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판 ‘프라이버시 권리 선언’으로 평가돼
영국의 인권운동가 오캐럴(Tanya O’Carroll)이 메타(Meta)의 타깃 광고에 ‘법적으로 반대할 권리’를 행사해 개인 맞춤형 광고를 중단시켰다.
이번 사례는 영국 및 EU 개인정보보호법(GDPR)에 따른 ‘직접 마케팅 반대권’이 실질적으로 작동한 첫 사례로 평가되며, 향후 수많은 유럽 사용자에게 데이터 거부권 행사에 대한 실질적 전례가 될 수 있다.
외신 등에 따르면, 2025년 3월 22일, 영국 고등법원(London High Court)에서 진행 중이던 프라이버시 소송이 원고인 인권운동가 타냐 오캐럴(Tanya O’Carroll)과 메타 간 합의로 종결됐다.
오캐럴은 2022년, 메타가 자신에 대한 개인화 광고를 중단해달라는 요청을 무시하고 데이터 추적을 지속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의 핵심은 “개인은 타깃 광고를 거부할 권리를 가진다”는 GDPR(일반 개인정보 보호법)의 해석과 실효성이었다.
영국 정보위원회(ICO)도 오캐럴의 입장을 지지하며 법적 의견서를 제출했고, 메타는 결국 그녀에 대한 광고 타깃팅을 중단하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타깃 광고, 메타 수익의 핵심
메타 전체 수익의 98%는 광고에서 발생하며, 그 중 대부분이 맞춤형 타깃 광고다. 사용자의 클릭, 관심사, 활동 이력 등 행태 데이터를 수집해 광고 정밀도를 높이고, 그만큼 높은 단가로 광고를 판매한다.
하지만 GDPR은 사용자가 자신의 데이터 사용에 명시적으로 동의하거나, 동의를 철회할 권리를 보장한다.
이번 소송은 그 권리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지 여부를 실험한 사례이자, 플랫폼의 동의 메커니즘이 법적 효력을 갖는지 판단하는 판례가 됐다.
ICO의 명확한 메시지: “거부권은 실질적이어야 한다”
영국 정보위원회(ICO; U.K.’s Information Commissioner’s Office)는 이번 사건에 대해 “사용자는 자신의 데이터가 광고에 사용되는 것을 명확히 거부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한 간단하고 실질적인 ‘옵트아웃’ 경로가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 메타가 제공하는 설정 기반 거부 시스템이 법적 기준에 부합하는지 재점검하게 만드는 선언이기도 하다.
“내 데이터로 수익을 내는 플랫폼, 나는 어떤 권리를 가졌는가?”
오캐럴의 주장은 단순한 프라이버시 논쟁이 아니라, 플랫폼 경제에서 개인이 어떤 데이터 주권을 갖는가에 대한 구조적 문제 제기다.
이번 합의는 향후 타깃 광고를 거부한 사용자에 대해 플랫폼이 서비스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판례적 기준선이 될 수 있다.
“유료냐, 감시냐”…광고 없는 유료 모델의 등장은 해법인가?
메타는 이번 합의 직후, “영국 사용자에게 광고 없는 유료 서비스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이미 2023년 EU 사법재판소의 판결 이후 유럽연합(EU)에서 시행 중인 ‘광고 없는 유료 옵션’을 영국으로 확대 적용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광고를 원하지 않으면 돈을 내라’는 구조는 프라이버시 권리를 부유층의 특권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향후 메타가 검토 중인 ‘광고 없는 유료 모델’은 단기적으로 규제 리스크를 회피하고, 프라이버시를 요구하는 사용자의 불만을 최소화하는 전략으로 작동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델은 ‘프라이버시를 사는 것’이라는 비판과 함께, 경제적 능력에 따른 데이터 보호의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단순한 유료화보다는 동의 기반 설계(consent-by-design)와 프라이버시 중심의 UX 혁신이 플랫폼 비즈니스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할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할 것이다.
이제 기업에게 프라이버시는 법적 준수의 대상이 아닌, 브랜드 신뢰와 사용자 충성도를 결정짓는 차별화 요소가 되고 있다.
“유료냐 감시냐”라는 이분법적 선택을 넘어, 사용자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데이터 생태계 모델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번 합의는 단지 한 개인의 승리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 사건은 감시 기반 비즈니스 모델의 한계와, 프라이버시를 중심에 둔 시장 재편의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글로벌 디지털 산업의 분기점이다.
프라이버시는 기본권이며, 비즈니스 모델의 제약이 아닌 조건이 돼야 한다. 유료 모델은 한계가 있으며, 플랫폼은 동의 기반 설계의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다.
“나는 당신의 타깃 광고를 원하지 않습니다.”
단 한 명의 사용자가 던진 이 말은 세계 최대 광고 플랫폼 메타의 구조를 흔들었다.
프라이버시 권리가 구체적으로 작동하고, 사용자 선택이 진짜 ‘옵션’이 되는 세상. 이번 사건은 그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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