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억 달러 인수 제안 거절… 기술 방향성 지키려는 선택
AI 칩 자체 생산 도전, 정부와 시장은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메타의 1조 원 인수 제안을 거절한 한국 스타트업이 있다. AI 반도체를 만드는 퓨리오사AI는 외형보다 방향을 택했다. 글로벌 자본 대신, 스스로 칩을 만들고 시장에 도전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 선택은 단순한 기업 판단을 넘어, 한국 딥테크 산업의 미래를 묻는 질문이 됐다. 이에 MetaX에서는 퓨리오사AI의 'ai 반도체 독립선언' 속 함의를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
퓨리오사AI, 글로벌 기업 메타의 제안 거절
한국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스타트업 퓨리오사AI(FuriosaAI)가 세계적인 IT 기업 메타(Meta)의 8억 달러(약 1조 800억 원) 인수 제안을 거절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단순한 거래 실패가 아니라, 기술 독립을 지키기 위한 선택으로 해석되며 국내외 기술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는 내부 구성원들에게 인수 협상 종료를 직접 알렸다.
가격 때문이 아니라, 인수 이후 회사의 기술이 메타의 서비스 전용 기술로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협상 결렬의 주된 이유였던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즉, 글로벌 자본을 선택하면 회사가 그들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게 될 수 있다는 고민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퓨리오사AI가 자신감을 가진 이유 – 새로운 AI 반도체 ‘레니게이드’
업계에서는 퓨리오사AI가 글로벌 IT 기업의 대규모 제안을 고사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자체 기술력에 대한 믿음을 꼽는다.
특히, 퓨리오사AI는 ‘레니게이드(RNGD)’라는 이름의 새로운 AI 반도체 칩을 개발 중으로 알려졌는데, 최근 수행한 성능 평가 결과 독자 생존에 대한 자신할만큼 성공적인 테스트를 마친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 칩은 우리가 흔히 듣는 ‘GPU’처럼 AI가 빠르게 생각하고 판단(추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뇌 역할의 칩이다.
특히 요즘 뜨고 있는 챗GPT 같은 대형 언어모델(AI)이 실제로 말을 하고 정보를 찾아줄 때, 빠르게 작동하게 해주는 칩이 바로 이런 종류다.
퓨리오사AI는 이 칩을 올해 하반기에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며, 기존의 외산 칩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자금 마련은 숙제
물론, 기술만 있다고 되는 건 아니다. AI 반도체는 만드는 데 엄청난 돈과 시간이 드는 산업이다.
퓨리오사AI도 산업은행 등 국내 투자자들과 약 700억 원 규모의 자금 유치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 회사인 TSMC가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국내에도 벤처 투자 회사들이 많지만, 대부분 짧은 시간 안에 성과가 나지 않는 분야에는 투자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퓨리오사AI처럼 딥테크(깊은 기술 기반의 기업)는 자금 확보는 과제로 남아있다.
‘반쪽 반도체’라는 오해에서 벗어날 기회
정부는 그동안 국산 AI 반도체가 ‘학습용’에는 부족하고 ‘추론용’으로만 쓸 수 있다는 이유로 지원을 꺼려왔다.
쉽게 말해, AI가 ‘배우는 과정’보다는 ‘답을 내는 과정’에만 쓰일 수 있다는 평가였다. 이런 이유로 ‘반쪽짜리 반도체’라는 오명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퓨리오사AI가 메타의 관심을 끌고, 인수까지 제안받았다는 사실은 국산 기술의 잠재력을 증명하는 계기가 됐다.
이에 정부도 다시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2028년까지 국산 학습용 AI 칩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2027년까지 관련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메타의 제안은 끝이 아닐 수도… 협력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퓨리오사AI가 이번엔 인수를 거절했지만, 이 선택이 곧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업계에선 향후 메타와 기술 협력, 공동 개발, 혹은 칩 공급 파트너십 같은 방식으로 관계가 이어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메타는 이미 자체 AI 칩 개발에도 뛰어들었고, 올해에만 AI 분야에 650억 달러(약 86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런 흐름 속에서 퓨리오사AI 같은 신생 기업은 작지만 유연한 전략 파트너로서 가치가 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연 선택
퓨리오사AI의 결정은 매우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글로벌 대기업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은 막대한 자금을 포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대신 회사의 철학과 기술 비전을 지키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선택이 성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정부의 정책 지원, 시장 투자자의 관심, 그리고 무엇보다 제품의 경쟁력 입증이 뒷받침돼야 한다.
퓨리오사AI가 그 이름처럼 ‘황야’를 택한 이유는, 누군가는 그 길을 먼저 걸어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술은 시작이지만, 생태계는 함께 만들어야 한다. 퓨리오사AI의 선택이 던진 질문에, 이제 우리 모두가 답해야 할 때다.
[저작권자ⓒ META-X.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