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더 이상 전기로 계산하지 않는다

김하영 기자

hashe@metax.kr | 2025-04-10 07:00:00

美스타트업 Lightmatter, ‘고성능 광자 슈퍼칩’ 발표
Lightmatter가 여는 ‘빛의 시대’

AI 반도체의 차세대 전장으로 '칩 간 인터커넥트(interconnect)'가 부상하고 있다.

데이터 흐름의 병목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 스타트업 Lightmatter‘빛’을 데이터 통신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전기 대신 광자를 활용한 이들의 기술은 AI 컴퓨팅 패러다임을 근본부터 재편할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데이터 흐름의 판을 바꾸는 ‘광자’의 등장

AI 산업이 초거대 모델 중심으로 전환됨에 따라, 컴퓨팅 성능을 결정짓는 요소는 단순한 프로세서의 속도가 아니다.

여러 개의 고성능 칩들이 어떻게, 얼마나 빠르게 상호작용하느냐가 바로 ‘칩 간 인터커넥트(Interconnect)’가 핵심이 되고 있다.

특히 수천 개의 AI 연산 유닛이 병렬로 연결되는 데이터 센터와 AI 슈퍼컴퓨터에서는 이 구조의 효율성이 전체 시스템 성능을 좌우한다.

이 지점에서 주목받는 것이 바로 미국 보스턴 기반 스타트업 Lightmatter다. 이들은 전기 대신 빛, 즉 광자(Photon) 를 이용한 새로운 인터커넥트 방식을 선보이며, AI 반도체 산업의 미래 방향성을 전면 재정의하고 있다.

실리콘 포토닉스(Silicon Photonics) – 속도, 효율, 확장성의 삼위일체

Lightmatter의 기술은 실리콘 포토닉스(Silicon Photonics) 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기술은 실리콘 위에 광자 회로를 집적하여, 전자 회로 대신 빛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구조다.

기존의 전기 신호는 회로를 통과하는 동안 열을 발생시키고, 에너지 소모도 크며, 대역폭 한계에 봉착한다. 하지만 광자는 질량이 없고 빛의 속도로 이동하므로, 훨씬 빠르며 병목 현상도 없다.

특히 AI 시스템처럼 고대역폭이 요구되는 환경에서는 이러한 장점이 결정적인 차별점을 만들어낸다.

광자 기반 인터커넥트는 열 발생 최소화, 에너지 효율 향상, 지연(latency) 최소화를 동시에 실현하며, AI 하드웨어의 ‘지속 가능한 확장성’을 담보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광자 인터커넥트 플랫폼 'Passage™ M1000’

2025년 Lightmatter가 공개한 Passage M1000은 업계에서 가장 빠르고 확장성 있는 포토닉 인터커넥트 플랫폼으로 평가된다.

https://lightmatter.co/press-release/lightmatter-unveils-passage-m1000-photonic-superchip-worlds-fastest-ai-interconnect/

Passage M1000은 광자 인터포저(Photonic Interposer), 칩렛(Tile or Chiplet), 광학 스위치(Photonic Switch), 광섬유 입출력 채널(Optical IO) 등으로 구성된 고성능 포토닉 인터커넥트 플랫폼이다. 이 시스템은 여러 개의 칩렛을 초고속 광자 경로로 연결함으로써, 하나의 대형 AI 가속기처럼 동작하도록 설계되었다. 최대 114Tbps의 대역폭을 제공하며, 8개의 칩렛을 통합한 멀티다이 패키지 구조를 통해 확장성과 성능을 동시에 실현한다.

https://lightmatter.co/products/m1000/

구체적으로, M1000은 총 1,024개의 직렬 데이터 채널과 256개의 광섬유 라인을 통합하고 있는데, 이는 고성능 GPU나 AI 가속기보다 훨씬 높은 데이터 병렬성과 처리량을 제공하며, 동시에 데이터 전송 시 발생하는 지연을 획기적으로 줄인다.

또한 Lightmatter는 이 플랫폼에 자사의 광학 스위치 및 칩렛 기술을 통합함으로써, 단순히 속도만 빠른 것이 아니라 칩 설계의 유연성과 확장성까지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기술의 핵심: 인터포저와 칩렛 아키텍처

Lightmatter의 이번 발표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핵심은 바로 광자 기반 인터포저(interposer)와 칩렛(chiplet) 아키텍처다.

우선 인터포저는 칩이 장착되는 베이스 레이어를 뜻하며 여러 칩을 동시에 연결하게 한다. Lightmatter의 광자 인터포저는 전자적 경로 대신 광자 경로(photonic pathways)를 사용하여 초고속 통신을 가능하게 한다. 이 인터포저는 GlobalFoundries와 협력하여 2025년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이다.


칩렛은 하나의 큰 칩을 여러 개의 모듈로 나누는 설계로, 설계와 생산의 유연성을 제공한다. Lightmatter는 이 칩렛 위에 광자 회로를 얹어, 기존 전자 기반 칩 대비 에너지 효율성과 통신 속도에서 월등한 성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이 칩렛은 이미 2026년 상용화가 예정되어 있다.

AI 산업이 맞닥뜨린 병목: 전기에서 빛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AI 산업이 GPT-4, Gemini, Claude와 같은 초대형 모델을 처리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면서, 메모리 대역폭과 인터커넥트 병목 현상은 가장 큰 기술적 장벽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의 NVIDIA, AMD, Intel 등의 반도체 거인들조차도 전기 기반 인터커넥트에서 비롯되는 에너지 소비와 속도 한계를 피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Lightmatter의 광자 기반 접근법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AI 인프라의 근간을 재정의할 수 있는 잠재력을 품고 있다. 광자 기술이 상용화되고 표준으로 자리잡게 된다면, 앞으로의 AI 컴퓨팅은 더 이상 전기 중심이 아닌, 빛의 속도에 가까운 연산 환경을 지향하게 될 것이다.

젠슨 황의 선언과 ‘빛의 시대’ 신호탄

Lightmatter의 발표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서, AI 반도체 산업이 ‘스케일링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새로운 해법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NVIDIA의 젠슨 황 CEO는 최근 GTC 2025 기조연설에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강조했다.

"We have reached the end of general-purpose computing. The future belongs to accelerated computing."(우리는 범용 컴퓨팅의 끝에 도달했고, 미래는 가속화 컴퓨팅의 것이다.)

이 발언은 GPU의 지배력이 계속될 것임을 강조한 동시에, 지금의 전기 기반 시스템 아키텍처에 대한 재구성 필요성을 시사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또한 'AI 팩토리(AI factories)' 개념을 언급하며, 초대형 데이터 흐름을 감당할 새로운 방식의 인터커넥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Lightmatter의 광자 기술은, AI 인프라의 근본적인 병목 문제에 대한 시기적절한 해답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이 기술은 전통적인 CPU 및 GPU 기반 컴퓨팅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광 기반 병렬 연산 구조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AI 하드웨어 아키텍처를 제시한다.  TSMC나 Samsung과 같은 대형 파운드리의 수율 제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칩렛 기반 확장성을 확보했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또한, 실리콘 전송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전력 효율성, 발열 관리, 신호 손실 감소 등의 이점은 AI 칩의 성능과 안정성을 동시에 개선하는 기반이 된다. 이러한 요소들을 종합해볼 때, Lightmatter의 기술은 단지 하나의 기업의 성공을 넘어서, AI 칩 설계 철학 자체를 전환시키는 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AI 칩의 미래, ‘빛’에 달려 있다.

Lightmatter의 기술은 아직 초기 상용화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그 기술적 잠재력과 전략적 위치는 업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포토닉스가 본격적으로 AI 칩의 연결 구조에 도입된다면, 이는 단순한 성능 향상을 넘어, AI 하드웨어의 물리적 한계와 전력 소모라는 구조적 병목을 해소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나아가, 이는 하드웨어 설계뿐 아니라 AI 시스템 전체의 아키텍처 철학(데이터 이동, 병렬 처리, 에너지 모델링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AI는 전자의 흐름 위에 구축되어 왔지만, 다가올 시대의 AI는 ‘빛’을 연산의 기본 단위로 삼는 새로운 물리적 질서 위에 놓이게 될 것이다.

전기의 시대를 넘어, 이제 AI는 빛으로 계산하고, 빛으로 소통하며, 그 속도로 진화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METAX =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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