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5일 디즈니(Disney)는 틱톡(TikTok)과 콘텐츠 공유 계약을 발표했다. 틱톡 크리에이터가 디즈니 IP를 활용해 만든 일부 영상은 Disney+의 세로형 피드 ‘버츠(Verts)’에도 들어갈 예정이다. OTT가 틱톡식 화면을 닮는 데서 그치지 않고, 틱톡에서 만들어진 콘텐츠까지 서비스 안으로 들이기 시작한 셈이다.

이런 흐름은 올해 봄부터 여러 OTT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넷플릭스(Netflix)는 4월 30일 모바일 앱 개편과 함께 세로형 피드 ‘클립스(Clips)’를 미국·영국·캐나다·호주·인도·말레이시아·파키스탄·필리핀·남아프리카공화국 9개국에 먼저 도입했다. 클립스는 홈·검색·나의 넷플릭스와 나란히 하단 탐색 바의 독립 탭으로 배치됐으며, 이용자 취향에 맞춘 영화·시리즈·스페셜의 짧은 장면을 연속으로 보여준다. 넷플릭스는 이를 이용자가 다음에 볼 작품을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개인화된 하이라이트 기능으로 설명했으며, 한국과 일본에도 7월부터 적용됐다.

파라마운트 플러스(Paramount+)도 4월 모바일 앱에 세로형 숏폼 피드를 추가했다. ‘South Park’와 ‘The Madison’ 같은 기존 작품의 장면뿐 아니라 스포츠 하이라이트와 CBS 뉴스, UFC 장면, 예고편 등이 함께 들어가며, 짧은 영상을 넘겨보다 관심이 생긴 콘텐츠로 이동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프라임 비디오(Prime Video)는 앞서 NBA 하이라이트에 활용하던 ‘클립스(Clips)’를 5월 영화와 시리즈까지 확대했다. 클립을 넘겨보다 작품을 Watchlist에 담거나 공유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본편 시청이나 대여·구매·구독으로도 이어진다.
세 서비스의 구성과 범위는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점은 뚜렷하다. 작품 목록에서 하나를 먼저 고른 뒤 재생하는 방식에 더해, 짧은 장면을 먼저 접하고 그 관심을 본편 탐색으로 이어가는 경로가 추가되고 있다. 몇십 분에서 몇 시간짜리 콘텐츠를 제공하는 OTT가 비슷한 시기에 이런 화면을 채택한 배경에는, 단순한 숏폼 유행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가 있다.
세로형 피드가 다시 등장한 배경
세로형 피드 자체는 새로운 시도가 아니다. 넷플릭스는 이미 2021년 코미디 장면을 짧게 넘겨보는 ‘패스트 래프스(Fast Laughs)’를 선보였고, 그보다 앞서 짧은 예고 영상을 보여주는 ‘프리뷰스(Previews)’도 운영했다. 세로 화면에서 짧은 영상을 연속으로 보여주는 방식은 몇 년 전부터 존재해온 셈이다.

달라진 것은 이 형식을 다시 꺼내 든 시점과 범위다. 2026년에는 넷플릭스뿐 아니라 파라마운트 플러스와 프라임 비디오까지 비슷한 기능을 거의 같은 시기에 확대했다. 이처럼 여러 사업자가 동시에 세로형 피드에 다시 주목한 배경에는 스트리밍 시장을 둘러싼 환경 변화가 있다.
딜로이트(Deloitte)의 2026년 ‘Digital Media Trends’ 조사에 따르면 미국 가구의 90%가 유료 SVOD를 이용하고 있으며, 가입 가구는 평균 4개의 서비스를 이용한다. 조사에 참여한 소비자의 41%는 최근 6개월 안에 적어도 한 개의 SVOD 서비스를 해지했다고 답했다. 여러 서비스를 오가며 필요에 따라 가입과 해지를 반복하는 이용 행태가 일반화되면서, 신규 가입자를 늘리는 것만큼 이미 확보한 이용자가 얼마나 자주 앱을 열고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도 중요해지고 있다.
파라마운트 플러스 역시 세로형 피드의 목적을 콘텐츠 발견에만 두지 않고, 앱 방문 빈도를 높이고 이용자가 더 오래 머물도록 하는 데까지 연결해 설명했다. 넷플릭스 역시 클립스를 다음 시청작을 더 빠르게 찾게 하는 기능으로 설명한다. 짧은 영상은 긴 작품을 보기 애매한 시간에도 앱을 열 수 있는 접점을 만들고, 그 안에서 다시 본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발견’과 ‘이용 빈도’가 따로 떨어진 목표라기보다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는 셈이다.
여기에 콘텐츠를 처음 접하는 장소가 OTT 밖으로 넓어졌다는 변화도 겹친다. 같은 조사에서 팬의 52%는 새로운 영화·TV·음악·게임 등을 발견하는 주요 경로로 소셜미디어를 꼽았다. Gen Z 팬에서는 이 비율이 73%까지 올라갔다. 팬의 44%, Gen Z 팬에서는 60%에 가까운 응답자가 소셜미디어에서 콘텐츠를 발견한 뒤 다른 서비스로 이동해 본편을 시청하거나 구매한다고 답했다.

이 과정에서 스트리밍 서비스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주로 마지막 결과다. 이용자가 어떤 클립이나 밈, 리뷰를 보고 특정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에 대한 정보는 TikTok이나 YouTube, Instagram 같은 외부 플랫폼에 남는다. Deloitte가 이를 스트리밍 사업자 입장에서 일종의 ‘black box’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이 조사는 2025년 10~11월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세 회사가 해당 수치를 보고 세로형 피드를 설계했다고 연결할 수는 없다. 다만 당시 시장에서 콘텐츠 발견이 어떤 경로로 이동하고 있었는지는 보여준다. 여러 OTT가 비슷한 시기에 세로형 피드를 확대하기 시작한 배경에는 이용자를 다시 앱으로 불러오는 문제와, 외부 플랫폼에서 이루어지던 발견의 일부를 서비스 안으로 가져오려는 필요가 함께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포스터에서 장면으로 확장된 추천의 단위
이런 배경에서 보면 세로형 피드의 변화는 화면이 가로에서 세로로 바뀌었다는 데만 있지 않다. 작품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긴다.
지금까지 OTT에서 작품을 대표하는 것은 주로 포스터와 썸네일이었다. 이용자는 여러 이미지를 훑다가 관심이 가는 제목을 고르고, 상세 페이지에서 줄거리나 예고편을 확인한 뒤 재생 여부를 결정했다. 개인화 역시 이 과정에 적용됐다. 같은 작품이라도 이용자에 따라 다른 배우나 장면을 강조한 썸네일을 보여주는 식이다.
세로형 피드는 이 과정의 앞부분에 실제 장면을 끼워 넣는다. 이용자는 작품을 선택하기 전에 대사와 표정, 액션, 분위기를 먼저 접한다. 제목이나 줄거리만으로 내용을 짐작하는 대신 작품의 일부를 짧게 경험한 뒤 관심 여부를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클립스를 이용자의 취향에 맞춘 개인화된 하이라이트 피드라고 설명한다. 기존에 작품과 썸네일을 개인화해 온 방식이 이제 짧은 영상 영역까지 확장된 것이다. 개인화된 추천이 정지된 이미지에 머물지 않고 실제 장면을 보여주는 영역으로 넓어졌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지점에서 틱톡식 피드와의 공통점이 드러난다. 틱톡은 이용자에게 무엇을 볼지 먼저 고르게 하기보다 영상을 하나씩 보여주고, 시청 여부와 좋아요·공유 같은 이용자 반응을 바탕으로 이후 추천을 조정한다. 최근 OTT의 세로형 피드 역시 목록에서 작품을 충분히 비교한 뒤 선택하기를 기다리기보다, 콘텐츠 일부를 먼저 보여준 뒤 그 반응을 다음 탐색으로 연결하는 방향에 가깝다.
짧은 영상이 장편 콘텐츠의 입구가 되는 방식
세로형 피드가 늘어난다고 영화와 드라마가 곧 짧은 콘텐츠로 대체되는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의 클립스나 프라임 비디오의 Cl클립스에 들어가는 영상은 대부분 새로 만든 숏폼 작품이 아니라 기존 영화와 시리즈의 일부 장면이다. 짧은 영상 자체를 끝까지 소비하게 하기보다, 관심이 생긴 작품을 저장하거나 본편으로 이동하게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점에서 OTT의 세로형 피드는 숏폼과 장편의 경쟁이라기보다 둘을 연결하는 새로운 탐색 경로에 가깝다. 포스터와 줄거리만으로 작품을 고르던 이용자에게 실제 장면을 먼저 보여주고, 그 반응을 다시 추천과 본편 시청으로 이어가는 방식이다. 몇 시간짜리 작품을 선택하게 하기 위해 가장 짧은 순간부터 먼저 보여주는 셈이다.
다만 모든 클립이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파라마운트 플러스의 스포츠 하이라이트나 뉴스 영상처럼 짧은 영상 자체로 소비가 끝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장면을 잘라 보여줄 것인지에 따라 작품의 인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 클립 제작이 늘어날수록 라이선스와 편집 권한, 제작 비용, 특정 장면이 두드러지는 작품에 추천이 편중될 가능성도 함께 따라온다.
아직 세로형 피드가 실제 본편 시청이나 가입 유지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주요 사업자들도 클립에서 본편으로 이어지는 전환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여러 OTT가 비슷한 시기에 같은 형식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은, 콘텐츠를 발견하고 선택하는 방식의 변화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시청자들은 이제 작품을 먼저 고른 뒤 영상을 보는 방식뿐 아니라, 짧은 장면을 먼저 접하고 관심이 생긴 작품으로 이동하는 경험에도 익숙해지고 있다. OTT 역시 변화한 콘텐츠 발견 방식에 맞춰, 시청자가 본편에 도달하는 경로를 다시 설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