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은 스스로 선택하고, 지켜내는 것"

X 기자

metax@metax.kr | 2025-05-15 07:00:00

[복제의 시대,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④] 존재의 복제와 인간의 존엄성
AI가 창작을 복제하고, 인간의 존재를 흉내 내는 시대, 우리는 더 이상 기술의 진보만을 무조건 찬양할 수 없다. 복제 기술이 가속화되는 전환기 속에서,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고유성과 존엄의 의미를 깊이 탐구하고자 한다. 기술의 발전을 넘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질문과 성찰이 절실해진 지금, 창작, 존재, 인간성이라는 본질적 물음을 세상에 던져본다.[편집자주] 


AI는 이제 인간의 목소리를 복제하고, 얼굴을 재현하며, 감정 표현까지 흉내 낸다. 기억을 저장하고, 사고 패턴을 모사하며, 과거를 디지털화하는 기술은 날마다 정교해지고 있다. 존재의 외형, 기억의 껍질, 감정의 패턴마저 데이터로 복제 가능한 시대. 우리는 이 질문을 외면할 수 없다.

"존재를 복제할 수 있다면, 진짜 존재란 무엇인가?"

복제가 가능한 시대, 존재의 의미는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복제할 수 없는 인간성의 본질이 더 또렷하게 드러날 것인가?

기술은 존재의 형태를 모방할 수 있다. 그러나 존재의 깊이를, 시간 위에 쌓인 흔적을, 복제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는 존재의 존엄을 다시 정의해야 하는 문턱에 서 있다.

복제할 수 없는 것: 존재의 본질

기술은 형태를 복제할 수 있다. 인간의 얼굴, 목소리, 심지어 감정 표현의 패턴까지 정밀하게 모사할 수 있다. 그러나 존재는 단순한 형태의 집합이 아니다. 존재는 시간을 통과하며 축적된, 선택과 감정, 망설임과 후회의 총합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누군가의 외형이 아니다. 그가 걸어온 시간, 그 시간이 빚어낸 결정들, 그 결정 속에서 피어난 망설임과 후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딛고 다시 일어선 성장이다.

기억은 저장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선택하고, 흔들리고, 다시 나아가는 자유는 복제할 수 없다. 존재란 단순히 '존재함'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궤적이다.

기술은 외형을 재현할 수 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시간 위에 쌓인 인간적 흔적은 결코 복제할 수 없다. 존재는 데이터가 아니다. 존재는 시간 위에 쌓인 선택이다.

디지털 영생의 착각

'디지털 영생'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기억을 백업하고, 사고 패턴을 복제해, 죽은 후에도 가상세계 속에서 '존재'를 지속시키겠다는 발상이다. 겉보기에는 그럴듯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 그들의 표정과 말투, 그들의 사고 방식까지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이것은 진짜 영생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과거의 조각을 재생하는 것일 뿐, 살아 있는 현재가 아니다. 디지털 복제본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다. 스스로 후회하지 않고, 스스로 사랑하지 않으며, 스스로 성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살아 있었던 존재의 기록에 불과하다.

기억을 저장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선택하고 변화하는 자유를 저장할 수는 없다. 영생은 기술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영생은 살아 있는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갱신하는 과정에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반복이 아니라, 끊임없는 선택이다.

포스트휴먼 시대, 인간의 자리를 묻다

'포스트휴먼', '신인류'. AI, 생명공학, 사이보그 기술이 결합된 새로운 존재들이 논의된다.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존재, 질병과 죽음을 초월하는 인간. 기술은 인간의 조건을 다시 쓰려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물어야 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다움은 완전함에 있지 않다. 오히려, 불완전함 속에 있다. 우리는 아프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한다. 우리는 실패하기 때문에 성장하고, 배우려 한다. 우리는 잊기 때문에, 다시 사랑하고, 다시 용서하고, 다시 희망을 품는다.

완전함은 기계의 덕목이다. 정확하고, 오류가 없고, 변함없이 작동하는 것. 그러나 인간의 존엄은 실수하고, 흔들리고, 다시 일어서는 불완전함 속에 존재한다. 

우리는 다시 묻는다.

"육체를 벗어난 존재를,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불완전함을 잃은 존재를,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기술은 인간을 초월시키려 한다. 그러나 인간성은 초월이 아니라, 결핍과 약함을 껴안는 힘 속에 있다. 기억해야 한다.

"완전함은 기계의 덕목이다. 불완전함은 인간의 존엄이다."

존재의 복제 시대, 지켜야 할 것

복제가 가능한 시대에도,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분명하다. 기술이 존재를 모사할 수 있어도, 인간다움은 복제될 수 없다.

우리는 다음 다섯 가지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

자기결정권(Self-determination):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 것. 살아 있는 존재는 순간순간 스스로를 선택한다. 복제된 존재는 과거의 반복일 뿐, 선택하는 자유를 가지지 못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선택하고 실패할 자유를 가진다.


관계의 고유성(Relational uniqueness): 단 하나뿐인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존중하는 것. 우리는 복제된 기억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감정으로 맺은 관계를 통해 존재를 확인한다. 관계는 대체할 수 없다. 사랑도, 신뢰도, 배신도 복제할 수 없다.


기억의 윤리(Ethics of Memory): 과거를 저장할 때도,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지 않는 것. 저장된 기억은 데이터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며, 누군가의 고통이며, 누군가의 희망이다. 기억을 수집하는 것은 기술일 수 있지만, 기억을 존중하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시간의 가치(Value of Time): 살아 있는 시간의 비가역성을 이해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복제된 순간은 살아 있는 시간이 아니다. 우리는 흐르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매 순간 선택하고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존엄성(Dignity): 살아 있는 존재를 단순 데이터로 환원시키지 않는 것. 인간을 분석 가능한 정보의 덩어리로 취급하는 순간, 우리는 존재의 존엄을 파괴하게 된다. 인간은 효율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다. 존재는 복제할 수 없다. 존재는 살아 있어야만 한다.

복제 가능한 세계 속에서도, 우리는 이 다섯 가지를 스스로 지켜야 한다. 그것이 존재를 존재답게 만드는 마지막 울타리다. 

기술은 존재를 복제하려 한다. 기억을 저장하고, 사고 패턴을 분석하고, 얼굴과 목소리를 재현한다. 형태를 흉내 내고, 흔적을 데이터로 치환한다.

그러나 존재는 데이터가 아니다. 존재는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선택하고, 실패하고, 다시 꿈꾸는 살아 있는 궤적이다.

복제는 외형을 가져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살아 있는 시간, 살아 있는 선택, 살아 있는 고뇌는 결코 복제할 수 없다.

존재는 살아 있어야 한다. 존엄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존엄은 스스로 선택하고, 지켜내는 것이다.

"복제할 수 없는 존재만이, 진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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