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너 브러더스 디스커버리(WBD)의 매각 가능성이 본격화되면서, 미국 상원의원들이 법무부(DOJ)에 “정치적 편향 없이 공정한 심사를 진행하라”고 촉구한 공개 서한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 같은 요구는 과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AT&T–타임 워너 합병을 둘러싼 정치 개입 의혹을 떠올리게 하며, 이번 심사가 단순한 M&A 검토를 넘어 정치·법·산업 구조가 뒤엉킨 초대형 이슈로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AT&T–타임 워너 사례: ‘정치 개입’ 의혹이 남긴 뼈아픈 교훈
AT&T와 타임 워너의 합병은 미디어 산업에서 가장 상징적인 ‘수직 결합’ 사례로 기록되지만, 동시에 대통령의 개입 의혹이 법적 절차를 뒤흔든 보기 드문 선례로 남아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타임 워너 산하 CNN을 공개적으로 공격하며 합병 반대를 노골적으로 표명했고, 이에 정치적 보복 의혹이 제기되자 반독점 심사는 즉각 정치 논란의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갔다.
법무부는 2017년, 수직 합병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소송을 제기했고, 이는 수십 년 만에 처음 발생한 ‘수직 M&A 제동’ 사례로 기록됐다. 법무부는 AT&T가 합병 이후 콘텐츠 가격을 올려 소비자의 비용 부담을 키울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1심과 항소심 모두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정치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반독점 법리에 근거해 “경쟁 저해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AT&T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사건은 “정치적 의도만으로는 M&A를 저지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으며, 법무부가 정치적 논란 속에서 패소한 보기 드문 반독점 소송으로 남았다.

WBD 매각 심사에 드리워진 ‘정치적 편향’ 우려
이번 WBD 매각을 둘러싼 논란은 AT&T–타임 워너 사건과 구조적으로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상원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특정 인수 후보를 ‘선호한다’는 의혹, 일부 입찰자들의 사우디 국부펀드 연루 가능성, 백악관 고위 관계자와의 접촉 시도 등을 문제 삼으며, 심사 과정이 이미 “정치적 특혜의 구름 아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은 법무부 반독점국에 두 가지 압력을 동시에 가하고 있다.
① 정치적 독립성 확보에 대한 압박 증가
상원의 서한은 반독점국이 정치적 압력에서 자유로운 결정을 내릴 명분과 동시에 의무를 부여한다. DOJ가 특정 기업에 유리한 결정을 내릴 경우, 이는 곧바로 “정치적 특혜”라는 비판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무부는 AT&T 사례처럼 심사 기준을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고, 절차적 투명성을 극대화하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
② 모든 입찰자에 대한 동등한 심사 요구
특정 기업(파라마운트)이 대통령의 선호를 받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등장한 만큼, 법무부는 그 어떤 인수 후보에도 ‘정치적 스폰서십’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을 법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는 심사 기간의 장기화와 심사 강도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AT&T 사례와의 결정적 차이: 이번에는 ‘수평 합병’
AT&T와 타임 워너의 결합이 통신 플랫폼과 콘텐츠 기업의 수직 결합이었다면, WBD와 파라마운트의 결합은 명확한 수평 결합이다. 두 회사 모두 영화 스튜디오, 케이블 채널, 스트리밍 플랫폼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어 사업 영역이 직접적·전면적으로 겹친다.
이는 법적으로 매우 중요한 차이를 만든다.
- 수직 합병 → 반독점 저해 사례 입증 난도 높음
- 수평 합병 → 시장 지배력 강화, 경쟁 감소, 소비자 비용 상승 입증 상대적으로 용이
실제 상원의원들은 “한 개 기업이 미국인이 소비하는 거의 모든 콘텐츠를 통제할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하며, 이번 거래가 미디어 경쟁 환경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음을 지적했다.
따라서 WBD–파라마운트 결합을 둘러싼 반독점 논리는 AT&T–타임 워너보다 훨씬 불리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존재한다.
법무부의 고민: ‘정치적 중립성’과 ‘반독점 근거’라는 두 가지 시험
법무부는 이번 심사에서 두 가지 위험을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1) 정치적 중립성 훼손 위험
어느 후보를 승인하든 “대통령의 사적 영향력 때문”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 DOJ는 입증 가능한 법적 근거를 기반으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2) 반독점 소송 패소 위험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거래를 반대하면, AT&T 소송처럼 법원에서 패배할 수 있다.
→ 무리한 반대는 오히려 행정부의 반독점 정책 전체의 신뢰를 흔들 수 있다.
이 때문에 DOJ는 심사 과정 전반의 문서화, 자료 공개, 로비 접촉 기록 관리 등 절차적 투명성을 그 어느 때보다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WBD 매각 심사는 AT&T–타임 워너 사건 이후 가장 정치적으로 뜨거운 반독점 시험대
WBD 매각 심사는 단순히 기업 결합을 평가하는 절차를 넘어, 미국 반독점 시스템이 정치적 압력 속에서도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꺼내들고 있다.
AT&T–타임 워너 소송이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정치적 의도는 법원의 판결을 움직이지 못하며, 반독점 심사에서 최종적으로 살아남는 논리는 법적 증거와 시장 분석뿐이다.
이번 WBD 매각 심사 과정에서 법무부가 어떤 기준과 근거를 제시하느냐는 미국 미디어 산업의 미래뿐 아니라, 정책 집행기관의 독립성 안정성까지 시험하는 결정적 분기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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