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20 칩이란, 통제 회피를 위한 ‘타협형’ GPU
기술 공급 vs 기술 통제… NVIDIA와 Anthropic의 충돌
미국 정부의 대중(對中) 수출 통제 강화가 NVIDIA에 막대한 재무적 타격을 예고하고 있다.
AI 칩 시장의 압도적 강자인 NVIDIA는, 2026 회계연도 1분기(2025년 1월 29일~4월 27일)에 최대 55억 달러(약 7조 5천억 원)의 비용이 반영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상무부의 수출 규제로 인해 자사 제품 ‘H20’의 중국 출하가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는 2024년 말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해온 AI 반도체 수출 규제 조치를 2025년 5월 15일부터 본격 적용할 예정이다. 이는 ‘AI 확산 프레임워크(Framework for AI Diffusion)’의 일환으로,
중국·러시아 등 지정 국가에 고성능 AI 반도체 및 관련 기술의 수출을 엄격히 제한하는 정책이다.
이번 규제는 특정 GPU 성능 기준 이상을 갖춘 AI 칩에 대해 출하 전 라이선스(수출 허가) 획득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NVIDIA의 중국향 맞춤형 칩 ‘H20’ 역시 해당 범위에 포함된다.
NVIDIA는 2025년 4월 15일 제출한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 보고서를 통해 “중국 시장을 겨냥한 AI 칩 제품군(H20 등)의 재고, 계약, 조정 비용 등과 관련해 약 55억 달러의 비용을 2026 회계연도 1분기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NVIDIA가 중국 고객사들과의 선주문 및 출하 계획이 수출 통제로 인해 실현되지 못하면서 발생한 손실로, 수익 실현의 불확실성과 재고 조정 비용 등이 함께 반영된 것이다.
H20는 미국 정부가 2023년 NVIDIA에 처음으로 수출 규제를 가한 이후, 중국 시장 전용으로 설계된 ‘절충형 AI 칩’이다. NVIDIA는 A100·H100급 성능은 낮추되, AI 연산에 적합한 사양을 유지하는 제품을 설계해 중국 기업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H20 역시 중국의 슈퍼컴퓨터 개발이나 군사용 AI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결국 H20에도 개별 수출 허가제를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이슈는 같은 미국 기업 간의 정책 입장 차이도 수면 위로 드러냈다.
OpenAI 출신들이 설립한 생성형 AI 스타트업 Anthropic은, 최근 미국 정부의 AI 칩 수출 규제안(‘AI 확산 프레임워크’)을 공식적으로 지지하며, “중국을 포함한 특정 국가로 미국산 AI 반도체가 우회 경로를 통해 유입되고 있으며, 이는 국가 안보와 AI 오용의 관점에서 적극 차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Anthropic은 최근 미국 정부의 AI 칩 수출 규제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중국을 포함한 특정 국가로 미국산 AI 칩이 우회적으로 유입되는 경로가 존재하며, 이를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nthropic은 AI를 정부와 공동 관리할 대상으로 보는 반면, NVIDIA는 규제는 기술 진보를 막는다고 보고 있으며, OpenAI는 상업화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는 실용 노선이다.
Anthropic은 AI 안전성(safety)을 핵심 사명으로 내세우는 기업으로, AI가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통제 가능한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해왔다. 이 같은 철학은 Anthropic이 개발한 언어모델 Claude 시리즈에도 반영돼 있으며, 정부 규제와 협력을 통한 AI 윤리 확보를 강조하는 전략으로 OpenAI, NVIDIA 등과는 입장 차를 드러내고 있다.
현재 NVIDIA의 AI 칩 판매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시장 분석 기관들은 중국 매출 비중을 전체의 17~20%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55억 달러는 이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 판매 기회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NVIDIA는 미국 내 AI 인프라 투자 확대, 파트너사 TSMC와의 협력을 통한 자체 공급망 강화, 비중국권 신규 시장 확보 등을 중심으로 전략적 회복 플랜을 추진 중이다.
젠슨 황 CEO는 최근 중국 출장에서도 “NVIDIA는 중국 고객과의 협력을 유지하고자 하며, 규제에 순응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시장 모델을 찾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NVIDIA는 단순한 반도체 기업이 아니다. AI 생태계에서 NVIDIA는 LLM 학습·추론 인프라의 핵심 허브이자, 글로벌 기술 플랫폼의 중추적 플레이어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번 수출 통제는 그 기술력을 시장 외부의 정치·외교적 변수에 따라 제한받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
NVIDIA가 정책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도 기술 혁신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낼 수 있을지, 그리고 글로벌 AI 질서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균형점을 어떻게 찾아갈지가 앞으로의 최대 과제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저작권자ⓒ META-X.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