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콘텐츠 웹사이트의 연령 인증, 위헌 아냐”
2025년 6월 27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중요한 헌법 판결을 내렸다.
텍사스주가 제정한 온라인 성인 콘텐츠 웹사이트에 대한 연령 인증 법안(H.B. 1181)이 수정헌법 제1조, 즉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번 판결은 아동을 유해 콘텐츠로부터 보호하려는 공익적 목적과, 성인이 자신이 선택한 표현물에 자유롭게 접근할 권리라는 두 헌법 가치 사이에서 대법원이 어떤 균형점을 택했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온라인 음란물, 헌법의 시험대에 오르다
이번 사건은 텍사스주가 2023년에 통과시킨 한 주법에서 시작됐다.
문제의 법안 H.B. 1181은 온라인에 성적으로 노골적인 콘텐츠를 유통하는 상업적 웹사이트를 대상으로 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체 콘텐츠 중 3분의 1 이상이 아동에게 유해한 성적 내용일 경우, 해당 웹사이트는 모든 방문자에게 정부 발급 신분증이나 신용카드 기록과 같은 ‘상업적 거래 데이터’를 통해 18세 이상 성인임을 증명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하루 최대 1만 달러의 벌금이 부과되며, 만약 아동이 해당 콘텐츠에 노출될 경우에는 최대 25만 달러의 추가 벌금도 가능하다.
법안이 시행되자, 즉각적인 반발이 일었다.
미국 포르노 산업을 대표하는 단체들과 주요 성인 콘텐츠 웹사이트 운영자들은 연방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법안이 사실상 성인이 자신의 권리로 허용된 콘텐츠에 접근하는 자유를 제한한다며, 이는 수정헌법 제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법적 다툼은 하급심을 거쳐 결국 연방대법원으로 올라갔고, 미국 사회에서 오랜 시간 논쟁의 대상이 되어온 ‘표현의 자유 대 아동 보호’라는 고전적인 쟁점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대법원의 판단: “성인 표현의 자유 침해 아냐… 연령 인증은 정당한 수단”
이번 사건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6대 3의 의견으로 텍사스주의 연령 인증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수의견을 작성한 토머스 대법관은 해당 법안이 성인의 표현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제한하지 않으며, 성인 이용자에게 요구되는 연령 인증은 헌법이 금지하는 수준의 과도한 부담이 아니라고 봤다.
대법원은 이 법이 “성적 콘텐츠 자체를 금지하거나 검열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접근 경로에 신원 확인 절차를 추가한 것에 불과하다”고 해석했다.
즉, 문제의 핵심은 콘텐츠 내용이 아니라 이용자의 ‘연령’에 있다는 것이다. 법원이 강조한 부분은 바로 이 점이다.
아동에게 유해한 콘텐츠를 차단하려는 목적 자체는 정당하며, 이를 위해 정부가 이용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를 요구하는 것 역시 헌법이 허용하는 ‘통상적이고 적절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해당 법률이 표현의 자유를 정밀하게 심사하는 ‘엄격심사(strict scrutiny)’가 아니라, 그보다 완화된 기준인 중간심사(intermediate scrutiny)를 통해 판단되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연령 인증이 성인의 표현 자유를 일정 부분 제한할 수는 있지만, 그 제한은 아동 보호라는 공익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으며, 결과적으로 “헌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수준의 부수적 부담”이라는 입장이다.
이 같은 판결은 디지털 시대의 표현 규제와 공공 이익 사이의 경계를 어디에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미국 사법부의 최신 판단 기준을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기술 환경 변화가 촉발한 달라진 헌법 해석의 기준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과거 유사한 판례들과의 차별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과거의 기준이 디지털 환경의 급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헌법 해석 역시 기술의 발전에 따라 현실적으로 조정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대표적인 비교 대상은 1997년과 2004년에 각각 선고된 〈Reno v. ACLU〉 사건과 〈Ashcroft v. ACLU〉 사건이다. 이들 판례에서는 정부가 인터넷 상에서 ‘외설적’이거나 ‘불쾌감을 주는’ 콘텐츠를 광범위하게 차단하려고 한 조치를 위헌으로 판단했다. 두 사건 모두 성인 사용자의 표현물에 대한 직접적인 제한이 있었고, 법원이 적용한 기준은 가장 엄격한 수준인 ‘엄격심사(strict scrutiny)’였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다수 의견을 낸 대법원은 H.B. 1181이 과거 사례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판단했다. 이 법은 성인에게 해당 콘텐츠를 금지하지 않고, 단지 연령 확인 절차를 거쳐야만 접근할 수 있도록 요구한다는 점에서, 표현물 자체를 직접 규제했던 과거 판례들과 구분된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판결은 스마트폰 보급 확대, 온라인 스트리밍 기술의 발달, 아동이 쉽게 접근 가능한 영상 기반 포르노의 확산 등 디지털 환경의 급변이 헌법적 기준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줬다. 다시 말해, 1990~2000년대 초반의 인터넷과 지금의 인터넷은 그 환경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으며, 이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해석하는 기준 역시 ‘변화된 현실에 기반해 재조정되어야 한다’는 방향성이 이번 판례를 통해 제시된 것이다.
반대 의견의 핵심: “성인의 표현의 자유를 너무 가볍게 봤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전원일치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소토마요르, 재크슨, 그리고 카간 대법관은 공동으로 반대 의견을 내며, 대다수의 판단에 강한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H.B. 1181이 단지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보기에는 성인의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반대 의견의 핵심은 이렇다.
해당 법은 성인이 법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콘텐츠에 ‘신원 인증’이라는 문턱을 부과함으로써, 사실상 표현물을 자유롭게 소비하고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특히 사용자가 성인임을 입증하기 위해 정부 발급 신분증, 거래 데이터 등의 민감한 정보를 웹사이트에 제공해야 한다는 점은, 개인정보 보호(프라이버시) 침해와 동시에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위축시키는 효과(chilling effect)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카간 대법관은 “인터넷과 기술은 진화할 수 있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의 원칙은 그 진화를 따라 후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번 대법원 다수의견이 정책 결과에 따라 헌법 해석의 기준을 달리 적용한 것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표현의 자유가 정치적·사회적 논의 구조의 핵심임을 고려할 때, 설사 규제의 취지가 공익에 부합하더라도, 법적 기준 자체가 느슨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반대 의견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이러한 반대 의견은 향후 유사 사안에서 법원이 다시금 엄격한 헌법 기준을 회복해야 한다는 경고로도 읽힌다.
연령 인증을 둘러싼 새로운 규범의 형성
이번 판결은 단지 한 주(州)의 입법을 합헌으로 인정한 것을 넘어, 디지털 시대의 표현 규제에 대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입장을 명확히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된다. 그 여파는 법률, 산업, 기술, 그리고 시민의 기본권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이어질 전망이다.
먼저, 법률적 측면에서 가장 큰 변화는 연령 인증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헌법적으로 정당하다는 판례가 확보되었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 내 21개 주에서는 유사한 법률이 시행 중이며,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타 주에서도 관련 입법이 확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앞으로 온라인 콘텐츠에 접근하는 데 있어 신분 확인이 하나의 '합헌적 전제조건'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기술과 산업 측면에서도 변화는 불가피하다. 성인 콘텐츠를 제공하는 포르노 플랫폼뿐 아니라, 게임, 웹툰, 라이브 방송 등 아동 접근이 우려되는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 기업들이 정부 발급 신분증, 신용카드 기록, 생체 인증 등 보다 고도화된 연령 인증 기술을 채택해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기업에게는 기술적 부담과 추가 비용이 따르는 문제지만, 사용자에게는 이용 과정에서의 불편이나 정보 제공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 결과, 성인 콘텐츠 소비의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이용자 이탈이나 시장 위축이라는 산업적 리스크도 현실화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프라이버시와 시민의 자유권 측면에서의 논쟁은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번 판결은 ‘성적으로 노골적인 표현물’이 과연 어느 수준까지 보호받아야 하는지, 그리고 성인의 표현의 자유와 개인정보 보호권 사이에서 어디까지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헌법적 질문을 던진다. 한편에서는 아동 보호라는 사회적 가치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프라이버시 침해를 정당화할 수 있는 판례가 열렸다는 점에서 ‘감시 사회’로의 문이 열렸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기술의 진화가 헌법 해석의 방향을 바꾼다
이번 〈Free Speech Coalition v. Paxton〉 판결은 단순히 성인 콘텐츠에 대한 규제를 합헌으로 본 판단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더 깊은 질문을 던진다. 디지털 기술의 변화가 헌법 해석의 기준마저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그리고 공익이라는 이름의 규제와 개인의 자유라는 권리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이 가능한가에 대한 실질적 해답을 제시한 판례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표현의 자유’는 오랫동안 미국 헌법이 가장 강력하게 보호해온 가치 중 하나였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고, 이제는 AI 필터링, 고화질 영상 포르노, 알고리즘 기반 추천시스템을 통해 아동이 유해 콘텐츠에 무제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대법원은 이 같은 기술 현실을 직시하며, 기존의 일률적인 엄격심사 잣대 대신, "연령 인증이라는 구체적 장치가 입증되었다면, 이는 합헌"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이 판결은 디지털 헌법 시대의 출발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제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 권리'라기보다는, 공공의 안전, 아동의 권리, 사회적 책임이라는 다른 헌법적 가치들과 '조율'을 거쳐야 하는 영역이 되어가고 있다. 무엇을 보호하고,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이제 법정뿐 아니라, 기술 기업, 입법자, 교육자, 그리고 시민사회 전체의 과제가 됐다.
이번 판결은 단지 하나의 콘텐츠 규제법에 대한 위헌 여부를 넘어서, 디지털 사회에서의 표현의 자유가 어떤 방식으로 재설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논의를 촉발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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