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타 폐지, 연구 자율성 회복인가 통제 완화 리스크인가

X 기자

metax@metax.kr | 2025-12-16 15:35:18

[2026 과기부 업무보고] 35.5조 원 시대, 국가 연구개발은 어디로 가는가

[메타X(MetaX)] 정부가 연구개발(R&D)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제도의 사실상 폐지를 공식화했다.

2026년 R&D 예산은 35.5조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여기에 예타 폐지, PBS(Project Based System) 단계적 폐지, 행정 서식 대폭 축소까지 더해지며 정부는 이를 ‘연구 자율성 회복’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예타 폐지는 정말 연구 현장을 자유롭게 만드는 개혁일까, 아니면 통제 장치가 사라진 또 다른 관리 체계의 시작일까.

예타는 왜 ‘연구자의 족쇄’가 되었나

예타 제도는 본래 대형 국책사업의 재정 낭비를 막기 위한 장치였다. 하지만 R&D 영역에서는 오히려 연구의 속도와 창의성을 가로막는 절차로 작동해 왔다. 수년이 걸리는 사전 검증, 정량화 중심의 평가, 실패 가능성을 용인하지 않는 구조는 도전적 연구와 근본적으로 충돌했다.

정부가 이번 업무보고에서 예타 폐지를 전면에 내세운 배경에는, 지난 몇 년간 누적된 연구 현장의 불만이 자리하고 있다. “연구는 시작도 하기 전에 평가로 끝난다”는 비판은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35.5조 원, 자율의 확대인가 책임의 재배치인가

문제는 규모다. 2026년 R&D 예산은 35.5조 원에 달한다. 예타라는 사전 통제 장치가 사라진 상태에서, 이 막대한 예산은 어디서, 어떻게 통제될 것인가.

정부는 답으로 ‘사후 관리 강화’를 제시한다. 예산 집행 이후에도 목표 달성 여부와 성과를 지속 점검하고, AI를 활용한 예산 심의로 유사·중복 사업을 걸러내겠다는 구상이다. 즉, 사전 통제는 줄이고 사후 관리와 데이터 기반 감시를 강화하는 방향이다.

이는 자율성의 확대라기보다, 통제 방식의 전환에 가깝다.

실패를 용인한다는 말의 진짜 의미

정부는 “실패를 용인하는 R&D 문화”를 강조한다. 수행 과정의 성실성을 평가하고, 의미 있는 실패에는 후속 과제 연계를 약속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제도는 아직 선언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실패를 용인하려면, 실패를 책임 추궁의 대상이 아니라 학습의 자산으로 기록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예산 규모가 커질수록 정치적·사회적 책임 압박은 오히려 강화된다. 이 상황에서 연구자는 정말 실패할 자유를 가질 수 있을까.

 
예타 폐지 이후, 더 강해질 수 있는 ‘보이지 않는 통제’

예타가 사라진다고 해서 통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통제는 더 정교해질 가능성이 있다. AI 기반 예산 분석, 성과 지표 중심의 평가, 범부처 통합 데이터 관리가 결합되면 연구자는 연구 이전이 아니라 연구 전 과정에서 감시받는 구조에 놓일 수 있다.

이는 형식적 절차는 줄었지만, 실질적 자유는 오히려 제한되는 역설을 낳을 수 있다. 예타는 명확한 벽이었지만, 새로운 관리 체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망이 될 가능성이 있다.

R&D 개혁의 성패는 ‘신뢰’에 달려 있다

이번 예타 폐지는 분명 과감한 시도다. 연구 현장의 오랜 요구를 제도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의미도 크다. 그러나 진짜 관건은 제도 그 자체가 아니라 국가와 연구자 사이의 신뢰 관계다.

연구자를 잠재적 위험 요소로 보는 시선이 유지된다면, 어떤 제도를 도입해도 자율성은 형식에 그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연구자를 동반자로 대하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예타 없는 R&D는 한국 과학기술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예타 폐지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35.5조 원 시대의 R&D가 자율의 시대로 기억될지, 아니면 통제 방식만 바뀐 관리 강화의 시대로 남을지는 이제 집행과 운영의 문제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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