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성화 이미지에 대한 종교적 거룩함의 수용 가능성 - 가톨릭 성사적 미학의 관점에서 -, 홍창익 · 주종우
2025 현대사진영상학회 논문집 Vol. 28 no. 4
생성형 AI가 렘브란트의 화풍을 학습해 예수와 성인을 그릴 수 있게 되면서 종교 이미지의 문제도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홍창익과 주종우의 「AI 성화 이미지에 대한 종교적 거룩함의 수용 가능성」은 여기서 다소 까다로운 질문을 꺼낸다. AI가 생성한 성화도 거룩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까다로운 이유는 가톨릭 전통에서 성화가 종교적 소재를 다룬 그림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성화는 보이는 형상을 통해 보이지 않는 은총을 드러내는 ‘시각적 성사(visual sacrament)’로 이해되어 왔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AI 이미지가 예수나 성인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그리는지가 아니라, 그러한 이미지가 신앙 안에서 은총을 매개할 수 있는가이다.
거룩함을 판단하는 기준은 이미지의 외형에 있지 않다
논문은 먼저 성화의 거룩함을 현존(presence), 상징(symbol), 은총(grace)이라는 세 요소로 정리한다. 현존은 신적 실재가 이미지 안에서 감각적으로 드러나는 차원이고, 상징은 형상·색채·빛·구도를 통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연결하는 구조다. 은총은 관람자가 이미지를 바라보는 행위가 묵상과 신앙적 참여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이 세 요소를 결합하면 성화의 가치는 재현의 정확성이나 회화적 완성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관람자가 그 이미지를 통해 무엇을 보게 되고,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게 되는지가 중요해진다.
![[논문리뷰]AI가 그린 성화는 거룩할 수 있는가: ‘창작’에서 ‘수용’으로 옮겨간 거룩함의 문제](https://metax-images-bucket.s3.ap-southeast-2.amazonaws.com/articles/2026/08/ai-img-1-20260816-t66dsx.webp)
여기서 논문의 중요한 전환이 일어난다. AI는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기도하지도 않는다. 학습 데이터에서 시각적 패턴을 통계적으로 재구성할 뿐이다. 그렇다면 전통적인 의미에서 AI 내부에 ‘신학적 의도’나 ‘영적 현존’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저자들은 거룩함이 반드시 제작자의 내면에서만 시작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위치를 옮긴다. 성화가 신앙 공동체 안에서 해석되고 은총을 경험하도록 만드는 매개라면, 거룩함이 발생하는 중요한 장소는 제작 과정뿐 아니라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사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논문은 그래서 AI 성화의 평가 기준을 형태적 유사성보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은총의 경험을 매개할 수 있는가”에 둔다.
렘브란트의 빛과 AI의 빛은 무엇이 다른가
이 논리를 구체화하기 위해 연구는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와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in the style of Rembrandt”라는 프롬프트로 만든 AI 이미지를 비교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저자들이 단순한 화풍의 유사성을 비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렘브란트의 작품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감싸는 손은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나타내는 성사적 제스처로 읽힌다. 어둠 속에서 인물을 드러내는 빛 역시 조명 효과에 머물지 않고 ‘은총의 빛’이라는 신학적 의미를 가진다. 인물의 침묵, 정지된 자세, 어두운 공간은 관람자가 장면을 즉각 소비하지 않고 그 앞에 머물도록 만든다. 작품의 형식과 신학적 의미가 하나의 방향으로 조직되어 있는 것이다.
AI가 생성한 「돌아온 탕자」도 명암, 유화 질감, 렘브란트식 인물 구도를 상당히 잘 모방한다. 그러나 논문은 여기서 세 가지 차이를 읽어낸다. 먼저 AI에는 ‘아버지의 자비’라는 내러티브의 중심을 이해하고 형식 전체를 그 의미에 맞추는 의도가 없다. 둘째, 렘브란트에게 은총의 상징이었던 빛이 AI 이미지에서는 학습된 회화적 조명 스타일로 작동한다. 셋째, 렘브란트 작품에서 침묵과 어둠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두께’가 AI 이미지에서는 약하다. 결과적으로 AI 이미지는 빠르게 감정적인 인상을 만들 수 있지만, 논문이 성화에서 중요하게 보는 묵상의 지속성과 상징적 통일성은 별개의 문제가 된다.
이 차이는 꽤 중요하다. 같은 빛이라도 하나는 이야기와 신학적 의미를 조직하는 빛이고, 다른 하나는 시각적으로 그럴듯한 장면을 만드는 빛일 수 있다. AI 시대에는 따라서 “무엇이 그려져 있는가”보다 그 요소들이 왜 그 자리에 있으며 서로 어떤 의미 관계를 이루는가가 종교 이미지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거룩함은 ‘생성’보다 ‘수용’에서 발생할 수 있다
논문의 핵심 주장은 이 비교 이후 선명해진다. 저자들은 AI가 스스로 거룩함을 생성한다고 보지 않는다. 대신 AI 이미지가 거룩함을 수용하는 공간이 될 가능성을 제시한다. 어떤 AI 이미지가 한 신앙인에게 하느님의 용서나 자비를 묵상하게 하고, 그 경험이 기도나 회개로 이어진다면 이미지 자체에 거룩함이 내장되어 있지 않더라도 그 이미지를 둘러싼 관계 속에서 ‘성사적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를 ‘간접적 성사성(indirect sacramentality)’ 또는 ‘보완적 성사성(complementary sacramentality)’이라는 개념으로 발전시킨다.
이 관점에서 현존의 의미도 달라진다. 현존은 작품 안에 고정되어 있는 물질적 속성이라기보다 이미지와 관람자, 신앙 공동체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건으로 이해된다. AI는 신앙을 갖지 못하지만 인간은 AI 이미지를 신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질문은 “기계 안에 신성이 존재하는가”에서 “기계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매개로 인간에게 신앙적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가”로 이동한다.
프롬프트는 인간의 신앙적 개입이 되돌아오는 지점이다
여기서 논문은 AI 이미지 제작 단계도 다시 살펴본다. 생성 과정이 자동화되었다고 해서 인간의 역할이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연구에서는 ‘예수가 제자의 발을 씻기는 모습’을 일반적으로 묘사한 프롬프트와, 성직자의 성경 해석을 반영해 봉사와 겸손의 의미를 구체화한 프롬프트를 비교한다. 같은 생성 시스템이라도 신학적 맥락을 어떻게 언어화하느냐에 따라 결과 이미지가 달라진다.
저자들이 보기에 프롬프트는 단순한 명령어가 아니다. 성경에 대한 이해, 교리적 지식, 신앙적 해석이 이미지 생성 과정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AI가 픽셀을 생성하더라도 어떤 장면을 선택하고 무엇을 강조하며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의 방향은 다시 인간에게 돌아온다. AI 시대의 종교 이미지에서 작가의 역할은 직접 붓을 움직이는 사람에서 신학적 의미가 생성 과정에 들어가도록 조건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생긴다. 논문은 이러한 인간의 신앙적 성찰과 언어 구성이 AI 성화의 해석 가능성을 심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본다.
세 단계로 이동하는 AI 성화의 거룩함
논문의 표들은 이 논리를 단계적으로 정리한다. 표 1은 전통 성화의 거룩함을 현존-상징-은총의 삼중 구조로 제시한다. 이어 표 2에서는 AI 성화의 수용을 미학적 수용-해석적 수용-전례적 수용이라는 세 단계로 나눈다.

첫 단계에서 관람자는 이미지의 아름다움과 형식적 완성도를 경험한다. 아직 거룩함 자체라기보다 관심과 감응이 준비되는 단계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관람자가 이미지를 성경과 신앙의 상징으로 읽으며 의미를 부여한다. 이때 이미지는 ‘은총의 표징’으로 전환될 수 있다. 마지막 전례적 수용에서는 개인적 감상을 넘어 예배·강론·교리교육 같은 공동체적 상황에서 이미지가 사용된다. 여기서 AI 이미지는 하느님의 현존 자체를 전달한다고 주장되기보다 공동체가 함께 묵상할 수 있도록 하는 시각적 매개로 기능한다.
표 3은 이 개념을 실제 교회 활동으로 연결한다. 교리교육에서는 성경과 교리를 시각화하는 도구로, 전례와 강론에서는 복음 장면을 이해하게 하는 보조 이미지로, 선교와 문화 사목에서는 SNS·웹사이트·디지털 전시 등을 통한 새로운 시각적 언어로 AI 성화를 배치한다.

표 4는 이러한 수용의 경계를 정리한다. AI에는 인간의 신앙적 기도와 ‘창조적 순명’이 없으며, 교회 차원의 공식적인 신학적 검증 기준도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고, 강한 시각적 효과가 묵상의 깊이보다 앞설 경우 거룩함이 피상적인 이미지 소비로 바뀔 수 있다고 본다. 이 표의 역할은 AI 성화를 배제하는 데 있기보다, 앞서 제시한 ‘보완적 성사성’이 어디까지 적용될 수 있는지를 구분하는 데 있다.
성화의 미래보다 ‘거룩함이 어디에서 발생하는가’를 묻는 연구
결국 이 논문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AI가 성화를 얼마나 잘 그릴 수 있는가에 대한 전망이 아니다. 저자들은 거룩함의 발생 위치를 제작자와 작품 내부에서 관람자와 공동체의 해석 과정까지 확장한다. AI에는 신앙도 기도도 없지만, 신앙인은 AI 이미지를 통해 기도할 수 있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을 이 논문은 ‘보완적 성사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 관점은 AI 예술에 관한 더 넓은 질문으로도 이어진다. 창작자의 내면성이 희미해지는 시대에 작품의 의미는 어디에서 형성되는가. 의도를 갖지 않는 시스템이 만든 이미지에서 인간은 어떻게 의미를 읽고, 그 의미를 다시 공동체적 경험으로 연결하는가. AI 성화는 이 문제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종교예술에서는 이미지의 아름다움만으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AI가 만들어낸 형상과 인간이 경험하는 의미 사이의 간격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논문이 최종적으로 제시하는 ‘보완적 성사성’은 AI에게 거룩함을 부여하는 개념이라기보다 거룩함이 이미지의 기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관점에 가깝다. 이미지가 만들어진 순간보다 그것이 읽히고 묵상되고 공동체 안에서 사용되는 시간이 중요해진다. AI 성화가 던지는 가장 깊은 질문도 여기에 있다. 앞으로 종교 이미지의 거룩함을 판단할 때 우리는 누가 그것을 만들었는지만 물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 이미지 앞에서 인간에게 실제로 어떤 신앙적 사건이 일어나는지도 함께 물어야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