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US가 그리는 다음 20년의 게임 하드웨어
김하영 기자
hashe@metax.kr | 2026-02-03 07:00:00
ASUS, CES 2026에서 게임 하드웨어의 다음 범위를 조용히 제시하다
[메타X(MetaX)] CES 2026에서 ASUS는 ROG 20주년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전시 구성은 일반적인 ‘기념 행사’의 문법과는 다소 달랐다. 과거 대표 제품을 재출시하거나, 히트 모델을 리마스터하는 방식보다는 서로 성격이 다른 하드웨어 실험들을 병렬적으로 배치하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ROG(Republic of Gamers)는 ASUS가 2006년 출범시킨 게이밍 전용 브랜드로, 고성능 PC를 넘어 새로운 폼팩터와 사용 방식을 먼저 시험하는 실험적 라인업으로 자리해 왔다. 이번 CES에서도 듀얼 스크린 노트북, AI 최적화 게이밍 노트북, 게임용 AR 스마트 글래스처럼 하나의 제품군으로 묶기 어려운 시도들이 ROG 20주년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제시됐다.
이러한 구성은 ROG 20주년을 회고의 계기로 삼기보다는, 게임 하드웨어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시점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시에서 ‘20년의 역사’를 정리하는 명시적인 장치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대신 ASUS는 서로 다른 방향의 실험을 한자리에 놓음으로써, 게임 하드웨어의 다음 단계가 단일한 형태로 수렴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 지점에서 ROG 20주년은 완성의 숫자라기보다, 방향을 다시 설정하기 위한 명분에 가깝게 작동한다. CES 2026에서 ASUS가 강조한 것은 과거의 성과가 아니라, 앞으로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였다.
게임 하드웨어의 경계를 시험하다: 'ROG'라는 실험실
이러한 시도를 가능하게 한 중심에는 'ROG'라는 브랜드의 위치가 있다. ROG는 ASUS 내부에서 가장 실험적인 폼팩터와 기술을 먼저 적용해 온 라인업으로, 대중성이나 가격 효율보다 방향성과 상징성이 우선되는 일종의 전진기지 역할을 해왔다.
CES 2026에서 공개된 듀얼 16인치 스크린 노트북 Zephyrus Duo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제품은 단순히 화면을 하나 더 얹은 형태가 아니라, 게임 플레이와 스트리밍, 멀티태스킹 환경을 전제로 사용 구조 자체를 재배치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메인 화면과 보조 화면을 분리함으로써, 기존 노트북이 전제해 온 ‘하나의 화면 중심 플레이’라는 구조를 흔든다.
여기에 더해 ASUS는 AI 최적화를 전면에 내세운 게이밍 노트북 전략도 함께 제시했다. 이는 단순히 AI 연산 성능을 강조하는 접근이 아니라, 성능을 얼마나 높일 것인가보다 성능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쓰게 할 것인가를 설계의 중심에 두겠다는 방향에 가깝다. 즉, 스펙 경쟁에서 벗어나 사용 맥락과 시스템 제어로 초점을 이동시키는 단계다.
이 두 사례를 놓고 보면, ROG는 더 강한 PC를 만드는 브랜드라기보다 게임 하드웨어의 형태와 사용 방식을 먼저 실험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ASUS는 CES 2026에서 ROG를 통해, 게임 하드웨어가 더 이상 단일한 정답을 향해 진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냈다.
화면은 더 이상 고정되지 않는다: AR 스마트 글래스
CES 2026에서 ASUS는 전통적인 화면 구성을 넘어서는 게임 디스플레이의 확장 가능성을 가시화했다. ASUS는 ROG XREAL R1이라는 이름으로 AR(증강현실) 스마트 글래스를 공개했는데, 이 제품은 기존 노트북·모니터 중심의 화면 경험을 물리 공간 위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공식 발표에 따르면, ROG XREAL R1는 240Hz 주사율을 지원하며, 최대 171인치급 가상 화면을 사용자 주변에 띄울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는 게이머가 더 이상 정해진 물리적 화면 앞에 머물지 않고, 자유롭게 공간 속에서 대형 디스플레이를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 장치는 USB-C 기반 연결을 통해 Xbox Ally, PC, 모바일 기기 등 다양한 플랫폼과 연계할 수 있으며, 저지연(2ms 수준)과 내장 오디오(Bose 스피커 탑재) 등 게이밍 환경에 초점을 맞춘 사양을 갖춘 것으로 소개됐다. 기존의 AR/VR 헤드셋들이 생산성이나 엔터테인먼트용 기기로 자리매김한 것과 달리, ASUS는 ROG XREAL R1을 게임 경험의 확장 도구로 먼저 전면에 내세웠다. 이 접근은 CES 2026 전시 전반에서 나타난 ‘플레이 환경의 경계 확장’이라는 테마와도 일관된다.
ROG XREAL R1의 등장은 단순한 제품 발표를 넘어, 게임 화면이 고정된 모니터를 벗어나 공간 자체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런 시도는 게임 하드웨어가 성능 경쟁을 넘어서, 경험 영역 전체의 재구성을 탐색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 준다.
하나의 흐름으로 읽히는 전시
CES 2026에서 ASUS가 선보인 듀얼 스크린 PC, AI 최적화 노트북, AR 스마트 글래스는 서로 다른 제품군처럼 보이지만,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 위에 놓여 있다. 이들 시도의 공통점은 성능 수치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있지 않다. 대신 ASUS는 플레이 환경과 인터페이스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두고 하드웨어를 배치했다.
듀얼 스크린 PC는 ‘하나의 화면’이라는 전제를 해체하며, 게임 플레이와 부가 작업이 병렬적으로 이루어지는 구조를 실험한다. AI 최적화 노트북은 최고 성능을 항상 유지하는 방식 대신, 사용 상황에 따라 성능을 조율하고 개입하는 시스템 설계를 전면에 내세운다. AR 스마트 글래스는 이 흐름을 한 단계 더 밀어붙여, 게임 화면 자체를 노트북이나 모니터라는 물리적 틀에서 분리해 공간으로 이동시킨다.
이 세 가지는 각각 다른 방향의 실험이지만, 함께 놓고 보면 하나의 확장 경로를 그린다. PC 내부에서 시작된 게임 경험이 웨어러블을 거쳐 공간 디스플레이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ASUS가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준 것은, 게임 하드웨어의 범위가 더 이상 ‘PC라는 장치 내부’에 고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임을 둘러싼 하드웨어의 경계 자체가 재설정되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다음 20년을 위한 설계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CES 2026에서 ASUS가 제시한 것은 완성된 해답이 아니라 다음 20년을 향한 설계도에 가깝다. ROG를 중심으로 공개된 일련의 실험들은 당장 표준이 되기보다는, 게임 하드웨어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좌표 역할을 한다.
중요한 점은 이 전시가 기술의 우열을 가리거나 성능 경쟁을 선언하는 자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ASUS는 20주년이라는 상징적인 시점을 과거의 성취를 정리하는 데 쓰기보다, 게임 경험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다시 배치해 보는 실험의 장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CES 2026의 ASUS 전시는 기념 전시라기보다, 게임 하드웨어가 앞으로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를 조용히 선언하는 자리로 보여진다.
ASUS가 그리는 다음 20년의 게임 하드웨어는 아직 확정된 형태를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이번 전시를 통해 분명해진 것은, 그 미래가 더 강한 PC 하나로 수렴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METAX =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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