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A게임 개발은 지속 가능한 산업인가'
김하영 기자
hashe@metax.kr | 2026-02-04 11:00:00
[메타X(MetaX)] ‘어쌔신 크리드’와 ‘레인보우 식스 시즈’등 AAA 프랜차이즈로 대표되는 프랑스 게임 퍼블리셔 유비소프트가 2026년 1월 21일, 대규모 구조조정을 발표했다. 6개 게임 취소, 7개 프로젝트 연기, Halifax와 Stockholm 스튜디오 폐쇄 등을 포함한 이 발표는 곧바로 시장의 충격으로 이어졌다. 다음 날 주가는 30% 이상 폭락하며 14년래 최저치인 4.56유로까지 추락했고, 회사 시가총액은 1년 전 15억 유로에서 6억 유로 수준으로 급감했다.
유비소프트는 2025-2026 회계연도에 약 10억 유로의 영업손실을 예상한다고 밝혔다. 이 중 6억 5천만 유로는 구조조정에 따른 일회성 감가상각이다. CEO 이브 길모(Yves Guillemot)는 성명에서 "오늘날의 시장 환경은 회사가 조직과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경영 판단을 넘어, 글로벌 게임 산업 전반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AAA 게임 개발이라는 산업 모델은 과연 지금의 형태로 지속 가능한가."
AAA 게임 이란
게임 산업에서 AAA(트리플 A)는 대형 퍼블리셔(또는 그에 준하는 규모의 개발·유통 주체)가 제작·배급하며, 다른 등급의 게임보다 개발비와 마케팅비가 현저히 큰 고비용·고프로필 상업 타이틀을 뜻한다. 이는 특정 장르를 가리키는 개념이라기보다, 자본 투입 규모와 시장 전략(대규모 글로벌 출시, 강한 마케팅, 높은 제작 가치)을 지칭하는 산업 용어에 가깝다. 통상 수백 명 이상의 개발자가 3~7년에 걸쳐 투입되며, 제작 규모와 리스크 측면에서는 영화 산업의 블록버스터와 비교되곤 한다.
이러한 AAA의 경제 구조에서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비용 곡선이 완만히 상승한 것이 아니라, 세대가 바뀔 때마다 ‘기준선’ 자체가 위로 이동해 왔다는 점이다. 영국 경쟁당국(CMA)이 Microsoft–Activision 인수 심사 과정에서 정리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AAA 게임은 개발 단계에서만 2억 달러 이상이 투입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으며, 마케팅과 라이브 서비스 운영 비용까지 포함할 경우 총비용이 수억 달러 단위를 넘어서는 사례가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물가 상승의 문제가 아니라, 제작 파이프라인의 장기화, 콘텐츠 규모 확대, 엔진과 툴 체인의 복잡화가 비용 구조 자체를 재편한 결과로 해석된다.
| 시기 | 평균 AAA 개발비 | 비고 |
| 2000년 대 초반 | $30~60M | 7세대 콘솔 시작 |
| 2010년 대 중반 | $50~150M | 8세대 콘솔 전환기 |
| 2024~2025년 | $200M + | 현재 |
[영국 CAM 보고서(2023): 시대 별 평균 AAA게임 개발비 ]
이 같은 변화는 개별 사례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Cyberpunk 2077의 경우, 개발사 CD PROJEKT RED는 2020년 실적 발표 자료에서 이 프로젝트의 총예산이 약 3억 달러 내외였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약 절반 이상이 개발 비용, 나머지가 글로벌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에 사용됐으며, 직접 개발비만 보더라도 1억 달러를 훌쩍 넘는 규모였다. 단일 게임 프로젝트가 이미 수억 달러 단위의 자본 투입을 전제로 운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록스타 게임즈의 Red Dead Redemption 2는 AAA 비용 구조의 또 다른 기준점을 제시한다. 공개된 정보 기준으로 약 7년에 걸친 개발 기간을 거친 이 작품은, 업계에서 마케팅 비용을 포함해 약 5억 4,000만 달러 수준의 총비용이 투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게임 하나의 제작비가 헐리우드 대형 영화 프랜차이즈와 유사한 규모에 도달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26년 출시가 예상되는 Grand Theft Auto VI는 아직 공식 예산이 공개되지 않았음에도, 업계와 해외 주요 매체를 중심으로 누적 개발비와 마케팅 비용을 합산할 경우 10억 달러를 상회할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만약 이 추정이 현실화될 경우, GTA 6는 게임을 넘어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에서 가장 비용이 많이 투입된 프로젝트 중 하나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AAA 게임 개발비가 수억 달러, 나아가 10억 달러 단위까지 거론되는 상황은, AAA 모델이 더 이상 ‘높은 위험을 감수한 도전적 투자’라기보다 극단적인 자본 집중과 실패 비용을 전제로 한 산업 구조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AAA 모델의 구조적 리스크
AAA 게임 개발이 안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위험은 높은 고정비용과 장기화된 개발 주기다. AAA 프로젝트는 통상 400~600명 이상의 인력이 3~7년에 걸쳐 투입되는 대규모 협업을 전제로 한다. 실제로 유비소프트의 주요 오픈월드 타이틀은 수백 명의 개발자가 여러 국가와 스튜디오에 분산돼 동시에 작업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 경우 인건비만으로도 연간 수천만 달러가 소요되며, 일정 지연이나 설계 변경이 발생할수록 비용은 선형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개발 기간이 길어질수록 ‘되돌릴 수 없는 비용’이 누적되는 구조다.
이러한 고정비 중심 구조는 현금 흐름과 투자 회수의 불확실성을 크게 증폭시킨다. AAA 게임의 손익분기점은 통상 수백만 장 단위의 판매량을 전제로 설정된다. 그러나 출시가 연기되거나, 출시 후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자본 회수 시점은 수년 단위로 뒤로 밀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기업 전체의 재무 구조가 흔들릴 위험도 커진다.
유비소프트가 최근 취소한 6개 프로젝트 가운데에는, 2020년부터 개발이 지연되며 장기간 표류해온 'Prince of Persia: The Sands of Time Remake'도 포함돼 있다. 이는 AAA 개발에서 ‘개발 지연’이 단순한 일정 문제가 아니라 손실 확정의 전조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문제는 이러한 위험이 시장 성장세와의 불균형 속에서 더욱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조사업체 Newzoo에 따르면 글로벌 게임 시장은 2024년 약 1,825억 달러에서 2028년 2,065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며, 연평균 성장률은 약 3% 수준에 그친다. 반면 AAA 게임 개발비는 업계 전반에서 연평균 10% 이상 증가하는 추세로 평가된다. 즉, 시장은 완만하게 성장하는 반면, 대작 게임의 제작비는 훨씬 빠른 속도로 불어나면서 비용과 수익 구조 간의 괴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높은 고정비, 지연에 취약한 현금 흐름, 시장 성장률을 상회하는 비용 증가가 결합되면서 AAA 모델은 점차 ‘성공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구조인가’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유비소프트의 구조조정은 이러한 구조적 압박이 개별 기업의 전략 선택으로 표면화된 사례이며, 동시에 AAA 게임 개발 모델 전반이 재검토의 국면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AAA 모델이 직면한 추가 압박
AAA 모델이 직면한 추가 압박은 전략적 방향성의 경직화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대형 퍼블리셔들은 위험을 분산하기보다, 상대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라이브 서비스 모델과 기존 IP에 자원을 집중해 왔다. 그러나 이 선택은 장기적으로 높은 유지보수 비용과 콘텐츠 확장 부담을 동반한다. 라이브 서비스 게임은 출시 이후에도 지속적인 개발과 운영 인력이 필요하며, 흥행이 예상에 못 미칠 경우 손실은 오히려 단발성 패키지 게임보다 더 커질 수 있다. IP에 대한 의존이 심화될수록 새로운 시도는 줄어들고,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선택지는 더욱 제한된다.
동시에 플레이어의 기대치와 소비 트렌드 역시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Bain & Company가 2025년 실시한 게임 소비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특히 젊은 게이머일수록 게임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에서 그래픽 품질이나 기술적 스펙보다 게임플레이 경험, 소셜 상호작용, 창의적 활동을 더 중요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조사 대상의 상당수는 Roblox나 Fortnite와 같은 플랫폼형 게임에서 전체 플레이 시간의 약 3분의 1을 전투나 미션이 아닌 소셜 활동, 창작, 커스터마이징, 가상 소비에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게임을 ‘완성된 콘텐츠’로 소비하기보다, 머무르고 확장하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플레이어 기대치의 변화는 유비소프트의 주요 IP 성과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같은 퍼블리셔 산하에 있으면서도, 'Watch Dogs'와 'Rainbow Six Siege'는 전혀 다른 궤적을 그려왔다.
워치 독스 시리즈는 현대 도시 해킹이라는 신선한 콘셉트로 출발했지만,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유비소프트식 오픈월드 공식에 깊이 편입됐다. 넓은 맵, 반복 가능한 미션 구조, 체크리스트형 콘텐츠 설계는 초기에 일정 수준의 볼륨감을 제공했으나, 플레이어 경험의 밀도와 차별성을 축적하는 데에는 한계를 드러냈다. 특히 반복 구조에 대한 피로와 장기적 동기 부여의 부재는, 그래픽이나 세계관의 확장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로 남았다. 이는 앞서 언급한 플레이어 인식 변화—즉, ‘규모’보다 ‘경험의 질’을 중시하는 흐름과 정면으로 충돌한 지점이다.
반면 레인보우 식스 시즈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장기 생존에 성공했다. 이 게임은 시각적 스펙이나 방대한 콘텐츠 양보다, 명확하게 정의된 전술적 게임플레이와 플레이어 간 상호작용의 깊이를 중심에 두었다. 파괴 가능한 환경, 역할 기반 오퍼레이터 설계, 그리고 플레이어 커뮤니티가 만들어내는 메타의 변화는 게임을 ‘완성된 상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게 했다. 이는 젊은 게이머들이 소셜성과 참여, 학습과 숙련의 과정을 중시하는 트렌드와도 정확히 맞물린다.
두 IP의 대비는 우연이 아니다. 워치 독스가 AAA 오픈월드 모델의 비용 구조와 기대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은 사례라면, 레인보우 식스 시즈는 상대적으로 집중된 설계와 커뮤니티 중심 구조를 통해 비용 대비 체감 가치를 극대화한 사례에 가깝다. 이는 유비소프트 내부에서도 어떤 유형의 게임이 현재 시장 환경에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참고점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유비소프트의 IP 전략에서 드러난 차이는, 오늘날 AAA 게임이 직면한 질문을 압축한다. 대규모 자본과 콘텐츠 확장에 의존하는 방식이 여전히 유효한가, 아니면 플레이어가 실제로 머무르고 참여하는 경험을 중심으로 구조를 재편해야 하는가. 워치 독스와 레인보우 식스 시즈의 상반된 결과는,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실증적 답변에 가깝다.
지속 가능성의 재정의
AAA 게임 개발의 지속 가능성을 논의할 때 핵심은 규모를 줄이느냐 유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개발하고 위험을 관리할 것인가에 있다. 업계에서 논의되는 대안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수렴한다.
첫째는 기술적 효율성의 개선이다. AI 기반 생산성 도구는 에셋 생성, 테스트와 QA 자동화, 빌드 검증 등 반복 업무를 줄여 개발 시간을 단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기에 절차적 콘텐츠 생성과 게임 엔진의 효율적 활용, 외부 스튜디오와의 협업 구조 최적화가 결합되면서, 과거에는 인력 확대로만 해결하던 문제를 파이프라인 재설계로 대응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장기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일정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전략에 가깝다.
둘째는 리스크 분산형 포트폴리오로의 전환이다. 모든 역량을 단일 블록버스터에 집중하는 구조는 성공 시 효과가 크지만, 실패할 경우 조직 전체를 위기에 빠뜨린다. 이에 따라 AA급 타이틀이나 인디 게임에 대한 투자 비중을 늘리고, 프로젝트 규모와 개발 기간을 다층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IP를 게임 단일 매체에 묶기보다 영화, TV 시리즈, 머천다이징 등으로 확장해 수익원을 분산시키는 전략 역시 위험 관리의 일환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셋째는 플레이어 중심 설계로의 방향 전환이다. 기술적 충실도와 시각적 규모를 확장하는 방식만으로는 더 이상 플레이어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대신 게임플레이의 혁신, 커뮤니티 기반 콘텐츠 창작 지원, 크로스 플랫폼과 클라우드 환경을 통한 접근성 강화처럼, 플레이어가 실제로 머무르고 참여하는 경험을 중심에 두는 설계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는 비용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투입 대비 체감 가치를 높이기 위한 구조적 전환에 가깝다.
이러한 경로들은 AAA 모델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지속되기 어렵다는 공통된 전제를 공유한다. 지속 가능성은 더 이상 ‘얼마나 크게 만들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구조로 위험을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
오늘날 AAA 게임 개발 모델은 분명한 전환 신호를 보내고 있다. 개발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온 반면, 시장 성장률은 정체에 가까운 흐름을 보이고 있다. 2022년 이후 누적 3만 명을 훌쩍 넘는 인력 감축과 연이은 스튜디오 폐쇄는, 이 문제가 특정 기업의 실패가 아니라 산업 전반의 구조적 한계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유비소프트의 구조조정은 개별 기업의 경영 실패라기보다, AAA 산업 전체가 직면한 딜레마를 압축적으로 드러낸 사례에 가깝다. 오랫동안 유효했던 “더 크게, 더 화려하게”라는 공식은 이제 “더 현명하게, 더 지속 가능하게”라는 질문으로 대체되고 있다. 어떤 프로젝트를 유지하고, 어떤 실험을 감수하며, 어떤 위험을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이전보다 훨씬 냉정해질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결국 남는 질문은 하나다.
"AAA 게임 개발은 구조적 재설계를 통해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의 형태를 벗어나 새로운 산업 모델로 대체될 것인가."
그 답은 단기간에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점은, AAA가 더 이상 확장과 낙관의 상징이 아니라 검증과 선택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METAX =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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