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 스위치2 예약 대란, 그날의 기록
김하영 기자
hashe@metax.kr | 2025-06-05 09:00:00
게임은 결국 놀이, 놀이의 본질을 재정의한 닌텐도의 힘
2025년 상반기, 닌텐도는 차세대 콘솔 ‘스위치2’를 발표하며 다시 한 번 전 세계 게이머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그 시작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미국의 새로운 관세 정책으로 인해 출시 일정과 가격 책정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고, 업계 전반에선 “닌텐도도 결국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닌텐도는 정면 돌파를 택했다. 가격 인상 없이, 계획대로 출시를 강행한 것이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예약 판매 개시와 동시에 미국 주요 유통사 웹사이트는 순식간에 접속 마비 상태에 빠졌고, 모든 모델이 수 분 만에 품절됐다. 중고 거래 사이트에선 예약권조차 웃돈을 얹어 거래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관세, 공급망 불안, 서버 폭주라는 삼중 악재 속에서도 닌텐도는 ‘브랜드 신뢰’ 하나로 그 모든 위기를 ‘기회’로 바꿔냈다.
닌텐도는 어떤 회사였나....
닌텐도(Nintendo)는 1889년 야마우치 후사지로가 설립한, 일본 교토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비디오 게임 및 콘솔 제조 기업이다. 닌텐도의 원래 이름은 ‘야마우치 닌텐도’였으며, 일본 전통 화투(하나후다) 제조업체로 출발했다. 1902년엔 일본 최초로 서양식 트럼프 카드를 제작했고, 1907년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며 일본 최대의 카드 회사로 성장했다. 1953년 일본 최초로 플라스틱 트럼프를 생산했고, 1959년에는 월트 디즈니와 캐릭터 사용 계약을 맺어 디즈니 캐릭터 트럼프를 출시, 어린이 시장을 개척했다.
1960년 대, 화투와 카드 사업만으로는 더 이상 큰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닌텐도는, 일본 사회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선다. 그렇게 운수업, 러브호텔, 인스턴트 식품 등 다양한 사업에 도전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대부분 실패했다. 결국 장난감 산업에 집중하기로 한 닌텐도는, 1966년 ‘울트라 핸드’ 등 혁신적인 완구를 출시해 성공을 거뒀다. 이후 1980년엔 요코이 군페이(게임 디자이너, 비디오 게임 개발자)의 ‘게임&워치(닌텐도 최초의 휴대용 게임기)’ 시리즈와 게임 보이(8비트 휴대용 게임기) 등으로 본격적인 비디오 게임 산업 진입에 성공했다.
그리고 1983년에 출시한 패미컴(가정용 게임기)과, 전설의 개발자 '미야모토 시게루(현 대표이사/전무 겸 정보개발본부장)'의 ‘동키콩’(1981), ‘슈퍼마리오’(1985), ‘젤다의 전설’(1986) 등의 게임 팩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며 콘솔 게임 시장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그렇게 꽃길만 걸을 것 같았던 닌텐도였지만, 2010년대 들어 스마트폰 게임의 급부상이라는 거대한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수많은 게임사가 모바일 중심으로 전략을 전환하는 가운데, 닌텐도 역시 적지 않은 압박을 받았다. 그러나 닌텐도는 스마트폰 게임 시장에 완전히 "갈아타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사 콘솔 중심의 독립 전략을 고수하며, ‘왜 닌텐도인가’라는 물음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답을 이어갔다. 이 전략에 대해 닌텐도 경영진은 여러 차례 이렇게 말해왔다.
“닌텐도의 핵심 전략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어우러진 독특한 게임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누구나 갖고 있는 보편적 기기지만, 닌텐도는 그 안에서 구현할 수 없는 차별화된 경험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보았다. 조이콘의 촉감, 가족 중심의 멀티플레이, 몸을 움직이며 즐기는 게임 설계 등은 단지 프로그램이 아니라, 물리적 인터랙션을 전제로 한 놀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닌텐도는 모바일 게임을 자사 콘솔 게임의 입문용 체험판 혹은 IP 확장의 수단 정도로만 활용하며, 본질적인 경쟁력은 어디까지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통합에서 나온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결국, 거치형과 휴대형의 경계를 허문 ‘닌텐도 스위치’가 성공을 거두면서 닌텐도의 전략이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철학적 일관성과 소비자 신뢰에 기반한 선택이었음을 증명해냈다.
'경험'과 '기억'이 소비자를 이끈다.
닌텐도는 언제나 기술이 아닌 ‘놀이’를 설계해온 브랜드다. 그들은 “무엇이 더 재미있는가”라는 질문을 반복했고, 그 끝에서 Wii의 모션 센서, DS의 듀얼 스크린, 스위치의 조이콘 같은 창의적 장치를 만들어냈다. 하드웨어 뿐만이 아니다. 마리오, 젤다, 포켓몬으로 대표되는 IP는 단순한 캐릭터를 넘어 세대를 아우르는 ‘놀이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이들의 게임은 단순한 조작을 넘어, 정서와 리듬, 이야기와 상호작용이 직조된 감정적 경험을 제공하며 문화적 자산으로 축적되었다.
닌텐도가 판매하는 것은 단순한 콘솔이 아니다. 반복 가능한 감정 경험, 그리고 브랜드와 함께 쌓이는 기억이다. 닌텐도 디렉트 같은 발표조차 하나의 쇼처럼 소비되며, 사용자는 제품이 아니라 ‘다음’을 기다린다. 콘텐츠로 감정을 설계하는 닌텐도의 방식은 소비자를 팬으로 만들고, 이 팬덤은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충성도로 나타난다. 스위치2의 예약 대란이 바로 그 증거다. 기술이 아닌 신뢰, 사양이 아닌 감정이 소비를 이끈 것이다.
결국 닌텐도는, 기술이 아닌 이야기로, 성능이 아닌 감정으로 소비자를 설득해왔고 그것이 바로 아무리 빠른 기술도 따라잡을 수 없는 브랜드의 진짜 힘이 된 것이다.
게임은 결국 놀이, ‘놀이의 본질’을 재정의한 닌텐도
닌텐도의 차별성은 성능이 아닌 철학에서 비롯된다. 이들에게 콘솔은 목적이 아니라 ‘놀이’를 가능케 하는 매개체이며, 진화 또한 단순한 기능 확장이 아니라 경험의 계승이다. 2025년 출시된 스위치2는 기존 게임과의 완전한 하위 호환을 제공하며, “우리는 당신의 시간을 폐기하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선택이 아닌, 사용자와의 감각적 연속성을 지키려는 정서적 배려다. 조작 방식, UI, 흐름까지 익숙함을 유지하려는 설계는 사용자의 기억과 감정의 맥락을 지켜낸다. 닌텐도는 하드웨어의 진보보다는 관계의 유지에 주목하며, 게임 산업이 놓치기 쉬운 ‘놀이의 본질’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드문 기업이다.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용자와 함께 쌓아온 추억이며, 그 기억을 이어가려는 닌텐도의 태도야말로 이 회사를 '놀이의 본질을 재정의하는 특별한 기업'으로 만들어주는 힘인 것이다.
한국 게임 산업에 던지는 시사점
이러한 닌텐도의 행보는 한국 게임 산업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지금까지 국내 게임 기업들은 그래픽, 스펙, BM(수익 모델) 경쟁에 집중해왔지만, 사용자와의 ‘관계 설계’에는 상대적으로 무심한 모습을 보여왔다. 특히 서비스형 게임의 경우, 유저 피드백 반영이 지연되거나, 기대를 저버리는 업데이트가 반복되며 신뢰를 잃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오딘: 발할라 라이징', '블레이드 앤 소울 2', '히트2' 등이 있다. 이들 게임은 초반 기대감과 화려한 마케팅으로 높은 사전 예약 수치를 기록했지만, 출시 이후 과도한 과금 유도, 반복 콘텐츠, 운영의 일방성 등으로 인해 유저 불만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실제로 구글 플레이 리뷰나 커뮤니티 반응을 보면, “게임보다는 결제 시스템을 설계한 것 같다”는 냉소적인 반응이 적지 않다.
반면, 같은 해의 닌텐도는 《젤다의 전설》 35주년을 기념하며, 특별한 방식으로 자사 IP의 가치를 되새겼다. 바로 1980년대 휴대용 게임기였던 ‘게임&워치(Game & Watch)’ 시리즈를 복각해, 클래식 젤다 타이틀(《젤다의 전설》 1/2편, 《링크의 모험》)을 담은 특별 기기를 출시한 것이다.
이는 단지 과거 게임을 다시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역사와 유저의 추억을 연결하는 ‘감성적 기획’이 중심이었다. 이 제품은 최신 콘솔이나 고사양 스펙과는 거리가 멀었고, 인터페이스는 단순했으며, 시스템 역시 예전 그대로였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기획의 핵심이었다. 닌텐도는 최신화나 고도화보다, 그 시절의 기억을 소장하고픈 팬들의 감정에 집중했다. 약 $49.99라는 비교적 낮은 가격에 출시된 이 복각판은, 수익보다는 상징과 스토리텔링의 힘을 선택한 닌텐도의 철학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제품이었다. 게임을 팔기보다, 시간을 팔았고, 그 안에서 소비자는 단순한 이용자에서 팬으로, 또 다시 공동의 기억을 공유하는 ‘참여자’가 되었다.
사실, 한국 게임 시장은 IP 확장 전략에서도 아쉬움을 보인다. 닌텐도는 자사 캐릭터들을 단일 게임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와 기기를 통해 브랜드 유니버스를 확장시켜왔다. 한국 게임업계 역시 IP 확장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여러 차례 시도해왔다. 그러나 닌텐도처럼 성공적인 'IP 유니버스'를 형성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단순히 확장을 시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확장의 방식과 철학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닌텐도의 마리오, 젤다, 포켓몬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사용자 경험의 정서적 축이다. 이들은 게임 속 조작감, 음악, 세계관, 서사와 긴밀히 엮여 있어 새로운 장르나 미디어로 확장해도 유저가 정서적으로 따라올 수 있다. 반면 한국의 다수 IP는 단순 외형(캐릭터 비주얼) 혹은 배경 설정에만 의존한 확장이 많아, 콘텐츠 간 연속성과 감정적 몰입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넥슨의 1인칭 슈팅게임 ‘서든어택’은 그 인기에 힘입어 웹툰, 모바일게임 등 다양한 확장을 시도했지만, 본 게임의 감각적 조작성과 유저 경험을 확장판에서는 제대로 재현하지 못했다. 캐릭터나 이벤트는 확장됐지만, 세계관이나 감정적 유대가 부족해 타 매체에서 생명력을 얻지 못했다. 펄어비스의 '검은사막'도 마찬가지다. MMO로서 전 세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해당 IP를 활용한 애니메이션, 소설 등의 확장 시도는 극히 제한적이다. 일부 굿즈 제작이나 스핀오프 모바일 게임은 있었지만, 세계관 기반의 다매체 서사 구축이나 캐릭터 중심의 정체성 확장이 없어, IP로의 진화보다는 브랜드 유지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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