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Morgan, 탄소를 신뢰로 바꾸다
이정민 기자
dave126999@gmail.com | 2025-07-08 11:00:00
ESG 금융을 설계하는 J.P. Morgan의 전략
글로벌 금융 인프라의 핵심 축인 J.P. Morgan이 또 하나의 전략적 실험에 착수했다. 자사의 블록체인 사업부인 Kinexys를 통해 S&P Global Commodity Insights 등 주요 탄소 등록기관과 협력하여 탄소배출권의 블록체인 기반 토큰화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 테스트를 넘어 ESG 실물 자산의 디지털 전환과 분산원장 기술 기반의 금융 신뢰 인프라 구축이라는 이중 목표를 향한 시도다.
기존 탄소 시장은 규제기관이 부여한 감축 의무나 자발적 감축 실적을 거래 가능한 금융자산으로 전환한 구조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데이터 불일치, 중복 계상, 실시간 감사의 어려움 같은 구조적 병목이 상존해 왔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일부 인증기관의 부실한 감축 기준 운영은 시장 전반의 신뢰도 하락을 불러왔다.
Kinexys는 이러한 한계를 디지털 방식으로 극복하고자 한다. Kenexys는 블록체인을 통해 탄소 크레딧의 발행부터 이전, 소각까지의 전체 생애주기를 온체인으로 관리한다. 이를 통해 ESG 시장의 투명성 확보와 자산 추적성 개선이라는 금융·환경적 과제를 동시에 풀어내려는 것이다.
ESG 자산의 신뢰, 왜 ‘블록체인’인가
탄소 배출권 시장은 지난 수년간 탈탄소 전략의 주요 수단이자 ESG 평가의 핵심 지표로 자리매김해왔다. 그러나 시장의 급속한 확장에도 불구하고, 그 운용 방식은 투명성 부족, 검증 미비, 데이터 일관성 결여 등으로 인해 구조적 신뢰 위기를 맞아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J.P. Morgan은 블록체인의 기술적 속성, 즉 추적 가능성과 검증 가능성에 주목했다. Kinexys 프로젝트는 탄소 크레딧의 발행부터 거래, 이전, 소각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의 데이터를 변경 불가능한 분산원장에 기록한다. 거래 흐름의 기록은 스마트 계약 기반으로 자동화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각 거래 행위의 진위를 누구나 확인 가능하게 만들고 거래 주체 간의 불신을 제거하며 실시간 감사가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Kinexys 프로젝트의 계획이다.
이 구조가 갖는 의미는 기술적 해결책 그 이상이다. 이는 탄소 크레딧이라는 실물 기반 자산의 디지털 생애주기 관리로 시장 내 표준화된 신뢰 인프라를 설계하려는 전략적 시도이다. J.P. Morgan은 이를 통해 ESG 자산을 단지 규제 준수의 수단이 아닌 검증된 금융 자산군으로 자리매김시키려는 목표를 갖고 Kinexys를 구동하고 있다.
결국, 탄소 시장에서의 블록체인 도입은 기술의 이식이 아니라 신뢰 메커니즘의 재설계라는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에 기반한 행보라고 볼 수 있다.
Kinexys는 무엇을 실험하고 있나?
Kinexys는 이번 탄소 크레딧 토큰화 프로젝트에서 단일 기관 중심의 폐쇄형 시스템을 지양하고 다수의 등록기관 간 상호운용성을 확보하는 연결형 생태계 구축을 실험하고 있다. 이번 파일럿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다양한 탄소 등록기관과 Kinexys는 기존 시장 구조를 대체하기보다는 기존 인프라와의 연계 및 확장을 중심 전략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 Kinexys는 네 가지 기술적 과제에 집중하고 있다.
첫째, 토큰 발행 구조의 표준화이다. 등록기관마다 상이한 데이터 구조와 인증 메커니즘을 공통의 디지털 토큰 구조로 통합하기 위한 기술 설계가 진행 중이다. 이는 후속 확장을 고려할 때 필수적인 기초 작업이며, 향후 크레딧 이력과 검증 데이터를 동일한 포맷으로 담는 데 기반이 된다.
둘째, 등록기관 간 데이터 연동 및 상호운용성 확보다. Kinexys는 블록체인을 중립적 연결 고리로 활용하여 EcoRegistry처럼 다양한 플랫폼 간 데이터를 상호 연계 가능한 구조로 전환하고 있다. 각기 다른 시스템이 블록체인을 통해 하나의 메타 레지스트리처럼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방향이다.
셋째, 스마트 계약 기반의 자동화된 거래 및 소각 처리다. 탄소 크레딧의 이전, 거래, 소각 같은 이벤트는 사전에 코딩된 스마트 계약을 통해 자동 실행된다. 그리고 이 과정은 모든 이해관계자가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도록 온체인에 기록된다. 스마트 계약 기반 탄소 토큰 시스템은 거래 오류를 방지하고 인간 개입을 최소화한다. 이를 통해 탄소 거래의 신뢰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목적을 추구한다.
넷째, 감사 및 규제 대응을 위한 메타데이터 체계의 온체인 설계다. 단순한 거래 기록뿐만 아니라 발행 근거, 인증 방식, 검증 일시 등 모든 관련 정보가 블록체인 상에 구조화되어 기록된다. 향후에는 규제기관이나 제3자의 실시간 검토에도 활용될 수 있도록 설계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Kinexys의 실험은 단순한 토큰화 기술 적용 사례를 넘어 ESG 실물 자산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금융 인프라 레이어를 구축하려는 전략적 시도다. 이는 탄소 크레딧을 시작으로 재생에너지 인증서(RECs), 지속가능채권(SLBs), 공급망 ESG 데이터 등 다양한 ESG 자산군으로 확장될 수 있는 구조이다.
ESG 금융을 설계하는 J.P. Morgan의 전략
Kinexys가 주도하는 탄소 크레딧 토큰화 실험은 글로벌 금융 인프라를 재설계하려는 J.P. Morgan의 장기 전략을 명확히 드러낸다. Kinexys는 더 이상 개념 검증 수준의 테스트 플랫폼이 아니다. 이미 일평균 약 20억 달러 이상의 온체인 거래를 처리하고 있으며, 2015년 이래 누적 거래 규모는 1.5조 달러를 초과했다. 이는 금융기관이 운용하는 블록체인 인프라 중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실적이다. J.P. Morgan은 블록체인을 실행 가능한 금융 인프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Kinexys의 기술 인프라는 단순히 결제 기능에 머물지 않는다. 토큰화된 예금, 블록체인 기반 글로벌 결제망 등 다양한 기능이 통합되어 있다. 이번 탄소 크레딧 토큰화는 이러한 Kinexys 포트폴리오의 ESG 확장선에 위치한다. J.P. Morgan은 그 확장으로 규제 대응형 ESG 자산관리 시스템이자 동시에 온체인 기반 실물자산 금융화 모델을 구축할 가능성이 있다.
탄소 토큰화가 갖는 의미는 단순한 ESG 대응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자산을 정의하고 거래하는 방식 자체를 재설계하는 시도이다. 특히 ESG와 같은 비정형·비재무 자산을 금융 시스템 내에서 신뢰 가능한 방식으로 운영하려는 구조적 시도는 의미가 있다. 신뢰 기반 자산의 표준화, 스마트 계약 기반의 거래 자동화, 감사 가능성 내재화 등을 포괄하는 이 실험은 향후 J.P. Morgan이 제시할 차세대 금융 인프라의 청사진이라 볼 수도 있다.
신뢰 인프라의 재설계, 금융의 미래를 선점하다
J.P. Morgan의 Kinexys는 이번 탄소 크레딧 토큰화 실험을 통해 블록체인 기술을 단순히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 금융 인프라를 신뢰 기반으로 다시 설계하는 주체로 삼는다. 특히 탄소배출권이라는 ESG 실물 자산을 대상으로 분산원장 기반 라이프사이클 관리, 상호운용성 확보, 스마트 계약 기반 자동화, 온체인 감사 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실험한 것은 기존 금융과 ESG 사이에 놓여 있던 신뢰의 단절을 구조적으로 복원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지 기술의 도입이 아니다. 자산의 정의 방식을 바꾸고, 제도적 인프라의 형태를 재설계하며, ESG와 금융을 연결하는 새로운 언어를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J.P. Morgan이 Kinexys를 통해 ESG 자산을 규제 대응의 수단이 아닌 검증 가능한 금융 자산군으로 자리매김시키고 있다는 점은 향후 ESG 시장의 금융화 과정에서 글로벌 표준을 주도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또한, 이번 실험은 탄소 시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향후 다양한 비정형 자산군으로의 확장성이 내재되어 있다. 이는 결국 온체인 기반 실물자산 금융화(RWA Tokenization)라는 J.P. Morgan의 장기 전략과 궤를 같이한다.
정리하자면 J.P. Morgan의 탄소 토큰화 실험은 단순한 ESG 대응이 아니다. ESG를 금융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이는 디지털 거버넌스의 실험이자, 블록체인 기반 금융 인프라의 미래를 설계하는 선도적 시도다. Kinexys가 그리는 금융의 다음 지형도는 신뢰와 검증, 투명성과 확장성이라는 키워드로 정의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더 이상 ‘기술’이 아니라 ‘신뢰 인프라’로 진화한 블록체인이 자리 잡고 있다.
[METAX =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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