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AI를 쓴다… ‘AI 정부’는 효율화인가 자동화 통제인가
X 기자
metax@metax.kr | 2025-12-16 15:37:27
[메타X(MetaX)] 정부가 행정 전반에 인공지능(AI)을 본격 도입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6년부터 범정부 공통기반 위에서 보고서 작성, 보도자료, 민원 응대, 예산 심의 등 행정 전 주기에 AI를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정부는 이를 ‘일 잘하는 AI 정부’ 구현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행정에 AI가 들어오는 순간,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AI 정부는 효율을 높이는 도구인가, 아니면 통제 방식을 자동화하는 새로운 권력인가.
‘일 잘하는 정부’라는 이름의 구조 변화
업무보고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공공행정의 공통 업무를 AI로 표준화·자동화해 생산성을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보고서 초안 작성, 정책 설명자료 정리, 대국민 상담까지 AI 활용을 우선 적용하고, 이를 통해 행정 속도와 품질을 동시에 개선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단순한 디지털 전환을 넘어 행정 의사결정 과정 자체의 재설계를 의미한다. 사람이 하던 판단 보조, 정보 요약, 우선순위 설정을 AI가 맡게 되면서, 공무원의 역할은 ‘작성자’에서 ‘검토자’로 이동한다.
문제는 이 변화가 효율성만 남기고, 책임 구조를 흐릴 가능성이다.
자동화된 행정,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정부는 AI를 ‘의사결정 보조 수단’으로 규정한다. 최종 책임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실제 행정 현장에서 AI가 생성한 문서와 분석 결과는 사실상의 기준선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보고서 초안이 AI에 의해 작성되고, 정책 선택지가 AI 분석 결과를 중심으로 정리된다면, 공무원의 판단은 AI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때 오류가 발생했을 경우, 책임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AI를 사용한 공무원인가, 시스템을 설계한 정부인가, 아니면 기술을 제공한 기업인가.
업무보고 자료에는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효율화 뒤에 숨은 ‘보이지 않는 통제’
AI 정부가 가장 크게 바꾸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감시와 평가의 방식이다. 정부는 범부처 통합 데이터와 AI 분석을 통해 행정 전 과정을 정량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는 행정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공무원의 업무 패턴과 성과를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형식적인 보고는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그 대신 지표와 로그, 알고리즘 평가가 새로운 통제 수단으로 작동할 가능성도 커진다. 통제는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눈에서 시스템의 눈으로 이동하는 셈이다.
AI 정부와 민주적 통제의 충돌
행정의 자동화는 민주주의와도 연결된다. 정책은 단순히 효율적으로 집행되는 것이 아니라, 설명 가능하고 이의 제기가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AI가 개입한 행정은 그 판단 과정이 복잡해질수록 설명 가능성이 낮아진다.
정부는 신뢰·안전·윤리를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AI 판단에 대한 이의 제기 절차, 오류 정정 메커니즘, 알고리즘 투명성에 대한 구체적 설계는 아직 초기 단계다. 이는 AI 정부가 효율은 높일 수 있어도, 민주적 통제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AI 정부의 성패는 ‘권한의 경계’에 있다
AI 정부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문제는 도입 여부가 아니라 어디까지 맡기고, 어디서 멈출 것인가다. 행정 효율화와 자동화 통제의 경계는 기술이 아니라 제도가 정한다.
AI가 행정을 돕는 도구로 남을지, 아니면 행정을 규정하는 보이지 않는 기준이 될지는 지금 설계되는 운영 원칙에 달려 있다. 효율을 얻기 위해 통제를 자동화한다면, 그 대가는 투명성과 책임의 후퇴일 수 있다.
정부도 AI를 쓰는 시대다. 이제 필요한 것은 “AI를 쓰느냐”가 아니라, “AI가 정부를 대신하지 않도록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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