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의 클래식, '리니지 클래식'이 온다
김하영 기자
hashe@metax.kr | 2026-01-28 07:00:00
리니지 라이크, 린저씨의 이미지를 다시 쓸 수 있을까...
[메타X(MetaX)]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클래식'이 출시 전부터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8시 시작된 '리니지 클래식' 사전 캐릭터 생성에 대규모 인파가 몰렸다. 최초 오픈한 10개 서버는 10분 만에 생성 제한이 걸렸고, 추가로 연 5개 서버마저 조기 마감됐다. 일부 이용자는 퍼플 보안 기기등록을 하는 짧은 시간 사이에 생성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엔씨소프트는 다음 날인 15일 정오에 5개 서버를 추가 증설했다.
리니지 클래식은 1998년 서비스를 시작한 PC MMORPG '리니지'의 2000년대 초반 버전을 구현한 게임으로, 2026년 2월 7일, 한국과 대만에서 프리 오픈(무료 서비스)을 시작하며, 11일부터 월정액 29,700원 서비스로 전환된다. 1998년 원작 출시 당시와 같은 가격으로,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거의 공짜"에 가깝다. 군주, 기사, 요정, 마법사 4종의 클래스와 말하는 섬, 용의 계곡, 기란 지역 등 초기 버전 콘텐츠가 탑재되었으며, 모바일 버전은 제작되지 않고 PC 전용으로 출시된다.
업계에서는 이례적인 반응에 주목하고 있다. 리니지는 '린저씨', 'P2W(Pay to Win)', '리니지라이크'라는 용어의 탄생지로, 한국 게임 산업 과금 논란의 중심에 있던 IP다. 그럼에도 사전 캐릭터 생성에 이 정도 인파가 몰린 배경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리니지, 그 이름의 무게
리니지는 한국 온라인 게임 역사 그 자체인 동시에, 한국 게임 산업 비판의 중심에 선 이름이기도 하다.
'린저씨'라는 신조어가 이 게임에서 탄생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쓰이기 시작한 이 단어는 "리니지 하는 아저씨"의 줄임말로, 게임 폐인, 현거래, 조폭 같은 혈맹 문화를 상징했다. 이벤트 기간에 잠을 안 자고 게임하다 유저가 사망하는 사건, 게임 내 시비가 현실 폭력으로 번지는 일, 좋은 사냥터 입구를 강한 혈맹이 24시간 점거하며 PK를 일삼는 문화 등이 린저씨의 원형이었다. 때문에, 린저씨라는 표현 자체가 비하의 의미를 강하게 담고 있었다.
이후 2017년, 리니지M이 출시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시간으로 찍어누르는" 문화가 "돈으로 찍어누르는" 문화로 바뀌었다. 톱 랭커가 되려면 최소 몇 천만 원, 많게는 억 단위 이상의 과금이 필요했고, P2W(Pay to Win)의 상징이 됐다. 리니지M은 출시 첫 달 2,256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이 비즈니스 모델의 "성공"을 증명했다.
'리니지라이크'라는 장르도 여기서 파생됐다. 자동사냥, 확률형 아이템, 극단적 P2W를 특징으로 하는 모바일 MMORPG를 통칭하는 말이다. 국내 주요 게임사들이 이 공식을 따라했고, "XX리니지"라는 조롱 섞인 별명이 붙는 게임들이 쏟아졌다. 리니지는 단순히 한 게임의 이름이 아니라, 한국 게임 산업 과금 구조의 원형이자 상징이 됐다.
이런 배경에서 리니지 클래식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타겟은 "리니지 키즈"
린저씨를 이해하려면 먼저 구분이 필요하다. 같은 이름 아래 전혀 다른 두 부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시간의 린저씨"다. 2000년대 PC방 시절, 강함은 투자한 시간에서 나왔다. 혈맹원들과 PC방에 나란히 앉아 밤을 새우고, 주말마다 던전을 돌았다. 현거래와 PK 문화, 조폭 같은 혈맹 정치 등 문제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같은 시간을 투자하면 비슷한 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돈의 린저씨"다. 2017년 리니지M 이후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 과금이 곧 전투력이 됐다. 시간을 아무리 투자해도 과금 유저를 이길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린저씨는 "게임 폐인"에서 "과금 전사"로, 다시 "한국 게임계를 망친 세력"으로 의미가 변질됐다.
그런데 리니지 클래식의 타겟은 이 두 부류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 PC방에는 사실, 린저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옆자리에서 게임하던 10대, 20대 일반 유저들 또한 많았다. 이들은 억 단위 현거래의 주체도, 24시간 던전을 점거하는 혈맹의 핵심 멤버도 아니었지만, 월정액 29,700원을 내고 친구들과 파티 사냥하던, 일명 '라이트 유저'였다. 린저씨 문화의 주체라기보다는 그 생태계 안에서 조용히 게임을 즐기던 목격자에 가까웠다.
그런 그들이 지금 30대, 40대가 되었고, 업계에서는 이들을 리니지 클래식의 핵심 타겟으로 본다.
리니지M 출시 당시, 이들 중 상당수는 복귀하지 않았거나 금방 이탈했다. P2W 구조에서 자신들이 기억하는 "그 리니지"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불법 사설서버가 20년 넘게 유지된 것도 이 수요층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실질적 수요였다는 뜻이다.
때문에 리니지 클래식은 린저씨를 불러오려는 게 아니다. "린저씨 옆자리에서 게임하던 애들"을 불러오는 것이다.
월정액 29,700원의 의미
월정액 29,700원. 1998년 원작 출시 당시와 동일한 가격이다. 현재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나 파이널 판타지 14의 월정액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지만, 리니지M의 과금 규모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질적으로 다르다.
P2W 구조에서 돈은 곧 강함이고, 강함은 곧 권력이다. 리니지M에서 의미 있는 플레이를 하려면 수백만 원은 기본이며, 톱 랭커가 되기 위해 억 단위 과금이 필요하다는 점은 이미 업계 전반에 알려진 사실이다. 이 구조 속에서 누적된 피로감은 단순한 불만을 넘어, 공정한 경쟁에 대한 갈망, 다시 말해 P2W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로 전환되어 왔다. 리니지 클래식의 열기는 단순한 추억 소환이 아니라, 바로 이 갈망이 집단적으로 표출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월정액 구조는 이 지점에서 분명한 대비를 이룬다. 29,700원을 지불하면 모든 이용자는 동일한 출발선에 선다. 엔씨소프트는 공식적으로 “아인하사드의 축복이나 유사 시스템은 도입하지 않는다”고 밝혔으며, 자동사냥 역시 배제했다. 100% 수동 플레이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월정액 모델 선택이 리니지 프랜차이즈에 대한 과금 피로도를 완화하고, 이용자들이 게임의 핵심 재미에 집중하도록 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공정한 경쟁에 대한 갈망, P2W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 리니지 클래식의 열기는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이 갈망이 폭발한 것일 수 있다. 때문에, P2W에 피로감을 느낀 이용자들의 복귀 수요를 자극해 초반 흥행에 힘을 보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엔씨소프트의 전략
증권가에서는 리니지 클래식의 매출 규모를 전반적으로 보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월정액 기반 구조상 폭발적인 매출 확대보다는 이용자 수가 실적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라는 판단이다. 증권사 리서치 추정에 따르면, 리니지 클래식의 2026년 연간 매출액은 약 895억 원 수준으로 거론된다. 이는 리니지M의 월 매출이 300억~400억 원대에 형성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간 기준으로 리니지M 약 2~3개월치 매출에 해당하는 규모다.
덧붙여, 월정액 모델의 특성상 과금 단가보다는 이용자 풀의 크기가 성과를 좌우한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증권가에서는 의미 있는 매출을 창출하기 위한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기준선을 약 30만~50만 명 수준으로 보고 있다. 이 범위에 도달할 경우, 대형 흥행작과는 결이 다르더라도 안정적인 수익 구조는 확보할 수 있다는 평가다.
이 같은 전망을 종합해, 관련 업계에서는 엔씨소프트가 리니지 클래식을 통해 ‘매출 대성공’보다는 리니지 IP의 체질 개선과 신뢰 회복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가격을 29,700원으로 유지한 상태에서 단기간 대규모 매출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때문에, 과금 구조로 이탈했던 순수 이용자층을 다시 흡수하며 IP의 장기적 잠재력을 회복하는 효과가 더 크다는 분석이다.
엔씨소프트는 최근 몇 년간 리니지 시리즈의 과금 모델에 대한 피로 누적, 이용자 이탈, 트럭 시위 등으로 상징되는 반발, 주가 하락 등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어왔다. 여기에 리니지라이크 게임의 범람으로 IP 가치 자체가 희석됐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리니지 클래식은 이러한 국면에서 사실상 ‘초심 회귀’를 선언한 선택으로 읽힌다. 확률형 아이템 중심의 BM에서 벗어나 월정액 모델로 돌아가고, 자동화 요소를 배제한 전통적 플레이 경험을 전면에 내세웠다. 블리자드의 와우 클래식, 넥슨의 메이플랜드로 확인된 레트로 트렌드를 리니지 IP에 접목해, 이탈했던 30~40대 핵심 이용자층을 다시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업계에서는 리니지 클래식이 서비스 안정화 단계에 안착할 경우, 불법 사설 서버 수요를 흡수하는 동시에 엔씨소프트에 대한 기업 신뢰도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단기 실적보다는 중장기 IP 관리 전략의 성격이 짙다는 점에서, 이번 선택은 현재 엔씨소프트가 처한 상황에 부합하는 비교적 합리적인 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클래식 열풍, 리니지만의 결
와우 클래식, 메이플랜드, 바람의나라 클래식 등 고전 IP를 다시 꺼내는 ‘클래식 열풍’이 게임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과거의 콘텐츠와 시스템을 현대 환경에 맞게 재구성하는 전략은 이제 하나의 확립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다만 리니지 클래식은 이 흐름 속에서도 결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와우 클래식이 ‘확장팩 이전의 하드코어함’으로 돌아가고, 메이플랜드가 ‘빅뱅 업데이트 이전의 단순한 구조’를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는데, 이는 주로 콘텐츠 구성과 시스템 복잡도의 문제에 가깝다.
리니지 클래식이 되돌아가려는 지점은 조금 다르다. 핵심은 ‘P2W 이전’, 그리고 ‘린저씨 문화가 변질되기 전’의 시점이다. 단순히 옛날 몬스터와 맵을 다시 꺼내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둘러싼 경쟁 구조와 플레이 윤리, 나아가 생태계 자체를 초기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2000년대 초반 PC 리니지 시절에도 린저씨 문화는 분명 존재했다. 다만 당시의 린저씨는 ‘돈 부자’라기보다는 ‘시간 부자’에 가까웠다. 개인 간 아이템 거래나 현금 거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는 게임 시스템 외부의 비공식 영역에 머물렀다. 경쟁의 중심은 여전히 사냥 시간과 혈맹 활동, 플레이 숙련도였고, 같은 시간을 투자하면 비슷한 수준의 경쟁이 가능했다. 리니지 클래식이 호출하는 기억은 바로 이 시기, 시간이 힘이 되던 플레이 경험이다.
엔씨소프트 역시 이러한 방향성을 의식하고 있다. 회사 측은 리니지 클래식에 대해 “직접 사냥하고, 직접 움직이며 만들어가는 플레이 경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자동사냥 대신 수동 조작을, 확률형 아이템 대신 월정액 모델을 전면에 내세운 배경이다.
과제, 클래식의 정체성
열기는 뜨겁지만, 불안 요소도 동시에 존재한다. 사전예약 문자에 ‘확률형 아이템 포함’이라는 문구가 들어가며 이용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불거졌고, 엔씨소프트는 이에 대해 아직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비공개 테스트 과정에서는 ‘자동사냥 이용권’ 도입 가능성이 유출되며 논쟁이 더욱 확산됐다.
엔씨소프트는 “오픈 이후 유저 불편 사항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다만 자동 플레이가 도입되더라도 특정 던전에 한정하는 등 제한적인 방식이 될 것이라는 단서를 덧붙였다. 이 여지를 두고,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클래식의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교차한다.
일각에서는 리니지 클래식이 ‘클래식’이라기보다는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리마스터’에 가깝다는 비판도 나온다. 레벨 제한이 없고 성장 속도가 빨라졌으며, 신규 클래스 추가 계획까지 언급된 점은 초기 리니지가 지녔던 ‘제한된 선택지와 느린 성장’이라는 정체성과는 결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과거의 불합리한 시스템은 개선하되, 리니지 특유의 손맛과 긴장감, 그리고 낭만을 유지하는 정교한 균형이 관건이라고 본다. 편의성을 이유로 P2W 요소가 다시 스며들기 시작하는 순간, 클래식이라는 기획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다.
엔씨소프트가 “리니지 클래식 서비스 기간 동안 프로모션 BJ는 운영하지 않겠다”고 밝힌 점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된다. 기존 리니지 시리즈에서 특정 BJ에게 혜택이 집중되며 불거졌던 유저 역차별 논란을 의식한 조치로, 클래식이 지향하는 공정성 이미지를 지키기 위한 방어선으로 읽힌다.
린저씨는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린저씨라는 단어는 태생부터 부정적인 이미지를 함께 안고 있었다. 게임에 과도하게 몰입한 이용자, 현금 거래와 얽힌 음지 문화, 폐쇄적인 혈맹 이미지가 겹치며 하나의 고정된 인식으로 굳어졌다. 이후 P2W 구조가 전면화되고 억 단위 과금 사례가 회자되면서, 린저씨는 한국 게임 산업의 기형성을 상징하는 표현으로까지 확장됐다.
이 과정에서 ‘리니지라이크’ 역시 부정적인 맥락을 함께 떠안았다. 확률형 아이템, 자동사냥, 과금 경쟁을 핵심으로 하는 구조가 반복 재생산되며, 리니지 IP의 문제가 산업 전반의 구조적 문제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린저씨는 리니지라이크 생태계의 수요층으로 단순화됐고, 조롱과 비판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린저씨의 원형을 되짚어보면, 그 중심에는 그저 리니지를 오래 즐겨온 이용자들이 있었다. 문제는 시간과 플레이 경험이 경쟁력을 만들던 환경이 과금 경쟁으로 대체되며, 그 애정의 방식이 왜곡됐다는 점이다. 그 결과 린저씨라는 이름은 플레이 문화가 아니라 과금 구조의 산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리니지 클래식은 이 지점에서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리니지라이크를 규정해 온 P2W 구조에서 벗어나, 돈이 아니라 시간과 몰입, 관계와 경험이 중심이 되는 플레이 문화는 다시 가능할까. ‘과금 주체’가 아닌 ‘플레이어’로서의 린저씨는 복원될 수 있을까.
만약 이 시도가 안착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고전 IP의 재출시를 넘어선다. 리니지라이크로 대표되던 한국 MMORPG의 문법에 균열을 내고, P2W에 피로를 느낀 이용자들에게 또 하나의 선택지를 제시하는 사례가 될 수 있다. 반대로 확률형 아이템과 자동화 요소가 다시 확대된다면, 리니지 클래식은 변화를 선언했지만 증명하지 못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2월 7일, 리니지 클래식이 문을 연다.
린저씨는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METAX =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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