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인된 혁신'과 '불법적 스크래핑'의 전면전

[메타X(MetaX)] 2025년 12월, 전 세계 미디어·테크 산업은 ‘합성 미디어(Synthetic Media) 전쟁’의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 Disney가 OpenAI에 10억 달러(약 1조 4천억 원)를 투자하며 혈맹을 맺는 동시에,Google을 향해 저작권 침해 중단(Cease-and-Desist)을 통보한 사건은 이 전쟁의 개전을 알렸다.
이제 인공지능(AI) 산업은 인터넷상의 데이터를 무작위로 긁어모으던 무법지대에서 벗어나, 검증된 IP(지식재산권)를 가진 자만이 고품질 AI를 구동할 수 있는 ‘데이터 월드 가든(Walled Garden)’ 시대로 재편되고 있다.
‘승인된 현실’의 탄생
지난 11일 발표된 디즈니와 OpenAI의 파트너십은 단순한 기술 제휴를 넘어선다. 디즈니는 자사가 보유한 마블, 스타워즈, 픽사 등 200개 이상의 핵심 캐릭터 데이터를 OpenAI의 영상 생성 AI ‘소라(Sora)’ 학습용으로 제공한다. 이를 통해 생성된 팬들의 2차 창작물은 다시 ‘디즈니+’ 플랫폼으로 흡수되어 스트리밍된다.
이는 ‘데이터의 순도’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를 의미한다. 인터넷상의 노이즈 섞인 데이터로 학습한 AI가 ‘미키 마우스와 닮은 무언가’를 만들어낼 때, 디즈니의 원본 데이터로 학습한 소라는 ‘완벽하게 고증된 미키 마우스’를 생성해낸다. 업계 전문가들은 "디즈니는 IP를 제공하고 기술을 얻었으며, OpenAI는 막대한 저작권 리스크를 해소하고 합법적 AI라는 타이틀을 얻었다"고 분석한다.
구글을 향한 칼날: 혁신인가, 도둑질인가
디즈니는 OpenAI와 손을 잡음과 동시에 구글을 향해 칼을 빼 들었다. 디즈니 법무팀은 구글의 AI 모델인 제미나이(Gemini), 비오(Veo), 그리고 최신 모델인 ‘나노 바나나(Nano Banana)’가 자사의 캐릭터를 무단으로 학습해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강력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과거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은 공정 이용(Fair Use) 논리를 앞세워 저작권 방어를 해왔다. 하지만 디즈니가 OpenAI와 정식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AI 학습 데이터에도 ‘시장 가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이는 구글의 무단 학습이 공정 이용이 아닌 ‘데이터 절도’임을 주장할 수 있는 강력한 법적 근거가 된다. 실제로 구글은 경고장을 받은 직후 유튜브 내 디즈니 캐릭터 관련 AI 영상 수십 개를 삭제하며 방어적인 태세를 취하고 있다.
넷플릭스-워너의 결합과 블록화되는 AI 생태계
디즈니의 행보는 경쟁사들의 합종연횡을 가속화했다. 넷플릭스(Netflix)는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WBD)를 827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하며, 방대한 콘텐츠 라이브러리를 확보했다.
주목할 점은 넷플릭스의 전략이다. 외부 파트너십을 맺은 디즈니와 달리, 넷플릭스는 내부적으로 ‘콘텐츠 표현 모델(Content Representation Models)’팀을 꾸리고 자체적인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바야흐로 미디어 산업은 ‘디즈니-OpenAI 연합’과 ‘넷플릭스 독자 진영’으로 나뉘어, 각자의 데이터를 울타리 안에 가두고 경쟁하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노동계의 반발과 ‘합성 미디어’의 그늘
하지만 이 화려한 기술 동맹의 이면에는 창작자들의 생존권 위협이라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미국 작가조합(WGA)과 애니메이션 길드(TAG)는 이번 딜을 두고 "창작자들의 노동을 훔쳐 기계를 학습시키는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디즈니는 배우의 초상권과 목소리는 계약에서 제외했다고 밝혔지만, 애니메이터들은 캐릭터의 움직임과 표정 연기 등 고유한 ‘스타일’이 AI에 의해 복제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우려한다. 버라이어티(Variety) 등 외신은 이를 두고 작가들과 예술가들의 작업물이 그들을 대체할 도구를 만드는 데 쓰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딥페이크나 가짜 뉴스와 같은 합성 미디어의 위험성(Risks of Synthetic Media)이 여전한 가운데, 디즈니와 같은 거대 기업이 AI 생성물의 배급처가 되는 것이 윤리적으로 타당한지에 대한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결국 2025년의 끝자락에서 시작된 이 전쟁은, 콘텐츠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공공재’에서 ‘라이선스를 가진 자만이 생성할 수 있는 자산’으로 변모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METAX = 류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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