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허브 전략의 다층적 경합
신뢰·자본·절차의 균형이 관건
영국 재무장관 Rachel Reeves는 ‘리즈 개혁(Leeds Reforms)’이라는 명칭의 금융 산업 개편안을 공식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런던의 금융 경쟁력을 회복하고 2035년까지 세계적 수준의 금융 허브로의 도약을 목표로 하는 중장기 계획의 일환이다. 개혁안에는 금융 인허가 절차의 간소화, 규제기관의 역할 조정, 정책 금융 확대, 그리고 외국 기업 및 인재 유입을 위한 행정 지원 방안이 담겨 있다. 특히, 테크핀 산업을 포함한 혁신금융 분야의 제도적 진입 장벽을 낮추고 공공 자본과 민간 생태계 간 연결을 촉진하는 구조 개편이 강조된다.
제도의 프레임을 다시 짜다: 리즈 개혁의 네 가지 조정 축
리즈 개혁은 영국 금융 산업의 경쟁력 회복을 위한 네 가지 제도적 조정 축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금융감독청(FCA)과 프루던셜감독청(PRA)의 인허가 절차에 대한 단일 창구 모델 도입이 추진된다. 이는 규제 기관 간 중복 심사를 줄이고 승인 속도를 높이기 위한 조치로, 스타트업을 포함한 신규 진입자의 행정 부담을 경감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다만, 두 감독기관의 구조적 통합이 아닌 절차 간소화 수준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규제 기관 간 권한 조정은 제한적일 수 있다.
둘째, 금융소비자 보호 장치에 대한 부분적 역할 조정이 포함된다. 금융옴부즈만 제도(FOS)에 부여된 권한을 비례적으로 조정할 예정이다. 보상 한도 및 개입 기준 명확화, 기관 측 반론권 강화는 금융기관 입장에서 대응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소 금융회사들이 제기해 온 과도한 규제 대응 부담을 일정 부분 완화하는 방향으로 설계했다.
셋째, 리즈 개혁은 자금과 행정 인프라 양측에서 기업의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이중의 접근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정부는 British Business Bank의 정책 금융 역량을 총 256억 파운드 규모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초기 및 성장 단계 기업이 민간 시장에서 충분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고자 하는 취지로, 정책 자본이 마중물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한 조치다.
한편, 글로벌 기업과 인재 유치를 위한 콘시어지형 행정 서비스도 새롭게 도입한다. 이 서비스는 영국 투자청(Office for Investment)을 중심으로 기업 설립, 세무, 이민, 규제 대응 등 복합 행정 절차를 단일 경로로 통합 지원한다. 이를 통해 해외 기업이 런던을 포함한 금융 중심지에 입지할 때 직면하는 절차적 불확실성과 거래 비용을 낮추는 것을 보조한다.
제도 설계 경쟁의 시대: 리즈 개혁과 글로벌 허브 전략 비교
글로벌 금융 허브의 위상은 더 이상 단순한 자본 유입의 속도로 결정되지 않는다. 각국은 자신만의 제도 구조와 규제 전략을 통해 설계 기반의 경쟁력을 구축하고 있으며, 영국의 리즈 개혁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해석될 수 있다.
먼저 싱가포르는 싱가포르 통화청(MAS)를 중심으로 금융 서비스 산업 전환 로드맵(ITM 2025)을 수립하며 디지털 자산·AI·ESG금융에 대한 정밀 규제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기술 혁신을 장려하되 데이터 보안 및 위험 통제를 기반으로 제도 신뢰를 유지함으로써 글로벌 장기 자본 유입을 지향하는 전략이다. 싱가포르는 규제 체계의 명확성과 국가 차원의 산업 비전 간 연계에서 상대적으로 정합성을 갖춘 구조를 보여준다.
두바이는 두바이 국제금융센터(DIFC)와 가상자산 규제청(VARA)를 주축으로 한 Web3 특화 허브 전략을 추진 중이다. 가상자산 면허 체계의 유연성, 낮은 세율, 행정 절차 간소화 등을 통해 고속 성장형 프로젝트 유치를 유도하고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제도 신뢰보다는 시장 친화성과 사업 개시 속도에 방점을 둔 전략적 접근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 부산은 2009년 금융중심지로 지정된 이후 파생상품, 해양금융, 블록체인 특구 등 산업 특화형 금융 전략을 모색해 왔다. 부산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를 통한 실증사업, 그리고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 설립은 Web3 중심 금융 허브로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흐름으로 평가된다. 외국인 투자자 접근성, 국제 회계·법무 인프라 등 일부 기반 요소는 강화의 여지가 있다.
마지막으로 영국 런던의 리즈 개혁은 단기 유입을 유도하는 속도 경쟁보다는 공공자본(British Business Bank), 공공시장 중심 회수 구조(IPO 등), 규제 절차의 예측 가능성 강화를 결합한 설계형 허브 전략을 선택했다. 정부는 절차의 단순화와 감독기관 간 협력 시스템을 기반으로 제도 기반의 장기 신뢰를 축적하려는 접근을 취하고 있다.
신뢰·규칙·설계의 삼각축, 금융 허브를 재구성할 수 있을까
리즈 개혁은 영국이 브렉시트 이후 확보한 규제 자율성을 바탕으로 자본 공급(정책금융 확대)·시장 진입(인허가 단순화)·소비자 보호(옴부즈만 권한 조정) 세 축을 재배열하려는 ‘제도 설계 실험’이다. 이 실험은 테크핀 생태계에 새로운 기회를 열어 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세 가지 구조적 리스크를 노출한다. 첫째, 소비자 보호 기능이 과도하게 축소될 경우 장기적 시장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 둘째, 감독 역량 강화 없이 승인 절차만 가속화되면 규제 회피가 발생할 수 있다. 셋째, 256억 파운드 규모의 정책금융이 민간 자본시장과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면 자금 편중과 왜곡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리즈 개혁의 성패는 규제 비용 절감과 시장 신뢰 유지 사이의 균형, 그리고 공공 자금 마중물과 민간 자본 연계의 매끄러운 접합에 달려 있다. 영국 정부가 제시한 절차적 단순화가 감독 기구의 역량 강화, 데이터 거버넌스, 공공시장 유동성 확보와 병행될 때에만 이번 개혁은 일회성 완화책이 아니라 금융 허브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금융 중심지는 자본 규모가 아니라 신뢰·규칙·설계의 삼박자로 구축된다. 리즈 개혁은 그 삼박자를 다시 조율하려는 시도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향후 10년간 영국이 제도 설계 경쟁에서 실질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지는 이 균형 지점을 얼마나 견고하게 고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METAX =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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