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미국 텍사스 A&M 대학에서 졸업의 환희가 두려움으로 뒤바뀌는 일이 벌어졌다.
한 교수의 “ChatGPT로 쓴 글을 제출했다”는 일괄적 의심이 학생들의 학위 취득을 일순간 위태롭게 만든 사건이었다.
이 사례는 단순한 한 학교의 해프닝이 아니라, 전 세계 고등교육이 마주한 새로운 윤리적·제도적 딜레마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졸업식 뒤집은 ‘AI 부정행위’ 논란
2023년 5월 텍사스 A&M 대학 커머스 캠퍼스. 졸업식이 끝난 직후, 재럿 뭄(Jared Mumm) 교수는 자신의 수업 학생 전원에게 “ChatGPT로 작성한 글이 확인됐다”며 ‘X’(미채점) 학점을 부여하겠다는 메일을 보냈다.
뭄 교수는 학생 과제를 ChatGPT에 입력해 “이 글을 AI가 썼는지” 직접 물어본 뒤, AI가 ‘그렇다’고 답한 글에 0점을 부여했다. “나는 ChatGPT로 쓴 건 평가하지 않는다. 네가 배운 걸 봐야지, 컴퓨터가 배운 걸 보고 싶진 않다”는 코멘트가 온라인 포털에 남았다.
졸업 직후 받은 이 통보에 학생들은 즉각 반발했다.
한 학생은 “내가 직접 쓴 글임을 구글 문서의 작성기록으로 증명했다”며 “수년간의 노력이 AI 오해로 무시당하는 게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AI 탐지기, 믿을 수 있나...기술과 신뢰의 간극
이번 사태의 핵심은 ‘AI 글쓰기 탐지’의 신뢰성이다.
ChatGPT로 ChatGPT 글을 탐지할 수 없다는 것은 OpenAI(제작사)조차 인정한 사실이다.
Turnitin 등 에듀테크 기업이 내놓은 ‘AI 글쓰기 탐지기’ 역시 10% 가까운 오탐율(사람이 쓴 글을 AI로 오인)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AI 전문가들은 “탐지기는 GPT-3.5 수준까지는 어느 정도 탐지가 가능하지만, 최신 GPT-4 이상에선 사실상 무력화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거나 글쓰기가 서툰 학생, 심지어 기계처럼 무난하게 쓰는 학생까지 오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교육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뉴욕시 교육청, 프랑스 Sciences Po 등 일부 기관은 ChatGPT 등 AI 도구를 전면 금지했다. 반대로, 일부 교수들은 “계산기처럼 AI도 교육 도구”라며 오히려 활용을 독려한다.
‘지식 평가’란 무엇인가
AI의 등장은 “평가란 무엇인가”라는 고전적 질문을 다시 던진다.
AI 탐지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한, 졸업·학위 등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도 커진다.
단속과 불신의 시대, 교육의 본질 회복 필요
AI 시대엔 탐지와 처벌이 아니라, 투명한 가이드라인과 ‘AI 윤리교육’이 우선돼야 한다.
단순 레포트·서술형 과제에서 벗어나, 프로젝트·토론·대화형 등 ‘AI가 대신하기 어려운’ 역동적 평가 방식이 필요하다.
어떤 기술도 100% 완벽한 통제가 불가능하다. 교육기관은 ‘무엇이 공정한 평가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 그리고 AI와 공존할 수 있는 교육 혁신에 주목해야 한다.
"AI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텍사스 A&M의 ‘ChatGPT 사태’는 단순한 한 번의 해프닝이 아니다.
AI 글쓰기 탐지의 한계, 학생-교수 간 신뢰 붕괴, 평가제도의 불확실성, 그리고 교육계의 혼란이 응축된 이 사건은, 앞으로의 대학 교육이 ‘규제와 단속’이 아닌 ‘적응과 혁신’을 향해 나아가야 함을 시사한다.
학생들의 졸업장을 위협한 이 사건은, 동시에 교육자 모두에게 “AI 시대의 교육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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