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3대 강국」 선언, 기술전략인가 산업정책인가
X 기자
metax@metax.kr | 2025-12-16 15:29:45
[메타X(MetaX)] 정부가 ‘AI 3대 강국’을 국가 비전으로 공식화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6년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을 미국·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AI 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역대 최대 규모의 AI 예산, 국가 AI 컴퓨팅 인프라,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이 핵심 축이다.
그러나 이 선언은 과연 기술 전략일까, 아니면 산업 정책일까. 업무보고 자료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기술 주도 국가’라기보다 ‘AI를 매개로 한 산업 재편 프로젝트’에 가깝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9.9조 원 AI 예산, 기술 투자인가 시장 설계인가
과기정통부는 2026년 AI 관련 예산을 약 9.9조 원으로 편성했다. 이는 전년 대비 약 3배에 달하는 증가폭이다. 여기에 GPU 26만 장 확보, 국가 AI 컴퓨팅 센터 구축, 데이터센터 규제 완화까지 포함된다.
표면적으로는 ‘AI 고속도로 구축’이라는 기술 인프라 확충이다. 그러나 정책 구조를 보면 단순한 연구 투자라기보다 AI 산업 생태계의 주도권을 국가가 설계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GPU 배분 우선순위, 공공·민간 활용 기준, 국가 프로젝트 연계 구조가 모두 정부 주도로 짜여 있다.
문제는 이 인프라가 실제로 누구에게 열리는가다. 대기업·국책 프로젝트 중심으로 흐를 경우, AI 고속도로는 ‘공공 인프라’가 아니라 ‘선별된 기업을 위한 산업 전용도로’가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기술 주권의 실험
정부는 네이버클라우드, SK텔레콤, LG AI연구원, 업스테이지, NC AI 등 5개 정예팀을 선정해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추진 중이다. 목표는 2026년까지 세계 Top 10 수준의 모델 확보와 오픈소스 공개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독자’의 정의다. 모델이 국산이면 독자인가, 데이터와 학습 인프라까지 포함해야 독자인가. 현재 구조는 국가가 선정한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한 반(半)공공 AI 체제에 가깝다.
이는 기술 자립이라는 명분과 동시에, 특정 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 정책적 선택이라는 해석을 낳는다. 글로벌 오픈소스 생태계와의 경쟁·협력 구도 속에서 한국형 AI가 어떤 위치를 차지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AI 3강의 조건, 기술력보다 ‘확산 능력’
업무보고 자료에서 반복되는 표현은 ‘국민 체감’이다. 정부는 AI를 일부 전문가의 기술이 아니라 전 국민이 사용하는 인프라로 만들겠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민생 AI 10대 프로젝트, 전국민 AI 경진대회, 공공 행정 AI 활용 확대까지 포함시켰다.
이는 중요한 전환이다. AI 강국의 조건을 모델 성능 경쟁이 아니라 사회적 확산 능력으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AI의 판단과 오류, 책임 소재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정부 문서에는 ‘신뢰·안전·윤리’가 언급되지만, 실제 운용 단계에서의 책임 구조는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기술 전략인가, 산업 재편 선언인가
이번 ‘AI 3대 강국’ 선언은 단순한 기술 로드맵이 아니다. GPU, 데이터, 모델, 인재, 규제 완화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은 국가 주도의 AI 산업 재설계에 가깝다. 이는 분명 과거와 다른 스케일의 접근이다.
다만 메타X 관점에서 보자면, 이 전략은 성공 가능성과 함께 구조적 위험도 안고 있다. 기술 경쟁이 아닌 정책 경쟁, 혁신이 아닌 선정과 집중으로 흐를 경우, AI 생태계의 다양성과 자율성은 오히려 위축될 수 있다.
‘AI 3대 강국’이라는 구호가 실질적 기술 주권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또 하나의 대형 산업정책 슬로건으로 남을지는 2026년 이후 실제 집행 방식에 달려 있다. 선언은 끝났고, 이제 검증의 시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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