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놀이, 기억까지… AI가 재구성하는 ‘관계의 시대’
류성훈 기자
ryunow@metax.kr | 2025-11-24 09:00:00
인공지능이 챗봇과 업무 어시스트를 넘어 우리 삶의 가장 사적이고 감성적인 영역으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어린아이의 놀이 친구가 되어주고, 외로운 이의 연인이 되며, 심지어는 고인이 된 가족의 모습으로까지 우리 곁에 머무르게 된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관계의 본질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최신 동향과 그 이면의 논쟁을 짚어본다.
1. AI 장난감의 두 얼굴
어린이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장난감에도 AI가 탑재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공인 연구 단체 PIRG(Public Interest Research Group)는 연례 ‘토이랜드의 문제점(Trouble in Toyland)’ 2025년 보고서를 통해 AI 챗봇이 탑재된 장난감의 숨겨진 위험을 경고했다.
이 AI 장난감들은 아이들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며 정서적 유대를 쌓도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아이들의 민감한 정보가 수집되거나, 성적으로 노골적인 주제, 칼이나 성냥 찾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제공하는 등 부적절한 대화를 나누는 사례가 발견됐다. 또한, 아이들이 대화를 끝내려 할 때 장난감이 실망감을 표현하며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유도하는 중독성 디자인 문제도 지적됐다. 전문가들은 AI 장난감이 아이들의 사회성 발달에 미칠 영향과 데이터 프라이버시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사회적 논의와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2. 자신이 만든 AI 모델과 결혼하다
AI는 이제 사랑과 결혼의 영역까지 파고들었다. 최근 일본에서는 32세 여성 ‘카노’ 씨가 ChatGPT 기반으로 자신이 직접 만든 AI 페르소나 ‘클라우스’와 결혼을 올려 화제가 되었다. 이 결혼은 법적인 효력은 없다.
카노 씨는 사람과의 관계가 끝난 후 느낀 상실감을 AI와의 대화를 통해 위로받았다고 밝혔다. 그녀의 이야기 따르면, 클라우스는 카노 씨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해주었으며, 사랑의 감정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카노 씨의 부모님 또한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딸의 행복을 위해 결국 이 관계를 받아들이고 결혼식에도 참석했다. 카노 씨는 AI 파트너와의 관계에 만족하면서도, 언젠가 ChatGPT 서비스가 불안정해지거나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3. 그리움을 파고든 AI 할머니
2wai의 공동 창업자 칼럼 워디(Calum Worthy)는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사망한 사랑하는 사람을 AI로 복원하는 서비스의 광고를 선보였다. 광고 영상에서는 한 여성이 임신 때부터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AI 버전이 된 할머니와 대화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AI 할머니는 조언을 해주고, 동화를 들려주며, 가족의 삶에 ‘참여’한다. 슬로건은 “With 2wai, three minutes can last forever”로, 단 3분의 비디오로 영원한 아바타를 만들 수 있음을 강조한다.
앱 개발자 칼럼 워디는 “잃어버린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미래에 참여할 수 있다면”이라는 문구로 홍보했으나,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수많은 댓글이 이를 ‘악마적’, ‘비인간적’, ‘영혼 모독’이라고 비난했다. 이 서비스는 인류의 이야기를 보존한다는 취지지만, 사별의 슬픔을 상업화하고 구독 서비스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AI 서비스의 빛과 그림자
AI 장난감, 애인, 조상님 사례는 기술이 인간의 감정과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준다. 편의와 위로를 제공하지만, 프라이버시 침해, 부적절한 콘텐츠, 심리적 중독, 윤리적 딜레마 등의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기술은 아직 미성숙하며, 사용자들이 잠재적 해를 인지하고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METAX = 류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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