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게임에 어떻게 개입하려 하는가
김하영 기자
hashe@metax.kr | 2026-02-02 09:00:00
[메타X(MeatX)] CES 2026의 키워드는 “AI Everywhere”였다. AI는 더 이상 특정 기능이나 도구에 머무르지 않고, 하드웨어·소프트웨어·서비스 전반에 걸쳐 기본 전제로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 흐름 속에서 게임 영역에서도 하나의 변화가 분명해지고 있다. AI가 게임 제작 공정이나 운영 효율을 지원하는 단계를 넘어, 플레이어가 게임을 경험하는 방식 그 자체에 개입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첫번째 방식은 Razer의 ‘Project Motoko’처럼 AI가 플레이 상황을 인식하고, 플레이어에게 정보와 피드백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Sony Interactive Entertainment의 ‘AI Generated Ghost Player(이하 Ghost Player)’ 특허처럼, AI가 필요에 따라 플레이의 행위 자체에 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접근이다.
두 사례는 모두 ‘막힘’을 줄이고 플레이 경험을 이어가려는 공통된 목적을 공유하지만, AI가 개입하는 지점은 분명히 다르다. Motoko가 플레이어의 시각과 맥락을 이해해 “무엇을 하면 되는지”를 설명하는 AI라면, Ghost Player는 특정 구간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직접 보여주거나 대신 수행할 수 있는 AI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차이는 단순한 기능 비교를 넘어, AI가 게임에서 어디까지 역할을 맡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기존의 게임 보조: 플레이어가 ‘찾아가는’ 방식에서 시작되다
게임에서의 ‘도움’은 오랫동안 게임 외부 생태계를 통해 작동해 왔다. 공략 웹사이트, YouTube 워크스루 영상, 커뮤니티 팁은 이미 게임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았고, 많은 플레이어는 막히는 순간 자연스럽게 이 경로를 활용해 왔다. 구조는 비교적 단순했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잠시 중단하고 화면 밖으로 이동해 정보를 찾은 뒤, 다시 게임으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이 접근의 장점은 분명하다. 어떤 정보를 참고할지, 어디까지 볼지는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한계도 뚜렷하다. 플레이 흐름이 끊기기 쉽고, 원치 않는 스포일러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으며, 필요한 정보만 정확히 골라내는 데 시간이 소요된다. ‘도움’이 게임 경험을 보완하기보다는, 때로는 경험을 분절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마찰을 줄이기 위한 시도가 Sony PS5의 ‘Game Help’였다. Game Help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떠나지 않은 채, 콘솔 내부에서 힌트와 영상을 확인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특히 2024년 이후 확장된 Community Game Help는 사용자가 옵션을 활성화하면 PS5가 특정 활동 완료 시 자동으로 영상을 캡처하고, 이를 모더레이터가 검수해 힌트로 게시하는 구조를 명시한다. 요컨대 도움을 ‘게임 안’으로 끌어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핵심은 사람이 만든 영상과 카드 중심의 정보 제공이며, AI가 플레이를 수행하거나 판단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
현재의 AI 보조: 실시간 조언 시스템으로의 진화
최근 1~2년 사이, 게임 보조는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았다. 핵심은 실시간성이다. 과거처럼 “검색해서 찾아보는 도움”이 아니라, 지금 화면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전제로 즉각적인 조언을 제공하는 방식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Microsoft의 ‘Gaming Copilot’이다. Microsoft에 따르면 Gaming Copilot은 PC Game Bar를 중심으로 성인 이용자를 대상으로 단계적 롤아웃을 시작했으며, 모바일 Xbox 앱과의 연동도 예고됐다. 플레이어는 Voice Mode를 통해 현재 플레이 상황에 대한 질문을 던지거나, 추천, 업적 현황, 플레이 이력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의 본질은 명확하다. AI는 화면과 맥락을 이해해 조언을 제공하지만, 실제 조작과 판단은 플레이어가 수행한다.
NVIDIA의 ‘Project G-Assist’ 역시 같은 ‘조언자’ 범주에 속하지만, 초점은 다르다. G-Assist는 게임 공략 자체보다는 시스템 측면에 집중한다. GPU 병목 현상 진단, 전력 효율 개선, 그래픽 설정 최적화, 성능 지표 시각화 등, 플레이 환경을 최적화하는 역할을 맡는다. 특히 로컬 GPU에서 구동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반응 속도와 오프라인 실행 가능성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이 두 사례를 종합하면, 현재의 AI 보조는 하나의 공통된 원칙을 공유한다. AI는 정보를 해석하고 권장사항을 제시하지만, 플레이를 대신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결정권과 실행은 여전히 플레이어에게 남아 있으며, AI는 경험을 보완하는 실시간 조언자로 기능한다. 이 지점까지가, 기존 게임 보조와 현재 AI 보조가 이어져 온 연속선이다.
새로운 방향 ①: 정보 개입의 확장 — Razer ‘Project Motoko’
CES 2026에서 공개된 Razer의 ‘Project Motoko’는 AI 보조가 개입하는 위치를 게임 클라이언트 밖으로 확장한 사례다. Razer는 Motoko를 Snapdragon 기반의 AI-네이티브 무선 헤드셋 컨셉으로 소개하며, 특정 AI 모델에 종속되지 않고 여러 주요 AI 솔루션과 연동 가능한 범용성을 강조했다.
Motoko의 핵심은 기능보다 입력 구조에 있다. 기존 게임 보조가 화면 캡처나 텍스트·음성 명령에 의존했다면, Motoko는 듀얼 FPV(1인칭 시점) 카메라와 마이크를 통해 사용자의 시각·청각 맥락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Razer가 제시한 시나리오에서 이 카메라는 실시간 오브젝트·텍스트 인식을 수행하며, 번역·요약 같은 일상 기능뿐 아니라 게임 플레이 상황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 Razer의 표현대로라면 "게임에서 AI가 플레이어의 시각과 청각을 공유"하는 셈이다.
Razer가 부스에서 시연한 예시는 이렇다. 보스전 중에 Motoko가 화면을 인식하고, 실시간으로 팁을 음성으로 알려준다. "저 공격 패턴 다음에 빈틈이 생겨요." 플레이어는 게임을 멈추지 않고도 조언을 들을 수 있다. Gaming Copilot처럼 화면에 뭔가 띄우는 게 아니라, 귀로 듣는다.
더 흥미로운 건 Motoko가 게임 바깥까지 커버한다는 점이다. 헤드셋을 쓰고 있으면, 게임을 하든 안 하든 AI가 계속 켜져 있다. 거리를 걸으며 간판을 번역받을 수 있고, 헬스장에서 운동 횟수를 세달라고 할 수도 있다. ChatGPT, Gemini 같은 AI 플랫폼과 연동되어서, 원하는 AI를 골라 쓸 수도 있다.
기존 AI 보조 도구들과 비교하면 차이가 명확하다. Gaming Copilot이나 G-Assist는 플레이어가 불러야 작동한다. 질문을 하거나, 명령을 내려야 한다. Motoko는 항상 켜져 있다. 플레이어가 요청하지 않아도 상황을 보고 있다. 정보 제공이라는 역할은 같지만, 개입의 범위와 방식이 확장된 셈이다.
물론 Motoko는 아직 컨셉이다. Razer 측은 "가까운 미래에 출시할 계획"이라고 했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없다. 하지만 방향성 자체는 주목할 만하다. AI 게임 보조가 소프트웨어에서 하드웨어로, 게임 안에서 게임 밖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신호다.
새로운 방향 ②: 행위 개입 — Sony ‘Ghost Player’ 특허
Motoko가 "더 똑똑한 조언자"라면, Ghost Player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조언을 넘어서 행동까지 대신한다.
Ghost Player는 Sony가 2024년 9월에 출원하고 2025년 4월에 공개된 특허로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막히면, AI가 그 구간을 대신 플레이해주는 것으로, 두 가지 모드가 가능하다. Guide Mode에서는 AI가 어떻게 클리어하는지 시연해 보여주고 플레이어는 그 장면을 구경한 후 플레이를 이어갈 수 있다. Complete Mode에서는 AI가 아예 해당 구간을 클리어해주며, 플레이어가 다시 컨트롤러를 잡을 때는 이미 그 부분이 끝나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고스트"의 외형을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림자 형태일 수도 있고, 애니메이션 캐릭터일 수도 있고, 영화 캐릭터나 다른 게임의 캐릭터일 수도 있다. 플레이어가 직접 만든 캐릭터도 가능하다. AI가 대신 플레이하는 장면을 어떻게 보여줄지까지 설계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AI는 어디서 플레이 방법을 배울까?
특허에 따르면 YouTube나 Twitch의 게임플레이 영상, 그리고 PSN(PlayStation Network) 사용자들의 플레이 데이터가 훈련 데이터로 쓰인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클리어했는지를 학습해서, 막힌 플레이어를 대신해 같은 방식으로 플레이하는 구조다.
시장의 반응은 갈렸다. 비판하는 쪽에서는 "완료 강박이 게임의 최악의 특성을 만들어냈다"고 지적했다. 게임은 클리어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플레이하는 게 목적인데, AI가 대신 깨버리면 의미가 없다는 거다. 훈련 데이터 문제도 제기됐다. PSN 이용약관(6.2조)에 따르면 Sony는 사용자 생성 콘텐츠에 대한 영구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데, 내 플레이 데이터가 AI 훈련에 쓰인다는 게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반면 지지하는 시각도 있다. 한 칼럼니스트는 "끔찍한 스텔스 섹션을 건너뛰기 위해 기꺼이 AI를 쓰겠다"고 썼다. 접근성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손이 불편하거나 반응 속도가 느린 플레이어도 스토리를 끝까지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Ghost Player가 아직 제품이 아니라 특허라는 점이다. Sony가 실제로 이걸 만들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 특허가 보여주는 방향성은 분명하다. AI가 조언자에서 대리인으로 역할을 바꾸는 가능성이다.
두 방향의 대비: 정보 개입과 행위 개입
Motoko와 Ghost Player를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선명해진다.
Motoko는 플레이어에게 정보를 준다. "저 보스는 왼쪽이 약점이에요." 하지만 왼쪽을 공격하는 건 플레이어다. 컨트롤러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하지만 Ghost Player는 행동을 대신한다. "제가 저 보스 잡을게요." 플레이어는 구경하거나, 아예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된다.
둘 다 플레이어가 막히는 구간에서 이탈하는 대신, 어떤 방식으로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주체가 다르다. Motoko에서는 플레이어가 움직이고, Ghost Player에서는 AI가 움직인다.
이 차이를 agency(에이전시), 즉 행위 주체성의 관점에서 보면 더 명확하다. Motoko는 에이전시를 플레이어에게 남겨둔다. 정보는 AI가 주지만, 결정하고 실행하는 건 플레이어다. Ghost Player는 에이전시를 AI에게 넘긴다. 플레이어가 "여기 좀 해줘"라고 결정하면, 실행은 AI 몫이다.
플랫폼도 다르다. Motoko는 게임 클라이언트 바깥에 있다. 헤드셋이라는 외부 디바이스가 게임에 개입한다. Ghost Player는 게임 클라이언트 안에 있다. PlayStation 시스템의 일부로 작동한다. 전자는 서드파티 하드웨어가 게임 UX에 끼어드는 것이고, 후자는 플랫폼 홀더가 게임 경험 자체를 재설계하는 것이다.
핵심 쟁점: 플레이어 에이전시
이 지점부터는 기술의 성능보다 정의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게임에서 ‘플레이’란 무엇인가.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하고 실패를 감수하는 행위가 본질인가, 아니면 플레이어가 경험의 흐름을 끝까지 이어가는 것이 본질인가. Ghost Player는 후자의 정의에 가까운 전제를 깔고 있고, Motoko는 전통적인 전제를 유지한 채 정보 전달의 경로와 맥락 인식만을 확장한다.
중요한 점은 “어디까지가 도움인가”의 경계가 기술 자체로 자동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경계는 게임 디자인(보상, 업적, 난이도, 스킵 정책)과 플레이 문화(자기 규범, 커뮤니티 합의)가 함께 만들어낸다. 같은 기능이라도 어떤 게임에서는 허용 가능한 보조가 되고, 다른 게임에서는 ‘플레이의 본질을 건드리는 개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또 하나의 축은 접근성이다. ‘모든 플레이어가 콘텐츠를 경험할 권리’라는 관점에서 대리 플레이는 좌절을 줄이는 유효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반면, 행위가 빠진 클리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여전히 남는 질문이다. 업적, 리더보드, 기록의 의미는 이 지점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플레이의 정의가 흔들리고 있다
답은 아직 없다. 하지만 질문은 이미 던져졌다.
결국 문제는 "AI가 개입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어떻게, 얼마나 개입하느냐다. 정보를 주는 것과 행동을 대신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 차이가 어디서 결정적이 되는지, 아직 합의된 답은 없다.
Motoko가 "이렇게 하세요"라고 말하고, 플레이어가 그대로 따라 한다면, 그건 누가 플레이한 걸까? Ghost Player가 대신 클리어해주는 것과 본질적으로 뭐가 다를까?
손가락을 내가 움직였느냐 아니냐, 그게 유일한 기준일까?
업적, 리더보드, 스토리 해금. 이 모든 것이 "플레이어가 직접 플레이했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만약, AI가 그 전제를 흔들기 시작하면, 게임이라는 매체는 무엇을 다시 정의해야 할까?
Ghost Player는 특허일 뿐이다. Motoko도 아직 컨셉일 뿐이다.
하지만 둘 다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AI가 게임에 더 깊이 개입하는 미래.
그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정하는 건 기술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걸 정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다.
[METAX =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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