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한국, ‘AI 국가 인프라’ 구축 착수
김하영 기자
hashe@metax.kr | 2025-11-05 07:00:00
전력망 이후, 지능망의 시대... 엔비디아와 한국이 함께 그리는 산업의 새로운 지도.
2025년 10월 31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기업 CEO 서밋을 계기로, NVIDIA는 한국 정부 및 삼성전자·SK Group·현대차그룹 등 대기업과 함께 약 26만 개의 최신 AI 칩(GPU) 공급 협약을 공식 발표했다. 이어 11월 2일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도하고 삼성전자, SK텔레콤, KT, LG Uplus,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연세대학교, NVIDIA 간에 AI-RAN(지능형 기지국) 기술의 공동연구 및 실증을 위한 업무협약(MOU)체결 소식도 전해졌다.
이처럼 연산 인프라(칩)와 통신 인프라(기지국 기술)가 동시에 결합하는 움직임은, AI 인프라를 더 이상 단순한 기술 요소로 보지 않고 국가 기반시설의 일환으로 편입시키려는 전략적 전환의 시작이라 볼 수 있다. NVIDIA의 젠슨 황 CEO는 “가속 컴퓨팅 인프라는 전력망과 광대역처럼 국가 인프라의 필수 요소”라고 강조하며, 한국이 소프트웨어와 제조 역량을 갖춘 국가로서 AI 생태계의 핵심 허브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현재 글로벌 기술 경쟁의 초점은 ‘모델 개발’에서 ‘국가 단위의 자립적 AI 인프라 구축’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도 이번 협약을 통해 AI 인프라 수출국이자 산업 설계국가로의 전환을 본격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NVIDIA가 한국을 핵심 파트너로 선택한 것은, 첨단 제조력과 통신·서비스 운용 능력을 겸비한 한국이 AI 산업화의 실험 무대이자 생태계 확산의 거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칩 공급 협력을 넘어, AI 인프라가 산업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산업 구조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칩에서 '에코 시스템'으로
공개된 보도에 따르면 NVIDIA는 한국 정부 및 주요 대기업(Samsung Electronics, SK Group, Hyundai Motor Group 등)과 함께 약 26만 개의 고성능 AI 칩(GPU) 공급 협약을 체결했다. 이 거래는 단순한 칩 수출을 넘어, 한국이 AI 연산 인프라를 국가 차원에서 확보하는 이정표로 여겨진다.
또한 정부와 대기업은 함께 데이터센터 구축, GPU 클러스터 응용, 전력·열 관리 시스템 등이 포함된 ‘AI 전력망’ 형태의 인프라를 마련 중이다. NVIDIA의 젠슨 황 CEO는 “가속 컴퓨팅 인프라는 전력망과 광대역 통신망만큼이나 필수적인 인프라가 되고 있다(Accelerated computing infrastructure becomes as vital as power grids and broadband).”라고 언급하며, 생태계 구축을 강조했다. 이 말은 단순히 칩을 공급하는 것을 넘어, 하드웨어·소프트웨어·서비스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AI 생태계 패키지 수출로 전략이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AI 제조·AI 연구·AI 서비스가 유기적으로 순환하는 AI 산업 허브의 실험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AI-RAN, AI가 통신을 학습하는 시대
앞서 언급했듯,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도로 삼성전자·이동통신 3사(SK텔레콤, KT, LG유플러스)·ETRI·연세대학교·NVIDIA가 참여한 ‘AI-RAN(지능형 기지국) 기술 공동연구 및 실증 MOU’ 체결 소식도 전해졌다.
AI-RAN은 이동통신 기지국에 GPU와 같은 고성능 연산 자원을 결합해, 네트워크 자체가 데이터를 학습하며 스스로 운영 효율을 최적화하도록 설계된 기술이다. 즉, 네트워크가 더 이상 단순 신호 전달 인프라가 아니라, AI 컴퓨팅의 일부로 편입되는 구조적 전환을 뜻한다.
이번 협력은 6G 시대를 앞두고 ‘AI 네트워크 자율화’와 ‘피지컬 AI(Physical AI)’를 동시에 추진하는 포석으로 평가된다. 기지국의 연산 능력이 확장되면, AI는 통신망을 통해 로봇·무인이동체·스마트팩토리 등 물리적 시스템을 실시간 제어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AI의 두 신경망(Compute Fabric과 Network Fabric)이 국가 단위에서 병렬로 진화하기 시작한 셈이다.
이로써 한국은 GPU 인프라와 통신망을 동시에 지능화하는 ‘AI 국가 아키텍처’의 초기 모델을 실험하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AI 인프라의 통합 전략: 제조국에서 AI국가로
한국은 지금, 두 개의 축을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하나는 GPU 공급을 통한 연산 인프라 확보, 또 하나는 AI-RAN 협력을 통한 통신 인프라 혁신이다. 이 두 흐름이 맞물리면서, 한국은 이제 “AI가 작동하는 산업”을 만드는 수준을 넘어, “AI가 산업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방향을 국가 전략으로 명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한국을 ‘AI 3대 강국’이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AI 허브로 도약시키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이 비전의 핵심은 단순히 기술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활용해 산업 전체를 재구성하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글로벌 민간과 공공의 협력망도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NVIDIA를 비롯해 블랙록(BlackRock), 오픈AI(OpenAI) 등 주요 기업과 기관이 한국을 중심으로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으며, AI 인프라–자본–모델–산업이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 흐름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기술 경쟁에서 앞서는 것이 아니다.
AI를 국가 산업의 설계 언어로 삼아, 산업 생태계의 구조와 방향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주권을 확보하는 것, 그것이 한국이 그리고 있는 ‘AI국가’의 그림이다.
‘AI 인프라 주권’을 향한 국가 전략의 진화
이번 일련의 협력은 단순한 칩 거래나 기술 제휴가 아니다.
이는 산업 구조의 재편을 선언하는 사건이자, 국가 전략의 방향 전환을 알리는 분기점이다. NVIDIA는 한국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AI 에코시스템 허브’로 지정하며, 한국의 제조력과 기술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한국 역시 이러한 협력을 발판으로 AI 산업화의 모델 국가, 즉 산업이 AI로 설계되는 구조적 변화를 주도하는 실험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제 AI 인프라는 더 이상 특정 산업의 기술적 도구가 아니다.
국가의 경쟁력과 주권을 결정짓는 전략 자산, 즉 전력망이나 통신망에 버금가는 ‘지능의 기반시설’로 인식되고 있다. 전력망이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했듯, AI 인프라는 앞으로의 세대가 살아갈 지능혁명(Intelligence Revolution) 의 토대가 될 것이다.
결국, 누가 더 많은 모델을 만드는가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이제는 누가 더 단단하고 자립적인 AI 인프라를 구축하느냐, 그리고 그 인프라를 통해 어떤 산업 질서를 설계하느냐가 국가의 미래를 가르는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METAX =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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