국은 서버를 많이 가진 나라가 아니다

AI 경쟁은 이제 모델 성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누가 더 큰 모델을 만들었는가보다, 누가 더 안정적으로 모델을 운영하는가가 중요해지고 있다. 누가 더 많은 GPU를 확보했는가보다, 누가 AI 서비스의 계약과 데이터, 보안과 책임, 지식재산권을 통제하는가가 중요해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EU 국가별 세금보고서는 이 사실을 조용히 보여준다.

아일랜드는 단지 유럽 안의 작은 국가가 아니다. 글로벌 빅테크의 매출과 계약, 운영과 지식재산권이 만나는 플랫폼 국가다. 독일과 프랑스, 북유럽 국가들은 판매와 연구개발, 데이터센터 운영, 지원 기능을 나눠 맡으며 하나의 거대한 디지털 가치사슬을 구성한다.

한국도 이제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한국에 AI 데이터센터를 몇 개 더 짓는가.
국산 AI 모델이 몇 개 더 나오는가.
GPU를 몇 장 더 확보하는가.

이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은 AI 시대에 어떤 기능을 맡을 것인가.

매출을 인식하는 국가가 될 것인가.
지식재산권을 관리하는 국가가 될 것인가.
기업과 정부가 신뢰할 수 있는 AI 운영·보안·검증의 허브가 될 것인가.
아니면 전력과 데이터, 소비자만 제공하는 시장으로 남을 것인가.

AI 강국은 서버를 많이 가진 나라가 아니다.

AI에서 발생하는 가치와 책임, 데이터와 지식재산권을 자기 나라 안에 남길 수 있는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