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sh-X] 기술은 현실이 되지만, 그건 우리의 성찰에 달려 있다.
X 기자
metax@metax.kr | 2025-04-27 11:00:00
"Hash-X는 해시값을 남기는 기록이다. 블록체인의 해시(Hash)처럼, 한 번 새겨지면 지워지지 않는 통찰을 담는다. X는 경계를 넘는 사유이자, 미지의 가능성을 뜻한다. 'Hash-X'는 본질을 꿰뚫고, 기술과 권력, 그리고 패러다임 전환의 흐름을 기록하는 공간이다."[편집장주] |
SF는 미래가 아닌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한때 ‘괴짜들의 문학’으로 불리던 공상과학소설(Sci-Fi)은 이제 전 세계 테크 기업 CEO들의 책상 위에 놓인 필독서가 됐다. SF는 더 이상 낯설고 비현실적인 상상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가능성의 기술서’로서, 인류 문명에 대한 사유와 질문을 던지며 오늘날의 기술 혁신을 자극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일론 머스크, 제프 베조스, 마크 저커버그 등 실리콘밸리의 핵심 인물들은 단순히 SF를 읽는 독자를 넘어, 그 이야기를 현실로 가져오는 ‘실행자’들이다.
머스크의 로켓 안에는 아시모프가 탑승했다
일론 머스크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문명의 지속성을 위한 교훈”이라고 말한다. 해리 셀던이 제국의 몰락을 예견하며 새로운 문명의 씨앗을 외곽 행성에 심듯, 머스크는 화성 이주 프로젝트를 통해 ‘지구 외 문명’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그는 2018년, 스페이스X의 팔콘 헤비 로켓에 테슬라 로드스터와 함께 『파운데이션』의 디지털 버전을 실어 보냈다. 이는 기술적 업적이자 동시에 상징적 제스처로, SF적 상상력이 실제 과학기술 전략의 ‘출처’임을 선언한 순간이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사이버트럭의 전조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영감을 받은 머스크의 기계적 유머와 디자인 철학은 사이버트럭, 테슬라봇, 뉴럴링크 등 기묘하고도 급진적인 기술들로 연결된다. 로버트 하인라인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도 마찬가지다. 자율성과 탈중심화에 대한 열망,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넘는 상상력은 머스크의 모든 기술 기획에 녹아 있다.
제프 베조스의 유년: 스타트렉에서 오리진을 보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자신을 “스타트렉 세대”라 정의한다. 어릴 적부터 『스타트렉』의 팬이었던 그는 이후 블루 오리진을 통해 우주여행 산업에 뛰어들었다. 그의 인터뷰에는 “어릴 적 보았던 장면을 실제로 구현하는 게 내 꿈이었다”는 고백이 자주 등장한다. 현실의 기업가가 스크린 속 미래를 따라잡고자 하는 이 장면은 SF가 갖는 실천적 상상력의 강도를 명확히 보여준다.
저커버그의 메타버스는 어디에서 왔는가?
메타(Meta)의 CEO 마크 저커버그는 닐 스티븐슨의 『스노우 크래시』에 심취해 메타버스라는 용어 자체를 차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설은 메타버스의 디스토피아적 측면을 경고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저커버그는 이를 디지털 경제 생태계의 미래 청사진으로 해석했다. 그 결과 페이스북은 ‘메타’로 변신했고,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점차 흐려지고 있다.
상상은 기술의 원천이지만, 경고도 함께 읽어야 한다
문제는 이들 CEO가 사랑한 SF의 상당수가 디스토피아적 경고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스노우 크래시』가 말하는 메타버스는 통제된 가상 현실, 불평등이 심화된 디지털 생태계다. 『파운데이션』 역시 문명의 붕괴와 회복을 다룬 서사이며, 인간의 판단과 윤리에 대한 회의가 흐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크 엘리트들은 이 소설들을 일종의 비전 설계도로 소비하고 있다. 기술은 실현되지만, 그에 수반되는 철학적 반성이나 사회적 구조에 대한 고민은 종종 외면된다. 이는 테크 엘리트 중심의 기술 독점 구조가 가지는 본질적 한계를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기술은 누구를 위한 미래인가: 상상력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기술은 모두를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소수 엘리트의 상상력이 전 인류의 방향을 결정하고 있는 구조로 흘러가고 있다. 기술이 인간의 삶을 위협하거나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경고는 SF가 오래 전부터 제시해 온 주제다.
따라서 우리는 기술적 상상력의 윤리성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공상과학소설은 단순히 미래를 ‘예언’하는 문학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인간 조건, 사회 구조, 기술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장르다. 테크 기업가들이 SF에서 꿈을 꾼다면, 그 안의 비판과 경고도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다.
기술과 상상력 사이, 반드시 놓여야 할 ‘성찰’이라는 이정표
우리는 지금, 기술이 만들어갈 미래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일론 머스크가 『파운데이션』을 읽고 화성을 떠올렸다면, 우리는 그 책에서 “무엇이 문명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가”를 읽어야 한다. 기술은 곧 현실이 될 수 있지만, 그 현실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전적으로 우리의 성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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