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장비 기업의 귀환이 시작됐다
이든 기자
metax@metax.kr | 2026-05-18 11:00:00
3분기 매출 158억 달러·전년 대비 12% 증가… 제품 주문은 35% 급증
[메타X(MetaX)]시스코가 AI 인프라 투자 사이클의 핵심 수혜 기업으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시스코는 2026회계연도 3분기 실적에서 매출 158억 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2% 증가한 수치다. 회사 측은 이번 실적에 대해 “가이던스 상단을 넘어선 두 자릿수 매출 및 이익 성장”이라고 평가했다. GAAP 기준 주당순이익은 0.85달러로 전년 대비 37% 증가했고, 비GAAP 기준 주당순이익은 1.06달러로 10% 늘었다.
이번 실적의 핵심은 단순한 매출 증가가 아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와 기업 네트워크 교체 수요가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시스코는 3분기 전체 제품 주문이 전년 대비 35% 증가했으며, 하이퍼스케일러를 제외해도 19% 늘었다고 밝혔다. 특히 네트워킹 제품 주문은 전년 대비 50% 이상 증가했고, 데이터센터 스위칭 주문도 40% 이상 성장했다.
이는 AI 시대의 병목이 GPU와 전력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거대한 AI 모델을 학습하고 운영하려면 데이터센터 내부의 서버, 스토리지, 가속기뿐 아니라 이들을 빠르고 안정적으로 연결하는 고성능 네트워크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시스코의 실적은 AI 인프라 경쟁이 반도체에서 네트워크, 보안, 관측 가능성, 캠퍼스 인프라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시스코가 특히 강조한 대목은 하이퍼스케일러 AI 인프라 주문이다. 회사는 회계연도 누적 기준 53억 달러의 AI 인프라 주문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더 중요한 것은 전망치 상향이다. 시스코는 FY26 AI 인프라 주문 기대치를 기존 50억 달러에서 90억 달러로 높였고, 관련 매출 기대치도 기존 30억 달러에서 40억 달러로 상향했다.
이는 시장의 해석을 바꿀 수 있는 지점이다. 그동안 AI 인프라 투자의 대표 수혜주는 엔비디아와 클라우드 사업자, 일부 서버·전력 인프라 기업이었다. 그러나 시스코의 이번 실적은 AI 투자가 네트워크 장비 기업에도 본격적으로 반영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AI 데이터센터는 더 많은 연산을 요구할수록 더 빠르고 안정적인 데이터 이동을 필요로 한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칩의 성능만이 아니라 칩과 칩, 서버와 서버,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구조에서도 결정된다.
사업 부문별로 보면 네트워킹 부문이 실적을 견인했다. 3분기 네트워킹 매출은 88억1,5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5% 증가했다. 반면 보안 부문 매출은 20억800만 달러로 전년과 같은 수준이었고, 협업 부문은 10억2,400만 달러로 1% 감소했다. 관측 가능성 부문은 2억6,900만 달러로 3% 증가했다. 전체 제품 매출은 121억1,700만 달러로 17% 늘었지만, 서비스 매출은 37억2,400만 달러로 1% 감소했다.
지역별 실적도 고르게 개선됐다. 미주 지역 매출은 95억6,900만 달러로 14% 증가했고, EMEA는 40억5,400만 달러로 9%, APJC는 22억1,800만 달러로 9% 늘었다. 이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반등이 아니라 글로벌 네트워크 투자 수요가 동시에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번 실적을 낙관론으로만 볼 수는 없다. 총매출은 크게 늘었지만 마진은 전년 대비 낮아졌다. GAAP 총마진은 63.6%로 전년 동기 65.6%보다 하락했고, 비GAAP 총마진도 66.0%로 전년 동기 68.6%보다 낮아졌다. 제품 총마진 역시 GAAP 기준 64.4%에서 61.9%로 내려갔다.
이는 AI 인프라 수요가 강하더라도 공급망 비용, 제품 믹스, 경쟁 심화, 관세 영향 등이 수익성에 압박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시스코는 4분기와 FY26 가이던스에 현재 무역정책 기준 관세 영향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구조조정이다. 시스코는 실리콘, 광학, 보안, AI 등 핵심 성장 기회에 투자하기 위해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최대 10억 달러의 세전 비용을 인식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이 중 약 4억5,000만 달러는 2026회계연도 4분기에 반영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시스코가 단순히 현재 수요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재편에 들어갔다는 의미다. 네트워크 장비 기업에서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 기업으로 전환하려면 기존 조직과 비용 구조를 유지한 채로는 어렵다. AI 네트워크, 실리콘, 광학 모듈, 보안 통합은 기술적으로도 자본적으로도 다른 속도를 요구한다.
향후 전망도 상향됐다. 시스코는 2026회계연도 4분기 매출을 167억~169억 달러로 제시했고, 비GAAP 주당순이익은 1.16~1.18달러로 전망했다. FY26 전체 매출 전망은 628억~630억 달러, 비GAAP 주당순이익 전망은 4.27~4.29달러로 제시했다.
이번 실적이 던지는 산업적 메시지는 분명하다. AI 인프라 투자는 이제 1차 파동을 넘어 2차 파동으로 들어가고 있다. 1차 파동이 GPU와 클라우드 연산 자원 확보였다면, 2차 파동은 네트워크, 보안, 데이터센터 스위칭, 캠퍼스 네트워크 교체, 관측 가능성 등 인프라 전반의 재구성이다.
특히 기업 캠퍼스 네트워크 교체 사이클도 중요하다. 시스코는 다년간의 대규모 캠퍼스 네트워킹 리프레시 사이클이 진행 중이며, 캠퍼스 네트워킹 주문이 전년 대비 25%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차세대 포트폴리오의 확산 속도도 과거 제품 출시보다 빠르다고 설명했다.
이는 AI가 데이터센터 안에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과 연결된다. 기업이 AI 에이전트, 영상 분석, 보안 자동화, 협업 AI, 엣지 AI를 도입하려면 사무실, 공장, 매장, 캠퍼스의 네트워크도 바뀌어야 한다. AI 전환은 클라우드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전체 네트워크 구조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결국 시스코의 3분기 실적은 한 기업의 호실적을 넘어 AI 인프라 시장의 확장 방향을 보여준다. AI 시대의 승자는 모델을 만드는 기업만이 아니다. 데이터를 움직이고, 보호하고, 관찰하고, 연결하는 기업도 새로운 성장축에 올라설 수 있다.
시스코는 오랫동안 인터넷 인프라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번 실적은 시스코가 다시 한 번 시대의 인프라 기업으로 재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990년대 인터넷의 확산이 라우터와 스위치의 시대를 열었다면, 2026년의 AI 확산은 데이터센터 네트워크와 보안 인프라의 새로운 투자 사이클을 열고 있다.
AI는 연산의 혁명으로 시작됐지만, 그 혁명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연결의 혁명이 필요하다. 시스코의 실적은 바로 그 지점에서 나온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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