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VIDIA와 AMD가 다시 ‘중국 시장’ 카드를 꺼냈다.
미국 정부의 AI 칩 수출 제한과 트럼프 행정부의 추가 압박 속에서도 두 기업은 오는 7월, 중국에 수출 가능한 신형 AI GPU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는 기존 H20 등 고성능 모델이 제재 대상이 된 이후의 반격으로, 양사는 기능을 낮춘 ‘합법적’ 버전으로 중국 AI 수요를 정조준하고 있다.
금지령 속 새로운 반격 ‘B20’과 ‘R9700’
2025년 5월 말, 공급망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NVIDIA와 AMD는 각각 B20(Blackwell 아키텍처 기반) 및 Radeon AI PRO R9700을 7월부터 중국에 공급할 계획이다.
두 제품 모두 미국의 수출 통제 요건을 피하기 위해 연산 능력과 메모리 사양을 낮춘 ‘다운그레이드 모델’로 설계됐으며, DeepSeek, Qwen3 등 주요 중국 AI 모델 구동에 충분한 성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NVIDIA의 H20 AI GPU를 중국 수출 금지 대상으로 명확히 지정한 이후 등장한 대응책으로, 전면 봉쇄가 아닌 부분 타협을 통한 시장 유지 전략이라 볼 수 있다.
트럼프의 H20 금지령과 AI 확산 전략의 실패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재집권 이후, 대중 기술 견제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기존 바이든 행정부가 도입한 AI 칩 수출 '3단계 제한'을 철회하는 대신 화웨이의 Ascend 칩 사용 전면 금지, 원산지 세탁·우회 수출에 대한 전방위 단속, 미국 내 생산 유도 및 관세 강화 정책을 연달아 발표했다.
하지만 트럼프 본인조차 최근 이러한 정책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NVIDIA의 CEO 젠슨 황(黃仁勳)은 지속적으로 미국 정부의 AI 수출 통제가 실효성 없음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중국의 AI 개발을 늦추기 위한 정책은 전혀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역효과를 불렀습니다.”
실제로 NVIDIA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2021년 90%에서 2025년 현재 50%까지 하락했으며, AI 칩 수출 제한의 공백을 화웨이와 중국 로컬 칩 메이커들이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상황이다.
젠슨 황의 전략적 메시지: “중국 없이는 기술의 미래도 없다”
젠슨 황은 최근 다수의 공개 석상에서 중국 시장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그는 DeepSeek, 알리바바의 Qwen3 등 중국발 대형 AI 모델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해당 생태계에 기여하고 싶다는 입장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2023년 말부터 시행된 강화된 수출 통제는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을 겨냥해 야심차게 설계한 고성능 AI 칩 H800과 A800의 중국 수출길을 꽁꽁 묶었다. 이로 인해 엔비디아는 무려 5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칩 재고를 손실 처리해야 할 위기에 놓였다. 이는 일부 중소형 반도체 기업의 연간 매출액에 맞먹는 천문학적인 규모다.
이로 인해 젠슨 황 CEO는 최근 인터뷰 등에서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더 이상 미국의 수출 규제를 준수하면서 중국 시장에 공급할 수 있는 H20 칩을 추가적으로 조정할 방법이 없다”고 단언하며, 기존의 대중국 시장 전략의 근본적인 수정이 불가피함을 시사했다.
H20은 엔비디아가 미국의 규제를 우회하며 중국 시장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특별히 설계한 칩이다. 그러나 추가적인 기술적 조정마저 한계에 봉착했다는 황 CEO의 발언은, 엔비디아가 미국의 규제와 중국 시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딜레마에 직면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에 따라 업계의 시선은 엔비디아의 ‘플랜B’에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엔비디아가 여전히 중국 시장의 거대한 잠재력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 전망하며, 미국의 규제망을 피하면서도 중국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맞춤형 칩 개발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또한, 규제가 상대적으로 덜 엄격한 다른 제품 라인업을 중심으로 중국 시장 공략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NVIDIA와 AMD, 다른 방식으로 중국을 잡는다”
NVIDIA가 출시 예정인 B20은 최신 Blackwell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하되, 연산 속도와 메모리 대역폭이 조정된 모델이다.
AMD 역시 AI 워크스테이션 최적화를 앞세운 Radeon AI PRO R9700으로 반격에 나선다.
특히 중국 내에서 “합법적이면서도 충분히 쓸 수 있는 AI 칩”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양사의 새로운 제품은 제재 하에서도 상당한 수익 보완 효과가 기대된다.
AMD는 그간 중국 AI GPU 시장에서 NVIDIA에 밀려 큰 두각을 보이지 못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내부적으로 커지고 있다.
기술과 정치의 경계, ‘우회 전략’은 어디까지 허용될까?
이번 NVIDIA·AMD의 ‘다운그레이드 AI 칩’ 전략은 단순한 기술 조정이 아니라, 정치와 시장 사이의 줄타기다.
이는 미국의 대중 견제가 기술산업을 어떻게 재편시키고 있으며, 기업이 생존을 위해 규제의 경계선을 얼마나 정교하게 활용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우리가 빠지면, 다른 누군가가 들어간다. 기술은 항상 그 자리를 채운다.”
이 발언은, 단순히 중국을 향한 손짓이 아니다. AI 기술이 진정 글로벌화되고 있다면, 그것을 멈추는 방식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기도 하다.
‘합법적 회피’인가, ‘디지털 패권의 협상전략’인가
NVIDIA와 AMD의 움직임은 단지 수출 규제를 피하기 위한 ‘합법적 조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 형성되는 ‘디지털 패권의 실리 협상’이라 할 수 있다.
AI는 이제 무기이며, 전략자산이고, 외교의 수단이 되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AI 기술의 흐름을 막는 것보다, 함께 만드는 방식은 없는가?”
격랑의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엔비디아가 어떤 새로운 전략을 펼쳐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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