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8일, 토요일 오후. 합정역에서 내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구석진 곳에 자리한 복합문화공간 디벙크가 모습을 드러낸다. 평소에는 조용한 이 공간이 이날만큼은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오후 4시가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하나둘 들어섰고, 커피를 손에 든 채 조용히 자리를 채웠다. 별다른 안내가 없었지만, 시선은 자연스럽게 무대 쪽으로 모였다.
정각 4시, 마이크 앞에 익숙한 얼굴이 섰다. 서강대학교 메타버스전문대학원 현대원 원장이자, 이날의 강연자였다. 말투는 차분했지만, 중간중간 터지는 웃음을 보면 특유의 위트는 여전했다. 첫 장을 넘기며 현 원장은 화두를 던졌다.
“AIX. 인공지능 대전환의 시대.”
합정의 이 작은 공간에서 시작된 강연은 단순한 기술 설명회와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머지않아 닥칠 미래를, 오늘 여기서 미리 맞이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시작부터 통이 컸다.
“여러분, 이 자료 다 쓰셔도 됩니다. 제가 직접 그린 거고, 저작권 100% 제 겁니다. 필요하면 회사에서 AI 강의할 때 그냥 쓰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키보드 소리가 터졌고, 스마트폰으로 슬라이드를 찍는 손길도 바빠졌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모두가 본능적으로 ‘기록’을 시작했다.
곧 주제가 바뀌었다.
'숫자로 푸는 AI의 진화'
“알파고는 2,600만 개, GPT-3는 1,750억 개, GPT-4는 1조 8천억 개의 파라미터를 갖고 있어요. 그런데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전략입니다. 이젠 추론을 한다는 거죠.”
단순히 말 잘하고 요약 잘하는 AI가 아니라, 이제는 전략을 짜는 AI가 된다는 얘기였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강연장을 메우던 사람들 대부분이 AI를 다뤄본 경험자들이었지만, ‘전략’이라는 단어에선 반응이 묘하게 느려졌다.
“요즘 전쟁 전략 누가 짜는지 아세요? 이란도, 우크라이나도 다 AI가 짜요. 인간 장군이 아니라 워게임 시뮬레이션이 작전을 설계합니다.”
그리고 현 원장은 질문을 던지며 말했다.
“근데 돈은 누가 벌죠? 전력 밑바닥에서 칩을 쥔 NVIDIA입니다. AI가 아무리 똑똑해도, 결국 진짜 권력은 인프라를 쥔 자에게 돌아가요. 이게 지금의 게임의 법칙이에요.”
그 말에 몇몇 참석자들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날 강연은 인공지능이 얼마나 똑똑해졌는지를 뽐내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 ‘지능’이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전력과 칩, 그리고 누가 그 흐름을 쥐고 있는지까지 내려가 묻는 자리였다. 질문은 더 이상 기술에만 닿지 않았다. 권력, 구조, 그리고 우리가 설계할 미래의 판도까지 향해 있었다.
디벙크 안의 공기는 시간과 함께 점점 더 진지해졌다. 슬라이드가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청중들의 얼굴도 조금씩 달라졌다. 어떤 이들은 팔짱을 풀었고, 어떤 이들은 허리를 더 세웠다. 그러던 중, 현대원 원장이 살짝 웃으며 말을 꺼냈다.
“무어의 법칙 아시죠? 1.5~2년마다 연산 능력이 두 배씩 빨라진다는 거요. 근데 지금은… 68배예요. 그것도 2년 만에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장내 몇몇 사람들의 눈썹이 동시에 올라갔다. “진짜요?”라는 말은 안 했지만, 표정이 대신했다. 그는 이어서 설명했다. 엔비디아의 H100에서 B100으로 넘어가면서, 겉으로는 연산 능력이 4에서 20, 숫자만 보면 5배 정도 빨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성능 향상은 68배에 달한다는 거였다.
“저도 감이 안 잡혀요. 평생 세 발짝 먼저 가겠다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도 공부하는 겁니다. 암기 말고요. 진짜 공부. AI에 맞서려면 결국 그거밖에 없어요.”
강연장의 공기는 더욱 팽팽해졌다. 그리고 화두는 노동으로 옮겨갔다.
“예전엔 일이 없어도 ‘착취’당한다고 느꼈죠. 그런데 이젠 ‘넌 필요 없어. 그냥 비켜줘’라는 말이 더 아플 거예요. 착취보다 무관함이 더 고통스러운 시대가 옵니다.”
AI는 단순히 일자리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존재의 이유’ 자체를 흔드는 존재였다. 이 말이 끝나자, 어느 누구도 키보드를 두드리지 않았다. 모두가 듣고 있었다.
그리고 갑작스레 전혀 다른 단어 하나가 튀어나왔다.
“AI 토큰이라는 게 있어요. 젠슨 황이 그걸 전기에 비유하더라고요. 전기 꽂듯이, AI 파워를 누구나 쓸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겁니다.”
AI가 만든 산출물을 일종의 에너지처럼, 표준화된 단위처럼 사고하고 거래할 수 있게 된다는 개념. 전기처럼 ‘끼우면 작동하는’ 시대. 그건 곧 새로운 경제 시스템의 시작이었다.
“블록체인 기반의 토큰과 결합되면 완전히 새로운 경제 생태계가 만들어질 겁니다. AI는 두뇌이자 에너지입니다.”
청중 일부는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이들은 다시 스마트폰을 들었다. 이제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생태계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기술 민주화의 얘기로 넘어갔다.
“프롬프트만 잘 써도 영상 만들고, 앱 만들고, 보고서도 뚝딱이에요. 예전엔 몇 달 걸렸던 게, 지금은 몇 분입니다. 이젠 진짜 아이디어가 전부입니다.”
누구나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는 시대. 기획력만 있다면 누구나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시대. 그는 기술은 벽이 아니라 지렛대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강연 막바지, 현 원장은 디바이스의 진화로 시선을 옮겼다.
“PC가 있었고, 스마트폰이 있었고, 이제는 스마트글래스입니다. 손이 자유로워지면 산업 전체가 바뀔 겁니다. 전 이걸 ‘투 핸즈 프리의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는 농담처럼 덧붙였다.
“우린 모두 600만 불의 사나이가 될 수 있어요. 소머즈처럼요.”
모르긴 몰라도, 1980년대 미국 드라마를 기억하는 몇몇은 슬며시 웃었을 것이다. 스마트글래스가 현실과 가상을 통합하는 메타버스의 ‘물리적 관문’이라는 그의 말은, 농담 같지만 실제 같은 이야기였다.
그리고 마지막, 현대원 원장은 준비된 듯 준비되지 않은 말을 남겼다.
“오늘 이 자리는 제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장면 중 하나로 남을 겁니다. 죽기 전에 떠올릴 장면 중 하나가 될 거예요.”
잠시 뜸을 들인 후, 마지막 말을 꺼냈다.
“AI는 우리를 밀어내는 존재가 아닙니다. 함께 진화해야 할 파트너예요. 우리는 공동 설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AIX입니다.”
그날 디벙크를 나서는 사람들은 단지 AI를 ‘배웠다’고 느끼지 않았다. AI와 함께 설계할 새로운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강연이 끝난 뒤, 사람들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군가는 책에 사인을 받았고, 누군가는 여운을 곱씹듯 천천히 전시 공간을 돌아봤다.
누군가의 말처럼, 이날 강연은 “듣고 나면 다시 공부하고 싶어지는 강의”였다.
돌아가는 길, 사람들의 표정엔 묘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술이 너무 빠르다고 느꼈고, 어쩌면 따라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도 설계할 수 있다’는 말 한마디가 묘하게 용기를 주었다.
AIX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방향이고 태도다.
오늘을 설계하지 않으면, 내일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정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AI를 쥔 또 다른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설계의 자리에 앉아야 한다.
그날 디벙크에서는, 강연이 아니라 ‘설계자 선언문’ 하나가 조용히 읽혔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마음속에 복사해 넣은 채,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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