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X(MetaX)]Gaëlle Vanhoffelen, Laura Vandenbosch, Lara Schreurs의 논문 「Teens, Tech, and Talk: Adolescents’ Use of and Emotional Reactions to Snapchat’s My AI Chatbot」은 청소년과 AI의 관계를 “사용 여부”보다 “정서적 경험”의 문제로 읽는다. 이 논문이 흥미로운 이유는 생성형 AI를 숙제 도우미나 검색 도구로만 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저자들은 Snapchat의 My AI가 청소년의 일상적 대화 공간 안으로 들어온 사회적 존재라는 점에 주목한다. AI는 더 이상 별도의 앱을 열어 필요할 때 호출하는 기능이 아니라, 친구 목록과 채팅창 사이에 놓인 말 걸 수 있는 상대가 되었다.

이 논문의 핵심 질문은 어떤 청소년이 My AI를 더 많이 사용하는가 이다. 그리고 My AI와 대화한 뒤 누가 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는가. 저자들은 이를 성별, 나이, 사회경제적 지위라는 세 가지 요인으로 살펴본다. 언뜻 보기에는 익숙한 인구통계학적 질문처럼 보이지만, 이 질문은 관계형 AI 시대에 중요한 방향이다. AI가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기에, 우리는 “청소년과 AI”를 하나의 덩어리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AI는 도구가 아니라 대화 상대가 되었다
논문은 챗봇의 역사를 ELIZA에서 출발해 현재의 대규모 언어모델 기반 AI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 놓는다. 과거의 챗봇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대답하는 장치에 가까웠지만, 지금의 챗봇은 사용자의 말투와 감정에 반응하고, 실시간으로 대화를 이어가며, 때로는 인간적인 이해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들은 이런 인간화된 대화 능력이 AI를 “사회적 AI”로 바꾸고 있다고 본다.

여기서 Snapchat의 My AI는 특별한 사례다. ChatGPT처럼 따로 찾아가는 서비스가 아니라, 이미 청소년들이 친구와 사진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플랫폼 안에 들어가 있다. Snapchat은 친밀한 관계, 짧게 사라지는 메시지, 작은 소셜 버블을 특징으로 한다. 그 안에 AI 챗봇이 들어왔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My AI는 검색창 옆에 있는 기능이 아니라 친구 옆에 있는 대화 상대처럼 배치된다. 이 배치 자체가 AI에 대한 감각을 바꾼다.

청소년에게 이는 더 민감한 문제인데, 청소년기는 정체성, 또래 관계, 감정 조절, 사회적 인정 욕구가 동시에 요동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AI가 “항상 응답하는 존재”로 등장하면, 그것은 정보 기술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말해도 지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 듯 보이며, 즉각 반응하는 존재는 외로운 청소년에게 편리한 도구이면서 동시에 정서적 의존의 가능성을 지닌다.

누가 AI에게 말을 거는가
이 연구는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의 중등학교 청소년 303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평균 연령은 약 15.9세였고, 참여자 중 약 70%가 Snapchat의 My AI를 사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저자들은 성별, 나이, 사회경제적 지위가 My AI 사용 여부와 감정 반응에 어떤 관계를 갖는지 분석했다. 감정 반응은 긍정 정서와 부정 정서로 나누었다. 긍정 정서에는 열정, 흥미, 영감, 행복이나 신남 같은 항목이 들어갔고, 부정 정서에는 속상함, 고통, 짜증, 긴장, 두려움 같은 항목이 포함되었다.

결과는 성별과 사회경제적 지위는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지 않았다. 남학생이 더 많이 쓰거나 여학생이 더 정서적으로 반응한다는 식의 뚜렷한 성별 차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사회경제적 지위 역시 사용 여부나 감정 반응을 설명하지 못했다. 연구에서 의미 있게 드러난 요인은 나이였다. 나이가 어릴수록 My AI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았고, 사용 후 긍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경험했다. 반대로 나이가 많을수록 My AI에서 얻는 긍정 감정은 줄어들었다. 부정 감정에서는 나이에 따른 유의미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 결과는 작지만 중요한 방향을 가리킨다. My AI가 청소년에게 똑같이 매력적인 것이 아니라, 더 어린 청소년에게 특히 강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이를 발달적 차이와 연결한다. 어린 청소년은 비판적 사고와 감정 조절 능력이 아직 발달하는 중이며, AI를 인간과 구분하는 능력에서도 더 취약할 수 있다. 따라서 My AI의 친절한 반응, 아바타, 즉각적인 응답은 더 어린 사용자에게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

긍정 감정은 항상 좋은 신호인가
이 논문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긍정 감정”을 곧바로 안전한 결과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린 청소년이 My AI와 대화한 뒤 더 즐겁고, 흥미롭고, 영감을 받았다고 느낀다면 겉으로는 좋은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자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AI가 주는 긍정적인 감정은 때로 위험을 가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청소년이 신체 이미지나 우울감 같은 민감한 문제를 AI에게 털어놓았다고 하자. 챗봇은 따뜻하고 도움이 되는 듯한 답을 줄 수 있다. 사용자는 위로받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답이 정확한 상담인지, 건강한 조언인지, 사용자의 취약성을 더 위험한 방향으로 이끄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저자들은 AI 챗봇이 여전히 부정확한 답변을 생성할 수 있고, 고정관념을 반복할 수 있으며, 민감한 자기 고백 정보를 다룬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긍정적인 감정을 느꼈다”는 결과는 두 방향으로 읽혀야 한다. 하나는 실제로 AI가 청소년에게 정서적 완충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다른 하나는 그 감정이 AI에 대한 과신과 의존을 키울 수 있다는 위험이다. 이 논문은 바로 이 양가성을 포착한다. My AI는 청소년에게 무조건 해롭다는 결론도, 무조건 유익하다는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 대신 누가, 어떤 발달 단계에서, 어떤 감정으로 AI를 받아들이는지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관계형 AI와 새로운 준사회적 관계
저자들이 제시하는 중요한 해석 중 하나는 My AI가 청소년과 새로운 형태의 준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준사회적 관계는 시청자와 연예인, 인플루언서, 캐릭터 사이의 일방적 친밀감을 설명할 때 사용되었다. 사용자는 상대를 잘 안다고 느끼지만, 관계는 비대칭적이다.

AI 챗봇은 이 구조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인플루언서나 캐릭터는 실제로 나에게 답하지 않지만, AI는 답한다. 물론 그 답은 의식이나 감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언어모델의 산출물이다. 하지만 사용자의 경험 차원에서는 “나에게 반응한다”는 감각이 생긴다. 특히 어린 청소년이 My AI와 대화하며 긍정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AI를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관계적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논문은 관계형 AI 논의에 실증적 근거를 제공한다. 그동안 AI와 정서적 관계에 관한 논의는 성인 사용자나 특수한 챗봇 서비스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연구는 청소년이 이미 대중적 소셜미디어 안에서 AI와 접촉하고 있으며, 그 접촉이 나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을 보여준다. 관계형 AI는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청소년의 채팅창 안에 들어와 있는 현재의 문제다.

성별과 계층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의 의미
성별과 사회경제적 지위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는 결과도 흥미롭다. AI 기술을 둘러싼 기존 논의에서는 성별 편향이나 디지털 격차가 자주 언급된다. 여성형 챗봇, 성별 고정관념을 반복하는 AI,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사이의 접근성 차이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는 그런 차이가 통계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이를 “성별 편향이 없다”거나 “계층 격차가 사라졌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저자들도 조심스럽게 말하듯, 연구 표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전반적으로 높은 편이었고 변동 폭이 작았다. 이 경우 계층 차이가 실제보다 작게 보였을 수 있다. 성별 차이 역시 My AI의 아바타가 사용자가 설정할 수 있고, GPT-3.5나 GPT-4 기반으로 작동한다는 특성 때문에 덜 드러났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설이다. 실제 대화 내용에서 성별 고정관념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별도의 분석이 필요하다.

오히려 이 결과는 연구의 방향을 바꾼다. 청소년과 AI의 관계를 설명할 때 성별이나 계층 같은 큰 범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사용 동기, 외로움, 또래 관계, 정신건강, 디지털 리터러시, 가족 환경 같은 심리사회적 요인이 더 중요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왜 AI에게 말하는가”라는 질문이 중요하다. 숙제 도움을 받기 위해 말하는 청소년과, 외로워서 말하는 청소년의 경험은 같을 수 없다.

AI 리터러시는 지식 교육만으로 부족하다
논문의 결론은 AI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으로 이어진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AI 리터러시는 프롬프트를 잘 쓰는 기술이 아니다.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AI가 생각하거나 느끼는 존재가 아니라 언어모델에 기반해 응답을 생성하는 시스템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동시에 AI와의 대화에서 생기는 애착, 위로, 실망, 의존을 조절하는 감정적 리터러시도 필요하다.

AI 교육이 “좋은 질문을 하는 법”에만 머물면, 청소년은 AI를 더 능숙하게 사용할 수는 있어도 더 비판적으로 대하지는 못할 수 있다. 관계형 AI 시대의 리터러시는 기술 사용법보다 관계 판단 능력에 가까워진다. 이 존재가 나를 이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그 느낌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위로받았다는 감정과 실제로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내 고민을 어디까지 AI에게 말해도 되는가. 이런 질문이 교육의 중심으로 들어와야 한다.

이 논문이 남기는 질문
이 연구의 가장 큰 의미는 AI를 청소년의 정서적 생활세계 안에서 본다는 데 있다. AI는 더 이상 화면 밖의 기술이 아니다. 친구들과 대화하는 공간 안에 들어와 있고, 청소년은 그곳에서 AI에게 말을 걸고, 반응을 받고, 기분이 달라진다. 저자들은 발달적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특히 “어린 청소년일수록 더 많이 쓰고 더 긍정적으로 느낀다”는 결과는 정책적으로도 까다로운 질문을 만든다. 어린 사용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들이 실제로 긍정적 경험을 얻고 있다는 결과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논문은 금지냐 허용이냐의 이분법보다 더 정교한 접근을 요구한다. 플랫폼은 AI와 대화 중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려야 하고, 민감한 정보 보호를 강화해야 하며, 청소년이 AI를 사람처럼 오해하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 교육은 AI를 잘 쓰는 법뿐 아니라 AI와 적절한 거리를 두는 법을 다루어야 한다.

결국 이 논문은 청소년과 AI의 문제를 “기술 중독”이나 “학습 보조”라는 익숙한 틀에서 빼낸다. 핵심은 말 걸 수 있는 AI가 청소년의 감정 세계에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가다. My AI는 작고 친근한 챗봇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앞으로 더 커질 질문이 들어 있다. 청소년은 AI를 도구로 쓰는가, 친구처럼 느끼는가, 아니면 둘 사이의 애매한 대상으로 받아들이는가. 이 논문은 그 질문에 대한 첫 실증적 단서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