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나는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었다.

방 하나를 갖고 싶다는 뜻만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모이고, 내가 믿는 이야기들이 쌓이고, 누군가가 찾아와 잠시 머물 수 있는 공간.

지금처럼 누구나 손쉽게 자신의 채널을 만들 수 있던 때도 아니었다. 홈페이지 하나를 만든다는 일은 조금 거창한 일이었다. HTML 태그를 한 줄씩 넣고, 게시판을 붙이고, 배경음악을 고르고, 방문자 수를 확인하던 시절. 누군가에게는 작은 취미였겠지만, 내게는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언젠가는 내 관심사로 연결된 나만의 포털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스무 살의 어느 날, 나는 내 삶의 첫 이메일 주소를 만들었다. 인터넷 속에서 나를 부를 이름이 필요했다. 단순한 아이디 하나였지만, 그때의 나는 꽤 오래 고민했다.

온라인에서의 이름은 곧 정체성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든 이름이 sdjinny였다.

이름의 이니셜을 담았지만, 내 안에서는 다른 뜻도 있었다.

‘Special Day Jinny.’

누군가의 특별한 날에 등장하는 지니 같은 존재.

요술램프에서 나와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처럼, 누군가에게 필요한 순간에 작은 도움이나 뜻밖의 가능성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아직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잘 몰랐다.

다만 언젠가 내가 가진 생각과 기술, 이야기와 경험이 누군가의 필요와 만나는 날이 오기를 바랐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는 기자가 되어 현장을 다녔다.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는지보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를 더 오래 들여다보려 했다. 발표자료 한 장보다 그 뒤에 숨은 이해관계와 맥락을 찾으려 했고, 하나의 사건을 단순한 뉴스가 아니라 시대가 움직이는 방식으로 읽고 싶었다.

그 뒤 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업에서는 다른 종류의 언어를 배웠다. 정책과 규제, 산업과 시장, 조직과 이해관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일했다. 때로는 공격수의 언어로 회사를 설명해야 했고, 때로는 수비수의 언어로 리스크를 막아야 했다.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의 눈과 기업의 전략을 고민하는 사람의 눈은 꽤 달랐지만, 결국 내가 붙잡고 있던 질문은 비슷했다.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무엇을 연결해야 하는가.

지금 나는 KT에서 AX 사업개발을 하고 있다.

AX 전환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일이 아니다. 조직의 일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고객과 만나는 방식이 바뀌며, 데이터가 흐르는 방식과 의사결정의 구조까지 다시 설계되는 일이다. 기술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산업을 읽어야 하고, 현장의 언어를 알아야 하며, 변화가 실제 비즈니스와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계속 파고든다.

기술을 파고들고, 산업을 파고들고, 정책을 파고들고, 사람들의 불편과 욕망을 파고든다.

내가 좋아하는 말인 격물치지(格物致知)도 그런 뜻이다.

>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앎에 이른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들 한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 간절함은 단순히 많이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다. 이대로 무너지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좌절감 속에서도, 이제는 정말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모든 것을 덮을 때에도, 아주 작은 희망 하나를 끝까지 놓지 않는 일이었다.

돌아보면 내 삶에서 이루어진 것들은 대개 그 직전에 가장 힘들었다.

기자로서의 삶도, 기업에서의 새로운 도전도, 공부를 다시 시작한 일도 그랬다. 잘되지 않을 것 같은 순간이 있었다.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끝까지 남아 있으면, 어느 순간 다음 길이 보였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믿게 됐다.

간절히 원하는 일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은 시간 끝에서 현실이 된다는 것을.

지니랩은 그렇게 시작됐다.

처음에는 작은 실험들이었다.

- 돈과 경제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시작한 머니랩(MoneyLab).

- 언론사 시스템과 콘텐츠 운영 방식에 대한 생각을 실제 서비스로 구현해 보고 싶어 만든 메타엑스.

- 그리고 학회라는 조직이 연구와 교육, 행사와 회원, 콘텐츠와 커뮤니티를 하나의 가치사슬로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만든 국제메타버스학회 플랫폼.

세 개의 프로젝트는 서로 달라 보였지만, 내게는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 일이었다.

좋은 정보는 어떻게 더 잘 연결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어떻게 더 쉽게 만나고, 배우고, 함께 만들 수 있을까.

기술은 어떻게 누군가의 생각을 현실로 옮기는 도구가 될 수 있을까.

직접 만들어 보니 알게 됐다.

완벽하지 않아도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기획은 실행을 만나야 비로소 살아난다는 것.

그리고 AI 시대에는 ‘만들 줄 아는 사람’만이 아니라, 무엇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더 중요해진다는 것.

AI는 많은 것을 바꿨다.

예전에는 홈페이지 하나를 만들기 위해 개발자와 디자이너, 기획자와 운영자의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은 좋은 질문과 구체적인 기획, 끝까지 고치는 집요함이 있다면 훨씬 빠르게 현실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마흔 중반의 나는 다시 결심했다.

스무 살의 내가 꿈꾸던 그 공간을, 이제는 정말 만들어 보기로.

그 이름은 당연히 지니랩(Jinny Lab)이어야 했다.

지니랩은 단순한 개인 홈페이지가 아니다.

내가 기자로서 확인해 온 사실, 기업에서 고민해 온 산업의 변화, KT에서 AX 사업개발을 하며 만나는 기술과 비즈니스의 접점, 그리고 연구실에서 들여다보는 메타버스·AI·디지털자산의 가능성이 만나는 공간이다.

무엇보다 이곳은 내가 믿을 수 있는 이야기를 모으는 곳이 될 것이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지니랩은 적어도 내가 충분히 확인하고 검토한 이야기만 담고 싶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옮기기보다 자료와 맥락을 확인하고, 기술의 유행을 소개하기보다 그것이 산업과 인간의 삶에 무엇을 바꾸는지 끝까지 생각하는 공간.

내 관심사를 중심으로 이어진 작은 포털이기도 하다.

AI와 AX, 메타버스와 디지털자산, 정책과 산업, 글쓰기와 커뮤니티, 그리고 내가 살아온 시간에 쌓인 사람들과 이야기들.

수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더 따뜻하게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많은 이들이 지식과 기회를 나누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싶지만 첫 문장을 쓰지 못하는 사람, AI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제 서비스로 만들어 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지니랩은 작은 실험실이 되고 싶다.

브런치는 내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공간이다.

많은 독자를 만났고,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법을 배웠으며, 내가 쓰는 문장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사실도 경험했다. 하지만 플랫폼의 흐름은 언제든 바뀌고, 구독자 수는 오르기도 하고 줄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의 플랫폼 안에서만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된 공간을 직접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브런치에서 이야기를 쓰고,

지니랩에서 세계를 짓고,

그 세계에서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세상으로 보내는 일.

그렇게 선순환을 만들고 싶다.

카카오도, 구글도, 누구도 아닌

내가 주인인 공간.

스무 살의 나는 언젠가 나만의 포털을 갖고 싶었다.

그때는 기술이 부족했고, 경험도 부족했고, 무엇을 담아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공간은 먼저 만들고, 그 안에 삶을 채워 넣는 것이라는 것을.

완벽한 준비가 끝나는 날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이, 어쩌면 가장 적절한 출발점일 수 있다는 것을.

지니랩(jinnylab.kr)은 그 출사표다.

이곳에는 내가 파고든 기술과 산업의 이야기가 쌓일 것이다.

내가 확인한 사실과 내가 가진 질문들이 기록될 것이다.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서비스가 되고, 누군가의 이야기가 글이 되며, 오래된 인연과 새로운 관계가 연결될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 이 공간이 스무 살의 내가 막연히 꿈꾸던 모습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져 있기를 바란다.

요술램프의 지니와 같은 소원을 들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곳에 들어온 누군가가 자신의 생각을 조금 더 구체화하고, 다음 일을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간절히 원하던 꿈은 결국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 자기 손으로 현실을 만들 때 이루어진다.

지니랩은 스무 살의 내가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남겨둔 과제다.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마음, 내가 믿는 이야기와 좋아하는 것들,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 갈 가능성을

한곳에 쌓아두고 싶었던 마음.

2026년, 마흔일곱의 나는 그 오래된 마음을 더 미루지 않기로 했다.

https://jinnylab.kr/

2026년 6월 28일.

지니랩은 그렇게 첫 페이지를 연다.

광화문덕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