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AI, 각국에 ‘맞춤형 AI’ 제공... "한 나라, 하나의 AI"
김하영 기자
hashe@metax.kr | 2025-05-18 09:00:00
OpenAI, ‘한 나라에 한 AI’를 꿈꾸다
2025년 5월, OpenAI는 새로운 글로벌 전략 이니셔티브 ‘OpenAI for Countries’를 발표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수출이나 AI 도입 지원을 넘어, 각국이 자국의 문화, 언어, 가치에 기반한 독자적인 AI를 설계·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협력 모델이다.
다시 말해, “한 나라, 하나의 AI”라는 비전을 품은 새로운 국제 AI 거버넌스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OpenAI for Countries'란?
쉽게 말해, 국가마다 '자국에 맞는 AI'를 만들 수 있도록 OpenAI가 기술과 인프라를 함께 지원하는 글로벌 협력 프로그램을 의미한다. 단순히 ChatGPT를 전 세계에 배포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각 나라의 언어·문화·가치관에 맞는 AI를 직접 만들고 운영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뜻이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 내용은 세 가지다.
첫째, 현지 맞춤형 ChatGPT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경우 단순히 한글을 인식하는 수준을 넘어, 한국 사회의 예절, 표현 방식, 문화적 맥락, 그리고 지역별 언어 습관까지 반영된 한국형 ChatGPT를 만들 수 있도록 설계된다. 이는 AI가 단순히 말귀를 알아듣는 수준이 아니라, 그 사회의 감수성과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둘째, AI 데이터 센터를 각국에 구축함으로써 데이터 주권을 보장한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AI 서비스가 해외 서버에서 데이터를 처리해왔지만, 이 프로그램은 각국이 자국 내에서 데이터를 저장·운영할 수 있도록 기반 시설을 지원한다. 즉, “우리 국민의 데이터는 우리 땅에서 관리하자”는 원칙에 따라, 개인 정보 보호와 기술 주권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셋째, 이 프로그램의 가장 핵심적인 철학은 민주주의 가치에 기반한 기술 보급이다. 단순히 편리하고 똑똑한 AI를 퍼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 AI가 표현의 자유, 사생활 보호, 공정성, 투명성 같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따르도록 설계된다는 것이다. 이는 AI가 권위주의적 통제 수단이 되는 것을 경계하고, 기술이 사람을 위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이처럼 'OpenAI for Countries'는 기술 그 자체보다, 그 기술이 어떻게, 누구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쓰이느냐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도입이 아니라, 각국이 자신만의 AI 철학과 주권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한다.
글로벌 시사점(Global Implication) : 민주적 AI 대 권위주의적 AI
‘OpenAI for Countries’는 단순히 인공지능 기술을 각국에 제공하는 기술 수출 프로그램이 아니다. 이 전략이 가진 진정한 의미는, AI 기술이 단지 성능의 우열을 겨루는 도구가 아니라, 사회의 가치 체계를 반영하고 강화하는 수단이라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OpenAI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AI는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설계되고 운영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명확히 드러냈다. OpenAI의 글로벌 정책 책임자인 크리스 리한(Chris Lehane)은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금 민주적 AI와 권위주의적 AI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대에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말은 AI 기술이 단순한 툴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 개인정보 보호, 공정성과 투명성 같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구현하거나 훼손할 수 있는 강력한 구조적 장치임을 시사한다. 사실, 이와 같은 전략은 중국의 AI 확산 모델과 대비되는 방향으로도 해석된다. 중국은 AI를 활용해 공공 감시와 사회 통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의 국가 주도적 사용은 세계적으로 권위주의적 AI의 대표 사례로 인식된다. 이에 대응해 OpenAI는 ‘OpenAI for Countries’를 통해 민주적 가치와 개방성에 기반한 AI 확산을 추진함으로써, 기술 패권 경쟁을 가치 중심의 글로벌 경쟁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OpenAI for Countries’는 기술의 성능이나 시장 점유율을 넘어, “누가 어떤 기준으로 AI를 설계하고 운영하느냐”는 가치의 문제로 글로벌 AI 생태계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이다. 이는 기술이 권력의 도구로 쓰일 수도, 자유의 수단으로 쓰일 수도 있다는 이중성을 전제한 전략이며, 그만큼 이 프로그램은 오늘날 AI 시대가 직면한 가장 본질적인 질문, “기술은 누구를 위해 작동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게 주는 시사점: ‘기술 주권’과 ‘가치 설계자’의 기회
‘OpenAI for Countries’는 한국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한국은 AI 기술 도입과 인프라 구축에서 빠르게 성장해왔지만, “AI가 어떤 사회적 가치를 반영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윤리적 기준은 여전히 미비하다.
정책적 철학 부재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AI 정책은 주로 기술 혁신, 산업 성장, 인재 육성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개인의 권리 보호, 사회적 다양성 존중, 감수성 있는 AI 설계 등 ‘사람 중심’의 윤리적 프레임이 정책 기조에 중심을 잡아야 한다.
데이터 주권 확보는 기술 독립의 핵심
국내 데이터를 해외 클라우드에 의존하는 구조는 정보주권과 보안 리스크 측면에서 치명적이다. 정부는 AI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인프라의 국산화 및 지역 분산화 전략을 통해, 진정한 기술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
글로벌 AI 가치 설계자로의 역할 강화
한국은 ICT 강국이자 민주주의를 실천해온 국가로서, 기술력과 제도적 정당성을 동시에 갖춘 ‘민주적 AI 모델 국가’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OpenAI와 같은 글로벌 선도 기업과의 전략적 협업을 통해, 단순 수요국이 아닌 글로벌 AI 가치 거버넌스의 공동 설계자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기술의 시대, 이제는 ‘철학의 설계자’가 필요하다
‘OpenAI for Countries’는 기술의 진보가 자동적으로 사회의 진보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한 전략이다.
'어떤 기술이냐가 아니라, 그 기술이 누구의 기준으로 설계되고, 누구를 위해 작동하는가'를 이제 세계는 그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기 시작했다.
한국 역시 이제는 단순한 기술 소비국을 넘어, AI 시대의 가치와 방향을 함께 설계하는 나라로서 움직여야 할 때다. 기술보다 앞선 건 언제나 사람의 철학이었고, AI 시대에도 그 원칙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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