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매수의 착시와 확실성 논쟁
Warner Bros. Discovery(WBD) 이사회가 Paramount Skydance(PSKY)의 주당 30달러 올캐시 공개매수를 전원일치로 거부하며, 주주들에게 공개매수에 응하지 말 것을 공식 권고했다. 겉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현금 30달러는 직관적으로 매력적인 제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사회의 판단 기준은 ‘가격’이 아니라 거래가 실제로 종결될 수 있는지, 즉 거래 확실성(closing certainty)에 있었다.
이번 사안은 콘텐츠 경쟁의 연장이 아니다. WBD와 PSKY, 그리고 Netflix를 둘러싼 충돌은 금융 구조와 자금 구속력, 그리고 리스크 관리 능력을 둘러싼 싸움으로 전개되고 있다.
WBD 이사회가 가장 강하게 문제 삼은 지점은 PSKY 제안의 자금 확약 구조다. PSKY는 엘리슨 패밀리를 중심으로 한 자기자본 백스톱을 강조했지만, WBD는 이 구조가 철회 가능한 신탁(revocable trust)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탁의 자산과 부채 규모가 공개되지 않았고, 시장 상황에 따라 구조 변경이 가능하며, 손해배상 책임에도 상한(cap)이 설정돼 있다는 점에서 주주 입장에서는 “30달러가 실제로 보장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이에 비해 넷플릭스와의 합병안은 구속력 있는 계약과 집행 가능한 자금 확약이 이미 체결된 구조라고 WBD는 강조한다. 이사회 논리는 단순하다. 중요한 것은 돈이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그 돈이 거래 종결 시점까지 묶여 있느냐라는 것이다.
공개매수 방식 자체가 가진 구조적 한계도 핵심 쟁점이다. WBD 이사회는 공개매수가 합병 계약과 달리 조건 변경, 기간 연장, 철회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큰 비구속적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는 거래가 무산될 경우 주가와 기업 가치가 다시 불확실성에 빠질 수 있는 비대칭 리스크를 주주에게 떠넘긴다는 의미다. 이사회는 이를 두고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제안”이라고 규정했다.
이 과정에서 ‘숨은 비용’ 문제도 부각됐다. PSKY 제안을 수용할 경우, WBD는 이미 체결한 넷플릭스 합병 계약을 파기해야 하며, 그에 따른 종료 수수료(termination fee)와 법률·자문 비용이 발생한다. WBD 이사회는 이러한 비용이 주당 가격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주주 가치에 마이너스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넷플릭스는 규제 리스크를 고려한 대규모 현금 종료수수료 조항을 수용해, 거래 불확실성 자체를 줄이는 구조를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규제 리스크를 둘러싼 시각 차이도 존재한다. WBD 이사회는 PSKY와 넷플릭스 결합 모두 규제 승인 가능성이 있으며, 양자 간 리스크 차이가 중대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는 “넷플릭스 합병이 더 위험하다”는 시장 일각의 관측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다만 외신과 시장에서는 넷플릭스와 WBD의 결합이 스트리밍 시장 지배력 측면에서 더 강도 높은 심사를 받을 수 있고, 조건부 승인이나 자산 매각 요구 가능성도 남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 부분은 향후 최대 변수로 꼽힌다.
숫자로 보면 선택의 대비는 분명하다. WBD 이사회에 따르면 넷플릭스 합병안은 주주에게 현금 23.25달러와 넷플릭스 주식 약 4.50달러 상당, 여기에 ‘Discovery Global’ 분리 이후 지분 가치를 제공하는 구조다. PSKY는 주당 30달러 현금을 제시한다. 단순 비교만 하면 PSKY가 더 명확해 보인다. 그러나 WBD는 “단순함이 곧 안전함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PSKY는 즉각 반격에 나섰다. 주당 30달러 올캐시 제안이 여전히 ‘우월한 제안(Superior Proposal)’이며, 거래를 끝까지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면은 이제 이사회 간 협상에서 주주 여론전과 공개매수 참여율을 둘러싼 싸움으로 이동했다.
이번 사안이 중요한 이유는 스트리밍 산업이 이미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콘텐츠 라인업이나 구독자 성장만으로 승패가 갈리지 않는다. 금융 구조, 자금 조달의 구속력, 규제 대응 능력이 최종 승부를 가르는 단계다. WBD 이사회는 이번 결정으로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더 비싸 보이는 거래”보다 “실제로 닫힐 수 있는 거래”가 주주 가치를 지킨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는 명확하다. PSKY가 자금 확약 구조를 얼마나 실질적으로 보강할 수 있는지, WBD가 넷플릭스 합병을 끝까지 밀어붙일 법적·절차적 여지가 충분한지, 그리고 주주들이 ‘가격’과 ‘확실성’ 중 무엇에 더 무게를 둘지가 이번 승부의 향방을 가를 것이다. 이번 싸움은 숫자의 전쟁이 아니라, 확실성의 전쟁이다.
[저작권자ⓒ META-X.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