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s Workshop, AI 전면 금지 선언... "인간 창작자를 존중한다"

김하영 기자

hashe@metax.kr | 2026-01-27 09:00:00

워해머 세계관의 'Abominable Intelligence'가 현실이 되다
비용 절감 대신 브랜드 철학을 선택한 Games Workshop의 전략적 결단

[메타X(MetaX)] 2026년 1월 13일, 미니어처 워게임 'Warhammer'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 기업 Games Workshop이 2025-26 회계연도 반기 실적을 발표했다. 핵심 매출 3억 1,610만 파운드, 전년 동기 대비 17.3% 성장. 세전이익 1억 4,080만 파운드로 사상 최대 반기 실적이다. 40년 역사의 Warhammer 프랜차이즈가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주는 수치였다.

https://images.ctfassets.net/ost7hseic9hc/7lRczzQBbvA22PEmSVJN8K/2de2f722e20e1d69b9aa3ed4e1b95678/2025-26_half_year_report_v3.pdf

그러나 이날 투자자들과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재무제표가 아니었다. CEO 케빈 라운트리(Kevin Rountree)가 경영진 보고서(Interim Management Report)에서 명시한 한 문단, 바로 AI에 관한 회사의 공식 입장이었다. 투자자 보고서라는, 통상적으로 건조한 숫자와 전망이 오가는 문서에서 "인간 창작자를 존중한다(respect our human creators)"는 문장이 등장한 것이다.


무엇을 어디까지 금지했나
Rountree CEO는 보고서에서 AI를 "매우 광범위한 주제"라고 전제하며, 스스로 "솔직히 전문가는 아니다"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회사의 입장만큼은 명확하게 정리했다.

"We have agreed an internal policy to guide us all, which is currently very cautious e.g. we do not allow AI generated content or AI to be used in our design processes or its unauthorised use outside of GW including in any of our competitions(우리는 모두를 이끌 내부 정책에 합의했으며, 현재로서는 매우 신중한 접근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 AI 생성 콘텐츠나 디자인 프로세스에서의 AI 사용을 허용하지 않으며, GW 외부에서의 무단 사용—경쟁대회를 포함해—역시 허용하지 않는다)."
— Kevin Rountree, Games Workshop 2025-26 Half-Yearly Report p4, AI 섹션

금지 범위는 포괄적이었다. 미니어처 조형, 일러스트레이션, 게임 규칙서 집필, 세계관 설정 등 Warhammer IP를 구성하는 모든 창작 영역에서 AI 도구의 사용이 배제된다. 여기에 Golden Demon과 같은 공식 경쟁대회에서 참가자들의 AI 사용도 금지 대상에 포함된다.

동시에 회사는 크리에이티브 인력에 대한 투자를 강조했다. Rountree는 "보고 기간 동안 Warhammer Studio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왔다. 콘셉트와 아트부터 글쓰기, 조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더 많은 크리에이티브 인력을 채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들을 "Warhammer를 풍부하고 생생한 IP로 만드는 재능 있고 열정적인 개인들"이라고 표현했다.

다만 완전한 폐쇄는 아니다. 보고서는 "소수의 고위 관리자들이 해당 기술에 대해 탐구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허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면 거부가 아닌 '신중한 관망'의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그러나 핵심 메시지는 분명했다.

 

왜 이 시점인가
Games Workshop의 이번 정책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지난 2년간 Warhammer 커뮤니티에서는 AI 관련 논쟁이 여러 차례 불거졌고, 회사는 그때마다 점진적으로 입장을 정리해왔다.

Golden Demon 논란과 규정 개정
결정적 계기는 2024년 Adepticon에서 열린 Golden Demon 대회였다. Warhammer 40,000 단일 미니어처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한 Neil Hollis의 작품 'Exodite'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미니어처 자체의 페인팅 실력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지만, 문제는 배경이었다. 정글을 묘사한 프린트 배경이 생성형 AI 도구 Midjourney로 제작된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https://www.warhammer-community.com/en-gb/articles/ggMO2ORD/golden-demon-2024-winners-revealed-at-adepticon/

Hollis는 유튜브 채널 'The Painting Phase'와의 인터뷰에서 AI 사용을 인정하면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아마 200개 이상의 프롬프트를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해명은 팬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비판의 핵심은 작업의 난이도가 아니라, Midjourney가 무단으로 수집한 아티스트들의 작품으로 학습되었다는 윤리적 문제였다.

당시 Golden Demon 규정에는 AI 사용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이 없었다. Games Workshop은 즉각적인 성명을 내지 않았지만, 2024년 8월 SPIEL Essen 대회를 앞두고 규정을 개정했다. FAQ에 추가된 질문 "출품작의 어떤 부분에든 AI를 사용해도 되나요?"에 대한 답변은 "아니오(No)." 였다.

Displate Fulgrim 사건
2025년 12월에는 또 다른 논란이 불거졌다. Games Workshop의 라이선스 파트너인 금속 포스터 전문 업체 Displate가 출시한 한정판 Fulgrim 아트워크가 AI 생성 의혹을 받은 것이다. Fulgrim은 Warhammer 40,000 세계관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인 프라이마크로, 최근 새로운 모델과 함께 서사에 복귀하며 팬들의 관심이 집중된 상태였다.

https://displate.com/limited-edition/displate/8629636

유명 Warhammer 유튜버 Luetin09는 해당 제품의 홍보 게시물을 삭제하며 "이미지 일부가 AI로 생성된 것처럼 보인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팬들은 이미지의 특정 부분에서 기하학적 정렬 오류 등 AI 생성물의 전형적인 '적신호'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Displate는 공식 성명을 통해 AI 사용을 부인하며, 문제가 된 부분은 "수정 과정에서 발생한 인간의 실수"라고 해명했다. 회사는 이미 제품을 받은 고객에게 교체품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AI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의혹만으로도 브랜드 신뢰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Games Workshop 입장에서는 내부적으로 아무리 철저한 정책을 갖추더라도, 라이선스 파트너의 행동까지 통제하기 어렵다. 이번 반기 보고서에서 명시적인 AI 정책을 공개한 것은, 이러한 외부 리스크에 대한 선제적 대응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워해머 세계관과의 일치
흥미로운 점은 Warhammer 40,000의 세계관 자체가 AI를 금기시한다는 것이다. 작중에서 인공지능은 'Abominable Intelligence(혐오스러운 지성)' 또는 'Silica Animus'로 불리며, 제국법에 의해 엄격히 금지된다. 기술을 신성시하는 기계교(Adeptus Mechanicus)조차 AI만큼은 이단으로 취급한다.

41번째 천년기의 허구적 금기가 2026년 현실의 기업 정책과 맞아떨어진 셈이다. 물론 Games Workshop이 '완전한 기술 이단'을 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이 우연의 일치가 화제가 되었다.


업계는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Games Workshop의 선택은 동종 업계의 흐름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많은 게임·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AI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금지 정책을 천명한 것은 이례적이다.

Hasbro/Wizards of the Coast: 모회사와 자회사의 줄다리기
테이블탑 RPG의 상징인 Dungeons & Dragons와 Magic: The Gathering을 보유한 Wizards of the Coast는 AI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2023년에는 D&D 소스북 Bigby Presents: Glory of the Giants에 AI 생성 이미지가 포함된 사실이 발각되어 사과하고 해당 이미지를 교체해야 했다.

https://dndstore.wizards.com/us/en/product/820928/bigby-presents-glory-of-the-giants-digital-plus-physical-bundle

Wizards of the Coast 자체는 "D&D는 사람이 사람을 위해 만드는 게임"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며, 프리랜서 계약에 AI 사용 금지 조항을 추가했다. 그러나 모회사 Hasbro의 CEO Chris Cocks는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Cocks는 2024년 9월 골드만삭스 컨퍼런스에서 "개발 내부에서는 이미 AI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히며, "내가 정기적으로 D&D를 플레이하는 30~40명 중 캠페인 개발이나 캐릭터 개발, 스토리 아이디어에 AI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것은 우리가 AI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명확한 신호"라고 주장했다. 그는 AI를 "사용자 생성 콘텐츠의 위대한 평준화 도구"라고 칭하며 낙관론을 펼쳤다.

이 발언은 아티스트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Magic 아티스트 Denman Rooke는 공개 서한을 통해 "만약 Chris Cocks나 Hasbro/Wizards의 다른 고위 임원이 내가, 그리고 다른 아티스트들이 이 게임에 쏟아부은 작업을 'AI로 채굴할 수 있는 콘텐츠'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미래의 창작 에너지를 다른 곳에 쏟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Larian Studios: 기대와 실망 사이
2023년 올해의 게임상을 휩쓴 Baldur's Gate 3의 개발사 Larian Studios 역시 논란에 휘말렸다. 2025년 12월, Bloomberg와의 인터뷰에서 CEO Swen Vincke가 차기작 Divinity 개발에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Vincke는 AI가 "아이디어 탐색,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 콘셉트 아트 개발, 플레이스홀더 텍스트 작성" 등에 사용된다고 설명하며, 최종 게임에는 AI 생성 콘텐츠가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반응은 싸늘했다. 전직 Larian QA 테스터 Anne Methot은 "사람들이 괜찮아한다는 건 거짓말"이라며 내부 갈등을 폭로했고, Baldur's Gate 3에 참여했던 한 아티스트는 "AI 도입 전까지 Larian에서 일하는 것을 사랑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결국 Larian은 2026년 1월 Reddit AMA를 통해 입장을 수정했다. Vincke는 "혼란을 야기한 것을 이해한다"며 "콘셉트 아트 개발 과정에서 생성형 AI 도구 사용을 자제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야 아트의 출처에 대한 논쟁이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역행인가, 전략인가
Games Workshop의 정책을 단순한 '기술 거부'로 보기는 어렵다. 여기에는 명확한 사업적 논리가 있다.

팬덤 기반 IP 비즈니스의 특수성
Games Workshop의 핵심 사업은 플라스틱 미니어처 판매다. 그러나 팬들이 구매하는 것은 단순한 플라스틱 조각이 아니다. 40년에 걸쳐 축적된 세계관, 수천 명의 아티스트와 조각가가 쌓아올린 시각적 정체성, 그리고 '장인이 손으로 만든다'는 브랜드 철학이 제품의 가치를 구성한다.

https://www.warhammer-community.com/en-gb/articles/WlBEImpq/painting-the-lion-how-eavy-metal-tackled-one-of-the-all-time-greats/

Warhammer 취미의 핵심은 직접 조립하고, 직접 칠하고, 직접 플레이하는 것이다. 이 문화에서 '손으로 만든 것'의 가치는 각별하다. 팬들은 Games Workshop의 아티스트가 그린 일러스트, 조각가가 디자인한 미니어처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작품을 만든다. 이 순환 구조에서 AI 생성물이 끼어들 자리는 제한적이다.

신뢰의 경제학
AI 도입이 단기적으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Games Workshop에게 팬 커뮤니티의 신뢰는 단순한 '좋은 평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Warhammer 취미의 진입 장벽은 높다. 스타터 세트 하나가 수만 원, 본격적으로 아미를 구성하면 수십만 원이 들어간다. 팬들은 이 투자를 기꺼이 하는데, 그 바탕에는 "Games Workshop은 품질을 타협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다.

AI 사용 논란은 이 믿음에 균열을 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Displate 사건이 보여주듯, 실제 AI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의혹만으로도 브랜드에 상처가 난다. 명확한 정책을 공표함으로써 Games Workshop은 이러한 리스크를 사전에 차단하고, 팬들에게 "우리는 변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말과 행동의 일치
정책의 신뢰성은 실제 행동으로 뒷받침된다. 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Games Workshop은 2025년 5월 이후 391개의 신규 직책을 추가했다. 이 중 상당수가 Warhammer Studio의 크리에이티브 직군이다. AI 금지를 선언하면서 동시에 인력을 감축했다면 공허한 수사에 불과했겠지만, 채용 확대와 함께 나온 정책이기에 실질적인 무게감을 갖는다.


AI 도입을 넘어, 창작의 책임을 묻는 단계로
Games Workshop의 AI 사용 금지 정책은 완결된 해답이라기보다, 의도적으로 남겨진 질문들을 포함한 선언에 가깝다. 디지털 도구 전반에 AI 기능이 내장되는 현실에서 ‘어디까지가 허용된 도구이고 어디부터가 금지된 AI인가’라는 경계는 여전히 모호하며, 다수의 라이선스 파트너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다. 더 나아가 일부 경영진에게 AI 기술 탐색을 허용한 점은, 이 정책이 영구적 금기라기보다 조건부 선택임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이번 발표의 핵심적 의미는 정책의 지속 가능성보다 그것이 어디에, 어떤 문서에 기록되었는가에 있다. 매출과 성장 전망을 다루는 투자자 보고서에서 CEO가 ‘인간 창작자를 존중한다’는 문장을 명시했다는 사실은, 이 입장이 윤리적 제스처를 넘어 사업 전략의 일부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기의 순수성을 외부에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현재의 Warhammer 세계관과 조형물, 아트워크가 사람의 손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AI가 창작 산업 전반을 뒤흔드는 시대, Games Workshop은 명확한 선을 그었다. 그 선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지, 그리고 다른 기업들이 이를 따를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인간 창작자를 존중한다"는 문장이 기업의 공식 재무 보고서에 등장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시대적 징후이다.


[METAX =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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