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처럼 흐르는 금융, 그 변화의 최전선에서
X 기자
metax@metax.kr | 2025-03-08 14:43:43
이젠 소비 내역, 결제 패턴, 금융 습관이 신용도를 결정한다
한때 은행 창구에서 긴 대기표를 손에 쥐고 초조하게 순서를 기다리던 기억이 있다. 번거로운 서류 더미 속에서 도장을 꾹 찍으며, 은행원의 설명을 듣던 시절. 하지만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금융 거래가 끝난다. 계좌 개설도, 대출도, 투자도 손끝의 터치 몇 번이면 충분하다.
'금융은 언제 이렇게 변한 걸까?'
변화는 언제나 조용히 찾아온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깨닫지 못하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면 모든 것이 달라져 있다. 마치 와인처럼. 포도 한 송이가 발효되고 숙성되는 순간을 의식하지 못하듯, 시간의 흐름 속에서 깊어진 맛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지금 금융의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데이터가 곧 자산이 되는 시대
'과거에는 돈이 곧 힘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데이터가 돈이다'
오늘날 은행은 더 이상 단순한 금융 기관이 아니다. 데이터가 금융의 중심이 되면서, 소비 패턴과 자산 관리 습관이 신용 평가의 기준이 된다. 과거에는 대출을 받기 위해 서류를 들고 은행을 찾았지만, 이제는 우리의 소비 내역, 정기적인 결제 패턴, 금융 습관이 신용도를 결정한다.
스타벅스를 떠올려보자.
우리는 단순히 커피를 마신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스타벅스는 금융회사나 다름없다. 선불 충전한 금액은 스타벅스가 무이자로 조달한 자본이 된다.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프로모션을 제공하고, 자체 결제 시스템까지 운영한다. 결국, 금융의 개념은 확장되고 있다.
와인도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단순한 기호식품이던 와인은 시간이 지나며 문화가 되고, 투자 대상이 됐다. 특정 빈티지는 높은 가격에 거래되며, 와인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하나의 자산이 됐다. 금융도 그러하다. 데이터는 이제 새로운 자산이 됐고, 금융은 데이터를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다.
AI와 블록체인, 금융의 판을 흔들다
금융은 보수적인 산업처럼 보이지만, 사실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다. 신용카드가 처음 등장했을 때, 온라인 결제가 가능해졌을 때, 그리고 지금, AI와 블록체인이 금융을 다시 한 번 흔들고 있다.
AI는 대출 심사를 수행하고, 금융 사기를 감지하며, 맞춤형 투자 전략을 제안한다. 과거에는 인간의 직관과 경험이 투자 판단의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블록체인은 기존 금융 시스템이 해결하지 못했던 신뢰와 투명성 문제를 보완하며 새로운 금융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언젠가 은행이 사라지는 시대가 올까?
블록체인 기반의 탈중앙화 금융 시스템(DeFi)은 중개자 없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AI는 인간이 하던 금융 분석과 자산 관리 역할을 점점 더 대체하고 있다. 전통적인 은행의 역할은 점차 변화하고 있다.
마치 와인이 오랜 세월 동안 새로운 발효 방식과 보관 기술을 받아들여 발전해온 것처럼, 금융도 전통적인 시스템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술과 결합하며 진화하고 있다.
금융과 기술, 누가 누구를 삼킬 것인가?
오늘날 핀테크 기업들은 기존 은행보다 더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빅테크 기업들은 금융을 자신들의 플랫폼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금융은 더 이상 은행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금융은 기술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인가, 아니면 금융이 기술을 품으며 새로운 형태로 변모할 것인가?'
한때 로마인들에게 와인은 물과 같았다. 전쟁터에서도, 원로원에서도 와인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와인이 단순한 기호식품에 머물렀다면, 오늘날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거래되는 자산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와인은 시간이 흐르며 경제가 됐고, 문화가 됐으며, 투자 대상이 됐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은행 창구에서 스마트폰으로, 다시 블록체인과 AI로, 금융의 형태는 계속 변하고 있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금융의 핵심은 신뢰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돈을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 곳을 찾는다. 금융이 AI와 블록체인을 받아들이더라도,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신뢰’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있다.
금융의 최전선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금융의 최전선》은 바로 그 변화의 흐름을 따라간다. 금융과 기술이 어디까지 융합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지 이야기하는 책이다.
책을 덮고 스마트폰을 보니 익숙한 금융 앱이 낯설게 느껴졌다. 우리는 이미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다. 한때 금융을 떠올리면 은행 창구가 먼저 떠올랐다. 그러나 이제 금융의 중심에는 스마트폰, 데이터, AI, 블록체인이 있다.
마치 와인 한 잔을 앞에 두고, 그 속에 담긴 시간을 떠올리는 것처럼.
변화는 빠르고, 때로는 예측할 수 없으며, 종종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방향이 아니라, 그 변화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균형을 찾고, 어떻게 신뢰를 유지하며 나아갈 것인가이다.
금융은 점점 더 편리해지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금융을 만나게 될까?”
금융의 최전선에서, 우리는 그 답을 찾아가는 긴 여정 속에 있다. 그리고 그 여정은, 아마도 와인처럼 느리지만 깊이 있게, 서서히 우리 삶을 바꿔놓을 것이다.

KT그룹에서 2015년부터 인터넷전문은행을 비롯한 금융 분야 전반을 담당했다. 인터넷전문은행 추진팀장과 핀테크 태스크포스장, 그리고 금융정책 담당 상무 등을 맡았다.
KT의 손회사인 케이뱅크로 이동해서는, ‘미래 금융’ 총괄 전무로 재직했다. 이어 KT 자회사인 비씨카드로 전보돼 ‘신금융’을 담당하는 전무로 일해 왔다. 현재 비씨카드 자문역을 맡고 있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과 미국 텍사스오스틴 대학원에서 각각 공공정책과 과학기술 상용화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문화일보에 입사해 경제부, 산업부, 사회부 등에서 2007년까지 기자로 활동했다.
‘국정원 경제단 비리’ 등 탐사보도로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모두 3차례 수상했다. 단독 저서로 『서울대는 왜 있는집 자녀만 다닐까』 등 2권과 공동 저서로 『주식회사 대한민국을 팔아라』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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