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의 경계선③] 유통업, 오프라인의 몰락과 재고의 저주
X 기자
metax@metax.kr | 2025-04-24 13:00:00
국내 유통업계의 구조적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팬데믹 이후 반짝 회복세를 보였던 오프라인 유통 채널은 다시금 소비 위축과 고정비 부담에 짓눌렸고, 온라인 플랫폼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소비 트렌드의 중심축이 이동 중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매출 감소와 시장 점유율 하락이라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는 곧 "재고의 저주"라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재고의 저주'는 판매되지 않은 과잉 재고가 기업의 재정 건전성과 운영 효율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뜻한다.
실제로 KCCI 한국소비자인증이 발간한 '2023년 국내 사업자 폐업율 분석 및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자영업자의 창업 5년차 폐업률은 66.2%로, OECD 평균(54.6%)보다 현저히 높은 수준이다. 이는 단순한 경기 침체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리스크의 신호로 해석된다.
특히 홈플러스와 같은 대형 유통업체의 경영난, 중소 프랜차이즈 및 로드숍의 잇따른 폐업은 한국 유통 산업의 위기 상황을 보다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고객: 한국 오프라인 유통의 쇠퇴
매출 감소와 시장 점유율 하락최근 몇 년간 한국 오프라인 유통 시장은 뚜렷한 매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컨슈머인사이트에 따르면, 2019년 7월 42%였던 오프라인 쇼핑 지출 비중은 2020년 11월 37.8%까지 하락했다. 이는 소비자들의 오프라인 쇼핑에 대한 선호가 빠르게 줄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산업통산자원부는 2020년 7월 '2020년 상반기 매출 동향'을 발표했는데, 2020년 상반기 유통업 전체 매출은 전년 대비 3.7% 증가했지만, 오프라인 유통업체 매출은 6.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온라인 유통업체는 두자릿수 매출 성장을 기록해 오프라인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2020년 상반기 기준 전체 소매 판매액의 46.5%가 온라인에서 발생했으며, 2019년 이미 온라인 유통의 침투율이 30%를 넘어서면서 오프라인의 경쟁력은 급속히 약화됐다.
지난 10년간 국내 온라인 소매 비중은 약 10배 증가했으며,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오프라인 유통의 침체는 주요 유통업체들의 매장 폐점으로 이어지고 있다.
롯데쇼핑은 2020년 롯데마트 뿐만 아니라 백화점, 슈퍼, 롭스 등 110여 개의 부실 점포를 잇따라 폐점 했고, 사업 부문 별로 저성과자 감원도 진행했다. 2021년에는 100여 곳 추가 폐점을 예고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말 롯데백화점은 관악점·상인점·분당점·일산점·대구점 등 매출 하위권 10여 개 점포에 대해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흘러나왔고, 롯데백화점 32개 점포 가운데 매출 전국 꼴찌인 마산점은 지난 6월 폐점을 결정했다. 센텀시티점은 매각을 추진한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이마트 역시 매장 축소에 나서며 오프라인 사업 규모를 재조정하고 있다. 이러한 폐점 현상은 대형마트를 넘어 화장품, 의류, 외식 등 다양한 업종에서 확대되고 있어, 오프라인 유통업 전반의 위기를 방증한다.
한때 이마트, 롯데마트와 함께 국내 대형마트 시장의 '빅3'로 꼽히며, 2023년 기준 대형마트 매출액 점유율 2위를 기록할 만큼 강력한 시장 지위를 자랑했던 홈플러스는, 2025년 3월, 결국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그 몰락은 단일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오프라인 유통 산업 전반의 구조적 위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홈플러스 경영난의 원인
홈플러스의 위기는 여러 복합적 요인에서 비롯됐다. 2015년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LBO(레버리지 바이아웃) 방식으로 홈플러스를 인수하면서 막대한 차입금이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높은 이자비용은 고정비 구조를 악화시켰고, 이는 홈플러스의 재무건전성을 지속적으로 갉아먹었다.
더불어 온라인 유통의 성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도 문제였다. 경쟁사들이 온라인 플랫폼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동안 홈플러스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했고, 그 결과 시장 점유율은 빠르게 하락했다. 유동성 확보를 위한 세일앤리스백(Sale & Leaseback) 방식의 점포 매각 또한 단기적 자금 유동성은 확보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임대료 부담과 자산 가치 하락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여기에 신용등급 하락까지 겹치며 자금 조달까지 어려워졌고, 결국 법정관리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번 홈플러스의 몰락은 한국 유통 산업의 오프라인 기반이 얼마나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과도한 부채 의존, 온라인 전환 실패, 고정비 중심의 수익구조, 단기 유동성 중심의 경영 전략 등은 이제 모든 오프라인 유통 기업이 경계해야 할 위험 요인으로 자리잡았다.
홈플러스의 위기는 단순한 기업 실패가 아니라 직원, 협력업체, 납품사, 지역 상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연쇄적인 충격을 주고 있다. 오프라인 유통의 몰락이 거대 유통망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홈플러스 사태는 중소 유통업체와 자영업자들에게도 중요한 경고 신호로 작용한다.
'리테일 아포칼립스': 오프라인 유통의 위기 심화
오프라인 유통의 쇠퇴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리테일 아포칼립스(Retail Apocalypse)'가 자주 인용된다. 이는 미국에서 대형 유통기업들이 연쇄 파산과 대규모 점포 폐쇄를 단행하며 대두된 용어다.
2020년 미국에서는 51개 유통 기업이 파산보호를 신청했으며, 이는 2010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도 많은 수치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확산되고 있으며, 포에버21, 아메리칸 어패럴, 토이저러스 등 글로벌 브랜드들의 몰락은 국내 유통기업들에 더욱 깊은 경고를 주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화했으며, 온라인 소비 증가와 소비심리 위축이 맞물려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의 경영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팔리지 않는 재고의 늪: '재고의 저주'
'재고의 저주'는 수요를 초과하는 재고가 누적되면서 기업의 수익성과 운영 효율성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단순히 창고를 차지하는 공간의 문제가 아닌, 자금 유동성 악화, 재고 평가 손실, 보관 비용 증가, 상품 가치 하락, 심지어 폐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유통기한이 있거나 유행을 따르는 상품일수록 그 위험은 더욱 크다.
과잉 재고의 주요 원인은 부정확한 수요 예측이다. 판매 데이터나 시장 트렌드 분석에 실패하면 필요 이상으로 많은 상품을 생산·구매하게 되며, 이는 판매 부진 시 그대로 재고로 전환된다. 계절상품은 판매 시기를 놓치면 장기간 보관 부담이 생기고, 대량 구매를 통한 단가 절감 전략도 때로는 재고 과잉으로 이어진다. 최근에는 공급망 변동성 역시 주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재고의 저주'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정밀한 수요 예측과 체계적인 재고 관리가 필수적이다. ABC 분석을 통해 핵심 상품군에 집중하고, JIT(Just-In-Time) 방식으로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만큼만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리드 타임 단축, 주문 주기 최적화, 공급망 유연성 확보는 필수 요소이며, RFID 등 기술 도입으로 실시간 재고 파악이 가능한 시스템 구축도 요구된다. 참고로 2024년 기준 중소 유통업체의 평균 재고자산 회전율은 1.6회로, 1회전 주기에 220일 이상 소요되는 것으로 분석돼 구조적 병목이 심각한 수준이다.
중소 자영업의 폐업 증가와 낮은 생존률
홈플러스와 같은 대형 유통업체의 몰락과 더불어, 중소 자영업자들의 폐업률 역시 심각한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인증이 발간한 '2023년 국내 사업자 폐업율 분석 및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창업 5년차 자영업자의 폐업률은 66.2%에 달했으며, 이는 OECD 평균인 54.6%를 훌쩍 웃도는 수치다.
반대로 말하면, 창업 5년차 생존율은 33.8%에 불과하며, 이는 OECD 28개국 중 하위권에 해당한다.
OECD 국가 중 26개국이 한국보다 높은 생존율을 기록했으며, 이는 국제 비교를 통해 한국의 창업 및 기업 생태계가 상대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예컨대, 스웨덴과 벨기에는 각각 63.3%, 62.5%의 생존율을 보이며 장기 경영 유지 기반을 갖추고 있다. 이들 국가는 창업 이후에도 지속적인 경영 컨설팅, 판로 지원, 자금 지원 등의 정책을 통해 창업기업의 생존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024년 12월 발표한 '최근 폐업사업자 특징과 시사점'에 따르면, 2023년 폐업사업자는 98만 6천명으로 전년대비 13.7%(11만 9천명) 증가하면서 100만명에 육박했다. 이는 2006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로 기록됐다.
특히 로드숍은 온라인 쇼핑과의 경쟁 심화, 높은 임대료, 유동 고객 감소 등 복합적 요인으로 인해 구조적인 폐업 압력을 받고 있으며, 커피 전문점 등 포화 상태에 이른 프랜차이즈 업종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높은 폐업률의 배경에는 온라인 유통과의 경쟁 심화, 임대료와 인건비 부담, 소비자 행동 변화, 경기 침체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온라인 쇼핑의 편리함과 가격 경쟁력은 오프라인 자영업자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으며, 소비자들의 발길이 줄어든 오프라인 매장은 고정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문을 닫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025년 3월 20일 발표한 '2025 폐업 소상공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폐업 당시 평균 부채는 1억 236만 원, 폐업 비용은 평균 2,188만 원에 달했다. 이 중 철거비, 원상복구, 종업원 퇴직금, 세금 등의 고정 비용이 주된 부담 요인이었다. 숙박·음식점업의 경우, 배달앱 수수료와 광고비 부담이 다른 업종 대비 2배 이상 높은 수준으로 조사되었으며, 이는 디지털 플랫폼의 비용 구조가 중소 자영업자에게 과도한 부담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폐업 과정에서 정부 지원 제도(예: 희망리턴패키지, 새출발기금 등)를 활용한 자영업자는 전체의 21.8%에 불과했다. 10명 중 8명은 이러한 지원 제도에 접근하지 못했으며, 그 이유로는 '제도에 대한 정보 부족'(66.9%)과 '신청 요건의 복잡함'(21.4%)이 주로 꼽혔다.
중소 자영업자의 폐업은 단지 개인 사업의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용 축소, 소비 위축, 지역 상권의 해체 등 광범위한 경제적 파급 효과를 불러오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대응이 절실한 시점이다.
고금리·고임대료 시대의 재고지옥...‘팔리지 않는 재고’가 한계기업을 만든다
유통업계에서 재고는 더 이상 자산이 아니다. 그것은 매출을 지연시키고, 자금을 묶어두며, 결국 ‘부채’처럼 작용한다.
특히 계절성과 유행성이 강한 패션, 화장품, 생활잡화 업종은 재고 회전율 저하와 재고평가손실 누적으로 유동성 위기에 가장 취약하다.
예를 들어, 평균 재고자산회전율이 1.6회에 불과하다고 가정할 경우, 재고 1회전에는 약 220일 이상이 소요되는 셈이다.
이는 곧 판매되지 못한 재고가 반년 넘게 창고에 묶여 있다는 의미이며, 현금 흐름을 막는 치명적인 병목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구조는 창업기업 10곳 중 6곳이 5년 내 폐업(2023년 폐업률 66.2%)하는 한국 자영업 생태계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재고 문제는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직접적인 경영 리스크로 부상하고 있다.
온라인 전환의 실패, 오프라인 종속의 대가
팬데믹 이후 많은 유통업체들이 온라인 판매로의 전환을 시도했지만, 대다수는 네이버, 쿠팡 등 대형 플랫폼에 의존하는 입점 중심 전략에 머물렀다.
자체몰 구축이나 브랜드 경험 설계 없이 단순한 가격 경쟁에만 내몰린 결과, 수익성과 고객 충성도 모두를 확보하는 데 실패한 셈이다. 그 결과 가격 민감도가 높은 소비재 중심의 유통 구조에서는 브랜드 가치 없는 유통사가 플랫폼 생태계 내 '소모성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
특히 국내 유통 프랜차이즈 모델은 여전히 본사 중심의 공급 마진 기반 수익 구조에 치우쳐 있다. 본사는 가맹점에 공급한 물품에서 차액가맹금(일종의 유통 마진)을 통해 수익을 내는 구조다.
2025년 4월 9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 가맹사업 현황 통계 발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외식업 가맹점의 평균 차액가맹금은 2,300만 원이며, 매출 대비 차액가맹금(본사가 가맹점에 물품을 공급하면서 얻는 마진) 비율은 4.2%로 조사됐다. 치킨 프랜차이즈의 경우, 이 비율이 무려 8.6%에 달했다.
이 같은 구조는 가맹점의 고정비 부담과 재고 압박을 심화시키고, 매출 부진 시 가맹점주의 부실이 곧 본사 실적 악화로 연결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결국 가맹점의 도산은 브랜드 전체의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지며, 프랜차이즈 시스템 전체를 위협한다.
2023년 말 기준 외식 프랜차이즈 업종 전체의 폐점률은 14.9%에 달했으며, 특히 한식 프랜차이즈는 19.0%로 전체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반면 개점률은 21.5%로 전년 대비 감소해, 신규 창업 열기도 주춤하는 모습이다. 더불어 전체 외식 브랜드 중 가맹점 수 10개 미만의 소규모 브랜드 비중은 무려 74.5%에 달해, 과도한 브랜드 난립과 구조적 불균형이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략적 시사점: 유통업 생존은 '재고와 구조'의 문제다
단순 입점이 아닌, 고객 경험 기반 브랜드 재설계와 자사몰 투자를 병행해야 한다. 재고 회전율 기반 경영관리 체계 구축:
‘팔릴 수 있는 재고만 확보하는 구조’로, AI 기반 수요예측 시스템의 도입과 공급망 민첩성 확보가 필수다. 프랜차이즈 모델의 손익 재설계:
본사 중심 공급 마진 구조에서 성과 공유형 수익 모델로 전환하는 계약구조 개선이 시급하다.
재고가 말라야, 유통이 살아난다
2024년 말 유통업계의 한계기업 증가는 단순한 불황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산업 구조 자체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신호다.
고정비 중심 오프라인 모델, 플랫폼 종속 전략, 재고전가형 프랜차이즈… 이 구조에서 생존 가능한 모델은 없다.
‘줄이는 전략’이 살아남는 전략이다. 물류, 비용, 채널, 재고 모두를 줄이고 본질적 가치에 집중하는 유통기업만이 2025년을 견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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