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의 e스포츠 대회가 사우디에서 열린 이유

김하영 기자

hashe@metax.kr | 2025-09-10 11:00:01

글로벌 다극화 시대를 이끄는 'EWC'
e스포츠의 미래는 어디로 향하는가

2025년 7월 8일부터 8월 24일까지, 이스포츠 월드컵(Esports World Cup, EWC)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대회는 단순한 토너먼트가 아니었다. 약 7주간 이어진 이번 대회에는 전 세계 수백 개 팀과 수천 명의 선수가 참가했고, 전 세계 수천만 명의 팬들이 온라인과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보았다. 총상금은 무려 7,045만 달러에 달해 기존 국제 대회를 훌쩍 뛰어넘는 기록을 세웠으며, 참가 종목 또한 25개 이상으로 다양해졌다. 종목은 전략 게임부터 FPS, 격투, 심지어 체스까지 아우르며, e스포츠가 단순한 게임을 넘어 하나의 글로벌 종합 스포츠 이벤트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번 대회는 단일 경기 우승에 그치지 않고, 종합 성과를 평가하는 클럽 챔피언십 제도를 도입해 팀 단위의 경쟁을 한 단계 더 진화시킨 것이 특징이었다.

https://esportsworldcup.com/en/news/the-biggest-surprises-from-ewc-25

글로벌 다극화 시대를 이끄는 'EWC'

이번 대회에서는 종목별 챔피언이 속속 탄생하며 각국의 e스포츠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클럽 챔피언십 종합 우승은 개최국 사우디의 Team Falcons가 차지하며 700만 달러라는 거액의 상금을 거머쥐었다. EWC는 종합 포인트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특정 종목에 치중한 팀보다 다양한 종목에서 점수를 꾸준히 쌓은 팀이 유리했는데, Team Falcons은 Overwatch 2 우승, Dota 2, 체스, PUBG, Rocket League, CS2 등 다양한 종목에서 준우승·3위권 등을 차지하며 고른 포인트를 확보했고 이것이 종합 우승까지 연결되었다.

개별 종목에서도 흥미로운 결과가 이어졌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한국의 Gen.G가 결승에서 AG.AL을 꺾고 정상에 올랐고, 탑 라이너 김기인이 대회 MVP로 선정되며 한국 LCK의 저력을 다시금 입증했다. Valorant에서는 유럽의 Team Heretics가 Fnatic을 제압하며 국제 무대에서 존재감을 각인시켰고, PUBG Mobile에서는 미얀마의 Yangon Galacticos가 예상 밖의 돌풍을 일으키며 첫 메이저 우승을 기록했다.

https://esportsworldcup.com/en

흥미로운 장면은 전통 스포츠의 영역에서도 연출됐다. 체스 종목에서 노르웨이의 마그누스 칼센이 우승을 차지하며, 디지털 플랫폼과 전통 지적 스포츠가 같은 무대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진기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격투 게임 부문인 Street Fighter 6에서는 중국의 Xiaohai가 치열한 결승 끝에 챔피언 자리에 올랐고, 배틀 로얄 장르인 PUBG: Battlegrounds에서는 사우디의 Twisted Minds가 홈 팬들의 열렬한 응원 속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개최국의 체면을 세웠다.

이처럼 우승 트로피는 한국, 유럽, 아시아 각지에 고르게 분포하며 단일 지역의 독주가 아닌 글로벌 다극화 시대로 접어든 e스포츠의 흐름을 보여주었다. 각 팀과 선수들의 성취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e스포츠가 더 넓은 무대에서 다양한 문화와 지역의 경쟁을 수용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세계 최대 규모의 e스포츠 대회가 사우디에서 열린 이유

사우디 리야드가 세계 e스포츠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국가 차원의 장기 전략과 막대한 자본이 있었다. 사우디 정부는 Vision 2030을 통해 석유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 디지털과 콘텐츠 산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했다. 이 전략 아래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단행되었고, 글로벌 e스포츠 기업 인수와 초대형 대회 유치로 이어졌다. 동시에 사우디는 전통적으로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이미지를 벗고, 문화와 스포츠를 통해 세계와 연결되는 새로운 허브로 자리매김하려 했다. 특히 e스포츠는 젊은 세대와 글로벌 팬덤을 동시에 끌어들이기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https://esportsworldcup.com/en/news/ewc-closing-ceremony-celebrates-team-falcons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는 이미 전 세계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우디는 2022년 세계 최대 e스포츠 운영사인 ESL과 FACEIT을 인수하며 글로벌 대회 운영권을 사실상 장악했고, 2023년에는 미국의 모바일 게임사 Scopely를 약 49억 달러에 인수해 'Monopoly GO!'와 같은 흥행작을 통해 세계 모바일 시장에서도 입지를 굳혔다. 또한 Gamers8을 Esports World Cup으로 확장하며, Riot Games(LoL· Valorant), PUBG, Capcom(Street Fighter 6) 등 주요 글로벌 퍼블리셔와 직접 협력해 국제 무대에서의 위상을 높였다.

한국과의 연결도 뚜렷하다. 2025년 대회 현장에서는 사우디 관광개발사 Red Sea Global이 한국 대표 구단 T1과 3년간의 후원 계약을 체결해 상징적인 파트너십을 성사시켰고, 사우디 국부펀드(PIF)는 넥슨 지분을 약 10% 가량을 확보하며 한국 게임 산업에도 전략적으로 발을 들였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 인수–퍼블리셔 협력–구단 파트너십–지분 투자로 이어지는 다층적 행보 덕분에, 사우디는 단순히 개최국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 e스포츠 생태계의 투자자이자 운영자, 그리고 플랫폼 제공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러한 복합적 전략이야말로 사우디가 단숨에 세계 최대 규모의 e스포츠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었던 결정적 배경이다.

이 거대한 흐름의 중심에는 새비 게임즈 그룹(Savvy Games Group)이 있다. 이 회사는 단순한 게임사가 아니라,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전액 출자해 설립한 게임·e스포츠 투자 지주사다. 새비 게임즈 그룹(Savvy Games Group)은 세계적인 모바일 퍼블리셔 스코플리(Scopely)를 인수하고, 글로벌 e스포츠 리그를 운영하는 ESL FACEIT Group을 보유하면서 국제 무대의 주도권을 손에 넣었다.            또한 ESL, DreamHack, IEM과 같은 대형 대회를 직접 운영하며 이미 세계 e스포츠 시장의 약 40%를 점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에 따른 성과도 눈부시다. 스코플리(Scopely)의 모바일 게임 'Monopoly GO!'는 출시 1년 만에 3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며 Savvy의 투자 전략이 단순한 자본 투입을 넘어 실제 성과로 이어지고 있음을 증명했다.

결국 새비 게임즈 그룹(Savvy Games Group)은 특정 타이틀을 제작하는 개발사가 아니라, 글로벌 e스포츠 생태계를 설계하고 지배하는 조정자의 위치에 서 있다. 사우디가 세계 최대 규모의 e스포츠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조직적·전략적 배경 덕분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2028
시장 조사 기관 Niko Partners의 분석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게임 시장은 2024년 약 11억 9천만 달러에서 2028년 16억 4천만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연평균 성장률 8.2%라는 안정적인 확장세로, MENA(중동·북아프리카) 지역 전체 성장세를 견인하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단순한 시장 규모 확대에 그치지 않고, 정부 차원에서도 야심 찬 목표를 제시했다. 국가 게임·이스포츠 전략(National Gaming & Esports Strategy)을 통해 2030년까지 게임·이스포츠 산업이 GDP에 133억 달러를 기여하고, 3만 9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청사진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이스포츠 월드컵 같은 대형 행사가 단순히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라, 산업적 도약과 국가 브랜드 전략의 일환으로 기획되었음을 보여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미 세계적 기업 인수, 퍼블리셔와의 협력, 글로벌 구단과의 파트너십, 해외 게임사 지분 투자 등을 통해 생태계를 다층적으로 장악해 왔다. 따라서 이번 EWC는 ‘한 번의 쇼’가 아니라, 2028년을 넘어 2030년까지 이어질 장기적 산업 로드맵의 일부로 읽힌다.

 
e스포츠의 미래는 어디로 향하는가
2025년 리야드에서 열린 이스포츠 월드컵은 e스포츠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장면을 남겼다. 세계 각국의 팀들이 우승 트로피를 나눠 가지며 글로벌 다극화 흐름을 증명했고, 개최국 사우디는 그 무대를 통해 스스로를 ‘e스포츠 강국’으로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물론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국부펀드를 기반으로 한 막대한 자본력이 글로벌 e스포츠의 흐름을 특정 국가 중심으로 재편한다는 점은 공정성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낳는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의 e스포츠 산업이 보여주는 규모와 다양성은 대규모 자본과 전략적 투자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도 부정하기 어렵다.

결국 이번 대회는 사우디가 세계 e스포츠 판도를 흔드는 새로운 주역으로 부상했음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e스포츠가 더 이상 단순한 오락이나 엔터테인먼트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 전략과 글로벌 정치·경제 질서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산업으로 성장했음을 입증했다. 앞으로의 e스포츠는 단순한 경기장을 넘어, 문화와 경제, 그리고 국제 관계가 교차하는 21세기형 글로벌 무대로 진화해 갈 것이다.



[METAX =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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