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200달러 이하 해외 직구 물품에 대해 관세·세금 면제 허용
2016년, 글로벌 전자상거래에 대응하기 위해 800달러로 상향
미국이 중국산 저가 제품에 대한 수입 면세 특혜를 철폐하면서, 초저가 전략으로 성장한 Temu와 SHEIN이 근본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전환에 직면했다. 글로벌 전자상거래의 판이 바뀌고 있다.
면세 폐지라는 '제도 충격'
2025년 5월 2일, 미국 정부는 중국을 포함한 해외에서 발송된 소액(800달러 이하) 제품에 적용되던 수입 면세 혜택(디 미니미스, de minimis)을 공식 철회했다. 이 제도는 그간 Temu와 SHEIN 같은 중국계 초저가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핵심 기반이었다.
이 혜택이 사라지면서, Temu와 SHEIN의 비즈니스 모델은 본질적인 전환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소비자는 가격 인상에 직면하고, 플랫폼은 현지 조달 및 공급망 재구성이라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디 미니미스 규정’은 왜 존재했나? — 제도 도입의 배경과 변화의 역사
Temu와 SHEIN의 사업 기반을 지탱해온 '수입 면세 혜택', 이른바 디 미니미스(De Minimis) 규정은 단순한 특례가 아닌, 미국 무역 행정과 소비자 정책의 산물이었다.
이 제도는 해외에서 미국으로 배송되는 물품 중, 1일 1인 기준 800달러 이하의 상품에 대해서는 관세와 부가세를 면제해주는 규정이다. 원래는 세관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시작됐고, 오늘날과 같은 전자상거래 시대를 맞이하며 그 중요성이 급격히 부각됐다.
디 미니미스 제도의 시작은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과 자유무역 흐름 확산 속에서, 미국은 소액 수입물품에 대해 200달러까지 비과세를 적용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이는 세관의 행정 부담을 줄이고, 글로벌 무역의 흐름을 가속화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2016년, 오바마 행정부는 급증하는 글로벌 전자상거래에 대응하기 위해 비과세 한도를 기존 200달러에서 800달러로 대폭 상향 조정한다. 이 조치는 소비자 편익 확대와 동시에, 아마존이나 eBay 등 전자상거래 기업의 빠른 통관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었다. 해당 조정은 'Trade Facilitation and Trade Enforcement Act (TFTEA)'라는 법안에 기반해 시행됐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중국 기반 초저가 플랫폼들이 단가를 800달러 이하로 쪼개 배송함으로써, 대량의 상품을 관세 없이 유입시키는 방식으로 악용한 것이다. 특히 Temu, SHEIN과 같은 기업들이 이 구조를 적극 활용하면서, 미국 내 소매업과 제조업계는 “공정하지 않은 경쟁”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세수 손실 문제도 심각하게 제기됐다. 미국 국세청(IRS)은 이 제도로 인해 매년 수십억 달러의 관세 수입이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으며, 이는 국가 재정 건전성과도 직결되는 이슈로 떠올랐다.
결국, 2025년 미국 정부는 중국발 제품을 중심으로 디 미니미스 혜택을 철회하기에 이른다. 이는 단순한 관세 부과 조치를 넘어, 글로벌 전자상거래 질서를 다시 세우겠다는 정책적 선언이라 볼 수 있다. 초저가를 무기로 무한 확장을 해온 플랫폼 기업들에겐 커다란 제도적 전환점이 된 셈이다.
DTC(Direct-to-Consumer) 플랫폼의 역설
Temu와 SHEIN이 글로벌 시장을 빠르게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한 '저가'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들의 성공 뒤에는 철저하게 구축된 기술 기반의 유통 시스템, 즉 DTC(Direct-to-Consumer) 플랫폼 구조가 존재했다.
먼저, 두 기업은 AI 기반 수요 예측 기술을 적극 활용했다. 고객의 클릭, 검색, 구매 패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수요를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초단기 생산량을 조절하는 구조를 갖췄다. 이는 재고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소비자 트렌드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여기에 더해진 건 초연결 물류망이었다. 중국 전역의 스마트 팩토리에서 생산된 제품은 항공과 해상 운송을 통해 곧바로 전 세계 고객에게 배송된다. 전통적인 유통망에서의 중간 마진 없이 직배송 구조를 취함으로써 가격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소셜 미디어 중심의 마케팅 전략도 이들의 성장 동력이었다. 인플루언서와 바이럴 콘텐츠를 활용해 광고비를 절감하고, 빠르게 사용자 유입을 확대하는 전략은 전통적인 리테일 기업이 따라잡기 힘든 속도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작동한 결과, Temu와 SHEIN은 제품 기획부터 소비자 배송까지 단 몇 일 만에 완결하는 ‘초고속 유통 시스템’을 구현했고, 여기에 ‘최저가’라는 무기를 더해 글로벌 시장을 파고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혁신 뒤에는 하나의 보이지 않는 전제가 존재했다. 그것이 바로 미국의 ‘디 미니미스(De Minimis)’ 규정, 즉 800달러 이하 해외 직구 물품에 대한 수입 면세 혜택이었다.
이 제도 덕분에 Temu와 SHEIN은 관세와 세금 부담 없이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을 미국 소비자에게 직송할 수 있었고, 이는 곧 극단적인 가격 절감 전략을 현실화하는 숨은 축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제 이 특혜가 사라진 지금, 이들 기업은 본질적인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다음 셋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
첫째, 가격 인상. 이는 소비자 이탈이라는 리스크를 수반한다. 초저가에 익숙해진 소비자가 플랫폼을 떠날 경우 시장점유율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둘째, 마진 포기. 관세를 기업이 부담하고 가격은 유지할 경우, 수익성은 급격히 악화된다. 초저마진 구조에서 운영되던 DTC 플랫폼 특성상 이는 장기 지속이 어렵다.
셋째, 현지 조달로의 전환. 미국 내 생산 또는 유통망 확보를 통해 관세를 피할 수는 있지만, 이는 공장 설립, 노동비 상승, 물류 복잡성 증가라는 새로운 비용을 불러온다.
이처럼 Temu와 SHEIN이 구축한 DTC 유통 인프라는 면세 특혜라는 정책 조건 위에서만 가능했던 ‘균형의 예술’이었다. 그 균형이 깨진 지금, 이 구조는 오히려 취약성의 증거로 드러나고 있다.
중국 직송에서 현지 조달로 — 공급망의 재구성, 전략의 재편성 불가피
미국 정부의 면세 혜택 철회 이후, Temu는 빠르게 공급망 재편에 나서고 있다. 핵심은 ‘중국 중심 생산’에서 ‘현지화된 조달 구조’로의 이동이다.
외신 등 보도에 따르면 Temu는 현재 미국 내 중소 판매자 및 현지 생산 파트너와의 협력 확대를 추진 중이다. 과거에는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을 미국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미국 내 생산 또는 유통 거점을 확보해 관세 부담을 줄이고, 보다 안정적인 운영 구조를 구축하려는 시도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운영 전략의 조정’을 넘어서, 비즈니스 모델 자체의 전환을 의미한다. Temu의 경쟁력은 ‘가격’과 ‘속도’에서 비롯되었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한 기반이 흔들린 이상, 생산과 물류 구조 전체를 다시 짜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실제로 경쟁사인 SHEIN은 이미 멕시코, 브라질, 인도 등 다양한 지역에 생산 기지를 확장하고 있다. 글로벌 소비자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미국 외 다른 주요 시장의 규제 리스크에도 대응하려는 다각화 전략이다. Temu 역시 이러한 방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공급망의 현지화는 기회이자 동시에 도전이다. 세 가지 주요 리스크가 존재한다.
첫째, 기존 ‘초저가 플랫폼’이라는 포지셔닝의 약화다. 중국 내 저비용 대량 생산 시스템과 비교할 때, 미국이나 선진국 내 생산 비용은 높을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품질 관리와 유통 속도의 불확실성이다. 기존에는 중국 내 공장에서 바로 상품을 출하하고, Temu의 물류 시스템을 통해 정밀하게 컨트롤했지만, 새로운 파트너와의 협업 과정에서는 일관된 품질과 속도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셋째, 공급망 자체의 복잡화다. 다양한 국가에서 생산하고 이를 각 시장에 맞게 조정하려면, 물류 인프라와 IT 시스템, 재고 관리 체계 전반에 걸쳐 큰 부담이 발생한다. 운영 리스크는 더욱 커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Temu가 추진 중인 현지화 전략은 단기적 회피가 아닌 장기 생존을 위한 구조적 대응이다. 그러나 이 전략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할지는, 단순히 파트너를 확보하는 것을 넘어 공급망 전체의 정교한 재설계를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글로벌 규제의 도미노 효과— 각국이 주시하는 ‘초저가 플랫폼’ 리스크
미국이 중국산 초저가 상품에 대한 면세 혜택을 철회하자, 그 파장은 단숨에 국경을 넘어 확산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미국 내 정책 변화가 아닌, 글로벌 전자상거래 규제 질서의 전환점으로 해석된다.
이미 유럽연합(EU)은 Temu, SHEIN 같은 초저가 DTC 플랫폼이 세금과 품질 규제를 우회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수입 통관 일원화’와 ‘플랫폼 책임 강화’를 골자로 한 규제 개편을 검토 중이다. 독일, 프랑스 등 일부 국가는 자국 리테일 업계 보호 차원에서 플랫폼의 원산지 표시 강화 및 세관 보고 의무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호주와 캐나다 역시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특히 호주는 1,000호주달러 이하의 수입 제품에 대해 면세 혜택을 제공하고 있었으나, 중국 직구 플랫폼이 이를 활용해 세금을 회피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기준 조정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캐나다도 20캐나다달러 이상 수입품에 세금을 부과하고 있으며, 플랫폼 단위의 책임 부과 체계를 구축 중이다.
한국은? — ‘15만원 이하 면세’ 기준 존재
이 흐름 속에서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현재 한국은 해외에서 수입되는 15만 원 이하의 물품에 대해 관세와 부가가치세를 면제하고 있다. 이른바 ‘소액면세’ 제도는 행정 효율성과 소비자 편익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도입된 것이다.
한국의 이 제도는 2000년대 초반부터 시행되어 왔으며, 해외직구가 급증하던 시기인 201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제도 정비 논의가 이어졌다. 이후 2019년 7월 1일, 관세청은 제도를 개정해 기준 금액을 15만 원으로 상향하고, 미국발 물품에 한해 20만 원까지 면세 적용하는 특례를 신설했다. 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조항을 반영한 결과다.
하지만 이 제도 역시 최근 들어 중국발 초저가 제품 플랫폼의 쪼개기 배송, 허위 신고, 반복 구매 회피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관세청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동일 수취인·동일 주소·동일 IP를 활용한 반복 수입 패턴을 추적하는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사전 신고제 및 부가세 대리 납부제 확대를 검토 중이다.
결국 미국의 면세 철회는 단발성 조치가 아니라, 자국 산업 보호와 조세 정의를 위한 ‘전자상거래 리셋’ 흐름의 신호탄으로 작용하고 있다. 각국은 이제 소비자의 편익과 글로벌 플랫폼의 성장이라는 명분 뒤에 가려졌던 구조적 불균형을 재조정하려 하고 있으며, 한국 역시 제도 전환의 기로에 서게 될 가능성이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초저가 플랫폼’의 진화 혹은 퇴장
Temu와 SHEIN은 단기간에 글로벌 유통 지형을 흔들었지만, 결국 그 성공은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정책 환경’에 의존한 측면이 강했다. 이제 이들은 다음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정상적인 세금 구조 하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
단순 ‘싸다’는 것만으로 소비자의 충성도를 얻을 수 있는가?
친환경·윤리적 소비라는 글로벌 트렌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번 사태는 단순한 '수입세 부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초국적 플랫폼 경제가 국가의 세제·규제와 충돌하는 첫 단면이자, 글로벌 소비 경제의 다음 장을 암시하는 신호탄이다.
Temu와 SHEIN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단지 ‘가격’이 아닌, 가치와 구조의 혁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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