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이 묻는 디지털 자산의 정체성
자본이득세 도입으로 암호화폐를 증권처럼 다루기 시작한 슬로베니아
슬로베니아 정부가 2026년부터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로 얻은 수익에 대해 25%의 자본이득세를 부과할 계획이다. 이는 단순한 세금 정책 변화가 아니라, 암호화폐를 제도권 내 투자자산으로 인정하겠다는 국가의 의지를 보여주는 조치다.
2025년 4월, 슬로베니아 재무부는 암호화폐 수익에 자본이득세(Capital Gains Tax, CGT)를 적용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공식 발표했다. 이 세금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암호화폐를 현금으로 바꾸거나, 이를 사용해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적용된다.
다만, 코인 간의 교환 거래는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정부는 이를 암호화폐의 기술적 특성과 거래 유연성을 고려한 조세 설계라고 설명했다.
이 법안의 의미는 단순히 세금을 걷겠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암호화폐를 기존 금융자산인 주식이나 채권처럼 투자 대상 자산으로 보고, 이를 제도 안으로 편입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슬로베니아는 이 조치를 통해 Web3 시대의 디지털 자산을 더욱 책임감 있게 관리하고, 사회적 신뢰 체계 안으로 들이겠다는 정책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슬로베니아, 암호화폐에 '투자자산형' 과세 적용… 소비 아닌 수익 중심으로 전환
슬로베니아 정부는 암호화폐 수익에 '자본이득세(Capital Gains Tax, CGT)'를 적용하는 방식의 과세 체계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는 기존의 '거래세(Value Added Tax, VAT)' 와는 다른 방식으로, 디지털 자산을 소비재가 아닌 투자자산으로 바라보는 정책적 변화의 신호로 해석된다.
이번 과세안에 따르면, 세금은 암호화폐를 샀을 때의 가격과 팔았을 때의 가격 차이에 따라 부과된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이익이 생기면, 그 이익에 대해 25%의 세율이 적용된다. 이때 거래 수수료 등 부대 비용을 제외한 순이익을 기준으로 세금이 계산된다.
다만, 손실이 났을 경우 다음 해로 넘길 수 있는지에 대한 규정은 아직 명확하지 않아, 향후 입법 과정에서 구체화될 전망이다.
이러한 과세 방식은 암호화폐를 단순한 결제 수단이나 소비 도구로 보지 않고, 수익을 내는 자산으로 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슬로베니아는 조세 정책을 통해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를 투자자산으로 정립하고 있으며, 이는 디지털 자산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중요한 첫걸음으로 평가된다.
'거래세(VAT)'가 아닌 '자본이득세(CGT)'를 택한 이유
슬로베니아가 암호화폐 과세에 적용한 방식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거래세(VAT)가 아니라, 자본이득세(CGT)다. 이는 암호화폐를 단순 소비재가 아니라 ‘투자 수단’으로 보겠다는 정부의 입장을 보여준다.
거래세는 물건을 살 때마다 붙는 세금이다. 우리가 마트에서 과자를 사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이미 가격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이 거래세다. 소비자가 세금을 직접 내는 건 아니지만, 가격 안에 녹아 있어 최종 소비자가 부담하게 된다. 이런 방식은 즉시 소비되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적용된다.
하지만 자본이득세는 다르다. 이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가 변하는 자산에 붙는 세금이다.
대표적인 예가 주식, 부동산, 그리고 최근에는 암호화폐다. 이 자산들은 단순히 갖고 있다고 해서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을 100만 원에 사서 150만 원에 팔았다면, 이익인 50만 원에만 세금이 붙는다. 반대로 손해를 봤다면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실제로 이익이 실현된 경우에만 과세되는 ‘수익 중심’ 세금인 셈이다.
슬로베니아는 이러한 자산의 특성을 감안해, 암호화폐를 주식이나 부동산처럼 '보유→매각→수익 실현'이라는 흐름으로 보고 세금을 설계한 것이다. 즉, 암호화폐를 전환하거나 소비하여 실제 수익이 실현된 경우에만 과세하겠다는 것이다.
슬로베니아 재무부는 이 방식이 기존 금융자산(주식·채권 등)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과세의 형평성을 확보한다고 밝혔다. 그만큼 암호화폐를 ‘소비’가 아닌 ‘투자’로 보는 시각이 정책에 반영됐다고 할 수 있다.
자본이득세 방식의 장점은 무엇일까
슬로베니아가 선택한 자본이득세 방식은 암호화폐처럼 가격 변동이 큰 자산에 특히 적합한 과세 방식으로 평가된다. 이 방식은 특히 공정성과 유연성 측면에서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진다.
먼저, 자산을 단순히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수익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과세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가 손실을 본 상황에서도 억지로 세금을 내는 불합리함을 피할 수 있다. 이는 과세의 공정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다.
또한, 암호화폐에 주식이나 채권과 동일한 과세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기존 금융 자산과의 형평성도 확보된다. 디지털 자산도 제도권 자산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되어, 공정한 조세 체계를 구성하는 데 기여한다.
마지막으로, 자본이득세는 실제로 수익이 실현된 시점에만 세금을 부과한다. 덕분에 납세자는 수익을 통해 현금을 확보한 뒤 세금을 낼 수 있어, 현금 흐름을 해치지 않고 세금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납세 부담의 타이밍을 조절할 수 있는 유연한 제도로 평가된다.
슬로베니아, 유로존 내 Web3 선도 실험국가로 부상
유럽중앙은행(ECB)이 2024년 실시한 ‘유로지역 소비자 결제 태도 조사(Survey on Consumer Payment Attitudes)’에 따르면, 슬로베니아는 2023년 기준 유로존 내 암호화폐 보유율 1위(15%)를 기록한 국가다. 이는 성인 인구 10명 중 1~2명꼴로 비트코인, 이더리움, 스테이블코인 등을 실제로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2022년까지만 해도 보유율은 8% 수준에 그쳤지만, 불과 1년 만에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처럼 빠른 확산은 슬로베니아 사회 전반에 디지털 자산에 대한 수용성과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다른 유로존 국가들의 암호화폐 보유율이 5~12%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슬로베니아는 Web3 정책 실험에 유리한 사회적 기반을 갖춘 셈이다.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암호화폐가 단순한 ‘투기 수단’이 아닌, 실제 금융 포트폴리오의 일부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지금, 슬로베니아 정부의 과세 정책은 제도적 관리 체계 구축을 위한 타이밍으로도 적절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법으로 바꾸는 Web3의 책임과 신뢰
그동안 Web3 자산은 탈중앙화 기술이라는 특성상, 명확한 규제나 세금 체계 바깥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조세 회피 수단으로 악용되거나, 법적 책임성과 합법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슬로베니아의 이번 자본이득세 도입은 Web3 자산을 더 이상 ‘회색지대’에 두지 않고, 세법을 통해 제도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공식 세금 신고 대상이 된다는 것은 자산을 보유한 사람이 법적으로 보고할 의무를 지게 된다는 뜻이며, 이는 곧 Web3 자산이 회계 기반의 신뢰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는 큰 걸음이라 할 수 있다.
슬로베니아는 Web3 생태계를 강제로 규제하기보다는, 과세라는 간접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려는 접근을 택한 셈이다.
EU 전체 규제와도 발 맞춰가는 슬로베니아
이번 슬로베니아의 과세 제안은 단순히 자국만의 정책이 아니라, 유럽연합(EU)의 디지털 자산 규제 흐름과도 일맥상통한다.
EU는 현재 MiCA(Markets in Crypto-Assets Regulation)라는 디지털 자산 통합 규제 프레임을 준비 중이며, 이는 2025년 말부터 EU 전역에 적용될 예정이다. MiCA는 암호자산의 발행, 거래, 보관 서비스(커스터디), 소비자 보호까지 폭넓은 영역을 포괄한다.
슬로베니아는 이에 앞서 자산의 정의, 과세 대상, 예외 항목 등을 명확히 설정하면서, 사실상 EU 전체 규제보다 한 발 앞선 정책 실험을 진행 중이다. 이는 향후 다른 EU 국가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책 모델로 확산될 가능성을 열어둔다.
다만 이 정책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을지는 EU 내 정치적 논의와 조율 과정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세법, Web3 제도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
암호화폐를 제도화하는 과정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기술, 금융, 정치, 법률이 복잡하게 얽힌 다차원적 과제다. 이 가운데 슬로베니아는 가장 전통적인 정책 수단인 ‘세금’을 통해 디지털 자산을 제도권으로 편입시키는 접근을 택했다.
슬로베니아가 제안한 자본이득세 부과는 단순한 세수 확보 방안이 아니다. 이는 암호화폐를 책임 있는 투자자산으로 인정하고, 제도 안에서 관리하겠다는 상징적 선언에 가깝다. 세법을 통해 암호화폐 보유자에게 법적 보고 의무를 부여하고, 회계 기반의 신뢰 체계로 유도하는 구조다.
특히 이 조세 정책은 암호화폐의 ‘탈중앙성’을 억지로 없애지 않으면서도, 법적 책임과 사회적 신뢰를 함께 부여하는 절충적 모델로 평가된다. 강제적 규제가 아닌 ‘과세’라는 합리적 방식을 통해 Web3 자산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시도다.
유럽의 작은 국가에서 이루어지는 실험은 디지털 자산이 가진 제도적 공백을 메우려는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국제적 파급력이 크다.
Web3 시대, 세법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제 다른 국가들이 이 흐름을 어떻게 이어갈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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