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으로 ‘AI 공간’을 선점할 수 있을까?
'AI 공간'의 서막
2025년 5월, Google은 I/O 개발자 컨퍼런스를 통해 자사의 차세대 스마트 안경 운영체제 ‘Android XR’을 공식 발표했다. 이 플랫폼은 Google의 최신 AI 어시스턴트 Gemini와 통합되어 메시지 요약, 실시간 번역, 길찾기, 시각 인식 등 다양한 기능을 현실 세계 위에 덧입히는 방식으로 구현한다.
기기의 형태는 기존의 AR 헤드셋보다는 일반 안경에 가까운 디자인을 지향하며, 음성, 시각, 제스처 기반의 자연스러운 AI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 것이 핵심이다. Google은 “모바일 이후의 AI 인터페이스는 더 이상 화면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비전을 Android XR에 담았다고 전했다.

또한 삼성, Qualcomm, Gentle Monster 등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패션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생태계 구축의 신호탄이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협력은 단순한 기술 진보를 넘어, 인간의 삶과 경험 자체를 재정의하는 ‘AI 공간(AI Space)’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AI 공간이란 사용자가 현실 세계를 살아가면서 동시에 AI가 제공하는 정보와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환경을 의미한다.
30 Ninjas*의 대표 제드 와인트롭(Jed Weintrob)은 “Android XR이 스토리텔링과 사용자 경험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며, “이제는 기술이 우리 삶의 배경이 아니라, 일상과 완전히 융합되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는 “첨단 양방향 기능을 통해 사용자가 전에 없이 높은 몰입도로 캐릭터 및 스토리에 참여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덧붙이며, 변화의 본질이 기술과 일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데 있음을 시사했다.
* 30Ninjas: 엔터테인먼트 및 미디어 분야에서 몰입형 스토리텔링과 XR(확장현실), AI 기반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제작하는 스튜디오
‘AI 공간’이란 무엇인가?
‘AI 공간’은 현실 세계(물리적 공간)와 디지털 정보가 완전히 융합된 환경을 의미한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위에 인공지능(AI)이 실시간으로 필요한 정보를 덧입혀 주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Android XR 글래스 같은 스마트 글래스를 착용하면, 사용자가 바라보는 사물이나 장소에 따라 메뉴, 평점, 번역, 설명 등 다양한 정보가 눈앞에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이런 AI 공간에서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꺼낼 필요 없이, AI가 사용자의 시선, 위치,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가장 적합한 정보를 제공한다. 회의실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회의 자료가 보이고, 해외여행 중에는 실시간 번역이나 길 안내가 제공된다. 심지어 친구와 대화할 때도 AI가 대화 흐름을 분석해 필요한 정보를 조용히 안내한다.
전문가들은 “AI 공간은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인간의 인지 능력과 경험 자체를 확장하는 도구”라고 평가한다. 앞으로 AI 공간이 발전하면, 우리의 일상, 일, 학습, 소통 등 삶의 모든 영역이 혁신적으로 변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Android XR과 파트너십의 의미
구글과 구글의 파트너들은 자신만의 강점을 살려 XR 생태계의 핵심 역할을 맡는다. 구글은 인공지능(AI)과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통해 실시간 정보 제공과 맥락 인식, 맞춤형 AI 경험을 구현하고 삼성은 첨단 디스플레이, 배터리, 웨어러블 연동 등 하드웨어 혁신을 담당한다. Qualcomm은 고성능 칩셋과 AI 연산 능력으로 빠르고 효율적인 기기 구동을 지원한다. Gentle Monster는 세련된 디자인을 더해, 스마트 글래스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착용할 수 있는 패션 아이템으로 만든다.
이 파트너십은 각자의 역할을 넘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디자인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통합 경험을 제공한다. 구글의 AI는 삼성과 Qualcomm의 기술 위에서 부드럽게 작동하며, Gentle Monster의 디자인 덕분에 사용자는 기술의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 다양한 전문성이 모여 하나의 생태계를 구축함으로써, Android XR은 단순한 기기를 넘어선 ‘경험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전략적 파트너십이 XR 시장에서 강력한 생태계 락인(lock-in) 효과를 만든다고 평가한다. 사용자는 Android XR 생태계에 들어오면, 다양한 기기와 서비스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더 나은 경험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구글은 이러한 생태계 구축을 통해 AI 공간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미래 XR 시장을 선도하려 한다.
디자인이 AI 공간 선점의 핵심인 이유
스마트 글래스와 같은 웨어러블 기기의 성공은 단순한 기술력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술은 보이지 않게 작동할수록 이상적이지만, 그 기술이 어떤 감각으로 사용자를 맞이하느냐는 전적으로 디자인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착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업계 관계자의 말처럼, 하드웨어 디자인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착용감, 미학, 패션성 등은 사용자의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Google이 Gentle Monster와 협업하는 이유는 단순히 외형을 위한 것이 아니다. AI가 감각적 기술로 자리 잡기 위해선 ‘쓰기 싫지 않은’ 하드웨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터페이스 디자인은 음성, 시선, 제스처 같은 새로운 입력 방식과 연결되어야 하며, UX 설계는 기존의 앱 UI를 넘어 공간 내 맥락 기반의 반응성을 담아야 한다. 이는 단순한 기기 설계가 아닌 AI 공간 설계 그 자체를 의미한다.

실제로, 메타와 레이밴이 함께 만든 Ray-Ban Stories 역시 클래식한 안경 디자인에 카메라와 마이크를 내장해, 사용자가 부담 없이 기술을 일상에 받아들이도록 유도한다. North의 Focals 스마트 글래스도 미니멀한 디자인과 맞춤형 핏으로 착용감을 극대화한 사례다.
경쟁 구도와 앞으로의 과제
AI 공간과 스마트 글래스 시장은 현재 글로벌 빅테크 기업 간의 치열한 경쟁 구도가 형성되어 있다.

애플은 Vision Pro를 통해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 분야에서 혁신적인 몰입형 경험을 제시하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메타는 Ray-Ban과의 협업을 통해 Ray-Ban Stories, Meta Smart Glasses 등 패션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제품을 선보이며, SNS·메신저 플랫폼과의 연동을 강화해 사용자 일상에 자연스럽게 파고드는 방식을 택했다. 오픈AI 역시 하드웨어 스타트업 'io'의 인수를 통해 AI 기반의 차세대 디바이스 개발 역량을 확보하고, 자사 AI 모델과의 긴밀한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구글의 Android XR 글래스는 내장형 디스플레이, 실시간 번역, AI 어시스턴트 등에서 차별화를 시도하며, 기술과 디자인, 생태계의 삼각축을 강화하고 있다.
물론, Android XR이 제시하는 비전이 이상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이 플랫폼이 대중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분명히 존재한다.
첫째는 가격과 배터리 수명 문제다. 스마트 글래스가 일상화되려면 누구나 구매할 수 있을 정도의 가격 경쟁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동시에 하루 일과를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의 전력 효율도 확보되어야 한다. 기술의 경량화와 배터리 기술의 혁신 없이는, 웨어러블 AI는 여전히 ‘컨셉 제품’에 머물 수밖에 없다.
둘째는 프라이버시와 데이터 실시간 처리 문제다. 시선, 목소리, 주변 환경 데이터를 AI가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한다는 것은, 사용자 입장에서는 언제든 감시받고 있다는 불편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Google은 이미 이 부분에 대한 정책적 가이드라인과 사용자 설정 권한을 강화하고 있지만, 신뢰할 수 있는 투명한 데이터 활용 구조 없이는 기술 수용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셋째는 생태계 확장성과 개발자 참여 문제다. Android XR이 단지 Google의 하드웨어 플랫폼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제조사와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생태계를 만들어야만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 새로운 인터페이스와 센서 환경에 맞는 앱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선, 개발자 중심의 문서화, SDK 지원, 사용자 시뮬레이션 환경 등이 병행되어야 한다.
결국 이 세 가지 문제는 Android XR의 미래를 가를 핵심 과제다.
이 과제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AI가 사용자를 돕는 기술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끊임없이 관찰하고 반응하는 ‘불편한 감시 기계’로 인식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AI가 삶에 스며들기 위해선, 기술 그 자체보다도 그 기술이 사용자와 어떻게 ‘관계 맺는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디자인, AI 공간의 ‘문’을 열다
Android XR은 단순한 또 하나의 운영체제가 아니다. 이는 AI가 현실 공간을 점유하고, 우리의 감각과 일상을 새롭게 설계하며, 디지털 경험이 현실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첫 번째 관문이 된다. 이 플랫폼을 통해 우리는 더 이상 화면 속에 갇힌 정보가 아니라, 주변 공간과 맥락에 맞춰 실시간으로 확장되는 지능형 환경을 경험하게 된다. Android XR은 기술의 진보를 넘어, ‘AI 공간’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여는 시발점이 된다.
이 문을 여는 열쇠는 연산 성능이나 기능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바로 디자인의 힘이다. AI가 인간적이고, 쓰기 쉽고, 내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위해서는 기술보다 먼저 감각과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 결국 AI 공간의 승자는 누가 더 직관적이고 아름다운 형태, 그리고 사용자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감각적 경험을 제안하느냐에 달려 있다. Android XR은 기술과 디자인이 만나는 지점에서, 미래 AI 공간의 첫 번째 문을 두드린 주인공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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