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0억의 약속, 그리고 배신...′창의성을 샀지만 버렸습니다.′ 에서 크래프톤과 언노운월즈의 서브노티카2 분쟁을 다뤘을 때, 제목에서 언급한 7,500억은 이번 소송액도, 합의금도 아니었다. 그것은 크래프톤이 2021년 언노운월즈를 인수하며 치른 초기 인수금, 5억 달러를 원화로 옮긴 숫자였다. 배틀그라운드로 글로벌 시장을 뚫은 한국 게임사가 해저 생존 게임 서브노티카 시리즈의 소규모 스튜디오에 붙인 값. 말하자면, 그 창의성에 매긴 가격이었다.

이번 분쟁의 직접 쟁점은 그 7,500억이 아니라, 그 뒤에 붙은 언아웃이었다. 언노운월즈가 일정한 성과를 달성하면 최대 2억5000만 달러를 추가로 지급하기로 한 약속, 그리고 그 보상이 누구에게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를 둘러싼 다툼이었다. 창의성을 산 대가는 이미 치러진 듯 보였지만, 그 창의성이 성과로 이어졌을 때의 청구서는 아직 닫히지 않았다.

justia
https://law.justia.com/cases/delaware/court-of-chancery/2026/2025-0805-lww.html

그 다툼 끝에 크래프톤은 언노운월즈의 핵심 경영진을 해임했고, 해임된 경영진과 전 주주 측은 소송으로 맞섰다. 지난 3월 델라웨어 형평법원은 이 해임이 인수 계약상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고, 해임됐던 테드 길은 대표로 복귀했다. 다만 손해배상 규모와 언아웃 지급 문제를 정리하는 절차는 남아 있었다. 법적 판단은 나왔지만, 청구서는 아직 최종 정산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2026년 7월 1일, 그 청구서는 판결이 아니라 합의로 접혔다. 크래프톤은 언노운월즈 전 주주 대표 측이 제기한 소송이 당사자 간 합의에 따라 취하됐다고 공시했다. 두 공동창업자 찰리 클리블랜드와 맥스 맥과이어, 그리고 CEO였던 테드 길을 둘러싼 법적 절차도 함께 마무리됐다.

무엇이 정산되었나

이번 합의는 단순한 소송 취하로만 읽기 어렵다. 공개된 범위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보상의 범위였다.

원래 언아웃은 세 핵심 경영진과 2021년 인수 당시 재직 중이던 일부 직원들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었다. 크래프톤은 과거 입장에서 최대 2억5000만 달러 언아웃의 상당 부분이 세 전직 경영진에게 배정돼 있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합의 이후 보상은 현재 언노운월즈에 있는 전 직원에게 돌아가게 됐다. 인수 이후 합류한 개발자도 대상에 포함된다. 보너스는 3년에 걸쳐 지급되고, 서브노티카2가 업데이트와 운영을 이어가며 성과를 낼 경우 추가 인센티브도 따라붙는다.

테드 길은 개발팀이 기존 계약에서 예정됐던 것보다 “상당히 더 많은” 보상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세 핵심 인물을 중심으로 짜였던 보상 구조가 스튜디오 전체로 넓어진 것이다. 이 지점만 놓고 보면 개발팀 쪽의 성과는 분명하다.

그러나 같은 합의 안에서 테드 길은 대표직을 내려놓았다. 해임됐다가 법원 명령으로 복귀한 바로 그 자리에서, 이번에는 상호 합의에 따라 물러난다. 그는 새로운 리더십이 스튜디오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더 나은 길이라고 밝혔다. 크래프톤과 언노운월즈는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외부 인사를 새 대표로 찾기로 했다.

왜 합의의 순간에 길이 물러났는지는 공개적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 합의 금액도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두 가지다. 돈의 분배는 넓어졌고, 사람은 자리를 비웠다.

판결이 돌려준 것, 흥행이 열어준 것

이런 합의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1단계 판단 이후 벌어진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3월, 델라웨어 형평법원의 로리 윌 부챈슬러는 크래프톤이 두 공동창업자와 테드 길을 해임한 사유가 인수 계약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길은 대표로 복귀했고, 스튜디오 운영에 대한 권한도 회복했다. 법원은 기본 언아웃 산정 기간을 258일 연장해 2026년 9월 15일까지 늦췄다. 다만 금전 손해배상 여부와 규모는 2단계 절차로 남겨뒀다.

그사이 게임이 나왔다. 4월에는 스팀, 에픽게임즈 스토어, 엑스박스 스토어 등에서 서브노티카2의 퍼블리셔 표기가 크래프톤이 아닌 언노운월즈 중심으로 바뀌었다. 공식적으로 어떤 법적 의미를 갖는 변화인지까지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팬들은 이를 개발사가 다시 전면에 선 신호로 받아들였다.

5월 얼리액세스로 출시된 서브노티카2는 빠르게 흥행했다. 출시 12시간 만에 200만 장, 닷새 만에 400만 장 판매를 넘겼고, 스팀 최고 동시접속자는 46만 명대를 기록했다. 이 숫자는 단순한 판매 성과를 넘어섰다. 언아웃은 서브노티카2의 성과와 연결돼 있었고, 게임이 시장에서 강하게 반응할수록 분쟁을 이어가는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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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이 운영권을 돌려줬다면, 흥행은 협상력을 돌려줬다. 양측은 2단계로 더 깊게 들어가는 대신 합의를 택했다. 법원 의견문에서 크래프톤 CEO가 언아웃 문제와 관련해 ChatGPT에 전략을 물은 정황까지 드러난 상황에서, 판결과 흥행이 겹친 이후에도 소송을 계속 끌고 가는 것은 크래프톤에게도 부담스러운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같은 합의, 다른 번역

같은 소식을 두고 보도의 초점은 달랐다. 국내 매체들은 대체로 “약 3400억 원대로 환산되는 언아웃 분쟁 해소”와 “서브노티카2 흥행 청신호”에 무게를 뒀다. 반면 해외 게임 매체와 커뮤니티는 “개발팀이 이겼다”, “CEO는 떠난다”는 쪽에 더 가까운 제목을 붙였다. 같은 합의였지만, 한국은 크래프톤이 덜어낸 리스크를 먼저 봤고, 해외는 개발팀이 확보한 몫을 먼저 봤다.

국내 보도의 주어는 대체로 크래프톤이었다. 소송 마무리, 법적 리스크 해소, 경영 불확실성 완화, 개발 정상화, 흥행 청신호. 국내 기사들을 관통하는 언어는 이런 방향으로 정렬됐다. 이유는 단순하다. 크래프톤은 코스피 상장사이자 국내 대표 게임사 중 하나이고, 산업 보도의 기본 문법은 기업가치, 투자심리, 사업 전략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3400억 원대 분쟁은 그 자체로 리스크였다. 그 리스크가 사라진 것은 뉴스가 된다. 이 관점에서 서브노티카2의 흥행은 ‘배틀그라운드 의존도를 낮출 새 IP의 안착’이라는 더 큰 그림 안에 놓인다. 소송은 그 그림에 드리운 불확실성이었고, 합의는 그 불확실성이 걷힌 사건이다. 크래프톤을 주어로 놓으면, 이 사건은 리스크 관리의 성공담에 가깝다.

해외 보도의 주어는 언노운월즈였다. 개발팀 보너스 확대, 창업자 측의 승리, 테드 길의 퇴장, 그리고 반복해서 등장한 창작자 중심의 서사. 서구 게임 저널리즘과 커뮤니티에는 스튜디오와 창작자를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 전통이 강하다. 이들에게 이 사건은 대형 자본에 인수된 스튜디오에서 창작 주체가 어떻게 밀려났고, 다시 어떤 몫을 되찾았는가의 이야기였다.

https://unknownworlds.c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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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이 스토어 표기의 변화를 반겼고, 개발사를 응원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지켜본 장면은 이 서사를 잘 보여준다. 크래프톤 CEO가 ChatGPT에 언아웃 회피와 관련된 전략을 물은 정황도, 이 구도에서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창작자와 모기업 사이의 긴장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받아들여졌다.

같은 합의문이 한쪽에서는 퍼블리셔가 리스크에서 벗어난 사건으로, 다른 쪽에서는 개발자가 정당한 몫을 되찾은 사건으로 번역됐다. 이 차이는 단순한 취향이나 편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것은 게임을 무엇으로 보느냐의 차이에 가깝다.

게임을 자산이자 사업으로 보면, 이 사건의 결말은 대차대조표와 리스크 관리의 언어로 읽힌다. 게임을 만든 사람들의 창작물로 보면, 결말은 그 사람들에게 무엇이 돌아갔는가에서 읽힌다. 한국의 렌즈가 자본의 회계를 따라갔다면, 해외의 렌즈는 창작 주체의 권리를 따라갔다. 두 렌즈는 같은 장면을 비추면서도 서로 다른 초점을 맺었다.

그리고 이 차이는 우연이 아니다. 국내 게임 산업이 오래도록 퍼블리셔와 플랫폼 중심으로 성장해 온 반면, 서구 게임 문화는 인디와 창작자 서사를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삼아 왔다. 서브노티카2 합의는 그 두 문화가 같은 사건 앞에서 각자의 언어로 말하는 순간을 드러냈다.

봉합, 그리고 다음 작품

합의는 분명한 전환점이다. 크래프톤은 법적 리스크를 덜어냈고, 개발팀은 보상의 범위를 넓혔으며, 표면의 갈등은 봉합됐다. 서브노티카2는 얼리액세스에서 정식 출시를 향해 나아가고, 언노운월즈는 개발을 주도하는 자리를 지킨다.

그러나 봉합이 곧 회복을 뜻하지는 않는다. 개발팀이 보상을 얻었다는 사실과, 복귀했던 CEO가 다시 떠났다는 사실은 같은 합의문 안에 나란히 놓여 있다. 이것이 승리인지, 이별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아직 하나의 단어로 정리되지 않는다.

법적 분쟁은 끝났지만, 팬들이 앞으로 확인하려는 것은 판결문도 합의문도 아니다. 그들이 보려는 것은 이 IP가 원래의 감각을 유지한 채 1.0에 도달하는가, 자본과 창작의 긴장이 다시 게임을 흔들지 않고 완성으로 이어지는가이다.

이전 글에서 이 사건은 창의성을 산 자본이 그것을 지킬 의지가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이번 합의는 그 질문에 돈으로 답했다. 세 사람만이 아니라 팀 전체에게, 기존 약속보다 더 넓은 방식으로. 그러나 돈으로 답할 수 있는 부분은 거기까지다. '7,500억의 약속'이 단순한 인수 금액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마지막 몫은, 결국 다음 작품이 짊어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