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얼굴로 창가에 걸려 있다. 밤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지 못한 채, 공기는 어딘가 미묘하게 가벼웠고, 도시는 숨을 고르듯 조용히 하루를 준비하고 있다.
나는 그 공기 속에 서서, 샤워기의 물줄기를 맞는다. 차가운 물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는 동안, 어제의 장면들이 물결처럼 번져왔다. 기억은 늘 그렇듯 순서를 지키지 않고 나를 찾아온다. 어느 장면은 또렷하지만, 어느 장면은 흐릿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이상하게도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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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이 되려면, 과장처럼 행동하셔야죠.”
그 문장은 가볍게 던진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이가 상처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최대한 가볍게 던지려 애썼다. 조금은 농담처럼, 그러나 적당히 설득력 있게. 나는 그 말을 꺼내며 스스로의 목소리가 제법 안정적이라고 느꼈다. 그 말은 상대를 향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공중 어딘가에서 한 번 맴돌다가 다시 나에게로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때는 몰랐다. 아니, 어쩌면 나는 알지 않으려고 애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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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나는 같은 질문을 자주 떠올린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이 그 자리를 향해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것인지.
예전의 나는 그 질문에 별로 오래 머물지 않았다. 직함이 바뀌면 사람이 바뀐다고,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해 버리면 편했기 때문이다.
팀장이 되면 팀장처럼 말하게 되고, 임원이 되면 임원처럼 행동하게 되는 것. 그 자리가 사람을 끌어올린다고 믿으면, 지금의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아도 괜찮았다. 언젠가 그 자리에 가면, 그때 자연스럽게 바뀌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요즘의 나는 그 믿음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생각보다 불편하다.
—
어제 점심 자리에서 마주한 분은 이미 어떤 ‘완성된 형태’를 갖고 있는 듯 보였다. 목소리는 낮았고, 말은 인자했으며, 대화의 흐름은 부드럽게 이어졌다. 누군가의 말을 자르지 않는 태도, 필요한 순간에만 개입하는 균형감. 그 모든 것이 ‘임원’이라는 단어보다 먼저 그 사람의 품격을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한 가지 질문이 생겼다.
'이 분은 현재 자리에 오르기 전,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던 시절에도 과연 지금과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었을까'
그 질문은 대답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
그 순간, 다른 장면이 겹쳐졌다.
강의실이었다. 조용해야 할 시간, 말의 무게가 공기를 채우고 있던 순간. 나는 그 흐름 속에 있지 않았다.
어딘가 다른 생각에 머물러 있었고, 그 틈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의미 없는 웃음이었다. 맥락도 없었고,
그저 타이밍을 놓친 반응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 짧은소리는 공간의 결을 바꾸기에는 충분했다.
잠깐의 정적.
그것은 소리보다 더 또렷하게 남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지만, 그 말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상황 위에 덧붙인 문장에 가까웠다. 그날의 나는 그 자리에 어울리는 태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
—
차갑게 내 몸을 향해 쏟아지던 물이 조금씩 온도를 잃어갔다. 피부 위로 흐르는 감각이 바뀌는 순간, 머릿속에 하나의 문장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나는 지금, 내가 되고 싶은 사람처럼 살고 있는가'
그 문장은 질문이라기보다 거울에 가까웠다. 나는 그 앞에서 잠시 말을 잃었다.
성장을 말하면서, 나는 성장하는 사람의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존중을 말하면서, 나는 그 순간을 존중하고 있었는지.
미래를 말하면서, 나는 지금의 나를 방치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
“과장이 되려면 과장처럼 행동해야죠.”
그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나는 혼자 씁쓸해졌다. 그리고 그 말을 처음으로 제대로 이해했다. 그건 조언이 아니라, 되돌아오는 문장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거부감 없이, 순응적인 태도로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했다.
—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누군가의 자리를 보며,
그건 운이었다고,
타이밍이 맞았을 뿐이라고.
그 말은 위험하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거리를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그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다.
단지, 어떤 태도를 얼마나 오래 유지했는가의 차이일 뿐.
그들은 갑자기 그 자리에 어울리게 된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자리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그리고 조금 더 오래 살아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
나는 샤워기 물을 끄고 거울 앞에 섰다. 물기를 머금은 거울 표면 속에 내 얼굴이 흐릿하게 비쳤다. 수건으로 천천히 닦아내자 시야가 맑아졌다.
그 안에는 여러 장면의 내가 겹쳐 있었다.
가볍게 웃던 나,
흐름을 놓쳤던 나,
그럴듯한 말을 하던 나.
모두 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한동안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를 향해 중얼거렸다.
"아직 멀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괜찮다"
—
멀었다는 것은 끝이 아니라 거리라는 뜻이고, 부족하다는 것은 멈춤이 아니라 가능성이라는 뜻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스스로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다는 건 아직 완전히 굳어버리지 않았다는 증거 아닐까.
문득 하나의 문장이 내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막막하니까,
나의 마흔은 아직 로딩 중이다.
나는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거울 속의 나를 다시 바라봤다. 어색하게 올라간 입꼬리, 완전히 자연스럽지는 않은 표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나다.
오늘은 조금 다르게 살아볼까 한다. 누군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그 사람에게 조금 덜 미안해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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