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 인텔 지분 9.9% 확보… ‘Pay-Me Capitalism’의 실험

김하영 기자

hashe@metax.kr | 2025-09-09 11:00:00

‘Pay-Me Capitalism’이라는 새 시대
정부가 투자자가 되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실험, 정부가 주주로
미국 정부가 전략 산업 기업의 지분을 직접 보유하는 전례 없는 시도가 현실화됐다. 다수의 매체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인텔(Intel)과의 합의를 통해 미국 정부가 회사 지분 약 10%를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인텔이 상무부와의 CHIPS법 협정을 수정해 9.9% 지분을 인정하고, 57억 달러를 조기 수령했다고 전했다. 이 자금은 배당, 자사주 매입, 해외 확장에는 사용할 수 없도록 조건이 붙었다.

이는 단순한 보조금 지급을 넘어, 정부가 기업의 주주로서 직접 이해관계에 참여하는 새로운 산업 정책 실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Pay-Me Capitalism’이라는 새 시대
전통적으로 정부는 반도체, 방산, 인공지능과 같은 전략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보조금 지급이나 세금 감면 같은 지원 정책을 활용해왔다. 기업이 연구개발을 하거나 공장을 세우면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고, 기업은 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이 방식은 정부를 지원자로만 남겨두었고, 기업 성과가 나더라도 정부는 세금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뿐, 직접적인 수익을 가져가지는 못했다.

https://newsroom.intel.com/corporate/intel-and-trump-administration-reach-historic-agreement

이번 인텔 사례는 이런 기존 방식에서 벗어난다. 미국 정부는 현금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신 인텔의 주식을 받는 방식을 택했다. 즉, 정부가 단순한 지원자가 아니라 기업의 주주, 다시 말해 투자자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생긴다. 첫째, 정부도 기업 가치에 이해관계를 가지게 되어, 인텔이 성장하면 정부도 주주로서 수익을 얻는다. 둘째, 의결권에 제한이 있더라도 지분을 보유한 정부의 존재 자체가 기업 의사결정에 일정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응 이러한 흐름을 “새로운 시대의 pay-me capitalism”이라고 규정했다. 단순히 세금으로 조성된 자금을 공짜로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대가로 지분을 확보하고 참여하는 자본주의라는 의미다. 정부 입장에서는 국민 세금으로 집행된 재정을 다시 주주로서 회수할 수 있는 구조이니 합리적일 수 있다. 반면 기업 입장에서는 자본 조달은 쉬워지지만, 이제는 정부라는 주주를 항상 의식해야 하는 부담이 커진다.

이 모델이 중요한 이유는, 이번 인텔 사례가 단지 하나의 기업 사건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처럼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분야에서 이러한 방식이 적용되었다면, 앞으로 인공지능, 배터리, 방위산업 등 다른 전략 산업에서도 “정부 = 투자자”라는 새로운 공식이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곧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국가자본주의가 뒤섞이는 시점을 의미하며, 시장 자율성과 국가 전략 사이의 경계가 새롭게 재편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투자자들의 우려와 기업의 경고
투자자들은 이번 합의를 두고 “미국식 산업 정책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하면서도, 시장 자율성과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부가 특정 기업의 지분을 보유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영 독립성에 의문이 제기되며, 이는 다른 전략 산업 전반에 ‘정치적 개입’이라는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인텔 역시 불안감을 숨기지 않았다. 인텔은 미국 정부의 지분 보유가 해외 매출(전체의 76%)과 특히 중국 시장(29%)에서의 입지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단순히 중국과의 무역 갈등 차원을 넘어, 해외 정부들이 인텔을 “미국 정부가 지배하는 회사”로 인식할 경우, 향후 현지 보조금이나 공공 프로젝트 수주에서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유럽연합은 과거에도 특정 기업이 국가 보조금을 과도하게 받은 경우, ‘시장 왜곡’으로 간주해 제재를 가한 전례가 있다. 이런 점에서 인텔의 경고는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충분히 현실적인 위험 시나리오라 할 수 있다.

여기에 합의 조건이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번 합의에는 만약 인텔이 5년 내 파운드리(제조 부문)를 매각하거나 분사할 경우, 미국 정부가 추가로 5%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워런트 조항이 포함돼 있다. 이는 인텔이 경쟁력 회복을 위해 과감한 구조조정이나 사업부 매각을 추진할 때, 오히려 정부의 이해관계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인텔(Intel)의 공식 보도자료(Press Release) 일부 발췌: https://www.intc.com/news-events/press-releases/detail/1748/intel-and-trump-administration-reach-historic-agreement-to

이런 조건부 조항은 과거 다른 산업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예컨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 정부가 자동차 빅3를 구제하면서 지분을 확보했던 경우, GM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와의 이해관계 충돌로 의사결정이 지연된 바 있다. 당시 정부가 파산 방지를 위해 주주로 참여한 것은 단기적 안정을 가져왔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영 자율성과 전략적 유연성을 약화시킨 사례로 꼽힌다. 이번 인텔 건도 그와 유사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투자자가 되는 새로운 시대

이번 사례는 단순히 자금 지원 방식을 바꾼 기술적 조치가 아니다. 그것은 “정부가 투자자가 되는 시대”라는 전환의 신호탄이다. 한편으로는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기업을 지원하면서 그 과실을 다시 공유하는 구조이기에 합리적인 선택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정부가 산업과 기업 경영에 직접 얽히며 자율성을 훼손하는, 또 다른 형태의 ‘관치 자본주의’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특히 인텔처럼 해외 매출 비중이 높고 글로벌 공급망에 깊숙이 얽힌 기업일수록, 정치적 변수에 따른 경영 리스크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궁극적으로 이번 합의는 인텔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가 전략과 민간 자율성 사이의 새로운 경계선을 연 사건이며, 앞으로 인공지능·배터리·방위산업 등 다른 전략 산업으로까지 확산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미국 정부의 이번 시도는 산업 정책과 자본 구조의 경계를 재편하며,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국가자본주의가 교차하는 새로운 국면을 열고 있다. 이 전환이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성과로 이어질지, 아니면 기업 자율성 약화와 시장 왜곡이라는 부작용으로 귀결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번 합의가 글로벌 산업 정책의 미래에 대한 열린 질문을 우리 앞에 던졌다는 점이다.


[METAX =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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