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스마트폰까지 디스플레이 기술은 오랫동안 더 크고, 더 밝고, 더 선명한 화면을 만드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스마트글래스도 정보를 또렷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다만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이 더 붙는다. 눈앞에 정보를 띄우면서도 기기 자체는 여전히 안경처럼 가볍고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조건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스마트글래스는 이미지를 만드는 장치만 작게 만든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빛을 만들고, 방향을 조절하고, 사용자의 눈까지 전달하기 위한 여러 광학부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구조가 커질수록 렌즈나 안경테 역시 두꺼워지고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마트글래스에서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일은 단순히 작은 화면 하나를 넣는 문제와는 조금 다르다. 해상도와 밝기뿐 아니라, 화면을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장치들을 얼마나 줄이고 안경 안에 자연스럽게 넣을 수 있는지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
150nm의 거울은 무엇을 바꿨나
TDK는 2020년부터 QD Laser와 망막투사 기술을 공동 개발해 왔다. 이후 풀컬러 레이저 모듈과 고해상도 제어장치, RGB 광원 등 이미지를 만들고 제어하는 기술을 단계적으로 고도화했다. 2022년에는 초소형 풀컬러 레이저 모듈을 적용한 양안 망막투사 스마트글래스를 공개했고, 2024년에는 4K 이상 해상도를 겨냥한 풀컬러 레이저 제어장치를 시연했다. 올해 6월에는 차세대 RGB 광원과 optical engine 공동개발도 확대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2일, TDK는 스마트글래스의 광학 구조를 더 얇게 만들기 위해 새로운 망막 직접투사(Direct Retinal Projection·DRP) 기술을 공개했는데 이는 빛을 눈까지 보내는 광학 구조가 달라진 방향이었다. 사용자가 별도의 화면을 바라보는 대신, 레이저 빛을 광학계로 조절해 이미지를 망막에 직접 전달하는 방식이다. 기존 망막투사 방식에서는 레이저 빛의 방향을 조절하기 위해 눈앞에 곡면 형태의 반사 구조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일정한 부피를 차지하기 때문에 스마트글래스를 일반 안경처럼 얇고 자연스럽게 만드는 데 제약이 될 수 있었다.
TDK는 이 역할을 렌즈 안에 삽입할 수 있는 평평한 ‘메타옵틱 미러(meta-optic mirror)’로 바꿨다. 약 150nm 두께의 이 미러에는 나노 크기의 반사 구조가 위치마다 다르게 배열돼 있어, 평평한 형태에서도 레이저 빛을 필요한 방향으로 조절할 수 있다. TDK에 따르면 가시광 투과율은 약 80%이며, 안경 렌즈 내부에 직접 삽입할 수 있다.
기존에는 이미지를 망막까지 보내기 위해 눈앞에 별도의 반사 구조가 필요했지만, 이번 기술은 그 기능을 렌즈 내부로 옮겨, 렌즈 외부로 돌출되던 광학 구조를 줄이고, 스마트글래스를 보다 얇고 자연스러운 형태로 설계할 수 있는 여지가 커졌다. 결국 150nm 메타옵틱 미러는 망막투사 방식은 유지하면서도, 이를 구현하는 광학 구조를 한층 간결하게 만든 기술이라고 볼 수 있다.
‘판’에서 ‘기능’으로 이동하는 디스플레이
우리가 흔히 디스플레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부분 눈에 보이는 하나의 면이다. TV에는 패널이 있고, 스마트폰에도 화면이 있다. 사용자는 그 물리적인 면을 바라보고, 콘텐츠 역시 그 안에 표시된다. 화면의 크기와 해상도, 밝기 같은 수치가 오랫동안 디스플레이 성능을 설명하는 기준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스마트글래스에서는 이런 구조를 그대로 가져오기 어렵다. 눈앞에 큰 패널이나 두꺼운 광학계를 둘 수 없기 때문에, 빛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조절하느냐가 중요해진다. 최근 AR·XR 분야에서 빛을 얇은 렌즈 내부로 전달하는 waveguide나, 나노 구조로 빛의 방향을 조절하는 metasurface 같은 기술이 꾸준히 연구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렌즈와 광학 구조가 단순히 화면을 보조하는 부품이 아니라,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직접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TDK의 메타옵틱 미러도 이런 변화의 한 사례다. 기존에는 별도의 반사 구조가 맡던 역할을 렌즈 안으로 옮기면서, 렌즈 자체가 빛의 방향을 조절하는 기능까지 맡게 됐다. 화면과 렌즈, 광학장치가 각각 분리된 부품으로 존재하던 구조에서, 여러 요소가 함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구조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이 변화는 디스플레이를 바라보는 기준에도 영향을 준다. 스마트글래스에서는 해상도나 밝기뿐 아니라, 같은 정보를 얼마나 얇고 가벼운 구조로 눈앞에 전달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화면을 크게 만드는 것보다,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기능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렌즈 안에 넣을 수 있는지가 새로운 과제가 된 것이다.
결국 스마트글래스에서 디스플레이는 하나의 패널만을 뜻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광원에서 만들어진 빛을 렌즈와 광학 구조가 조절하고, 그 결과를 사용자의 눈이 받아들이는 전체 과정이 하나의 디스플레이 경험을 만든다. 눈에 보이는 ‘화면’의 비중은 줄어들지만, 그 역할은 오히려 여러 부품과 기능으로 나뉘어 확장되고 있다.
눈 앞의 정보는 더 개인적인 것이 된다
TDK가 이번 기술에서 함께 강조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image leakage’를 줄였다는 점인데, 이는 사용자의 눈으로 전달되는 영상을 맞은편 사람이 보기 어렵도록 설계했다는 뜻이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은 화면이 외부에 드러나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도 같은 정보를 볼 수 있다. 반면 망막투사 방식에서는 다른 사람에게는 평범한 안경 렌즈처럼 보여도, 착용자의 시야에는 별도의 정보가 나타날 수 있다. 정보가 표시되는 위치가 기기의 표면에서 사용자의 시야 안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런 특성이 실제 제품에서도 안정적으로 구현된다면 스마트글래스가 다루는 정보의 범위도 넓어질 수 있다. 길 안내나 실시간 번역처럼 비교적 공개적인 정보뿐 아니라 메시지, 일정, 업무 정보, AI의 답변처럼 개인적인 내용을 시야 안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글래스는 정보를 띄우는 작은 화면을 넘어, 사용자의 시야에 계속 연결되는 개인용 인터페이스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스마트글래스는 프라이버시 측면에서도 서로 다른 두 방향을 동시에 보여준다. 바깥을 향한 카메라는 주변 사람이 촬영 여부를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논란을 만들어 왔다. 반면 착용자 쪽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디스플레이는 사용자가 보고 있는 내용을 주변에 드러내지 않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하나의 기기 안에서 카메라는 외부를 기록하고, 디스플레이는 내부의 정보를 감추는 역할을 맡는 셈이다. 다만 이런 가능성이 바로 일상적인 제품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TDK가 공개한 메타옵틱 미러는 현재 단색 영상을 구현하는 단계이며, 앞으로 풀컬러 실증과 실제 양산까지 넘어가야 한다. 망막투사 방식 자체도 사용자의 눈이 움직여도 영상이 안정적으로 보이는 범위, 충분한 밝기와 광효율, 색 표현, 장시간 착용 시 안정성과 눈 안전성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그럼에도 이번 기술은 스마트글래스에서 디스플레이가 어떤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TV와 스마트폰에서는 화면 자체의 성능이 중심이었다면, 스마트글래스에서는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한 구조를 얼마나 얇고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는지도 중요한 조건이 된다.
사실 우리는 오랫동안 디스플레이를 하나의 ‘화면’으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망막투사 기술에서는 이미지가 하나의 패널에서 만들어지는 대신, 광원과 렌즈, 광학 구조와 사용자의 눈이 함께 시각 정보를 구성한다. 별도의 화면 없이도 이미지를 볼 수 있다면, 앞으로 중요한 것은 화면의 크기보다 얼마나 자연스럽게 시야 안에 정보를 녹여낼 수 있느냐일 수 있다.
결국 다음 세대의 디스플레이는 더 커지는 화면이 아니라, 점점 보이지 않는 화면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